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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67화 (222/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67화

49. 미술 수업(5)

“쉬워. 네가 이거 줄 때는 그만큼 미안했단 뜻이잖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조금 솔직해지면 돼.”

무슨 말인지 알 듯 말 듯 한 눈치다.

“네 마음을 속이라는 게 아니야. 아버지가 재혼하는 게 싫지?”

“……응.”

“아버지 몰래 옛날 집에 가거나 떼써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네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다른 어머니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말하면 돼.”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솔직하게 내비칠 용기만 있으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는 대부분 아주 사소한 일로 시작된다.

마르소가 내게 약속을 미룬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난. 말을 그렇게 잘 못 해.”

“다른 방법도 있지. 말주변이 없으면 편지를 써도 되고. 마음을 대신할 뭔가를 줘도 되고.”

말없이 식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걸 보니 아직 망설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어제 만난 그분은 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 * *

두 번째 미술 시간이다.

보조 강사가 큰 삼각형과 작은 삼각형, 직각 삼각형, 정사각형, 마름모, 사다리꼴 등등 여러 나무 조각이 든 바구니를 학생들 앞에 놓았다.

“오늘은 재밌는 나무 조각을 찾을 거란다.”

푸생 교장이 수업 내용을 설명했다.

“가장 재밌는 조각을 찾은 친구에겐 상점을 줄 거야. 지금이 2시니까 5분 동안 찾아보자꾸나.”

아이들이 각자 바구니에 달려들었다.

어떤 아이는 똑똑하게 아예 바구니를 쏟기도 했고, 다른 아이가 뭘 선택하는지 눈치 보는 아이도 있다.

재밌는 모양이라.

원, 사각형, 삼각형같이 단순 도형이 색과 크기, 형태만 다를 뿐이라 딱히 시선을 끄는 건 없다.

그래도 다들 각자의 이유를 만든다.

“이거 재밌지?”

“그냥 동그라미잖아.”

“다른 건 직선인데 이것만 곡선이 있잖아.”

“아, 맞다.”

동그라미를 선택한 아이도.

“이게 제일 재밌는데!”

“왜?”

“삐뚤어져 있잖아.”

평행사변형을 보고 삐뚤어져 있다며 재밌다는 아이도 있다.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이가 빠진 원을 발견했다. 다른 도형은 다 온전한데, 이 동그라미만 피자 조각 모양이 빠져 있다.

“다들 찾았니?”

“네.”

“어디 보자. 제롬은 뭘 골랐니?”

“이거요.”

제롬이 파란색 사다리꼴을 들어 보였다.

“어떤 점이 재밌었니?”

“이거 이렇게 쓰면 모자 같잖아요.”

저번에 주황색과 지붕을 연상했던 것도 그렇고 서로 다른 두 물건에 관계를 잘 부여한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좋아. 자크는 뭘 골랐니.”

“네모요.”

“네모가 재밌었구나.”

“아니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자크가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들이 자크의 말에 작게 웃자 심통이 났는지 주변을 노려봤는데, 푸생은 자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럴 수 있어. 단지 이 바구니에 자크가 좋아하는 게 없을 뿐이란다.”

푸생은 몇몇 아이에게 좀 더 물어보았다.

수업 시간은 이제 고작 20분 정도 남았는데, 첫 시간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어떤 색을 좋아하고, 그 색에서 무엇을 연상하는지 공유했던 첫 수업과 같이 이번에는 도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색과 형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은 모양이다.

앙리 마르소와 블랑쉬 파브르의 말로 잔뜩 기대했던 것에 비해 조금 김이 빠지는 건 사실이나.

12~13살 먹은 어린아이들에게는 확실히 좋은 접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눈높이 교육이라는 거다.

“어이쿠. 20분밖에 안 남았구나.”

푸생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보조 강사를 재촉했다.

“자, 지금부터 각자 고른 조각으로 재밌는 모양을 만들 거야. 집을 만들어도 좋고 자동차를 만들어도 좋아. 모자 쓴 사람을 표현하려면 제롬이 필요하겠구나.”

“……?”

당황스럽다.

반 아이들도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지 그저 눈만 깜빡거린다.

“서두르지 않으면 수업 시간이 끝나버리겠어. 아주 중요한 수행평가인데.”

푸생이 난처한 듯 망설이다가 아이들을 보고는 빙그레 웃는다.

“서둘러야겠구나.”

당황한 아이들이 당장 옆에 앉은 친구와 조각을 맞대본다.

직각 삼각형과 직각 삼각형의 빗면을 맞대자 한 아이가 좋아한다.

“됐다! 네모가 됐어!”

“그냥 네모잖아! 저리 가. 나 다른 거 만들 거야.”

인제 보니 함께하는 탱그람이다.1)

조각이 좀 더 다양하지만 도형을 사용해 다른 형태를 만든다는 점은 탱그람과 다를 게 없다.

처음부터 말해줬으면 나름대로 미리 구상을 해뒀을 테지만 지금은 즉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수행평가라고 하니 아이들은 어떻게든 뭔가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한다.

“훈아! 잠깐만!”

“너 뭐 할 거야?”

아이들이 내게 와, 내가 고른 이빨 빠진 원에 자기 조각을 이리저리 대본다.

하지만 함께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지 금방 포기하고 떠난다.

“10분 남았구나.”

푸생 교장이 능청스럽게 남은 시간을 고지했다.

당황스럽다.

이빨 빠진 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우선 사각형을 구해보려고 둘러봤지만 이미 많은 아이가 제 짝을 찾아가고 있다.

“5분 남았구나.”

더 망설였다간 조각도 못 모을 것 같아 나와 같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을 붙잡았다.

노란색 이등변 삼각형을 고른 아이와 같은 색 작은 삼각형을 고른 아이 둘이다.

크기가 다른 삼각형뿐이라니.

“어떡해?”

“망했어.”

“우리 빵점이야?”

내 머리가 이렇게 굳었나.

“슬슬 마무리해야겠구나.”

푸생 교장의 말에 급히 조각을 모았다.

이등변 삼각형을 몸통으로 두고 꼭짓점에 이빨 빠진 원을 끼워 머리로 삼았다.

그 위에 작은 삼각형 두 개를 두자 아이들이 기뻐한다.

“고양이다!”

“고양이!”

“선생님! 우리도 완성했어요!”

* * *

“당황스러웠어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자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셨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잘 만들었구나.”

“되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시간이 충분했으면 더 괜찮은 걸 생각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애초에 처음부터 뭔가를 함께 만드는 거라고 설명해 줬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아주 좋은 수업 같구나.”

“어떤 점이요?”

“창의력이라는 건 전혀 다른 뭔가를 이을 때 생기거든. 이빨 빠진 동그라미를 고를 때 고양이를 생각할 수 있었니?”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태블릿을 꺼내셨다.

“어디 보자. 어디 있을 텐데.”

대학에서 강의하실 때 쓰던 폴더를 뒤적이시더니 창의력과 관련한 문서를 열어보시곤 손짓하셨다.

“할아버지가 대학에 있을 때 이런 연구 결과가 있었단다.”

“뭔데요?”

“오늘 네가 했던 칠교놀이랑 비슷한 일인데. 아이들에게 뭘 만들 거라고 알려준 다음에 칠교놀이를 시키면 대부분 집이나 자동차 같은 걸 만들었단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좋아하는 모양을 선택하라고 한 뒤에 뭔가를 만들라고 했더니 집이나 자동차를 만드는 비율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거지.”

“아.”

“뭔가를 만들라고 할 때 집이나 자동차는 아주 쉽게 떠올릴 수 있단다. 그래서 다들 비슷한 결과를 보이지.”

“알 것 같아요.”

실험은 여러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좋아하는 조각을 고른 뒤에 뭔가를 만들라고 하니,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모양을 만들었고.

오늘 푸생이 아이들에게 시킨 것처럼 재밌는 조각, 이상한 조각을 고르게 한 뒤에 뭔가를 만들라고 했을 때는 매우 창의적인 모양을 만들어 냈다.

“우리 뇌는 비슷한 단어를 모아서 기억하는 경향이 있대. 집을 떠올리면 침대라든가 편안함 같은 단어가 자연스레 연상되도록.”

“네.”

“그래서 뭔가를 떠올렸을 때 바로 연상되는 건 창의적일 수가 없는 거지.”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다.

전혀 다른 개념을 연관시킬 때 우리는 낯섦을 느낀다.

“이런 걸 활용한 예술 기법도 있단다. 이름도 낯설게 하기지.”2)

할아버지가 기이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코트 입은 남자들이 공중에 수도 없이 그려져 있다.3)

“이게 뭐예요?”

“르네 마그리트라는 작가의 골콩드라는 작품이란다.”

당연히 땅 위에 있어야 할 사람이 공중에 있으니 이 낯선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다.

“골콩드가 무슨 뜻이에요?”

“인도에 있는 도시.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었대.”

“아.”

다이아몬드라고 하면 예로부터 금과 함께 부의 상징이다.

그림을 좀 더 관찰했다.

남자들은 모두 예의를 갖춘 모자와 멀끔한 코트를 입고 있다.

“언제 그린 작품이에요?”

“1953년이라는구나.”

아마 그 시대에서는 직장인들의 평범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런 남자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이름을 골콩드라고 지었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데, 인도 도시라니.

재밌다.

어쩌면 다이아몬드로 상징되는 부를 추구하는 도시 남자를 표현하는 걸지도 모르나.

이 작품은 의미를 찾기보단 이미지가 주는 낯선 경험에 의의를 두고 싶어진다.

그런 생각을 말하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저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다는 것도 재밌더구나.”

“그러게요.”

모두 중절모와 코트를 입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익명성을 나타내는 건가.

아마 1950년대 사람들이 거대한 자본에 휩쓸려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경향을 보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낯설게 하기라.

아주 흥미로운 기법이다.

* * *

1)칠교놀이.

서양에서는 당나라(tang)의 퍼즐이란 뜻으로 탱그람이라고 부른다.

나폴레옹이 즐길 정도로 동서양을 아울러 오랜 세월 사랑받은 놀이다.

2)데페이즈망(dépaysement)

3)<골콩드>, 르네 마그리트, 1953, 캔버스에 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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