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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72화 (227/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72화

51. 전초전(2)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책임자 앙드레 마세나는 최근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작가를 섭외해야 할 텐데, 누가 뭐라 해도 프랑스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는 앙리 마르소였다.

앙드레 본인도 앙리 마르소가 적임자라고는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의 독선적인 태도였다.

그를 초청한다는 말은 곧 프랑스관 책임자로서의 역할과 치적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어쩐다.”

앙드레 마세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불미스러운 일로 그 위세가 전보다 못 하다곤 하나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최고의 미술전이었다.

국가관을 담당한 경험은 앙드레 마세나에게 큰 힘이 되어줄 터였다.

어떻게든 큰 성과를 거두어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몇몇 이름이 떠올랐다.

베르나르 베넷, 홈 응웬, 드란.

모두 뛰어난 예술가지만 앙리 마르소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다니엘 뷔랑은 앙리 마르소만큼이나 좋은 성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지만 워낙 고령이라 참가할 수 있을지 불분명했다.

“하아.”

앙드레 마세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앙리 마르소 외에 다른 작가를 섭외했다가 좋은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미술 애호가들은 왜 앙리 마르소를 초청하지 않았냐고 비난할 테고, 업계에서도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친 무능한 자로 전락할 터였다.

‘차라리 그냥.’

앙리 마르소를 중심으로 팀을 꾸린다면 황금사자상을 노리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모든 공이 그에게 돌아가겠지만, 적어도 2029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부문 황금사자상이란 타이틀은 얻을 수 있었다.

며칠째 거듭한 고민에 어느 정도 답을 내렸을 무렵, 셰바송 씨몽 협회장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앙드레.”

“회장님.”

씨몽이 앙드레와 반갑게 인사하곤 소파에 앉았다.

“한창 바쁠 텐데 무슨 일인가.”

“국가관 일로 상담 좀 드릴까 하고 찾아뵈었습니다.”

“상담?”

씨몽이 직원이 가져다준 찻잔을 들고 되물었다.

“네. 아무래도 마르소 씨를 초청하고 싶은데…….”

“하하핫하! 무슨 일인가 했네.”

앙드레가 말끝을 흐리자 셰바송 씨몽이 호탕하게 웃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앙리 마르소를 어떻게 섭외할지 걱정하는 것으로 여겼다.

“무얼 그리 걱정하나. 당연히 나서야지.”

“그럼.”

“얘기해 둘 테니 자넨 걱정 말고 진행하게.”

셰바송 씨몽이 호언장담했다.

주목받길 좋아하는 앙리 마르소가 프랑스 예술가를 대표하는 자리를 마다할 리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를 고려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참가하리라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한번 만나야 할 텐데 언제가 편하신지.”

“마르소하고 얘기하고 알려주겠네.”

앙드레 마세나가 거듭 감사를 표했다.

앙리 마르소에게 따로 연락할 수고까지 덜어냈으니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이래도 되나.’

프랑스관 책임자로서 하는 일이 없다시피 하여 잠시 걱정되기도 했지만 셰바송 씨몽의 웃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밖에 기자들 있던데 잘 이야기하고.”

“기자요?”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 명단 제출 기간이라 앙리가 참여하는지 궁금한 모양이야. 자네가 있는데 내가 나서서 얘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셰바송 씨몽의 배려에 앙드레가 감격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해 보겠습니다.”

“하핫. 그 녀석은 최선을 다하지 않길 바랄걸세.”

앙드레가 따라 웃곤 밖으로 나섰다.

회관을 벗어나자 셰바송 씨몽이 말한 대로 기자 몇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예부 기자들답게 금방 앙드레를 알아보았다.

“앙드레 마세나 씨 맞으시죠?”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을 어떻게 기획하고 계십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앙드레가 점잖게 운을 띄웠다.

“보통 비엔날레는 작가 위주로 진행됩니다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은 나라의 특징이 강조됩니다. 프랑스를 상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지금 프랑스에서 어떤 예술이 주를 이루는지 보이고자 합니다. 관객이 프랑스 미술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고요.”

“참여 작가는 어떻게 되나요?”

예상된 질문이었다.

앙드레 마세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부진 얼굴로 답변했다.

“앙리 마르소 작가를 제외하고 프랑스 미술을 논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다리던 대답을 얻어낸 기자들이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르소 씨와 이야기 된 일인가요?”

“앙리 마르소 단독 전시입니까?”

“지금껏 다른 큐레이터와 함께한 적 없는 마르소와 어떻게 일하실 생각이십니까?”

앙드레 마세나가 여유롭게 웃었다.

“아직 명단을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기자들의 얼굴이 실망으로 차올랐다. 기껏 마르소와 관련한 기삿거리를 얻어냈건만 확실한 일이 아니라고 하니 앙드레 마세나에게 속은 듯했다.

“그러나 방금 셰바송 씨몽 협회장님과 만나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럼?”

“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앙리 마르소 작가의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최선의 환경에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준비할 예정입니다.”

* * *

[앙리 마르소,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여 긍정적]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 명단 초읽기. 앙리 마르소 참여 확정]

[프랑스관 책임자, “앙리 마르소가 베니스를 지배할 것이다.”]

[앙리 마르소를 중심으로 꾸며질 프랑스관]

[SNBA 관계자, “앙리 마르소가 프랑스 미술을 대표한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가관에 앙리 마르소관 설치?]

[앙드레 마세나, “마르소를 위한 전시관을 만들 예정.”]

프랑스관 책임자 앙드레 마세나의 인터뷰는 곧장 기사화되었다.

언론은 아르누보 공모전으로 입지를 확고히 다진 프랑스 미술계의 영웅을 응원하는 한편, 조회 수 경쟁이 붙어 추측성 기사를 내기도 했다.

기대를 잔뜩 섞어 프랑스관이 황금사자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기사를 내는가 하면, 이미 앙리 마르소가 참가를 확정한 듯이 얘기하기도 했다.

생방송 중이던 뉴튜버 알렉스 우드가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한 시청자의 제보로 프랑스 기사를 찾아본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뭐 예상 가능한 일이죠. 멋진 예술가가 워낙 많은 나라지만 사실 지금은 앙리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근데 앙리가 나서면 왠지 혼자 할 것 같은데. 안 그래요?”

시청자들이 알렉스의 생각에 동의했다.

지독한 나르시스트인 앙리 마르소가 누군가와 협력해서 전시관을 꾸밀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앙리 마르소를 중심으로 꾸며질 프랑스관이라……. 추측성 기사긴 해도 아마 맞을 거예요. 저나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요. 이렇게 되면 아예 단독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앙리를 보조하는 작가가 나올 것 같네요.”

한 시청자가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었다.

“아무래도 프랑스랑 미국, 이탈리아가 강세죠. 한국? 한국은 좀.”

알렉스가 현재까지 확인된 참가 명단을 찾아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최가 단독으로 나왔어요. 난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게 고수열하고 고훈은 어쩌고? 장이 나왔다면 이해하겠는데 너무 뜬금없어서 좀 의아해요.”

알렉스 우드가 잠시 눈치를 보고 말을 정정했다.

“방금 말은 취소. 사실 최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몰라요. 근데 적어도 유명한 작가는 아니라는 거죠.”

국가관에는 스타 작가를 초빙하는 게 안 좋지 않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작가에게 초점이 맞춰지면 국가관인 의미가 없으니까 그렇긴 한데, 요즘엔 프랑스 같은 경우도 있어요. 앙리 마르소를 아예 전면에 내세우잖아. 저게 프랑스관인지 앙리관인지 모를 정도로. 이 기자는 아예 대놓고 앙리 마르소관이라고 하네.”

시청자들이 동의했다.

“사실 가져다 붙이는 느낌이긴 한데 가장 인기 있는 작가가 현재 그 나라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앙리를 내세운 거고. 그게 또 수상 가능성이 높은 거니까요. 자존심 경쟁 심하잖아요. 베네치아 비엔날레. 엥? 뭐라고?”

한창 이야기를 풀던 알렉스가 채팅창을 올렸다.

한 시청자가 제보한 내용 때문이었다.

[환상의 트로이카 결성]

18시. 프랑스 미술가 앙리 마르소가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에 참여함을 공식 발표했다.

앙리 마르소는 보도된 일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예술가 고수열, 고훈과 함께 ‘예술가관’에 합류할 예정이다.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에 신설될 예술가관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 실험적 전시관이다.

화가 공동체 쇼콜라티에를 설립한 앙리 마르소와 고훈이 고수열과 함께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속보로 올라온 기사는 아직 자세한 내용이 없었다.

“……프랑스관은?”

스크롤을 올렸다가 내리길 반복한 알렉스 우드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눈을 깜빡였다.

└아닠ㅋㅋㅋ 프랑스관 어떡햌ㅋㅋ

└기사는 뭔데? 프랑스관에 나온다며?

└앙리 없는 앙리관ㅋㅋㅋㅋㅋㅋ

└기레기들 또 헛소리 써댔네. 어쩐지 뭐 뭐 할 것으로 알려졌다, 추측한다고 썼더라.

└기사들 다 내려가고 있음ㅋㅋㅋㅋㅋㅋ

└와 근데 진짜 대박이긴 하다. 고수열에 앙리에 훈이까지.

└그러게. 진짜 이름값으로는 역대급 아닌가?

└미쳤지. 한 사람씩만 해도 충분히 화제가 되는데 세 명이 한 곳에 몰렸으니까.

└앙리랑 훈이가 합작한다는 게 솔직히 머릿속에 잘 안 그려지는데?

└계획이 있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앙드레 마세나 연락이 안 된댘ㅋㅋㅋ 자택에서 안 나오고 있대잖아 어떡해ㅋㅋㅋ ㅠ

└고수열이랑 고훈이 한국관에 안 나선 이유가 있었구만.

속보를 접한 셰바송 씨몽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눈이 거의 튀어나온 채 기사를 확인했다.

몇 번을 봐도 앙리 마르소가 예술가관에 참여한다는 문구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급히 마르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무슨 짓이야!”

셰바송 씨몽이 드물게 호통쳤다.

-뭐가.

“어떻게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런 일을 정해!”

-그러니까 뭘.

“베니스 비엔날레!”

-아.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어? 어? 자네 없는 프랑스관이 말이 되기나 해? 음!”

-말이 안 되지.

앙리 마르소가 너무도 태연하게 답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씨몽 협회장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걸 알면서 그랬어! 자네가 무슨 일을 하든 다 도와줬지만 이건 아니지! 어떻게 이래!”

-혈압 올라. 진정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말 좀 해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저질렀는지!”

셰바송 씨몽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앙리 마르소가 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왔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나라의 자존심을 건 국제 미술전에 참가하지 않겠다니 제멋대로라도 정도가 있었다.

-내가 프랑스관 맡으면 다른 사람한테 기회가 안 가잖아.

“…….”

한껏 꾸짖으리라 마음먹었거늘.

셰바송 씨몽 협회장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차피 나도 내 마음대로 안 할 바에야 이러는 게 맞아. 커미셔너한테 잘 꾸리라고 해.

-마르소, 이건 어때요?

-버려.

전화기 너머로 고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빠. 나중에 이야기해.

셰바송 씨몽은 통화가 끊어진 전화기를 든 채 한동안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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