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88화
53. 불한당(8)
대한미술대전 심사관 배정 개입 및 부정 청탁.
시클라멘 갤러리 국가지원금 부정 수령 및 사적 사용.
성한일보 올해의 작가상 선정 개입.
대한예술협회 국가지원금 및 회원 회비 개인 부동산 구입.
“…….”
백설기에게서 USB 저장장치를 넘겨받은 김지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집한 파일은 대한예술협회장 최영수와 최규서, 김수혁 부부가 저지른 비리의 일부일 뿐이고 증거 또한 완벽하지 않다고 당부했지만.
김지우가 판단할 땐 기사로 활용하기에 넘치도록 충분한 소스였다.
“제정신이 아니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기가 막혔다.
최영수 협회장은 대한미술대전처럼 규모가 큰 공모전 심사관을 마음대로 배정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있었다.
딸 최규서와 협회 회원을 챙기는 것은 물론, 상을 목적으로 한 이들에게 수상을 약속한 대신 금품을 받아내기까지 했다.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이건 또 뭐야.’
최규서가 운영하는 시클라멘 갤러리도 정상이 아니었다.
대한예술협회에서 미술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로 등록된 덕에 최규서는 매년 1억 원의 국가지원금을 개인 계좌로 수령하고 있었다.
‘있는 놈이 더한다더니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한일보 올해의 작가상과 이 달의 작품 선정 또한 최영수의 입김이 작용했으며.
더더욱 기막힌 일은 최영수가 대한예술협회 앞으로 나오는 국가지원금을 개인 투자 자금으로 활용한 사실이었다.
‘고려당 김동윤 의원하고도 커넥션이 있어요. 성한일보랑 OBC도 마찬가지고요.’
백설기는 조심하게 접근해 달라고 덧붙였다.
국회의원에 유력 일간지, 방송국까지 함께하니 개인으로서는 걱정할 만도 하지만 김지우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여러 사건을 거친 대한민국은 범죄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국가 세금을 도둑질하거나 불공정한 일에 대해서는 이념을 초월해 분개했다.
자연스레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권력 기관과 언론도 있었다.
특히 성한일보와 경쟁하는 국민일보라면 이 일을 크게 보도해 줄 터였다.
김지우가 이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울리자마자 이인호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네. 지우 씨. 잘 들어가셨어요?
“네. 혹시 시간 있으세요?”
-지금이요?
김지우가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네.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요.”
-어. 그럼 어디서 뵐까요?
김지우가 잠시 고민했다.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집으로 와주세요. 주소 보내드릴게요.”
-예? 집이요?
“네. 조용히 얘기하고 싶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통화를 마친 김지우가 숨을 내쉬었다.
욕심을 내서 홀로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성한일보와 OBC 같이 대형 언론사는 다른 성향의 언론사가 나서야 맞상대할 수 있고.
고려당 김동윤 국회의원 또한 반대쪽에 있는 신라당과 백제당이 알아서 해결해 줄 터였다.
‘백제당사에 연락할까. 아니면 아예 여당에…….’
고민을 이어가던 차 벨이 울렸다.
김지우가 현관문을 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꽃다발과 와인을 든 이인호가 김지우의 눈치를 보곤 횡설수설했다.
“오늘 오랜만에 뵈었는데 인사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그동안 파리에 가 계셨으니.”
“…….”
“또 보자르에서 연재하시게 된 거 말로만 축하하기도 좀 뭐해서.”
떠오르는 대로 말을 돌렸지만 누가 봐도 고백하려고 온 차림이었다.
종종 연락하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던 터라 오늘 만남을 신호로 여겼던 이인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 * *
“잘 먹었습니다.”
“그래. 쉬엄쉬엄하고.”
“그럴게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곧장 작업실을 찾았다.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를 두고 며칠째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다.
여러 사람과 알고 지내도 똑같은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어머니, 아버지와 같을 순 없다.
앙리, 시현이, 라바니, 파브르 모두 친구지만 역시 같이 볼 순 없다.
그런 생각으로 어떤 관계를 그려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애꿎은 붓만 놀리고 있다.
머리를 비우고 캔버스 위에 물감을 얹었다.
오늘 아침 할아버지와 산책하며 본 단풍이 참으로 예뻤다.
노을처럼 물든 단풍나무의 고운 자태를 마주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울적해진다.
푸르렀던 잎이 무르익어 떨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그 아름다움이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노을도 마찬가지다.
멀리 산과 해의 위치를 잡아두고, 눈앞에 단풍나무 가지를 두었다.
해 질 녘이라 그림자가 져야 하니 단풍색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다.
그림자가 져 어두운 단풍잎에 구멍을 냈다.
노을이 투과될 테니 그 색이 단풍과 다르지 않다.
붓을 멈추고 잠시 캔버스에서 떨어져 그림을 관찰했다.
무심코 노을과 단풍을 함께 그렸는데 잘 건들면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
노을을 닮은 단풍.
매일 그 빛을 머금어 붉게 물든 걸까. 떠나간 해를 그리워했을까.
태양을 올려다보다가 닮아버린 해바라기 같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그런 망상을 하고 있으니 둘 사이가 무척 친근하게 여겨졌다.
다시 의자에 앉아 손이 가는 대로 붓을 움직였다.
‘그러고 보면.’
매일 뜨고 지길 반복하는 해와 1년을 주기로 물들고 떨어지는 단풍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같을 수 없다.
그러나 끝이 닮았다면 함께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두 개의 벽시계로 말했던 바와 맞닿아 있다.
관계라는 건 참으로 멋지다.
태양과 단풍나무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서로 닮았다.
문득 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1억 4,959만 7,870.696㎞라고 한다.
서로를 얼마나 애틋하게 여겼으면 그 머나먼 거리를 두고도 이리도 닮을 수 있을까.
1억 4,959만 7,870.696㎞가 얼마나 먼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적어도 저승보다는 멀지 않을까.
혹은 200년이란 시간을 거리로 환산할 수 있다면 그보다도 멀지 않을까.
태양과 단풍도 서로 마음을 나누는데 나라고 죽은 테오와 함께하지 못할까.
어머니, 아버지를 느낄 수 없을까.
누군가와 교감할 때 물리적인 거리는 장애가 될 수 없다.
단지 지구가 도는 것처럼 마음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마주했다가 멀어질 수 있고.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처럼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내년 6월에 금환일식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잊지 말고 꼭 한번 봐야겠다.
“후.”
노을을 머금은 단풍이.
그 우아한 자태가 애달프기 그지없다.
내일은 다르게 그려봐야겠다.
* * *
“어때요?”
고훈의 <149,597,870.696㎞>를 마주한 앙리 마르소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눈물이었다.
태양이 흘린 눈물이 캔버스에 떨어져 그대로 번진 듯했다.
앙리 마르소는 불처럼 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단풍잎에 사로잡혀 눈을 뗄 수 없었다.
<손님>, <가면>, <총탄>, <여름 너울>까지 최근 고훈은 구성적 측면에서 고평가 받고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149,597,870.696㎞>는 고훈의 첫 작품 <해바라기>를 연상케 했다.
순수한 감정을 발라놓은 듯 강렬한 색감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결국 자리를 잡았어.’
앙리 마르소는 비로소 고훈이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했다고 판단했다.
<여름 너울>까지는 여러 화풍을 흡수하여 변화하고 발전하는 경향을 보였거늘.
<149,597,870.696㎞>는 <서리 밀밭>과 <해바라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가슴 깊숙한 곳까지 와닿았다.
그리움.
처음에는 너무나 일찍 여읜 부모를 향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리 밀밭>에 이어 <149,597,870.696㎞>를 통해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삶에서의 회한과 동생 테오도르를 향한 애달픈 마음.
부모님을 그리는 서글픈 마음.
천지가 개벽한 시대에 홀로 떨어진 당혹스러움과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정을 붙이기 힘들었던 일까지.
고훈의 그리움은 복합적이었다.
타인인 앙리 마르소로서는 그 모든 것을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149,597,870.696㎞>를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고훈을 이해할 수 있었다.
‘클림트가 이런 마음이었나.’
앙리 마르소는 그제야 구스타프 클림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젊은 예술가는 기존 예술가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던 클림트가 제자 에곤 실레를 두고 자기에게는 그 시점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며 서글퍼했단 일화가 떠올렸다.
앙리 마르소가 긴 감상 끝에 입을 열었다.
“이걸 베니스에 낸다고?”
“네.”
앙리 마르소가 다시 한번 <149,597,870.696㎞>를 눈에 담고 물었다.
“제목은 왜 이래.”
“태양하고 지구 거리가 그 정도래요.”
“너무 길잖아.”
“네. 너무 멀죠.”
앙리 마르소가 고훈을 노려보다가 소년이 어깨를 으쓱이자 콧방귀를 뀌었다.
한 번 더 <149,597,870.696㎞>를 살피자 고훈이 의미한 바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함께하는 두 존재를 말하고 싶은 거라고 추측했다.
“내지 마.”
“별로예요?”
“아니.”
앙리 마르소는 잠시 간격을 두었다.
“최고다.”
고훈이 눈을 크게 떴다.
앙리 마르소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조금 전 앙리 마르소에게 주었던 초콜릿의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뭐 해?”
“상했나 싶어서요.”
두 사람이 또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좋다면서 왜 내지 말라고 해요.”
“팔아.”
“이걸요?”
“그래. 얼마면 돼.”
“팔 생각 없어요. 제출했다가 나중에 갤러리 지으면 전시해 둘 거예요.”
“얼마면 되냐고.”
“안 판다니까?”
고훈이 완강히 거절했다.
준비 중인 갤러리가 완공되면 그곳에 전시할 작품이 필요했고 <149,597,870.696㎞>는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중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은 탓도 있었다.
“팔아.”
“안 돼요. 전시할 거 없어요.”
“왜 없어.”
앙리 마르소가 눈살을 찌푸렸다.
매일 한 점씩 그리는 녀석이 전시할 작품이 없다고 하니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할 만큼 만족스러운 작품을 매일 그려낼 순 없었기에 고훈으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당신이 다 가져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