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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65화 (220/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65화

49. 미술 수업(3)

“그래. 예술이란다.”

푸생 교장이 빙그레 웃었다.

“예쁘고 대단한 것만 예술은 아니란다. 또 대단한 철학이나 의미를 지닌 것만도 아니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가 몇 있다.

예술의 수도로 불리는 파리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예술 작품을 많이 봐 왔을 것이다.

프랑스를 거점으로 활동한 예술가가 워낙 많은데다 다른 나라에서 노략해 온 물건도 있으니까.

거기에 거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길거리 예술까지, 파리의 아이들은 예술 속에서 성장한다.

그렇기에 본인들의 그림을 예술이라고 말하는 나나, 푸생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선생님!”

“말해보렴, 팡틴.”

“그럼 예술은 뭐예요?”

“아주 어려운 질문이구나. 사실 선생님도 예술이 뭔지 모르겠어.”

아이들이 당황한다.

“하핫. 걱정할 필요 없단다. 시험 문제로 예술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일은 없을 테니까.”

적어도 1학년 때는 묻지 않는 것 같다.

“모르는데 어떻게 배워요?”

“배우지 않을 거야. 가르치지 않을 거고. 그저 할 뿐이란다.”

푸생이 교탁에서 오일 파스텔을 꺼내 보였다.

“오늘은 오일 파스텔로 놀자꾸나.”

푸생과 보조 강사가 학생들에게 오일 파스텔 세트와 도화지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색이 20가지나 된다.

“제일 좋아하는 색 세 가지를 골라보렴.”

푸생의 말에 아이들이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좋아하는 색을 집었다.

‘어디.’

우선 노란색과 파란색 집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녹색도 좋아하나 노란색과 파란색이 있으니 필요하면 섞어 사용하면 될 일이다.

여기에 굳이 더하자면 빨간색 계열이 필요한데 마침 아주 선명한 빨간색 오일 파스텔이 있다.

쉬민케의 카드뮴 레드 톤과 흡사하다.

“다들 고른 것 같구나. 미아는 어떤 색을 골랐니?”

“주황색이랑 병아리색이랑 하늘색이요.”

“다 멋진 색이지. 주황색은 왜 좋아하니?”

미아가 눈을 깜빡이다가 특별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지 수줍게 입을 열었다.

“예뻐서요.”

“하핫. 그래. 참 예쁘지. 그럼 주황색으로 된 건 뭐가 있을까?”

“농구공이요.”

“농구공! 그건 생각 못 했구나. 그래. 주황색 농구공도 있지. 또?”

“어. 슬리퍼랑 당근이랑. 호박이요.”

“좋아. 아주 잘했다.”

푸생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주황색 고른 사람 또 있을까?”

“저요!”

“오, 그래. 팡틴. 주황색하면 뭐가 떠오르니?”

“노을이요.”

“그렇지. 노을도 아주 예쁜 주황색이지.”

“저요!”

“제롬도 주황색을 좋아했구나. 그래. 제롬은 주황색하면 뭐가 생각 나니?”

“지붕이요!”

“맞다.”

푸생과 나 그리고 반 아이들이 모두 작게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건물 지붕이 주황색인 경우가 많다.1)

좋아하는 색을 고르라기에 무엇을 의도하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색이 가진 의미와 감정을 알아보는 시간 같다.

미아는 주황색을 두고 농구공과 슬리퍼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아마 평소에 농구를 좋아하고 집에 주황색 슬리퍼가 있었던 것 같다.

노을을 떠올린 팡틴도 아주 좋은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슬리퍼가 왜 주황색이야?”

“주황색하면 귤 생각했는데.”

“노을 진짜 예쁜데.”

주황색을 고른 아이도, 그렇지 않은 아이도 같은 반 아이들의 발표에 신기해한다.

서로 다른 심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사고가 확장된다.

푸생은 다른 색을 고른 몇몇 아이에게도 질문을 던졌고 아이들은 열심히 손을 들었다.

“자. 그럼 수업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구나. 30분 동안 지금 선택한 색으로만 그림을 그려보자.”

좋은 느낌이다.

미술 수업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 되자 자크가 교실로 돌아왔다.

눈 주변이 살짝 불그스름한 게 운 것 같다.

나를 보더니 고개를 팩 돌리고는 짐을 싸서 나갔다.

“신경 쓰지 마.”

제롬이 다가왔다.

“쟤랑 같은 학교 다녀서 아는데 괜히 저래.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해.”

“그래.”

녀석을 보고 있으니 걱정하는 걸로 보였던 모양이다.

다른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에도 짧은 삶을 저렇게 삐뚤어진 채 살아갈까 봐 걱정된다.

“근데.”

“근데?”

“앙리 마르소랑 친하지?”

“응.”

제롬이 눈을 크게 뜨고 반긴다.

“그럼 진짜 같이 일하고 그래?”

“그렇긴 한데.”

마르소의 팬인가 싶어서 사인이라도 부탁하려나 생각하니 어색하게 웃는다.

“앙리 마르소 그림 엄청 좋아해서. 부럽다.”

“나도 좋아해.”

“정말? 어떤 거 좋아해? 난 100번부터 200번 사이가 제일 좋아.”

자화상을 800여 점 그리니 팬들 사이에서는 몇 번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100번에서 200번 사이라니.

감이 안 잡힌다.

“그림자가 좋았어.”

“아! 휘트니 비엔날레 출품작이지? 나 그거 못 봤는데.”

“다음 달에 마르소 갤러리로 옮겨 온대.”

“정말?”

“무슨 얘기해?”

오늘은 좀 조용하게 넘어가나 싶더니 앙리 마르소 이야기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 * *

“쉽지 않네.”

나흘째 갤러리 부지를 찾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할아버지도 방태호도 나도 조금 지쳐서 달리다 광장 근처 카페에서 쉬고 있다.

“다른 데도 있어요?”

“있긴 한데 좋은 자리는 제한이 걸려 있어서.”

몽마르트르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파리는 오래된 건물을 도시 경관 및 문화 보존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어 좋은 위치에 넓은 부지를 구하기 힘들다.

그나마 주거용 건물은 안전상의 문제로 재개발 및 재건축이 허용되어 있는데,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는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다.

오래전 싼 땅에 자리 잡은 탓에 대부분 언덕 위에 있거나 오르막길에 걸쳐 있다.

“저쪽 위는 어때요?”

달리다 광장에 해바라기를 심을 때 도와주었던 카페 사장 아라비 씨가 초콜릿 머핀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위?”

“피자헛 알죠? 거기 옆에가 원래 자동차 대리점이었는데, 전기차 나오고 망해버렸지 뭐야. 땅도 평지고 오랫동안 안 팔려서 가격도 쌀 것 같은데.”

그럴듯한 이야기라 할아버지와 방태호를 보았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인 듯하다.

“주소가 어떻게 돼요?”

“라마흐끄가일 텐데.”

“아, 찾았습니다.”

방태호가 태블릿에 위성사진을 띄웠다. 라마흐끄가 162번지라고 되어 있는데 아라비 씨의 말대로 부지가 제법 넓다.

자동차를 많이 댈 수 있게 주차장을 가지고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겠는데.”

“알아봐야지. 전화번호가.”

방태호가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기 뒤에 아파트가 있는데. 엄청 오래되어서 철거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라비 씨가 이제는 아예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철거? 다른 건물이 들어온단 말이에요?”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게. 원래 그래야 하는데 건설사가 예전에 망해서 복잡한가 봐요.”

“흠.”

“재개발이 들어와야 사는 사람도 어디로 가 있든가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니까.”

“그럼 안전 문제로 철거한다는 말이에요?”

“네. 그대로 살자니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이사하자니 부담스럽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죽을 지경이죠.”

“그런 곳이면 다른 회사에서 뛰어들 법한데.”

“글쎄요. 다른 곳도 많은데 굳이 여기에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도 빈 집이 널렸는데.”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건물이 워낙 오래되고 관리 업체가 없어진 모양이다.

새로 뛰어들 업체도 없다고 하니 어쩌면 자동차 대리점이었던 곳과 함께 갤러리 부지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방태호가 통화를 마쳤다.

“내일 만나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는 길에 들러서 어떤지 한번 보세. 눈으로 직접 봐야지.”

“그래야죠.”

할아버지와 방태호가 나를 봤다.

입에 초콜릿 머핀이 가득해서 대답은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아라비 씨에게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내비게이션에 라마흐끄가 162번지를 입력하니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가깝네요.”

“그러게.”

“애들하고 모이는 것도 쉽겠어요.”

“흠. 그건 확실히 좋겠구나.”

달리다 광장과 뷰그레넬리 쇼핑몰에서 함께한 아이 대부분이 이곳 몽마르트르구에 거주한다.

달리다 광장과 얼마 안 떨어진 곳에 갤러리를 지으면 놀이터 아이들이 정말 집 앞 놀이터에 가는 느낌으로 모일 수 있을 것 같다.

“여긴데.”

차에서 내리자 빈 건물과 넓은 주차장이 펼쳐져 있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았는지 유리가 깨져 있기도 하고 쓰레기가 잔뜩 모여 있으나 건물 올리기에는 괜찮지 않나 싶다.

“안 쓰다 보니 쓰레기장이 돼버렸구나.”

할아버지가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것 같다.

“여기가 얼마나 돼요?”

“물어봐야겠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가격은 다른 곳보다도 싸.”

“안 팔리는 이유가 있겠지.”

할아버지가 꼼꼼히 주변을 둘러보셨다.

한두 푼도 아니고 게다가 내 갤러리를 짓는 일이니 평소보다 신중하게 접근하신다.

땅이라든가 건물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혀 없는지라 든든하다.

“어차피 되팔 생각은 없으니까 싸면 좋지 않아요?”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중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겠니.”

“그렇네요. 망할 수도 있으니까.”

“얘끼. 더 잘 돼서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해야지.”

할아버지는 나와 관련한 일이면 항상 희망적으로 생각하신다.

이보다 잘 돼서 이전이라니.

꿈이 너무 과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차.

“싫다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앳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자크가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었다.

* * *

1)유럽의 집 지붕이 주황색인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재료에 관련된 가설인데, 유럽인들은 주로 철분이 많이 함유된 일번점토를 사용해 집을 지었다.

이 점토가 구워지는 과정에서 철 성분이 산화해 붉은색을 띠게 되었다는 추측이다.

점토에 철 성분이 많은 동유럽 국가들은 붉은색, 주황색을 띠는 것이 근거라고.

또 하나의 가설로 제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기로부터 민간인 거주 구역이라는 걸 알리고자 지붕을 붉은색 계열로 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세계대전 이전에도 지붕이 붉은색 계열이었던 걸 고려하면 큰 의미는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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