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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58화 (213/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58화

48. 입학(1)

뷰그레넬리 쇼핑몰에서 지원해 준 버스에 아이들을 태웠다.

입으라는 말도 안 했는데, 다들 아동복 브랜드 릴리에서 협찬해 준 꿀벌 옷을 입고 있다.

“나 어제 빵 세 개나 먹었다?”

“아들리 쉬 마렵대요!”

“그렇게 크게 말하면 어떡해.”

“아들리 쉬 마렵대요.”

부끄러워하는 아들리를 위해 올리비에가 다급한 소식을 다시 전했다.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말하는 게 귀엽다.

“10분이면 도착하는데. 참을 수 있겠어?”

방태호가 묻자 아들리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버스를 잠시 멈추고 구청에서 나온 복지사가 아들리를 데리고 어디론가 다급히 달려갔다.

자리에 바로 앉으려다가 비다 라바니와 눈을 마주쳤다. 모처럼 표정이 밝다.

나란히 앉아서 초콜릿을 한 알씩 입에 넣었다.

“소풍 가는 것 같다.”

“그러게.”

“이런 거 맞아?”

“뭐가?”

“소풍.”

당연한 것을 묻기에 잠시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소풍을 가본 적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풍이지.”

“싸우러 가는 거야.”

“싸, 싸워?”

앞자리에 앉은 블랑쉬 파브르가 얼굴을 내밀자 비다 라바니가 당황했다.

“쇼콜라티에가 얼마나 멋진 화가 집단인지 알릴 기회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너도 쇼콜라티에잖아.”

“나, 난 아직.”

“안 들어올 거야?”

“들어가고 싶지만…….”

라바니가 나와 파브르의 눈치를 본다.

“들어가도 되는지 모르겠어.”

“무슨 말이야. 우리가 부끄러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왜?”

“…….”

라바니가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무슬림이기 때문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고민하는 건데 정작 파브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도리어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들어오고 싶어? 아니야?”

“들어가고 싶어.”

“그럼 이번 기회에 대표님하고 훈이한테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야지.”

파브르가 나와 방태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라바니는 파브르의 말을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인 것 같다.

“으, 응! 열심히 할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하는 것보다, 파브르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때론 도움이 되기도 하나 보다.

비다 라바니가 의욕을 보인다.

“참.”

파브르를 보며 물었다.

“앙리 4세 고등학교 다닌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만날 수도 있겠다. 교장 선생님이 고등학생도 같이 공부할 수 있다고 하던데.”

앙리 4세 고등학교와 부속인 앙리 4세 중학교는 재능 있는 아이가 많은 것 같다.

일반 과목 이외에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지원하면 따로 강의해 주는데, 푸생 교장의 미술 수업은 인기가 많다고 한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함께 가르치는 것 같다.

“맞아.”

파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일전에 만나본 경험으로는 좋은 사람 같고 또 마르소의 은사라고 하니 대단한 인격자겠지만.

강의는 또 다른 법.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유익해. 교장 선생님은 천사야.”

“무슨 수업 들었는데?”

“미술 치료.”

푸생이 말해주었던 여러 과목 중 하나다.

어렴풋이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있지만, 체계적인 학문으로 접근해 보진 않아서 관심이 많다.

“뭐 배우는 거야?”

“배우지 않아.”

파브르가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꺼냈다.

“안 배워?”

“응. 그냥 놀아.”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돼서 재차 물었더니 알면 재미없다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우와!”

“예쁘다.”

“이거 형이 만들었어?”

쇼핑몰에 도착해서 <헨젤과 그레텔>을 보여주자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모여들었다.

열심히 만든 보람이 있다.

나뭇잎을 하나 떼자 깜짝 놀란다.

“자, 먹어 봐.”

올리비에가 나뭇잎을 관찰하더니 나를 의심스레 올려다본다.

“나뭇잎 먹는 거 아니야.”

욕심을 과하게 냈던 모양.

식용색소를 활용해서 색을 입혔더니 초콜릿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가짜 나뭇잎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먹어야 믿을 것 같아서 입에 넣자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놀란다.

“맛있어.”

강아지 한 마리를 집어 아들리에게 권하자 고개를 젓는다.

“초콜릿이야.”

“그래도. 귀여운데.”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과자집이라고 하면 다들 좋아해 주리라 생각했는데, 귀여워서 못 먹는다고 하니 당황스럽다.

“난 그냥 이거 먹을래.”

한 아이가 마트에서 파는 초콜릿을 하나 집어 들자 덩달아 다른 아이들도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좋은 의도가 항상 긍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오진 않지만 <헨젤과 그레텔>은 실패다.

아이들은 과자집을 신기하고 예쁘게 관찰할 뿐 먹진 않았다.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목적이 빗나간 경우인데, 앞으로 다른 작품을 만들 때 유념해야겠다.

* * *

“네?”

잡지 <예화>가 폐간된다는 비보에 김지우 기자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렇게 됐어.”

대표는 사실을 다시금 알렸다.

몇몇은 고개를 숙였고 또 다른 몇몇은 입술을 깨물었다. 김지우와 나머지는 황당하고 분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다.

<예화>가 사원 17명의 영세한 중소기업이긴 하나, 최근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매달 감소하던 잡지 구독자는 반년 전과 비교해 현상 유지 중이었고, 온라인 기사 조회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대체 왜요? 뭐가 문제예요?”

대표가 눈을 감았다.

본인의 모든 것을 바친 사업장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좌절했고, 사원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알려야 하는 입장에 자존심도 상했다.

이상철 편집장이 대신 나섰다.

슬픈 일이나 사실을 고해야 했다.

“그동안 계속 적자였다는 건 알고 있었을 거야. 대표님께서 사비로 충당하시다가 작년부터는 대출로 버텼어.”

“…….”

김지우와 직원들은 이상철 편집장이 전한 이야기에 가슴이 턱 막히는 듯했다.

바로 지난달까지만 해도 직원들의 보너스와 인센티브를 지급해 주었는데, 그조차 대표가 빚을 지고 나눠준 거라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당장은 아니야. 정리할 것도 있고 너희도 새 일 구해야 할 테니까 두 달 정도 미리 말하는 거야.”

대표가 나섰다.

한 사람, 한 사람과 시선을 교환하고는 눈을 감았다.

“미안해.”

김지우가 나섰다.

“저, 인센티브 반납할게요. 월급 한두 달 정도는 밀려도 괜찮아요.”

대학 졸업 후.

꿈을 찾아 함께한 <예화>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렸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어렵다고는 생각했지만 굳이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상황을 알아봤자 걱정만 늘 뿐, 기자로서 더 좋은 기사를 쓰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예화가 몇 달 더 버틸 수 있었던 건 김지우가 보여준 퍼포먼스 덕이었다.

아르누보 공모전 당시 김지우의 기사는 크게 재확산되었다.

아르누보 공모전 특집호는 실제로 평소보다 훨씬 많이 판매되어 예화에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오프라인 사업에 집중했던 예화는 그것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1만 부를 인쇄하여, 그중 2,000부만이 팔리는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저도 괜찮아요.”

몇몇이 김지우와 같은 생각을 내비쳤다.

몇몇은 호응하지 않았다.

대학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는 1~3년 차 사원, 전세대출을 갚아 나가야 하는 사원, 책임질 사람이 있는 사원 모두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현실이었다.

한두 달 사이에 상황이 호전되리란 확신이 있다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설령 인건비를 잠시 미룬다고 해도 자금이 나올 구멍이 더는 없었다.

“그동안 고마웠고. 남은 시간도 잘 부탁할게.”

그는 본인의 고집으로 온라인 사업보다 실물 잡지 출판에 집중한 것을 후회했다.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비록 한계에 부딪혔으나 꿈을 이루기 위한 일이었으니, 자부심을 가졌을 터였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사원들 앞에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앞날이 창창한 이들이 스스로 희생하도록 둘 순 없었다.

전체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김지우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스 정리해야 하는데.’

‘훈이하고 통화하기로 했는데.’

‘서인호 작가님 전시회 가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무엇 하나 손에 쥘 수 없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도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를 보던 이상철 편집장이 다가왔다.

“퇴근해야지.”

정리되지 않은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네.”

건물 밖으로 나선 김지우는 이상철 편집장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문득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었고, 고개를 돌리자 회사 건물 구석에 설치된 흡연실에 앉은 편집장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담배에 불도 붙이지 않고 있었다.

김지우가 그에게 다가갔다. 옆에 앉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괜찮을 거야.”

“하나도 안 괜찮아요. 다 망했다고요.”

편집장에 건넨 위로에 김지우가 대꾸했다.

“그래. 망했지.”

두 사람이 허탈하게 웃었다.

“갈 데는 있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편집장님은 부르는 데 많죠?”

“그럴 리가. 부담스러워하지.”

“…….”

두 사람이 새 담배를 꺼냈다.

“자기는 기획력도 있고 기사도 잘 쓰니까 괜찮을 거야. 진심으로.”

“……그럼 뭐 해요. 편집장님이야말로 어디서나 인정받으시잖아요.”

이상철이 피식 웃었다.

“미술 이야기 계속하고 싶으면 이 기회에 아예 나가보는 건 어때?”

“네?”

“해외에서 호응이 더 좋잖아. 마르소랑 고훈 덕분에 최근 미술 흐름도 좋고. 영국은 좀 힘드니까 프랑스 괜찮을 것 같은데.”

“유럽 간다고 저 받아주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프랑스어는 이제 막 걸음마 뗐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혼자 해도 괜찮지. 요새는 기자 하다가 평론해서 잘 되는 경우도 많더라. 한예슬이라든가 차채은이라든가.”

이상철이 문화 예술 전반을 다뤄 세계적인 명사로 거듭난 한예슬 평론가와 음악 칼럼으로 유명한 인물을 언급했다.

그러나 김지우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 뿐이었다.

“모르겠어요.”

이상철이 김지우를 빤히 보았다.

“입사 면접할 때 미술이 너무 좋아서 왔다고 했잖아. 지금도 그래?”

“당연하죠.”

“그럼 용기내 봐. 괜찮을 거야.”

이상철이 김지우에게 편지 봉투 하나를 넘겼다.

“이게 뭐예요?”

“답장.”

“네?”

“보자르에 아는 분이 있어. 취업은 힘들지만, 네 이야기 하면서 칼럼 자리 하나 마련해 달라고 했어.”

프랑스의 유력 미술 잡지 보자르는 김지우도 익히 아는 큰 회사였다.

“기분 좋을 때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네.”

“편집장님…….”

“기대하진 마. 거절일 수도 있으니까. 안 열어 봤어.”

김지우가 피식 웃으며 봉투를 뜯었다.

힘드리라 생각했다.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하는 본인이 프랑스 잡지사에 칼럼을 연재한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거절되더라도 본인을 위해 이렇게 노력해 준 것이 고마웠다.

“…….”

“뭐래?”

“…….”

“설마 그 정도도 못 읽는 건 아니지?”

김지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편집장님!”

그녀가 이상철 편집장을 와락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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