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78화
52. 애벌레와 제육덮밥(3)
“축하드립니다.”
마지막 부동산업자와 거래를 마침으로써 갤러리 부지로 사용할 땅을 모두 사들였다.
내 땅이라니.
한국에도 있긴 하지만 그곳은 기억이 온전히 돌아오기 전, 할아버지에게 쫓겨나면 혼자 농사나 지으며 살려고 구입한 곳이다.
숙원이었던 화가 공동체를 꾸리기 위한 이곳과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고마워요.”
부동산업자와 인사를 나누고 그간 참고했던 지도를 확인했다.
구입한 땅은 빗금을 쳐 표시했는데, 자크가 살았던 낡은 아파트 단지 일부와 버려진 자동자 대리점, 상가 건물이 포함되어 있다.
다행히 건물값은 내지 않고 토지 금액으로만 거래했다.
너무 낡은 건물이라 되레 허물어야 하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방태호가 부동산 소유자들을 잘 설득해 땅도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건물 주인들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거래가 멈춘 터라 그들도 언제 다시 구매 의사자를 만날지 모르는 일이었고.
방태호는 그 점을 잘 파고들었다.
재개발 가능성이 없고 치안도 좋지 않은데다 주변 상권이 죽은 지 오래니까.
그렇게 8,817㎡(약 2,667평)에 해당하는 대지를 평균적으로 평당 3,400유로에 구입해 총 906만 7,800유로가 들었다.
한화로 따지면 대략 약 122억 원.
세금과 중개료를 제외하고도 아끼고 아껴 모은 재산의 3할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당장 1~2년 전만 하더라도 평생 이만한 돈을 쓸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거늘.
테오가 이 일을 알았더라면 얼떨떨한 나를 대신해 기뻐해 주었으리라.
“알아보면서도 실감이 안 났는데 여기가 다 훈이 땅이라는 거잖아.”
방태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멋진데?”
“저도 실감이 안 나요.”
방태호와 마주 보고 웃었다.
“예전에는 엄청 비쌌다면서요. 정말 잘 산 것 같아요.”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몽마르트르는 땅값이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본래 파리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데다 언덕에 있어 그리 주목받지 못했는데 그 덕분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예술가들이 각자 활동하면서 입소문을 타더니, 건물 주인들이 월세를 높이는 바람에 가난한 예술가들은 다 떠나게 되었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찾는 사람이 줄어들어 남은 건 빈 건물과 말도 안 되게 높아진 임대료뿐이었다고.
그 상태로 방치되다 보니 결국엔 지금처럼 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지.”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 주셨다.
“네.”
할아버지 말씀대로 이제 시작이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마르소 갤러리처럼 멋진 건물을 지어 쇼콜라티에 회원들과 함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미술을 해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곳도 예전과 같이 사람들이 붐비지 않을까.
가슴이 뛴다.
* * *
미술 치료 강의를 들은 이후로 블랑쉬 파브르가 유독 열심히 한다.
불한당에 꼭 참여하고 싶다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데 곁에서 보고 있자면 흐뭇하다.
라바니도 그에 자극을 받았는지 매일 한 점씩 그린다.
재료 살 돈이 없어 그림을 못 그렸던 전과 달리 연습량이 뒷받침되니 그림이 금방 는다.
그런 이야기를 전했더니 차시현이 부러움을 내비쳤다.
-나도 하고 싶다.
“하고 있잖아.”
나름대로 포트폴리오를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달라. 뉴스에도 났어. 경쟁 심하다고.
한국 뉴스를 찾아보니 베니스 비엔날레 한프 공동 전시관 경쟁률이 2200:1이라고 한다.
7명을 뽑으니까 15,000명이 넘게 지원했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엔날레에 참가할 기회이니 무리도 아니다.
-파브르 누나랑 라바니 형은 어때? 될 것 같아?
“그랬으면 좋겠어.”
-힘든가 보네.
차시현이 내 생각을 잘 알아들었다.
응원하곤 있지만 불한당에 파브르와 라바니가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10만 명이 넘는 지원자 사이에서 미셸 플라티니의 눈에 드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힘들지. 그래도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아니야.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니 이제 막 시작한 아이들이 참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도 그거 준비하면서 연습 많이 했으니까. 배움 미술관 사생대회에선 상 받을지도 몰라.
크게 욕심내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보기 좋다.
“사생대회?”
-응. 초등부에서 나가기로 했어. 대상은 100만 원 준대.
미술관이 학생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미술대회 같다.
-100만 원 타서 겨울방학 때 놀러 갈게. 100만 원이면 왕복할 수 있나?
“제일 싼 거 찾으면 될 거야.”
차시현이 웅 하며 앓는 소리를 내며 뭔가를 찾더니 불평했다.
-난 눕는 자리가 좋은데. 오래 걸리잖아.
“일등석으로는 힘들걸.”
-그러게. 너무 비싸. 대상 여러 개 타야겠다.
황당한 계산에 웃고 말았다.
-왜 웃어.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 할 수 있을 거야.”
-응. 겨울방학 때까지 미술대회 대상 세 개 탈게.
“응.”
한국 초등학교 교내 미술대회에서 금상을 받고 난 이후로 자신감이 많이 붙은 모양이다.
부모님께 도움받아 올 가능성이 높지만 괜히 초를 치고 싶지 않고 또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응원했다.
부우웅-
통화를 마치자마자 또 전화가 걸려왔다.
마르소다.
“왜요?”
-어디야.
평소답게 대답은 안 하고 자기 알고 싶은 것부터 묻는다.
이러는 주제에 누가 누구에게 전화 예절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집이요.”
-뮌스터 갈 거니까 준비해. 데리러 갈 거야.
“지금이요?”
-그래.
“안 돼요.”
-왜.
“피자 시켜 놨어요.”
-나중에 먹어.
막무가내다.
저번에 약속이 취소된 이후로 언젠가 한 번쯤 가긴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점심은 아니었다.
“다음 주 토요일에 가요. 일주일 동안 참았단 말이에요.”
건강을 생각해 포테이토 피자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점심에만 먹기로 했거늘.
그 기회마저 놓칠 순 없다.
-10분 뒤에 나와.
전화가 끊어졌다.
안하무인인 건 예전부터 그랬지만 요즘 묘하게 무뚝뚝해졌다.
“무슨 일 있어?”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마르소가 뮌스터 가재요.”
“지금?”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바쁠 테니 미리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도 좀 급하구나.”
“그러니까요. 피자도 시켜놨는데.”
“피자야 나중에 먹어도 되지만 저녁에 방 대표랑 건축가 만나기로 했는데.”
“맞아요.”
쇼콜라티에 갤러리 건축 의뢰를 맡길 사람을 찾는 중이다.
할아버지가 턱을 쓸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녀오는 게 낫겠다. 어차피 오늘 만날 사람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인지 얘기만 나눠볼 테니 다녀와.”
“네?”
“따로 시간 내서 가기 힘들잖으냐. 불한당, 아니, 공동 전시관 작업 들어가면 바빠질 테니까.”
“그렇긴 하지만.”
“피자는 가지고 가도 되니까. 전용기 타고 갈 것 아니냐.”
그렇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망설이는 사이 초인종이 울렸다.
밖으로 나서니 황금색 대형 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안에 돌아오는 건가?”
할아버지가 마르소에게 물었다.
“저녁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음. 잘 부탁하네. 훈이 길 잃지 않게 잘 따라다녀야 한다?”
할아버지와 마르소를 번갈아 보았다.
재작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사이가 나쁜 것보단 낫지만 되도록 거리를 유지했으면 싶다.
“할 말 있어?”
마르소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피자 받아서 가자고요.”
* * *
고훈이 뮌스터로 갔다는 말에 방태호가 깜짝 놀랐다.
“뮌스터요?”
“그렇네.”
일정에 없던 여행을 갔음에도 고수열은 크게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배달이 늦어져 고훈이 챙겨 가지 못한 포테이토 피자를 먹을 뿐이었다.
“많이 달라지셨네요. 마르소 씨 대하시는 게.”
“이상한 친구긴 하지만 훈이는 잘 아끼니 말일세.”
마르소의 뻔뻔하고 안하무인격인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최근 2~3년간 그의 장점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손자 훈이를 지극히 아낀다는 점이었다.
앙리 마르소 덕분에 고훈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고 운동도 시작했다.
파리에서 살면서 바랐던 폭넓은 경험도 마르소 덕분에 쉬이 즐길 수 있었다.
“따로 뮌스터로 가야 하면 시간이 얼마나 들겠나. 비행기 타고 다녀오는 게 빠르지.”
파리 시내에서 뮌스터까지는 차량으로 족히 7시간이 걸렸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환경과의 어울림을 중요하게 여기는 대회이니만큼 언젠가는 둘러봐야 할 테니 기왕이면 편하게 다녀오는 게 나았다.
방태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다음 주에 서울로 간다고?”
“네. 면접 장소 섭외를 해야 해서요. 면접까지 보고 올 생각입니다.”
“고생이 많네.”
“하하. 고생 좀 해서 좋은 작품 전시할 수 있으면 남는 장사죠.”
방태호가 호방하게 웃었다.
대한민국 출신의 예술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역량을 뽐낼 수 있다면 기꺼이 몸을 내던질 수 있었다.
“그래. 관심 가는 사람은 좀 있던가?”
“네. 사실 면접을 봐도 고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15,000명이나 지원하면 절반은 대충 지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다들 정말 간절한 게 보여서 난감했습니다.”
고수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흔치 않은 기회니까 다들 잡고 싶을 테지. 나나 미래 흉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프랑스-한국 공동 전시관에 참여할 수 있는 한국 작가는 총 열 명.
그중 세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잠시 논란이 되었다.
고수열, 장미래, 고훈과 같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화가라 크게 이슈는 되지 않았지만 공정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을 고수열이 모를 리 없었다.
“아닙니다. 애초에 선생님하고 훈이 없었으면 시작도 못 했을 일 아닙니까.”
방태호가 고수열을 위로했다.
고수열은 작게 웃을 뿐, 방태호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음 비엔날레에선 나도 훈이도 서류부터 들어가야겠어. 그게 맞고.”
“이번에 수상하실 텐데 다음에도 참가하시려고요?”
방태호의 진심 섞인 농담에 고수열이 눈을 크게 떴다가 웃었다.
“하핫. 그것도 그렇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