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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56화 (21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56화

47. 친하다(3)

그나저나 이 어정쩡한 초콜릿 강아지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된다.

처음부터 다시 하기 전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최대한 확인해 보고 싶다.

다리 길이를 맞추더라도 또 다른 이유가 생길 수 있다.

우선은 계획대로 머리와 등 윗부분을 뜨겁게 달군 칼로 잘라냈다.

안쪽을 초콜릿 크림과 사탕, 웨하스 같은 과자로 채우면 되는데.

툭-

“아.”

강아지 머리가 크림과 과자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다리 길이 때문에 무게가 한쪽으로 쏠린 탓도 있지만, 애초에 두께가 얇은 게 문제다.

풍선에 초콜릿을 두텁게 발라 말리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초콜릿으로 만든 강아지 틀에 초콜릿과 과자를 가득 채우기는 힘들 것 같다.

초콜릿 공예를 하던 뉴튜버가 이 좋은 발상을 왜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는지 알겠다.

“음.”

고민이다.

초콜릿만으로는 무게를 감당하기 힘드니 지지대가 필요하다.

물론 그조차 먹을 수 있는 걸로 하고 싶다.

빼빼로를 철근처럼 활용해 볼까 생각했지만, 그 자체도 단단하지 않으니 금방 부러질 터.

마르소처럼 초콜릿 덩어리를 조각하면 해결되겠지만, 그 거대한 초콜릿 덩어리를 아이들이 나눠 먹는 것도 문제다.

초콜릿 안에 담긴 여러 과자를 찾아 먹는 재미를 주고 싶다. 또 이것저것 먹는 게 즐거울 테니까.

‘흠.’

지금으로서는 마땅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강아지는 포기하고, 웨하스 과자를 벽으로 활용해서 과자집을 만들어야겠다.

초콜릿을 다시 중탕해서 녹이고 마르소는 뭘 하는지 보니 시안을 짜고 있다.

초콜릿이 굳는 시간을 활용하는 거다.

“초콜릿은요?”

“저기.”

마르소가 한국에서 사 온 김치냉장고에 눈길을 주었다.

안에 있던 김치를 한쪽으로 몰아넣고 빈 곳에 초콜릿을 넣어두었다. 김치가 많지 않아 다행이지, 하마터면 다 쉴 뻔했다.

마르소의 도면을 살폈다.

“얼굴이 아니네요?”

뭔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아무튼 마르소의 얼굴이나 전신은 아니다.

“뭐?”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내 얼굴을 어떻게 먹으라고.”

800여 점이 넘는 자화상, 자각상을 만든 주제에 가끔 이렇게 상식적인 척한다.

“아까워서 못 먹지.”

징그러워서 못 먹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럼 뭔데요?”

“보면 알아.”

조각을 잘 모르기도 하나 한눈에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다.

생각 외로 복잡해서 상당한 작업이지 않을까 싶다.

“오래 걸리면 녹지 않을까요?”

“조각칼도 얼려야지.”

“영상 보니까 이런 건 차가운 대리석 위에 놓고 하더라고요.”

마르소가 고민에 빠졌다.

신중히 생각하더니 아르센에게 눈치를 주었다.

“예?”

“뭐 해. 구해 와.”

아르센이 드물게 당황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고생이 많다.

마르소가 사 온 초콜릿은 어떤 맛일지 궁금해 남은 것을 하나 입에 넣었더니 상당히 단단하다.

초콜릿마다 식감이 다른데, 조각하려고 일부러 단단한 걸 고른 거다.

“강아지는.”

마르소가 내가 작업하던 곳을 살피더니 강아지 초콜릿을 찾았다.

“잘 안 되더라고요. 다시 녹이고 있어요.”

“지탱이 안 되겠지.”

“알면 좀 빨리 말해 주지 그랬어요.”

“알려줘서 아는 것보다 경험하는 게 나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으니 처음부터 조각하려고 판단했던 것이리라.

조형물을 만들어본 경험의 차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집 만들려고요.”

대충 짜둔 도면을 보여주자 피식 웃는다.

“왜 웃어요.”

“너로서는 그게 최선이겠지.”

“뭐라고요?”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이겼다고 여기는 눈친데 묘하게 거슬린다.

집 모양으로 과자와 초콜릿을 쌓을 계획이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우쭐대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순 없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은 마르소가 나보다 훨씬 유리하다.

초콜릿을 다루는 건 그도 나도 처음이나 조형물을 만들어 본 적은 없으니까.

<마르소의 보석>으로 보여주었던 기술을 떠올려 보면 아마 이번에도 근사한 초콜릿 조각상을 만들 것이다.

나도 내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

* * *

깊이 고민하던 고훈이 1층으로 후다닥 내려가자, 앙리 마르소가 피식 웃었다.

회화에서는 한때 그에게 좌절감을 줄 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였던 고훈이 초콜릿 공예에서는 큰 힘을 못 썼다.

초콜릿과 과자로 만든 집이라니.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이게 정상이지.’

마르소는 아주 근사한 초콜릿 조각을 자랑할 기분에 손을 바삐 움직였다.

그러기를 얼마 후 고훈이 붓과 기름종이, 초콜릿을 가져왔다. 각기 다른 색의 초콜릿을 녹이고는 기름종이를 펼쳤다.

아르센을 기다리던 앙리 마르소는 그 광경을 의아하게 지켜보았다.

고훈은 웨하스를 벽돌처럼 쌓아, 과자와 과자 사이를 초콜릿으로 붙였다.

단단히 굳기를 기다리며 붓을 들었다. 갈색 초콜릿을 찍어 기름종이 위에 쭉쭉 펼쳐 발랐다.

앙리 마르소가 다가가 고훈이 하는 일을 자세히 살폈다.

고훈은 갈색 초콜릿과 좀 더 짙은 초콜릿을 섞어 활용하기도, 하얀 초콜릿을 활용하기도 하면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서로 다른 색의 초콜릿을 완전히 섞지 않고 그대로 듬뿍 활용해 나뭇결처럼 보이게 했다.

웨하스로 만든 벽과 길이를 대보고는 칼로 크기를 맞추었다.

그렇게 네 면을 모두 그리고는 냉동실에 넣었다.

“…….”

앙리 마르소는 고훈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기술 부족으로 단순할 수밖에 없는 조형을 붓으로 대신할 생각이었다.

고훈 특유의 임파스토 기법은 진득한 초콜릿과 함께 질감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뭘 봐요.”

“제법이네.”

고훈이 콧방귀를 뀌곤 또 다른 기름종이를 펼쳤다.

조금 전과 같이 나뭇결을 표현한 벽을 그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기름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컵에 끼워 넣었다.

앙리 마르소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뭐야.”

“나무요.”

잠시 고훈의 의도를 파악한 앙리 마르소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둥글게 만 초콜릿을 그대로 굳히고 종이만 제거하면 원기둥이 될 터. 초콜릿으로 나뭇결을 표현했으니 나무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걸로 다가 아니겠지.’

원기둥을 기반으로 덧칠을 하든 붙이든 좀 더 섬세히 표현할 여지가 있었다.

고훈이 다시 기름종이를 펼쳤다.

나뭇잎을 그리는데 초콜릿의 점성 때문에 쉽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시도하더니 붓을 내려놓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앙리 마르소는 고훈이 캔버스처럼 활용하던 기름종이를 살폈다. 소년이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알 것 같았다.

‘개벽이야.’

개벽의 최종 목적지는 붓이 닿는 모든 곳을 캔버스처럼 활용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가상 현실 기반의 틸트 캔버스에서 그린 것을 특수 제작한 3D 프린터로 재현할 뿐이나, 언젠가는 특수 물감을 완성해 직접 그리는 것이 목표였다.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어도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킬 때 순간적으로 응고하는 특수 물감을 개발 중이었다.

초콜릿은 그것과 특징이 유사했다.

기름종이에 그려, 종이를 비틀어 굳히면 입체적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앙리 마르소는 고훈이 개벽을 참고해서 작품을 시도한 데 만족했다.

그는 정원에서 나뭇잎을 잔뜩 따 가지고 돌아온 소년을 지켜보았다.

고훈은 나뭇잎을 깨끗이 씻어내고 그 위에 초콜릿을 두껍게 발랐다.

집의 구조는 단순했지만, 외벽과 주변 경관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완성될 듯싶었다.

‘이래야지.’

앙리 마르소의 입가에 작게 웃음이 서렸다.

* * *

대충 준비를 마치고 나니 아르센이 내 키보다 조금 작은 기계를 가지고 왔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비슷한 걸 본 적 있다. 아마 대리석을 깔고 온도를 낮추는 물건이리라.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과자를 막 섞어서 먹으면 맛이 참 좋았는데 기계 위에 얼려 둔 초콜릿을 놓으니 가슴이 뛴다.

일을 다 마치면 한번 해보자고 권해봐야겠다.

마르소가 얼려 둔 조각칼과 망치를 들었다. 우선은 둥근 면을 과감하게 잘라내 육면체를 만든다.

톡톡-

그런 다음에는 예상외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다뤄보지 않은 소재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저 커다란 육면체를 모두 활용할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에 내 일을 하며 천천히 지켜볼 생각이다.

냉동실에 얼려둔 것을 꺼냈다.

웨하스에 초콜릿을 칠하고, 얼려둔 벽을 붙였다. 훌륭한 오두막집이다.

그 안에 과자와 사탕을 가득 넣고 벽을 만들었던 요령으로 지붕도 씌워 주었다.

한쪽 지붕에는 구멍을 뚫어 굵은 막대 과자를 꽂았고 기름종이에 얇게 발라 굳힌 화이트초콜릿을 붙였다.

연기가 피어나는 아늑한 집이다.

하지만 집만 덩그러니 있으니 심심하다. 준비해 둔 나무를 심기 전에 주변에 나무가 살짝 들어갈 정도로 초콜릿을 듬뿍 쏟았다.

나무만 있는 건 이상하니 풀도 있어야 할 텐데.

붓을 들어 나무 주변을 콕콕 찍었다. 붓을 들 때마다 초콜릿이 따라 올라온다.

잘못하면 주변이 뭉개져서 보기 싫어지니 조심해야 하나, 서두르지 않으면 금방 말라버리고 말 터.

집중해서 집 주변에 풀을 만든 뒤에는 돌 모양 초콜릿으로 길을 만들어 주었다.

조금 지쳐서 조금 쉴 겸 고개를 들었다.

마르소도 제법 진척을 보인다.

모서리를 2㎝ 정도만 남겨두고 윗면과 옆면을 잘라낸 상자 모양이다.

안쪽을 작업하는 중인데 아직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대체 뭘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작가님.”

아르센이 나섰다.

“일하는 거 안 보여?”

집중하던 마르소가 신경질을 냈지만 아르센은 물러서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자리를 옮기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르소가 고개를 들었다.

풀어둔 시계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밤 9시다.

미셸이 왔을 때가 점심쯤이었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고 말았다.

작업하면서 초콜릿을 계속 집어 먹은 덕에 배가 고프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도중에 할아버지와 방태호가 들렀던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 오늘은 여기 있을 테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르소가 내 초콜릿 집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는 다시 조각칼을 집어 들었다.

밤을 새울 기세다.

저 집착이 그를 세계 최고의 자리로 이끌지 않았을까.

대단한 집중력이다.

“너 왜 안 자.”

“…….”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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