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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39화 (194/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39화

44. 없었는데요 생겼어요(7)

즐거워하는 표정에서 미셸이 마르소를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를 살갑게 한다거나 찰싹 붙어 있지 않아도 표현하기 힘든 친밀감이 있다.

“그럼 가볼게.”

“네.”

미셸이 사무실로 올라갔다.

마르소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던 모양.

비다 라바니가 다가왔다.

설렘으로 잔뜩 상기된 얼굴에 기분이 좋아졌다.

“저기 앉아서 얘기할까?”

“응!”

비다 라바니가 힘차게 대답하고 정원 벤치로 뛰어갔다. 손으로 벤치 위를 털고 앉으라고 손짓하니 조금 부담스럽다.

“고마워.”

“아니야. 아, 이 꽃 예쁘지. 내가 물 주고 있어.”

“철쭉이네.”

“철쭉?”

“진달래 종류야. 프랑스어로는 뭐라 하는지 모르겠네.”

과거 유럽에선 보기 힘든 꽃인데, 할아버지가 서울 집 마당에서 키워서 여쭤봤었다.

한국 원산에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란다고.

청초한 잎과 고혹적인 색이 예뻐 아마 그런 관상용으로 심은 모양이다.

캐러멜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주 금토일에 모이려고 해. 금토일이라면 언제든지 와도 괜찮아.”

“응.”

“하고 싶은 거 자유롭게. 캔버스랑 물감은 마음껏 써도 돼.”

처음에는 공간만 공유할 생각이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싶다.

봄이 왔음에도 겨울에나 입을 법한 두꺼운 바지를 입고, 그마저도 잔뜩 해졌다.

누군가에게 물려받았는지 길이도 맞지 않아 접어놓은 바짓단이 가슴 아프다.

“아니야. 괜찮아. 돈 벌고 있으니까.”

비다 라바니가 손바닥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쉽게 건넸는데 이 아이가 어떤 노력을 하는지 고려하지 못했다.

고작 열다섯, 열여섯 나이에 직접 재료비를 벌고 있으니 그 열정과 각오가 얼마나 뜨거울까.

“멋지다.”

진심을 담아 말하자 비다 라바니가 수줍게 웃으며 쑥스러워한다.

“난 네가 더 멋있는데. 벌써 작가님하고 같이 다니잖아.”

“마르소?”

“응.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봤어. 여름 너울. 미도. 진짜. 진짜 멋있었어.”

이 아이랑 대화하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내 거인지 알았어?”

“몰랐어. 네 그림은 여름 너울이 처음이라서……. 아, 근데 미는 보자마자 작가님 그림이라는 거 알았어.”

“어떻게?”

“분위기가? 흐.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여기 있다 보니까 익숙해져서 그런가?”

마르소 갤러리에 전시된 수백 점의 자화상을 보고 있으니 알게 되었단 말인데, 그걸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황칠의 신비한 색감과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 새로 익힌 채색기법 때문에 수많은 평론가와 예술가도 <미>를 앙리 마르소 작품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었다.

“다들 잘 몰랐어. 대단한 거야.”

“믿어주는 거야?”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믿지 그럼?”

“다들 나중에 말해서 뭐 하냐고 해서. 이벤트 참가라도 했으면 기록이 남아 있었을 텐데.”

작가 맞히는 이벤트 이야기다.

왜 참가하지 않았냐고 물으려다가 스마트폰이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신 화제를 바꾸었다.

“무슨 그림 그려?”

“보여줄게.”

비다 라바니가 화구통을 열었다.

바스티유 광장을 비추는 자유의 수호신이다.

본디 그대로 그린 게 아니라 한 사람을 더 그렸는데, 창공을 가로지르는 금빛 천사는 꼭 앙리 마르소를 닮았고 그 옆에 온화한 천사는 미셸 플라티니처럼 보인다.

“닮았어.”

고개를 돌리자 비다 라바니가 머리를 긁었다.

“맞아. 대표님하고 작가님이야.”

쑥스러워하면서 설명한다.

“그림 같은 거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작가님이 가르쳐줬어.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를 속이면 안 된다고. 남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자기만은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마르소가 갤러리를 테러한 놈에게 했던 말이다.

“미셸은?”

“어……. 기적이란 말이 왜 생겨난 줄 알아?”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이 그러셨는데, 진짜로 일어나서 생긴 말이라고 하셨어.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서 기다리니 고맙게도 작은 가슴에 품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털어놓는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어른이 되면 앵테르미탕에 가입할 수 있대. 그러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밥도 먹을 수 있으니까. 아, 앵테르미탕이라고 알아?”

“응.”

“그거 작가님이 되게 좋게 만드셨대. 나한테는 작가님이랑 대표님이 천사야.”

슬며시 웃으니 또 쑥스러워한다.

“마르소랑 미셸이 알면 기뻐할 거야.”

“흐.”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니, 미셸이 이 아이를 왜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연습장에 집 주소를 적어서 주었다.

“우리 집이야. 편할 때 와.”

“정말? 나, 나도 너랑 같이 그림 그릴 수 있어?”

“물론이지.”

비다 라바니가 숨을 들이마시고는 나를 보다가 폴짝폴짝 뛰었다.

16살이라고는 볼 수 없는 체구는 아마 성장 과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작업실에 오는 날만이라도 음식을 제대로 챙겨주고 싶다.

“도, 돈은? 나 한 달에 80유로는 어떻게든 해볼게!”

“돈?”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다가 멈칫한다.

“혹시 부족해?”

“아니. 돈을 왜 받아. 같이 노는 건데.”

“그, 그래도 나 모르는 거 있으면 묻고 싶고 네가 어떻게 그리는지 보고 싶고. 그래서. 그러니까.”

“나도 그럴 거야.”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려고 사람 구한 거고.”

“나, 나 같은 게 정말 그래도…….”

비다 라바니의 손을 잡았다.

“나 같은 거라니.”

“아. 흐흐.”

저 웃음이 슬픔을 감추기 위한 행동임을 잘 알고 있다. 맞잡은 손에 힘을 주고 한 번 더 말했다.

“꿈꾸고 있잖아. 노력하고 있잖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잘 해내고 있잖아. 나 같은 게 아니야. 멋진 화가야.”

“……내가?”

“응.”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이 입술을 오므렸다. 우물거리며 눈물을 삼키려 한다.

“나는 끕. 학원 같은 데 가면 안 되니까. 평생 화가 못 될 줄 알았어.”

“학원? 학원을 왜 못 가?”

“무슬림이라서. 그래서. 그림 못 배울 줄 알았는데. 끕.”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슬림인데 왜 학원을 못 다녀.”

돈이 없어서 못 갔다는 말인 줄 알고 안타까워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말에 기가 막히고 말았다.

“아니.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비다 라바니가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 * *

“그래서 잘 만났고?”

“네.”

저녁을 먹던 중에 할아버지가 비다 라바니에 관해서 물어보셨다.

“근데 표정이 왜 안 좋아. 마음에 안 들었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좀 이상해서요.”

“뭐가?”

“학원에 다니고 싶었대요. 그림을 배운 적 없으니까 뭐라도 알고 싶어서.”

할아버지가 계속 말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무슬림이라서 안 된다고 했대요.”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은 존재한다.

모든 학원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곳도 가봤냐고 물으니, 말없이 웃기만 했다.

“흠.”

“이상하지 않아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나라 아니었어요?”

미술에서도, 영화에서도 프랑스는 대단히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높은 수익을 포기하고 상영관 독점을 막은 영화관도 그렇고 어떤 예술 작품도 전시에 제한이 없는 점도 그러했다.

과거 종교가 세상의 질서일 때와 달리 종교의 자유가 보장받는 현대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같이 생각해 보자꾸나.”

할아버지는 항상 그러셨던 것처럼 답을 주지 않고, 함께 고민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무슬림의 테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다. 정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받았지.”

“…….”

“무슬림을 증오하는 마음에도 이유가 있단다. 재산을 잃고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그들을 좋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네.”

일견 이해가 된다.

무슬림 중 일부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무슬림을 증오해선 안 되지만 그게 마음먹은 만큼 쉬운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이도 막상 자신의 재산과 소중한 이를 빼앗기면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란다. 프랑스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궁핍해지고 있어. 그런 이들에게 난민은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로 보이겠지.”

무슬림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씀이시다.

“또 프랑스에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법이 있단다.”

“뭔데요?”

“라이시테.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법이야. 프랑스에서는 공적인 자리에서 그 어떤 종교적 행위가 금지된단다.”

라이시테(laïcité).

프랑스 대혁명 시기부터 발전해 온 사상으로 빈센트 반 고흐로 살 적에도 이미 하나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었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히잡을 쓰는 것도 프랑스 입장에서는 라이시테에 어긋나는 일이 된단다.”

“히잡이 뭐예요?”

“무슬리마들이 얼굴에 두르는 천인데 종교적 의복으로 보는 사람도, 단순히 전통복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 무슬림 입장에서는 히잡을 써야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금지한단다.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겠지?”

“네.”

할아버지가 왜 같이 생각해 보자고 하셨는지 알 것 같다.

라이시테는 교황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했던 투쟁의 산물이다.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나, 그것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법이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무슬림의 행동이 그들이 오랜 세월 싸워 얻어낸 자유를 침범하는 것처럼 보였을 테고.

무슬림은 그들의 신앙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플라티니 대표가 그 아이를 봐주고 있는 건 심성이 곱기 때문이지. 사실 프랑스인 입장에서는 무슬림을 좋게 보기 힘들단다.”

“……네.”

양쪽 다 이해할 수 있기에 해결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이유가 있다고 해서 범죄와 폭력이 허용될 순 없다.

데미안 카터처럼.

“그렇다고 테러나 차별이 옳은 일은 아니잖아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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