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77화
52. 애벌레와 제육덮밥(2)
놀랄 수밖에 없었다.
쇼콜라티에 모임을 가진 지난 석 달간 앙리 마르소는 블랑쉬 파브르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좋은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었다.
마르소처럼 되고 싶고.
마르소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블랑쉬 파브르는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다.
“뭐 해.”
앙리 마르소가 재촉했다.
파브르는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린 자화상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학생들에게 그것을 보이자 몇몇은 감탄했고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홉 송이의 작은 은방울꽃을 종이 가득 확대해 표현해 두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녹색이 알록달록한 은방울꽃 줄기에 애벌레가 기어오르는 그림 속에서 블랑쉬 파브르를 찾아볼 순 없었다.
학생들은 파브르의 그림을 자화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화상 그리라고 했잖아.”
“어지간히 튀고 싶나 보지.”
“진짜 질리지도 않나.”
고등부 학생 몇몇이 블랑쉬 파브르의 그림을 비꼬았다.
앙리 마르소가 분명 자화상을 그리라고 요구했건만 무슨 신경으로 꽃을 그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재수 없어.’
블랑쉬 파브르는 항상 그랬다.
징그러운 곤충을 좋아한다거나.
그 사체를 이어 붙여 작품을 발표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만 저지르는 괴짜였다.
학생들은 파브르가 관심받지 못해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가끔은 관심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하나 싶어 불쾌하기까지 했다.
몇몇 언론까지 나서서 그녀를 천재 화가로 보도하고 나서니, 어른들이 모두 그녀의 예쁘장한 외모와 연기에 속았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명해.”
마르소가 그림을 해설하라고 요구했으나 파브르는 고개를 저어 거부했다.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림 속에 모두 담아냈기에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앙리 마르소는 턱짓해서 파브르를 돌려보내고 앞서 발표된 두 그림을 칠판에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잠시간 두 그림을 관찰했다.
선생님이 다음 학생을 지목하지 않자 학생들이 의아해하던 중, 마르소가 뒤돌아 강의를 시작했다.
“미술반 심화 학습을 수강한다면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은 거겠지.”
학생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예술가를 배출해낸 명문 앙리 4세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미술 심화반을 찾는 이유는 달리 없었다.
앙리 마르소나 고훈처럼 전통적인 미술을 하고 싶은 학생도, 디자인 계열로 나아가고 싶은 학생도 있었다.
“너.”
앙리 마르소가 처음 발표한 학생을 지목했다.
“뭐 그릴 거야.”
“선생님처럼 회화 그리고 싶어요.”
“다시 생각해.”
“네?”
“너처럼 그리면 굶어 죽어.”
앙리 마르소가 처음 발표된 스크래치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보고 감탄했던 놈들도 다시 생각해.”
너무나 직설적인 화법에 학생들이 충격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프랑스 미술계의 영웅으로 불리는 앙리 마르소가 한 말이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만큼 그리는 사람 프랑스에만 수백만 명 있어.”
학생들의 눈에 불신이 깃들었다.
처음 발표한 학생은 명문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도 뛰어난 축에 속했다.
그만큼 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 있다고 하니 쉬이 믿기 힘들었다.
“거짓말 같아?”
앙리 마르소가 칠판에 앵테르미탕 제도에 등록된 사람 수를 찾아서 보여주었다.
“국가와 SNBA가 예술가로 인정한 사람만 58만 명이야. 너희 중 대학 졸업하고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이 교실에선 두 명뿐이야.”
누구를 말하는지는 너무도 명확했다.
휘트니 비엔날레 초청작가이자 아르누보 공모전 준우승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흥행을 선보인 <기암성>에 참가했던 고훈과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10위를 차지했던 블랑쉬 파브르였다.
100여 명 중 단 둘뿐이었다.
“네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너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수십만 명 있어. 왜? 그 사람들은 너보다 재능이 뛰어나고 너보다 훨씬 많이 노력하고 너보다 일찍 태어났으니까.”
“…….”
“그런데 이따위 그림이나 그리고 있을 거야?”
앙리 마르소가 학생을 노려보았다.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의기양양했던 학생은 입만 뻥긋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앙리 마르소는 그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것도 모자라 감탄을 해?”
목소리가 경멸감으로 가득했다.
“너 같은 놈들 지겹게 봐왔어. 반에서, 동네에서, 또래 사이에서 그림 좀 그린다고 우쭐하다가 비슷한 놈들 모아둔 대학에선 평범해지지. 사회 나와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놈을 치켜세우는 너희는 그조차도 안 되고.”
앙리 마르소가 학생이 그린 자화상에 손을 얹었다.
“너희는 무슨 짓을 해도 남보다 잘 그릴 수 없어.”
“…….”
“지금은 내가 있고. 나중엔 저 녀석이 있으니까.”
고훈이 눈을 찌푸렸다.
‘잘 나가다가 왜 꺾어.’
앙리 마르소가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듣고 있다가 당황했다.
“불공평한 것 같아? 재능 없는 사람은 포기하라는 말 같아?”
교실에 있던 학생 대부분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앙리 마르소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반박하지 못할 뿐, 끓어오르는 마음을 어쩔 순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처음 발표한 학생이 반발심에 질문을 던졌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데, 절대 남보다 잘 그릴 수 없다고 하니 대체 어쩌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너만 할 수 있는 걸 그려.”
마르소가 그림을 내려치며 말했다.
“이딴 건 길에 널린 아무한테나 가서 그리라고 해도 나와. 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이 정도는 그린다고.”
“…….”
“훨씬 잘 그리는 사람이 수백만은 될 테고.”
마르소가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 찬 학생들의 눈을 노려보며 파브르의 그림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건 저 백발 꼬맹이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야.”
“저도 그 정도 그릴 수 있어요.”
“저도요.”
파브르를 따돌리던 아이들이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였다.
잘 그리긴 했지만 따라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만 조금 들인다면 은방울꽃 따위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희가 그린 꽃하고 이 그림이 똑같다고 생각하면 당장 짐 싸 들고 나가.”
앙리 마르소는 다시 한번 학생들을 다그쳤다.
“자화상을 그리라고 했어. 이게 꽃처럼 보여?”
“…….”
“이건 저 꼬맹이야. 왜? 이걸 좋아하니까. 이 꽃을 가꾸고 항상 같이 있으니까.”
고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앙리 마르소를 지지했다.
“네가 무슨 감정을 가졌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가슴 속에 무엇을 만들어나가는지 그리라고.”
앙리 마르소가 강단에서 내려와 고훈에게로 향했다.
고훈은 그늘진 해바라기를 표현하고 있었다.
해바라기는 검은색으로 남겨두고 배경만 벗겨내 해바라기의 그림자만을 볼 수 있었다.
대신 덧칠을 벗겨낸 배경은 눈부시고 알록달록하여 해바라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르소는 그것을 학생들에게 보였다.
“화가가 되고 싶으면 아무도 못 그리는 걸 그려. 이 녀석이 바라보는 세상은 나도 못 그려. 피카소든 마티스든 반 고흐를 데려다 놔도 못 그려.”
“그렸는데.”
고훈이 딴지를 걸었다.
“뭐?”
“아니에요.”
앙리 마르소가 고훈의 그림을 챙기고는 앞으로 나섰다.
“본인만 그릴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너희가 알고 있는 것 중에 너희만 아는 건 너희 자신뿐이야.”
난데없이 그림을 빼앗긴 고훈이 당황해하는 사이 학생들은 어느새 앙리 마르소의 강의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남보다 잘 그릴 순 없지만.
남이 그릴 수 없는 걸 그리면 된다는 말에 마음이 동하고 있었다.
“생각해. 본인이 누군지. 뭘 좋아하고 무엇을 보는지.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진짜 화가가 될 수 있을 거다. 나나 고훈 그리고 저 흰머리처럼.”
* * *
마르소가 내 그림을 가져가 버렸다. <거짓말쟁이 마르소>에 이어 두 번째다.
수행평가란 명분을 너무 과하게 활용하지 않나 싶다.
수업 내용만큼은 훌륭했으니 마르소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만 아니라면 넘겨줄 의향도 있긴 하다.
아이들은 마르소가 새로 나눠준 스크래치 용지를 받아들고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다.
자화상을 다시 그리라는 숙제를 벌써 준비하니 느낀 바가 있는 모양이다.
본인을 그리라는 말은 화가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굳이 독특한 기법이나 재료를 써야만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다.
기본은 나를 알고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다.
사물을 남에게 배운 대로 그리거나, 있는 그대로 복사할 뿐이라면 나아갈 수 없다.
마르소 말대로 기술적 역량에는 개인마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일정 수준까지는 노력으로 이를 수 있기에 거기에 먼저 도달하는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1년 만에.
어떤 사람은 10년 만에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어도 그 이상은 없다.
마르소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중요한 건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
남이 하는 걸 따라서는 비교가 될 뿐이다. 남은 그릴 수 없는 본인만의 세계를 그려야만 최고가 될 수 있다.
내 그림은 내가 제일 잘 그리고.
마르소 그림은 마르소가 제일 잘 그린다.
내가 굳이 차시현이나 라바니의 그림을 교정해 주지 않는 것도, 두 아이의 그림은 나보다 그들이 더 잘 그리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남이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자신만은 본인을 믿어줘야 한다고 말하던 앙리 마르소다운 강의다.
파브르를 무시하고 따돌리던 아이들에게 경종이 되었으리라.
튀고 싶다든지, 이상하다든지 하는 말로 개성을 짓뭉개던 아이들이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면 한다.
“고훈, 흰머리. 앞으로 나와.”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나자 마르소가 나와 파브르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파브르도 의아한 듯하다.
앞으로 나서자 종이 한 장을 준다.
파브르는 세 장을 받았다.
“이게 뭐예요?”
“반성문 써 와.”
“……뭐라고요?”
“늦었잖아.”
수업 시간에 조금 늦은 걸로 반성문을 써 오라는 말이다.
학생을 잘 달래서 수업에 참여시켰으니 응당 상을 줘야 하거늘 벌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데리고 오라면서요.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시끄러워.”
마르소가 고개를 돌렸다.
“너.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에 또 안 나오면 출석부에서 제명할 테니 그리 알아.”
평소 마르소를 타도해야 한다고 말하던 파브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이상하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