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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55화 (210/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55화

47. 친하다(2)

미셸 플라티니가 쇼콜라티에 운영 방침을 논의하고자 고훈네 집을 찾았다.

법인의 주체인 고훈과 앙리 마르소의 목표가 명확하고 상호 보완되었기에 대화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합동전에 관해서는 테마관을 나누는 방향으로 진행했으면 해요.”

“같은 생각입니다. 워낙 개성이 강하니까요. 혹시 작가가 늘어나면 어떻게 대처하실 계획이신가요?”

방태호가 미셸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나이로 인해 큐레이터로 활동한 기간이 9년이나 차이 났지만, 방태호는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미셸 플라티니를 본인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앙리 마르소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로 알렸으며,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보인 기획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직접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나, 방태호는 쇼콜라티에를 위해서라도 미셸이 전시회를 맡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온라인을 기반하는 게 좋겠어요.”

미셸 플라티니의 대답에 방태호가 의아해했다.

“가상 미술관 말씀이신가요.”

“네.”

미셸이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전시회는 투자대비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건 대표님도 잘 아실 거예요.”

방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어지간해서는 전시회 입장료만으로 대관, 홍보,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작품 거래가 성사되어야만 이득을 낼 수 있었다.

미셸이 고훈, 앙리 마르소를 제외한 유일한 소속 작가 블랑쉬 파브르를 언급했다.

“파브르가 주목받고 있지만 개인전 경험은 없어요. 이후 누가 들어올진 모르지만 방침상 이름 있는 작가를 들이긴 힘들겠죠.”

이 또한 미셸의 생각이 옳았다.

이름 있는 작가라면 회사에 소속되어 관리받고 있었으며, 개중에는 조금이라도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본인이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는 작가도 있었다.

“수입을 마르소와 훈이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전시회를 여는 건 두 작가에게도, 앞으로 합류할 사람에게도 좋지 않다고 판단해요.”

“온라인을 통해 가능성을 검증해 보자는 말씀이시군요.”

“네.”

방태호가 고민에 빠졌다.

가상 전시회가 비용이 적게 들긴 하나 어디까지나 인프라가 구축된 다음에 가능한 일이었다.

플랫폼이 있어야 했고, 그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에 초기 개발 비용 및 홍보비가 크게 필요했다.

전문 인력을 구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랐다.

방태호는 그러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셸이 동의했다.

“꼭 가상 전시관만이 답은 아니에요. 이름을 알릴 만한 장소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훈이가 하는 뉴튜브처럼요.”

미셸 플라티니는 작가들이 SNS를 활용할 수도, 디비언트아트 같은 그림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도 좋은 활동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작가가 스스로 홍보해야 하는 환경이 오래 지속되었어요. 앞으로 들어올 사람들에게도 본인의 역량을 스스로 증명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과를 보인 인원에게 기회를 주자는 말씀이군요.”

“네.”

방태호가 잠시 고민했다.

회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며, 작가 스스로 성장해야만 한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나.

작가 입장에서는 막상 계약한 뒤에 방치된 듯한 기분이 들 수 있을 듯했다.

“작가에게도 어떤 지원책이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어떤?”

“작품을 홍보한다든가, 좋은 기회를 섭외해 준다든가.”

미셸 플라티니는 방태호의 제안을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다.

미대 출신으로 정말 노력하는 학우가 있던 반면, 적당히 인맥으로 추천받아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열정 없는 이들을 가려내기 위해서라도 작가가 스스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 방태호의 말 또한 일리가 있었다.

면접을 통해 선발한 인원에게 아무런 지원이 없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면접이 중요해지네요.”

방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셸이 판단한 대로 적어도 면접 상황에서 가능성을 접해야 최소한의 지원이 가능했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미셸의 제안대로 작가를 가능한 많이 확보하고 그중 성과를 보인 이에게 투자하는 게 효과적일 터.

그러나 고훈과 앙리 마르소도 쇼콜라티에 멤버를 많이 두고 싶진 않은 듯했다.

“그럼, 다음에 또 이야기하죠.”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미셸 플라티니는 고훈의 작업실을 찾았다.

앙리 마르소와 함께 돌아가기 위함이었는데, 고훈도 앙리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두 미술 바보가 작업실 외에 다른 곳에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미셸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다가 앙리 마르소가 전화를 받았다.

-어.

“어디야?”

-2층.

“나 끝났어. 더 있을 거야?”

-팡!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에 미셸이 전화기에서 귀를 뗐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의심스럽게 물었다.

“뭐 해?”

-빌어먹을. 풍선 묶어.

-하나도 못 묶었잖아요.

-시끄러워!

고훈과 앙리가 다투기 시작하자 미셸은 하는 수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잘 좀 해봐요.”

“너나 잘해! 쓸데없이 크게 만드니까 터지는 거 아니야!”

미셸은 여전히 다투고 있는 두 사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풍선 조각과 초콜릿 포장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중탕해야 할 초콜릿은 냄비에 그대로 넣고 끓이고 있었다.

미셸이 서둘러 인덕션 불을 껐다.

주걱으로 끓어오르는 초콜릿을 뒤적이자 탄내가 올라왔다. 초콜릿이 타버린 것을 확인한 고훈과 앙리 마르소가 당황했다.

“너무 많이 끓였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이 난리를 피워?”

미셸이 싱크대에 냄비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뭐야? 진짜 수제 초콜릿 사업이라도 하려고?”

“그딴 짓을 뭐 하러.”

“그럼? 밸런타인데이도 아닌데.”

“미셸 준다고 만들고 싶대요.”

“내가 언제 그랬어!”

“미셸한테 주자고 하니까 계속했잖아요.”

고훈이 바닥에 떨어진 풍선 조각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풍선과 초콜릿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나 주려고?”

“아니야.”

“돌아가려던 참인데. 먼저 갈까?”

“됐어. 여기 있다간 머리만 더 아파.”

앙리 마르소가 일어섰다. 풍선 묶는 일도, 초콜릿을 젓는 일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가게?”

“어.”

“난 받고 싶은데.”

앙리 마르소가 눈썹을 찡그렸다.

“가는 길에 아르센한테 초콜릿 파는 데 들르자고 해.”

“만들어 줘.”

웃지도 않고 덤덤하게 뜻을 전한 미셸이 2층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다시 해야겠어요. 거기 초콜릿 좀 까주세요.”

고훈은 황당한 나머지 잠시 말문이 막힌 앙리 마르소를 재촉했다.

“중탕해야 해~”

미셸이 소파에 기댄 채 말했다.

* * *

“이딴 식으로는 안 돼.”

풍선을 묶는 데는 성공했지만, 막대풍선으로 동물 만드는 일에는 실패한 마르소가 결별을 선언했다.

본인 방식으로 하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끙끙대다가 필요한 부위를 모두 완성했다.

하나의 풍선으로 전부 완성해 버리면 나중에 풍선을 빼낼 때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머리와 몸통, 다리 네 개, 꼬리를 따로 만들었다.

각 풍선 위에 녹인 초콜릿을 조심스레 부었다.

뉴튜브 영상에서 봤던 것만큼 잘 안 발려지는데, 어디 큰 통에다가 초콜릿을 가득 넣고 담그는 편이 좋았을까 싶다.

초콜릿이 굳어질 때까지 기다리던 차 미셸이 기지개를 켰다.

“어디 간 거야.”

투덜대곤 옷과 가방을 챙긴다.

“가려고요?”

“응. 준비할 게 있어서.”

미셸이 다가와 식탁 위를 살폈다.

“이거 안쪽에 풍선 든 거야?”

“네. 구멍 내서 터뜨릴 거예요.”

슬슬 다 굳은 것 같아서 작게 구멍을 내고 바늘로 풍선을 터뜨렸다.

아이들과 함께 먹을 거라 안에 풍선 조각이 남아 있진 않은지 빼낸 풍선 조각을 맞춰보았다.

다행히 찢겨 나간 곳은 없다.

“아, 이렇게 합치려는 거구나. 발상 좋다.”

“뉴튜브 보고 배웠어요.”

풍선으로 틀을 대신할 수 있는 생각은 누가 생각했는지 참 기발하다.

머리와 몸통을 녹인 초콜릿으로 붙이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잘 나올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첫 시도라 아마 실패하겠지만, 실패하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할 수 없다.

“그럼 힘내. 가볼게.”

“또 봐요.”

“응.”

미셸이 떠나고 다리를 다 붙였는데 기울기가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차, 앙리 마르소가 돌아왔다.

함께 온 아르센과 몇몇이 초콜릿을 잔뜩 들고 있다. 어찌나 많은지 초콜릿이 든 상자가 부엌 한쪽에 벽을 이뤘다.

“이게 다 뭐예요?”

마르소가 삐딱하게 선 내 초콜릿 강아지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해서 언제 만들어.”

마르소가 아르센에게 눈짓했다.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몇몇은 포장된 초콜릿을 뜯어,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큰 냄비에 넣었고.

다른 몇몇은 엉망이 된 부엌을 청소한다.

“어쩌려고요?”

“조각하는 게 빨라.”

“아.”

80㎝는 되어 보이는 냄비에 초콜릿을 가득 넣고 굳힌 뒤 그것을 꺼내 조각할 계획이다.

확실히 조각가이기도 한 마르소에게는 그편이 실력 발휘하기에 좋으리라.

“언제 다 굳는데요?”

“몰라.”

초콜릿을 다뤄본 적 없으니 알 리가 없다.

초콜릿이 비교적 빨리 굳긴 하지만 저만한 양이 안쪽까지 충분히 굳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터.

조각도 해야 하니 오늘 안에 가능할까 싶다.

마르소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셸은 좀 전에 돌아갔어요.”

“상관없어.”

“근데 너무 큰 거 아니에요? 좀 더 작게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높이 80㎝의 초콜릿을 받으면 대체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먹을지 궁금하다.

“적당해.”

뭔가 조각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

나중에 가지고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집에 가져가서 만드는 게 낫겠지만, 뭘 만들지 궁금하니 굳이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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