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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64화 (219/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64화

49. 미술 수업(2)

마르소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몽마르트르구에서 알아보려고요.”

예상한 대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보통은 마르소 갤러리처럼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파리 핵심 지역에 짓는 편이 유리하다.

처음 내 생각도 그랬으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특히나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침체된 몽마르트르구라고 하니 더 이해하기 힘들 거다.

“왜 하필 거기야.”

마르소가 되물었다.

“땅값도 싸고. 상징성도 있고요.”

“상징?”

“예술가의 거리잖아요.”

마네와 모네를 시작으로.

몽마르트르는 오랜 세월 비주류 예술가들이 모여 활동하는 곳이었다.

아주 작은 사람들이 모여 큰 이름을 남긴 역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거리에는 노래하는 사람과 그림 그리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쇼콜라티에의 시작이 몽마르트르구 달리다 광장이었으니 갤러리도 그곳에 짓고 싶다.

“재건축 제한 지역이 많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태호 아저씨가 이것저것 알아봐 주셨어요.”

방태호가 도와줬다고 하니 또 말이 없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잔뜩 무시했는데 일하는 걸 몇 번 지켜봐서 그런지 최근에는 그를 제법 인정하는 눈치다.

집 앞에 도착했다.

운전해 준 아르센과 눈인사했다.

“고마워요. 근데 내일부턴 안 와도 돼요. 마르소가 걱정하는 일 없을 거예요.”

“내가 한가한 줄 알아? 뮌스터 일 때문에 온 거야.”

전화로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걸 뻔히 아는데도 고집이다.

“다음에 봐요.”

차에서 내리기 전에 마르소와 아르센에게 초콜릿을 하나씩 나눠줬다.

대문에 손목을 대서 정맥을 인식시키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네. 네. 아, 지금 왔네요. 그럼 30분 뒤에 뵙겠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방태호가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찍 왔네?”

“네. 할아버지는요?”

물어보기가 무섭게 할아버지가 작업실에서 나오셨다. 많이 기다리신 눈치다.

“어땠어?”

“평범했어요. 급식도 맛있고.”

“친구들은?”

“인사 정도 했어요.”

“그래. 차차 친해지면 되지. 버스가 빨리 오네?”

“마르소가 데리러 왔어요.”

“마르소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일로요.”

할아버지와 방태호가 반색하며 반긴다.

“참가할 수 있대?”

“네. 마르소랑 공동작업하기로 했어요.”

“잘됐구나.”

방태호가 뷰그레넬리 쇼핑몰 측의 제안을 수락했을 때만 해도 어찌 될지 의문이었거늘 일이 잘 해결되었다.

조각은 한 번도 안 해본 내게 방태호는 개벽을 사용한 작품을 출품하길 제안했었다.

개벽으로 그린 그림은 더 이상 설치 미술과 실내 미술, 조각과 회화 등 장르를 구분할 수 없었고.

개벽의 진행 과정을 알릴 좋은 기회라 여긴 앙리 마르소가 그 제안을 수락해 진행되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주최 측에서도 <앙리 마르소 002> 이후의 개벽 작품을 전시할 수 있으니 반가운 소식이었을 터.

방태호의 수완이 빛을 발했다.

“자, 늦겠다. 출발하자.”

“네.”

할아버지, 방태호와 함께 몽마르트르구로 향했다.

이곳저곳 제한 걸린 곳이 많기도 하고, 범위가 워낙 넓어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한다.

하루 만에 결정할 문제도 아니라 느긋하게 구경할 생각이나 내가 땅과 건물을 사러 다니다니.

두 번 살고 볼 일이다.

* * *

입학하고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미술 시간이 되었다.

마르소와 파브르가 칭찬한 니콜라스 푸생 교장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설렌다.

태블릿을 챙겨 미술실 앞에 줄을 서 있는데 뒤에서 누가 오른쪽 옆구리를 찔렀다.1)

돌아보니 줄곧 나를 노려보던 아이가 서 있다. 자크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다.

“왜?”

“뭐가?”

모른 척하더니 친구들과 함께 키득댄다.

이 아이도 사랑이 필요한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앞을 바라보니 녀석이 한 번 더 오른쪽 옆구리를 찔렀다.

돌아서자 또 키득거린다.

“재밌어?”

“뭐래. 얘 뭐라고 하냐?”

“몰라.”

왼쪽 옆구리를 내줘야 하나.

아니면 한 번 혼을 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자크가 한 번 더 성질을 긁는다.

“뭘 봐? 앞에 봐.”

이 아이가 부디 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하길 바란다.

그분들이 안 계셨더라면 머리털을 뽑아다가 엉덩이에 쑤셔 넣었을 것이다.

“그래. 장난 많이 칠 때니까.”

자크의 팔을 툭툭 쓸어내리고는 돌아서자 옆구리에 제법 큰 통증이 전해졌다.

손을 잡아챘다.

“그만해.”

“뭘 그만해? 이거 안 놔?”

자크가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소용 없다.

지난 1년간 할아버지와 마르소에게 괜히 시달린 게 아니다.

체격 차이가 난다고 아령 한 번 안 들었을 아이 하나 제압하지 못할 리 없다.

이대로 혼쭐을 내주고 싶지만 앞으로 많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이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마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폭력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손을 놔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학교 끝나고 해. 들어줄 테니.”

“이게!”

“무슨 일이지?”

자크가 달려들려던 차, 푸생 교장이 다가왔다.

“얘가 자크 괴롭혔어요.”

아이들의 말을 들은 푸생 교장이 내게도 물었다.

“훈이도 말해주면 좋겠구나.”

“뒤에서 옆구리를 찌르길래 그만두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푸생 교장이 뭐라 묻기도 전에 아이들이 나섰다.

“거짓말이에요! 자크는 저희랑 얘기하고 있었어요.”

이것들 봐라.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중학교에 입학하더니 남을 속이는 방법과 골탕 먹이는 법을 배운 모양이다.

어디서 이 못돼먹은 걸 배웠는지 몰라도 단단히 혼이 나야겠다.

“그럼 훈이가 자크를 왜 괴롭혔을까?”

푸생 교장이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거기까진 생각해 두지 않았는지 어물댄다.

“자크, 네 생각은 어떻니.”

“그냥 그랬어요.”

“이유도 없이?”

“네. 얘는 동양인이잖아요. 동양인은 원래.”

“자크!”

푸생 교장이 근엄하게 자크를 꾸짖었다.

“지금 당장 교장실로 가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고 있거라.”

“하지만.”

푸생 교장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노기 가득한 얼굴로 자크를 노려보았다.

자크가 어쩔 수 없이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교실로 들어가자꾸나.”

교실로 들어가는 도중에 몇몇 아이가 괜찮냐고 물어주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푸생 교장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늙은이는 생각이 꽉 막혔다는 말이 참 듣기 싫더구나.”

다들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다.

“여기 있는 누군가는 들어본 적 있을 거다. 부모님이 그런 친구하고 놀지 말라고 말이야.”

본인 경험을 꺼냈던 푸생 교장이 이제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랑은 친한데. 재밌는 친군데. 부모님은 왜 걔랑 놀지 말라고 할까. 그런 경험 있지 않니?”

몇몇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 우리 학교 다닌다고 하면 다 공부 잘하겠구나 하지 않니? 공부는 무슨. 난 공부 싫은데.”

아이들이 작게 웃었다.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컴퓨터 게임 좋아하는 애 있니?”

“저요!”

“좋아. 필리프. 게임하다 보면 네게 욕하는 친구도 있겠지?”

“네.”

“그 친구가 네게 욕을 하면 어떻게 하니?”

“전 그냥 무시해요.”

“참을성이 아주 좋구나. 하지만 요즘에는 부모 욕을 하는 아주 못된 녀석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럴 때도 있었니?”

“네.”

“어떻게 했지?”

필리프가 망설인다.

“괜찮아.”

“저도 같이 욕했어요.”

푸생 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필리프는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였단다. 정말 너무 화가 났으니까. 그렇지?”

필리프가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받은 사람은 자기를 향한 모욕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단다. 하지만 자기가 속한 집단이나 소중한 존재가 비난받으면 그럴 수 없게 돼. 아주 심한 모멸감을 느낀단다.”

푸생 교장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가닥이 잡힌다.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욕하는 건 그들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라서 그래. 나쁜 친구랑 놀지 말라고 하면 그 친구와 친한 나는 뭐가 되겠니? 앙리 4세 중학교를 다니니까 항상 공부를 잘해야 하니? 난 공부 말고 다른 게 좋은데? 부모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흑인이신데 그게 잘못된 거니?”

“…….”

“상처를 주기 위한 비난은 폭력이란다. 그리고 그 사람의 출신이나 삶을 부정하는 건 용서받지 못할 짓이야. 다시는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구나.”

뒤이은 이야기보다.

아이들이 겪었을 법한 일을 토대로 말하니 이해가 쉽다.

좋은 교사다.

“그럼 수업 시작하자꾸나.”

푸생 교장이 칠판에 미술이라고 적었다.

오래된 터치스크린이라 그런지 반응이 조금 늦지만 시야각은 넓은 덕에 글자를 못 알아볼 염려는 없다.

“오늘부터 미술을 공부할 거란다. 미술이 뭘까?”

“그림이요!”

한 아이가 답했다.

“그렇지. 그림. 그림만 미술일까?”

“조각이요!”

“에펠탑이요!”

“샹들리에요!”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나선다.

“그래. 지금 나온 이야기 모두 미술이란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라고 해서 시각 예술이라고도 하고, 에펠탑이나 샹들리에같이 공간을 활용한 건 조형 예술이라고도 한단다. 미술은 예술의 여러 형태 중에 하나지.”

푸생 교장이 아이들을 훑어보다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럼 하나 더. 여러분이 오늘 그릴 그림은 예술일까?”

아무도 답하지 않는 가운데 입을 열었다.

“예술이에요.”

* * *

1)프랑스에서는 교과교실제를 운영한다.

학생들은 다음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해당 교실로 이동해야 하며, 교사가 입실을 허락하기 전에는 교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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