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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42화 (197/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42화

45. 뱅크스(1)

투두두두두-

“…….”

마르소가 집 구경하러 온다길래 그런가 보다 했거늘 뭔가 잘못되었다.

할아버지도 기가 막히셨는지 눈을 깜빡이실 뿐이다.

<앙리 마르소 002>가 줄에 매달려 우리 집 마당으로 내려오고 있다.

“훈아, 네가 달라고 했어?”

“아니요.”

“그럼?”

“선물 뭐 필요하냐고 해서 몸만 오라고 했어요.”

자기 몸을 보낼 줄은 몰랐다.

투두두두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다.

“균형 잡아. 천천히! 천천히 내리라고! 줄 잡고!”

대문 앞에 선 남자가 무전기와 육성으로 헬리콥터 조종사와 정원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어르신, 어디에 내려놓을까요?”

배송업체 직원이 할아버지께 <앙리 마르소 002>를 어디에 놓을지 물었다.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하하. 재밌는 농담이네요.”

“껄껄. 진심입니다.”

“예?”

투두두두두두-

마르소에게 지시받은 인간들이 얌전히 물러날 리는 없고 일단 내려놓아야 저 시끄러운 헬리콥터가 갈 것 같다.

이웃들이 이해심이 많아서 다행이지, 조금만 더 있다가는 민원이 들어갈 거다.

정원에 있는 연못을 가리켰다.

“저기에 놔주세요.”

“꽤 깊은데. 받침대 높이가 되려나.”

“가능하면 담가주세요.”

“하하하. 두 분이 농담을 좋아하시네요.”

배송업체 직원들이 연못 가운데에 받침대를 놓고 <앙리 마르소 002>를 두었다.

물고기를 키우기 전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연못 주변에 조명도 설치하고 있다.

못 산다.

차라리 저걸 팔아서 갤러리 짓는 데 보탤까 고민하던 차에 앙리 마르소가 도착했다.

연못 가운데에 놓인 걸 확인하더니 눈썹을 들어 올리고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서울 집도 그렇고 왜 자꾸 남의 집에 영역 표시를 해대는지 모르겠다.

“비에 부식 안 되니까 걱정 마.”

“그런 걱정 조금도 안 했어요.”

“그 웃기지도 않는 우산하고 우의를 입히게 둘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서울 집에 있는 <마르소의 보석>에 스펀지빵 우산을 들려놓고 와버렸다.

“자네 혹시 우리가 이사 다닐 때마다 하나씩 놓을 셈인가?”

“그럴 리가요.”

“그거 다행일세.”

할아버지가 잔뜩 비꼬았지만 마르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꼬맹이가 갤러리 지으면 그쪽으로 옮겨야죠.”

“왜!”

“왜긴 왜야. 네가 내 작품도 전시하고 싶다며.”

화가 공동체 회원의 작품도 전시할 생각이라고 말한 적이 있긴 하다.

말문이 막혀 가만있으니 할아버지도 거드신다.

“한 사람보단 두 사람 작품이 있는 편이 사람들도 좋아할 거다.”

집에 마르소의 자각상을 두고 싶지 않으셔서 저러시는 게 분명하다.

* * *

“이걸 어디다 그린다고?”

고훈의 스케치와 사진을 본 앙리 마르소가 눈썹을 찌푸렸다.

오르막길 사진과 그곳을 해바라기로 가득 채운 스케치였다.

“달리다 광장에서 분홍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이요.”1)

“굳이 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니까. 기왕이면 잘 보이는 편이 좋잖아요.”

앙리 마르소가 고훈과 스케치를 번갈아 보았다.

여태 캔버스에 작업하던 고훈이 갑자기 거리로 나서겠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구청에서 의뢰라도 했어?”

“아뇨. 제 돈으로 하려고요.”

“갤러리 짓는다면서 왜 쓸데없는 데 낭비야.”

“없었는데, 생겼어요.”

“뭐?”

고훈이 의아해하는 앙리 마르소에게 이달 정산액을 보여주었다.

기존 수익에 더하여.

<기암성>의 러닝 개런티와 아트북 판매 수익, 원화 전시회 수익, 강의, 사인회, 방송 출연료와 <빈센트> 출연료, 뉴튜브 수익까지 도합 914만 달러가 정산될 예정이었다.

세부 내역을 살피던 앙리 마르소가 아트북 판매량 항목에 고개를 갸웃했다.

“70만?”

권당 60달러에 판매되었던 <기암성>의 아트북이 첫 출간 이후 두 달 만에 70만 부나 팔렸다고 하니 믿기 힘들었다.

70만 부가 팔렸으니 총매출은 4,200만 달러 근처일 터.

그중 12%를 정산받는 고훈은 아트북만으로 5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었다.

“신기하죠.”

고훈이 자랑스레 말했다.

“그림도 자세히 볼 수 있고 세부 설정이나 영화에서는 알기 힘든 뒷이야기 같은 것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

“나중에 작품이 좀 모이면 개인 아트북도 내보려고요.”

이러한 추세라면 파리 시내에 갤러리를 짓고 운영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칫.”

앙리 마르소가 불쾌한 듯 정산서를 내려두었다.

고훈이 돈이 부족하단 것을 이용해 마르소 미술관 고훈관에 걸 작품을 뜯어내려던 계획이 망가지고 말았다.

“왜 그래요?”

“시끄러워. 이런 일이 잦을 것 같아? 벌었을 때 아껴.”

앙리 마르소가 괜히 트집을 잡았다.

“제가 한 건 아닌데 그리 어렵진 않더라고요. 돈도 별로 안 들고.”

고훈이 방태호를 통해 몽마르트르 구청에 허가받았다고 설명했다.

앙리 마르소는 고훈이 구상한 거리화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 무슬림 꼬맹이 때문이면 이 정도에서 멈춰. 더 나아가려고 하지 말고.”

몽마르트르구는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었다.

예술가의 거리라고 하여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동시에 파리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그곳 분위기를 그림으로 좋게 만들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걱정해 주는 거예요?”

앙리 마르소가 고훈을 노려보았다.

“그래.”

뜻밖의 대답에 고훈이 짐짓 놀랐다.

“너도 미셸도 오지랖이 넓으니까 거지 한 명 거둬주는 거야 신경 안 써.”

“또 말 험하게 한다.”

“화가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는 것도 당연해.”

“…….”

“하지만 적어도 너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때 해. 네가 이 일을 넘어서 무슬림을 옹호하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피해받은 사람들이 슬퍼하겠죠.”

고훈의 대답에 앙리 마르소가 말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테러당한 사람을 그리거나, 인종차별 겪는 아픔을 그릴까도 생각했는데 그런 걸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더라고요. 그건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에요.”

“…….”

“난 그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고 싶을 뿐이에요.”

태양의 은혜를 한껏 품은 밀밭처럼.

그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이삭이라도 되어 가난한 이들의 배를 채우고 싶었다.

“라바니도, 테러로 가족을 잃은 사람도 모두요. 그들이 더 큰 상처를 입길 바라지 않아요.”

고훈이 어떤 생각으로 길거리에 그림을 그리려는지 이해한 앙리 마르소가 안도했다.

어설프게 나섰다가는 유럽인과 무슬림 양쪽을 적으로 두게 될지도 몰랐다.

“이 거리를 걸을 때만이라도 행복하면 그걸로 다행이죠.”

“……그래.”

앙리 마르소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고훈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걱정했어요?”

“누가.”

“방금 그렇다고 해놓고 모른 척하네.”

잘하지도 못하는 거짓말을 하며 쑥스러워하니 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훈이 싱긋 웃자 앙리 마르소가 인상을 쓰곤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단체 이야기나 해.”

“단체?”

“만든다며.”

“그렇긴 한데, 뭐 등록하거나 할 생각은 없어요. 마음 맞는 사람끼리 그냥 모이고 싶을 때 만나서 작업하는 걸로.”

“법인이 없으면 귀찮아져.”

“어떤 식으로요?”

“활동은 어떻게 할 건데. 전시회라든지. 동인지도 만들고 싶다며. 계약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아.”

고훈이 고개를 들었다.

“내부적으로도 매출하고 수익 관리하려면 법인 세우는 게 나아.”

“그렇겠네요. 자본도 관리해야 하고 수입도 나눠야 하니까.”

“기여한 정도에 따라 나눠야지.”

“그럼요.”

고훈이 블랑쉬 파브르와 비다 라바니를 떠올렸다.

매니지먼트 계약이 안 되어 있는 블랑쉬 파브르는 여러 활동에 도움을 받을 테고.

비다 라바니가 성장해서 법인에 기여하게 되면 월급 명목으로 적게라도 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말해두지만 난 다른 놈이랑 같이 작업 안 해.”

“그래봤자 지금은 나랑 마르소뿐이에요. 이름은 뭐로 하지.”

“개벽.”

“그건 혼자 할 때 써요.”

“M&G.”

“M&G가 무슨 뜻이에요?”

“마르소와 고.”

고훈이 앙리 마르소를 노려보았다.

반려견을 품종명 그대로 부르지를 않나, 도무지 이름 짓는 감각은 없는 듯했다.

“가나안의 해바라기 어때요?”

“교회 이름 지어?”

“노란 집. 갤러리 외벽을 노랗게 칠할 건데 어때요?”

“작은 반 고흐 얘기 안 듣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럼 가만있지 말고 의견 좀 내 봐요.”

“M&G.”

앙리 마르소가 종이에 M&G를 휘갈겨 적어 보였다.

“다시다 같잖아요.”

“다시다가 뭔데.”

“MSG요.”

고훈의 지적에 앙리 마르소가 본인이 적은 로고를 보고는 눈매를 좁혔다.

“감자들은 어때요?”

“웃기지 마. 그딴 데 들어가라고?”

“맛있잖아요. 열량도 많고.”

“화가 단체라며. 열량 많은 게 무슨 상관이야?”

“그럼 펭귄들.”

“어린이 야구단도 그딴 이름은 안 써.”

한 시간이나 논의를 이어갔지만 두 사람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름은 됐고. 수익은 어떻게 창출할 건데?”

“전시회 위주로 가야겠죠.”

“어디서.”

고훈이 앙리 마르소를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앙리 마르소가 입술을 씰룩였다.

“내 갤러리에 다른 놈 작품을 올린다고?”

“안 돼요?”

“안 돼.”

“내 건 해줬잖아요.”

앙리 마르소가 입을 닫았다.

고훈과 몇몇 작가는 예외라는 말을 당사자 앞에서 꺼내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아무튼 안 되는 줄 알아.”

앙리 마르소가 단호히 나오자 고훈이 일찌감치 포기했다.

고집스러운 그를 설득할 바에야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쉬울 듯했다.

“그럼 대관해야겠네요.”

“그래.”

“그런데 이런 일 관리하려면 사람이 필요할 텐데. 할 줄 알아요?”

“내가 왜. 사람 쓰면 되지.”

“그걸 몰라요? 사람 쓰면 돈이 나가니까 그렇지.”

“매니저 있잖아.”

“한국이랑 왔다 갔다 해서 힘들 거예요.”

“정착하면 되겠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가족도 있고. 이한나 작가님도 글 써야 해요.”

“글을 같이 써?”

“그건 아니죠.”

“그럼. 원고지에 써?”

“당연히 컴퓨터로 쓰겠죠.”

“그럼 서울에서 쓰나 파리에서 쓰나 뭐가 달라.”

“……그런가?”

“어차피 네 매니저 계속하려면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어. 늦기 전에 이쪽으로 오는 게 그 사람한테도 이득이야. 법인 맡아서 월급 타면 수익도 안정될 테고. 안 그래?”

고훈이 생각을 정리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1)Place DALIDA(쁠라스 달리다: 달리다 광장), La Maison Rose(라 메종 호즈: 분홍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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