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93화 (248/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93화

54. 용기(3)

“쉽지 않은 일일세.”

랄프 루퍼스의 권유로 김지우의 칼럼을 읽어본 베네치아 비엔날레 조직위원장 로렌조 지베르티가 말문을 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국가관은 그 나라에 전권이 있어. 우리가 나서서 어찌할 수 없는 문제지. 한국관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생각 외로 담담한 태도였다.

“알고 있었나?”

“이 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들리는 이야기가 많더군.”

“그런데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나.”

로렌조 지베르티 숨을 내쉬었다.

“나도 괴롭네. 랄프. 나도 괴로워.”

“…….”

“그러지 않아도 안 좋은 일이 있지 않았나.”

랄프 루퍼스가 베네치아 비엔날레 시상 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떠올렸다.

그 일 이후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권위는 추락했고, 대신 휘트니 비엔날레가 부상했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엔날레를 개최하던 베네치아는 미술 시장에 이어 전시회와 그 명성까지 미국에 빼앗기고 말았다.

“생각해 보게. 국가관 운영에 부정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어찌 되겠나? 나는 이 고귀한 역사를 내 때에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보자는 말인가?”

로렌조 지베르티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답하지 못했다.

“이보게, 로렌조. 자네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런 자네가 이러면 안 되지. 평생을 이곳을 위해 헌신해 오지 않았나.”

“…….”

“기억해 보게. 2007년에 아니쉬 푸어. 2009년에 고수열. 2024년에 앙리 마르소. 얼마나 기뻤어?”

“랄프.”

“올해는 또 어떻고. 그들 모두 참가한 데다 장미래 군과 고훈 군도 함께하네. 그들에게 부끄러운 자리를 만들 셈인가? 정말 그럴 작정이야?”

그럴 수 없었다.

랄프 루퍼스의 말대로 로렌조 지베르티는 베네치아를 사랑했다.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함께해 왔다.

“무너질까 두렵다고? 천만에! 자네가 걱정해야 할 일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명성이 아니야.”

랄프 루퍼스가 역설했다.

“나는 더 이상 예술가들이 베네치아를 찾지 않을까 봐 두렵네. 이 일을 방치했다간 정말 이름뿐인 껍데기가 되지 않겠나!”

“하나 대외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잘못을 감추기만 하는 게 더 부끄럽다는 것을 왜 몰라! 그런 곳을 누가 찾는단 말이야!”

랄프 루퍼스가 오랜 친구를 꾸짖었다.

“권위와 명예는 다른 데서 오지 않아. 뜻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일세. 이대로면 힘 있는 사람들만 찾는 곳이 될 거야. 안 그런가?”

“…….”

“로렌조!”

랄프 루퍼스의 말대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명예는 참가 작가와 관람객으로부터 생겨났다.

이대로 특정 인물들에게만 참여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정 뜻있는 예술가들이 찾아오지 않을 터였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허울뿐인 행사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

“알겠네. 조직위에서 이야기를 꺼내 보지.”

“로렌조.”

랄프 루퍼스가 기쁜 마음에 오랜 친구를 와락 끌어안았다.

* * *

“이상으로 개괄을 마칩니다.”

방태호와 미셸이 불한당 전시관 콘셉트를 설명하자 참여 작가들이 박수를 보냈다.

1층을 바다, 2층을 하늘로 정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다르지만 닮은 두 개념이 맞닿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사이’라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주제와도 맞아떨어졌다.

양쪽 모두 이민자 갈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듯하다.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도 일자리를 찾으러 온 이민자가 많다고 한다.

지평선 너머로 지는 <149,597,870.696㎞>를 전시할 생각이다.

“훈아!”

마은찬이다.

오리엔테이션 시작 직전에 도착하여 인사를 못 나눴는데 그동안 잘 먹었는지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안 오는 줄 알았어요.”

“하항. 나도 그럴 줄 알았어. 비행기가 연착돼서 급하게 오는데 길도 잘못 든 거야.”

운이 없었다.

“그래도 친절한 빵집 아저씨 덕분에 늦진 않았으니까. 나 운 좋은 편이지?”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보다 같이 구경할래? 나 베네치아는 처음이라서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데. 로렌조 퀸 손이라든가.”

카 사그레도 호텔 벽면과 맞닿은 조각상을 말한다.

2100년에는 수중에 잠길 베네치아에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손을 조각해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처음 봤을 때는 수면 위로 거대한 손이 튀어나와 있어 깜짝 놀랐었다.

“미안해요. 바로 할 일이 있어서요.”

“할 일?”

마은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멋진 일.”

장미래가 다가와 싱긋 웃으니 마은찬의 눈이 거의 다 튀어나왔다.

앙리를 만났을 때도 이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반가워요.”

“아. 어. 저도 반가워요. 장미래 선생님. 교수님? 작가님?”

“편하게 불러요. 마은찬 작가님.”

턱이 빠진 줄 알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마은찬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자, 장미래 작가님이 나한테. 나를. 어? 꿈인가?”

마은찬이 뺨을 감싸고 괜히 주변을 둘러본다.

장미래는 팬을 만나서 즐거운 듯 웃었다.

“한국관 갈 건데. 같이 갈래요?”

“한국관이요? 공동관이 아니고요?”

장미래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마은찬이 목이 끊어질 듯 끄덕였다.

이유는 상관없이 일단 좋은 모양이다.

“그럼 잠시만요. 설기야, 라임아.”

장미래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불한당에 합류한 작가 둘을 불렀다.

두 사람 모두 한국대학교 출신으로 장미래의 후배라고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미술을 배운 사람들이고, 어머니 아버지의 후배들이기도 하다.

조금 전 오리엔테이션 때 기억으로는 단발머리에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유라임.

흰 피부에 파마한 머리를 뒤로 묶은 사람이 백설기일 거다.

“네, 선배.”

유라임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백설기는 조금 떨떠름한 눈치다.

“훈이하고 선생님. 여기 마은찬 작가님하고 한국관 갈 건데. 같이 갈래?”

“한국관에요?”

유라임도 마은찬과 같이 의아한 모양이다.

“역사적인 곳이잖아. 한 번쯤 직접 구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저는. 빠질게요. 공동관을 먼저 보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인 유라임과 달리 백설기는 거절했다.

“그래. 나중에라도 보면 되니까.”

난감해하는 눈치라 장미래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허허. 일행이 늘어난 모양이구나.”

할아버지가 다가오자 마은찬이 또 한 번 경직되었다.

“마은찬 작가님이시라고? 반가워요. 고수열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영광입니다!”

할아버지가 악수하자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는데 못 본 모양이다.

연신 고개를 숙였다가 들기를 반복해서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셨다.

“그럼 가자꾸나.”

할아버지, 장미래, 유라임, 마은찬과 함께 한국관으로 향했다.

오리엔테이션 장소와는 제법 거리가 있었는데, 카스텔로 공원에 있다고 한다.

걸어가는 도중에 할아버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뿐이야. 동준 선배가 참 큰일을 해내셨지.”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가관은 26개로 한국이 가장 마지막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 많은 나라가 있는 아시아에서 단 두 나라뿐이라니.

유럽과 북미에 치우쳐진 미술 시장에서 한국이 그나마 선전하고 있다.

“동준 선배요?”

“저번에 작품 봤잖니.”

“아.”

백동준 화백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쉬민케 홍보 방송을 하러 독일에 들렀을 때 쿤스트 팔라스트에서 작품을 감상한 적 있다.

“원래는 국가관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어.”

“왜요?”

“격을 맞춘다는 느낌이었지. 무시했던 거란다. 여태껏 아시아에서 다른 국가관이 생기지 않는 것만 해도 알 수 있지.”

19세기에 살 적에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유럽인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다가 1995년에 백동준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면서 조금씩 인식이 바뀌었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사람이 국가관 설립을 거듭 요청하니 더는 거절할 수 없었거든.”

“그것도 엄청 생색내면서 허가했어.”

장미래가 할아버지의 말을 이어받았다.

“어떻게요?”

“하도 안 된다고 하니까 백동준 선생님께서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이라도 좋다고 하셨거든. 그렇게 화장실 있던 곳에 허가를 내줬지. 그것도 3년 뒤에 철거하는 조건으로.”

불쾌하다.

“자리도 안 좋으니까 다들 잘 안 될 거다. 했는데 웬걸? 전천수 선생님이 개관전에서 특별상을 받은 거야.”

“오.”

나와 마은찬이 동시에 반응했다.

“2년 뒤에는 강중익 선생님이 또 특별상을 받으셨고, 이후에는 이삭 선생님이 또 특별상을 받으셨지. 백동준 선생님부터 쭉. 물론 선생님도.”

장미래가 할아버지를 보고 씩 웃었다.

할아버지는 민망하신지 고개만 끄덕이셨는데, 내겐 그보다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렇게 상을 계속 받다 보니까 철거하기로 했던 이야기도 어물쩡 넘어가버려서 잊어버렸대. 다들.”

“그럼 어떡해요?”

“난리 났었지. 17년인가? 그때 알려져서 철거해야 한다고 이야기 나왔는데. 잘 무마되었어. 그때만 해도 협회가 이 지경은 아니었는데.”

할아버지와 장미래, 유라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당시 사정을 잘 모르는 나와 마은찬은 묵묵히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정말 열심히 나섰어. 예술가들이 성명서를 돌리고 직접 찾아와 설득도 해보고. 선생님도 오셨죠?”

“음.”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정말 설립부터 지금까지 다사다난했지.”

한국관이 어떻게 설립되었고 지켜왔는지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숲속의 아담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렇게 지킨 곳이야.”

원통형 건물 1층은 큰 유리로 안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작다.’

이 작은 건물을 지키기 위해 그 많은 사람이 땀 흘렸다고 하니 가슴이 묵직해진다.

그리고 대한예술협회가 이곳을 마음대로 유린한 일에 할아버지와 장미래, 방태호가 왜 그리도 화를 냈는지도 알 것 같다.

“여기가 한국관…….”

마은찬도 뭔가 느끼는 게 있나 보다.

차분히 외관을 살폈다.

입구 위에 ‘COREA’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구조물이 올려져 있다.

아마도 ‘Korea’ 같은데 이탈리아어라면 이해하겠지만 원통형 건물 2층을 보면 또 영어로 적혀 있다.

“K가 아니라 C라고 되어 있네요?”

“원래는 Corea라고 썼는데, 일제가 K로 바꾸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C로 썼단다.”

“정말이에요?”

“글쎄. 그쪽 일은 할아버지도 잘 몰라서. 나중에 한번 찾아보자꾸나.”

고개를 끄덕이곤 장미래를 보니 입을 앙다물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한국관을 마주한 그녀는 분해 보였다.

할아버지도 눈치채셨는지 장미래의 어깨를 툭툭 다독이셨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거야.”

“……네.”

할아버지와 유라임, 마은찬이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걱정되어 곁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장미래가 마음을 추스리곤 입을 열었다.

“훈아.”

“네.”

“우리나라 미술은 좁아. 유명한 사람은 많은데 전부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어. 그럴 수밖에 없거든.”

묵묵히 들었다.

“그래서 여기가 중요한 거야. 한국에도 멋진 미술 하는 사람이 있다고 알릴 수 있으니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엔날레에서.”

장미래가 주먹을 꽉 쥐었다.

“국가관에 여러 번 참여하는 경우는 없어. 앞으로 많아야 한 번?”

“한 번.”

“응. 한 번. 난 꼭 여기서 상 탈 거야. 전천수, 강중익, 이삭. 선생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럴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내가 누군데.”

장미래가 씩 하고 웃었다.

그녀는 이런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만큼 미술에 목숨을 바치고 있다.

도리어 자신만만하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로 말이다.

“저도 그럴게요.”

“훈이도?”

우리나라 예술가들도 멋진 작품을 한다는 걸 알리고 싶다.

“최규서 같은 인간에게 뺏길 순 없잖아요.”

장미래가 미소 지으며 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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