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54화 (209/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54화

47. 친하다(1)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금방 알아본다.

└나 이거 알아. 마크 로스코지?

└이게 그림이라고?

└더 모르겠엌ㅋㅋㅋㅋ

마크 로스코는 형태를 최대한 줄이고 색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맞아요. 마크 로스코. 가능한 색으로만 접근한 추상화라고 해서 색면추상화라고 부른대요. 그림 그리시는 분은 알아보시겠지만 이렇게 깊이 있는 색감을 내기 정말 힘들어요.”

물감 위에 계란을 바르고 마르면 다시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기름을 바르고 색을 덧입히는 걸 반복한 결과다.

그러나 그 과정을 설명해도 크게 와닿지 않으리라.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색을 어떻게 배합했고 어떻게 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크 로스코도 본인의 작품을 해석하길 바라진 않았어요. 느껴주길 바랐죠.”

조금 기다리니 몇몇 시청자가 왠지 슬퍼진다는 채팅을 남겼다.

또 다른 몇몇은 슬퍼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마크 로스코 그림에 감동받은 분도 있고, 그래도 이해 못 한다는 분도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되는데. 이 작품에 공감하지 못하면 몰상식하고 교양 없는 사람인가요?”

직접적으로 묻자 다들 아니라고 답한다.

“맞아요.”

덕분에 이야기를 이어가기 쉽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의 결과물이에요. 마크 로스코가 정말 대단한 거장으로 인정받지만 어떤 분에게는 저게 뭐야? 라고 다가갈 수도 있는 거예요.”

느끼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반론이 들어왔다.

“맞아요. 다시 여쭐게요. 살면서 나랑 정말 안 맞는다 싶은 사람 있지 않아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건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잘못은 아니지 하는 분도 있다.

“물론 공감할 수 있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 그러지 못하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기 힘들고요. 하지만 누구도 모든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할 순 없어요. 나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타인이 어떤 기분일지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몇몇 사람이 동조해 주었다.

“정말 못된 인간을 이해 못 하는 것하고 나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경우는 달라요. 후자는 어느 쪽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던 중, 한 시청자의 경험담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을 잘 몰랐을 때는 마크 로스코 작품이 뭐가 좋은지 몰랐는데, 다른 작품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로스코를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다.

“좋은 말씀 해주셨어요. 그런데 관심도 없고 이해도 못 하는 걸 억지로 공감하려고 할 이유는 없잖아요.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 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니까.”

다들 공감한다.

삶이 너무 각박하니까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사람이 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도 굳이 어렵고 이해 못 할 일을 노력할 필요는 없다.

취향에 맞는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기에도 짧은 생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좋아하는 작가, 작품 찾으면 돼요. 동시대 예술가 중에는 마르소처럼 직관적인 작품을 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모든 예술가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와 맞으면 즐기면 되고, 맞지 않아도 굳이 비난할 필요는 없다.

단지 모두가 틀리지 않고, 동시대 예술이 일부 부정적인 이미지로 뭉뚱그려 인식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모든 프랑스인이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것과 모든 무슬림이 테러를 저지르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 그런 경험 많지 않아요? 뉴튜브 100만 구독자라든가 어디서 되게 유명한 사람이라고 나왔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 적.”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 정작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잦다.

나 또한 미술 쪽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것 같지만,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은 극히 적다.

└맞앜ㅋㅋㅋ 어느 순간부터 되게 유명한 가수라는데 한 번도 본 적 없고 노래도 들어본 적 없음ㅋㅋㅋ

└그건 님이 나이를 먹어서…….

└사재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사재기 때문도 있겠지만 진짜 그런 경험 많음.

└영화도 막 1,000만 관객 돌파했다는데 난 안 봤고 관심도 없으니까.

“예전에는 매체가 적어서 그곳에서 유명하면 다들 알아봤대요. 그런데 지금은 볼 게 너무 많잖아요. 굳이 취향에 안 맞는 걸 보기보단 자기가 좋아하는 문화를 소비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내겐 되게 대단하고 유명한 작품일 수 있는데, 모를 수가 없는데 다른 사람에겐 아닌 경우가 많아졌어요. 이제는 서로 다름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어요.”

시청자들이 나를 여러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인터넷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밈(Meme)을 모르는 주변 사람이라든가, 나이나 구성원에 따른 어휘 차이라든가.

“무야호가 뭐예요?”

그중 궁금한 게 있어 물으니 많은 사람이 무야호를 모르는 세대가 있다면서 통탄했다.

과거 대한민국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이란다.

“좀 더 이야기해 볼게요. 이 일에 관해서 미래 이모가 재밌는 이야기를 알려줬는데, 인공지능보다 똑똑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없지.

└지식이 아니라 지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나?

└ㅇㅇ 그럴 거 같은데.

└근데 그 부분도 되게 모호한 게 바둑이나 체스 같은 건 이미 예전에 인간이 못 따라가잖아.

└자율주행 차 사고율이 사람이 운전하는 차보다 낮기도 하지.

└요즘 진짜 무서운 게 AI로 안 되는 게 없어. 그거 때문에 직장 잃는 사람도 많잖아.

└딴 건 몰라도 예술은 아니지. 문학, 미술, 음악 같은 것부터 게임, 영화 같은 복합 장르로 가면 인공지능이 못 따라옴.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문학상도 받는 시대인데 뭐 ㅋㅋㅋㅋㅋ1)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다.

“나은 부분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사실 인공지능보다 많은 걸 아는 사람은 있기 힘들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월등히 앞서는 게 있대요.”

다들 궁금해한다.

“어떤 걸 아냐, 모르냐에 대한 판단은 사람이 훨씬 빨리 판단할 수 있단 거예요.”

인간이 인공지능의 계산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이거 알아? 라고 물었을 때 자기 안에 있는 데이터를 검색해 본 뒤에 안다, 모른다를 대답한대요. 근데 우리는 1초도 안 돼서 바로 답할 수 있잖아요.”

└그러게?

└왜 그러지?

└일단 난 아는 게 없음.

└ㅋㅋㅋㅋㅋㅋㅋ그냥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는 거 아닌가?

“사람이 그렇게 빨리 판단할 수 있는 건 정보를 검색하는 게 아니라, 저것과 친하냐, 안 친하냐를 판단하기 때문이래요. 나랑 친하면 안다고 말하고, 안 친하면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죠.”

└오. 맞네.

└그럴듯한데?

└그치. 친하고 안 친하고는 바로 알 수 있으니까.

└인공지능 별거 아니네.

“반대로 친근하면 잘 몰라도 안다고 생각한대요. 예를 들어 엄마, 아빠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은 적은데. 사실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세히 아는 자식은 많지 않잖아요. 반대로 부모도 자식에 대해서는 모두 안다고 착각한대요.”

나는 미술을 좋아해서, 만약 누군가 내게 미술에 대해서 아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모르는 영역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다.

너무나 많은 갈래로 나뉜 미술을 지금 내가 모두 안다고 말하는 건 어폐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미술을 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정적이래요.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다시 여쭤볼게요. 미술을 이해하는 게 우선일까요?”

다들 아니라고 답한다.

“맞아요. 친해지는 게 먼저예요. 무슨 기법을 쓰고 어떤 사조고, 이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고,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고. 그런 거 모두 친해지면 자연스레 알고 싶어져요. 그래서 미술은 공부하는 게 아니에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즐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시대 예술을 부정적으로만 보실 필요도 없고, 모른다고 욕할 필요도 자책할 이유도 없어요.”

└그러네.

└다원화된 예술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되게 쉽게 설명하네.

└우리 훈이 왜 이렇게 똑똑해 ㅠ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제육덮밥 먹고 싶다.

└이 설명 들으니까 좀 이해가 되는 게 인상주의가 인기가 많은 게 되게 보편적인 느낌이 든다. 보편적 감성과 미학이니까 사람으로 치면 호감형이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이해 못 하는 사람도, 공감하지 않는 사람도, 더 나아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내 시청자.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순 없지만 친근하다 보니 나와 다른 생각을 가져도 받아들이기 편하다.

방송할 때마다 들어와 3~4시간씩 제육덮밥 타령하는 사람도 길거리에서 봤다면 이상하게 여겼겠지만, 내 방송에서 만나는 조금 귀여운 것처럼.

첫 만남 때 마르소를 미친놈처럼 여기던 내가 지금은 그를 아주 멋진 예술가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 * *

뷰그레넬리 쇼핑몰에서 작업할 때 아이들에게 나눠주려고 선물을 만들던 차.

시선을 느껴 고개를 드니 마르소와 눈을 마주쳤다.

“왜요?”

“이러려고 이름을 그딴 식으로 지었어?”

“왜요. 어울리잖아요.”

눈매를 좁히고 나와 풍선, 초콜릿, 그리고 과자를 훑어본다.

뉴튜브에서 디저트를 검색하다 보니 알고리즘이 아주 멋진 영상을 소개해 줬다.

풍선을 불어다가 겉면에 초콜릿을 듬뿍 바르고, 굳기를 기다렸다가 풍선만 터뜨려 빼내면 멋진 초콜릿 공이 완성된다.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막대풍선으로 여러 동물 만들어 초콜릿을 바를 생각이다.

네모 모양 풍선을 기초해서 동화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와 초콜릿으로 이뤄진 집도 만들고 싶다.

펌프질을 해서 막대풍선에 공기를 넣었다.

“이것 좀 묶어 주세요.”

“네가 해.”

“터질 것 같아요.”

입술을 씰룩인다.

“풍선 하나 못 묶으면서 왜 이 난리야?”

“마르소가 있잖아요.”

풍선 입구를 꾹 누른 채 손을 내밀자 마르소가 신경질을 내며 낚아채 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잘 도와주는 착한 친구다.

연습용으로 몇 개 더 만들까 고민하던 차, 팡 하는 소리가 났다.

풍선이 터졌다.

마르소가 다소 당황한 듯 풍선을 잡고 있던 자세 그대로 있다.

“못 묶어요?”

“풍선이 잘못됐어.”

“자요.”

다른 풍선에 공기를 넣어 다시 한번 넘겨주자 또 터뜨린다.

빤히 바라보니 또 성질이다.

“제대로 사 온 거 맞아?”

“풍선이 거기서 거기죠. 못 해요?”

“내가 못 하는 게 있을 것 같아?”

넝마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풍선 조각에 눈길을 주니 이를 바득바득 간다.

생각해 보니 마르소가 풍선을 묶어볼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싶다.

“다시 해봐요.”

“안 해!”

“다 만들면 마르소한테도 하나 줄게요. 미셸 가져다주면 좋아할걸요?”

“초콜릿 따위 얼마든지 사 주면 돼.”

“직접 만든 거 하고 같아요?”

다시 바람 넣은 풍선을 주니 낑낑대다가 또 터뜨려 먹었다.

“이거 초콜릿 바를 거라서 깨끗하게 씻은 거란 말이에요. 조심해서 해요.”

“닥치고 넘기기나 해!”

신경질을 내면서도 미셸 이야기를 꺼내니 의욕을 보인다.

* * *

1)소설도 쓰는 인공지능 일본 문학상 1차 심사 통과, 매일경제, 황형규, 이지용 기자, 2016.03.22.

위 사실을 바탕으로 작중 시간이 2029년임을 가정하고 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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