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35화
44. 없었는데요 생겼어요(3)
“안녕하세요.”
고훈이 개인 방송을 틀었다.
지난 1년간 틈틈이 해왔던 일이라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카메라와 조명 각도를 잡았다.
└핑하
└와! 생방송!
└기암성 진짜 개쩔어!
└오늘은 뭐 함?
└앙리 마르소 얘기 해주세요.
└제육 덮밥 먹고 싶다.
작년 뉴튜브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한 고훈의 뉴튜브 채널 핑구는 최근 아르누보 공모전에 힘입어 크게 성장해 있었다.
불규칙했던 과거와 달리 주기적으로 영상을 게시하고, 생방송 날짜를 잡으니 구독자 20만 명을 달성한 데 이어 생방송을 찾는 사람도 3,000명에 육박했다.
“핑하가 무슨 뜻이에요?”
고훈이 물감을 짜며 물었다.
└핑구 하이라는 뜻.
└핑구 하이라는 뜻임.
└기암성 봤어?
뉴튜브 채널명 핑구에 인사말을 붙였단 말에 고훈이 피식 웃었다.
“아니요. 못 봤어요. 영화관에 가긴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돌아왔어요.”
고훈은 영화관 주변이 얼마나 혼잡했는지 이야기하며 포스터 그릴 준비를 했다.
“내일 첫 시간에 보러 가기로 했는데 그때도 자리가 얼마 없더라고요.”
채팅창에 기암성의 주연 배우 토비 샬라메가 그림을 훔칠 때 멋있었다는 말이 올라왔다.
“아, 영화 내용은 말하는 거 금지예요. 못 본 사람도 있으니까 그러면 안 돼요. 어떻게 쫓아내는지 모르니까 하지 마세요.”
└강퇴하는 법 모른댘ㅋㅋㅋㅋㅋ
└아 입이 근질근질하다
└그걸 말하면 어떡해ㅋㅋㅋ 몰라도 안다고 해야짘ㅋㅋㅋ
└진짜 하지 마라. 진짜 하지 마.
└근데 어차피 소설로 나와 있는데 스포일러라고 할 것까지 있나?
└소설이랑 다름.
└제육 덮밥 먹고 싶다.
└오늘은 뭐 그림?
└이제 앙리 마르소랑 운동 같이 안 해요?
“소설이랑 달라요. 시간이 짧으니까 진행하는 방식도 다르고 결말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한 시청자가 제작에 참여했는데 영화 내용을 모르냐고 질문했다.
“네. 시나리오를 보긴 했는데 촬영 도중에도 많이 수정한대요. 촬영할 때는 다른 일 하고 있어서 못 봤고요. 네, 아르누보 공모전. 오늘은 포스터 그릴 거예요.”
고훈이 이젤에 화판과 4절지(545㎜×394㎜)를 올렸다.
처음에는 방송할 때마다 찾아와 제육덮밥을 먹고 싶다는 ‘제육덮밥’과 앙리 마르소와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마르소파닥파닥’이 하는 말에 일일이 답변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무시했다.
“저번에 같이 그림 그릴 사람 구한다고 했잖아요. 포스터 그려서 집 앞에 붙일 거예요.”
고훈이 입을 내밀고 고민했다.
└아니ㅋㅋㅋㅋ 요즘 시대에 누가 포스터로 사람을 찾앜ㅋㅋㅋㅋ
└집 앞에 붙인대 ㅠㅠㅠ
└인스타나 핑구 채널 게시판에서 찾는 게 빠르지 않을까?
└구인공고 올리세요!
“집 근처에 사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서요. 포스터 보고 안 와요? 게시판 같은 거 많이 있던데.”
의욕이 넘쳤던 고훈이 예상치 못한 반응에 걱정스레 물었다.
└온라인이 너무 잘 돼 있으니까.
└파리는 또 모르겠네.
└해봐요! 해서 나쁠 것 없죠!
└나 진짜 포스터 직접 그리는 거 국민학교 이후로 첨 봄.
└국민 뭐요?
└아조씨…….
채팅을 확인한 고훈이 연필을 들어 움직였다.
“포스터는 한눈에 들어와야 해요. 크고 단순하게 그려서 이목을 끌고 뜻을 확실히 전달하는 게 목적이에요. 같은 이유로 어떤 색을 쓰는지 어떻게 배치하는지도 중요하고요.”
손에 힘을 빼고 아주 연한 선으로 스케치를 하던 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에 노란색, 검은색, 빨간색 물감 튜브를 보였다.
“물감은 이렇게 세 개만 사용할 거예요. 파란색을 쓸 수도 있는데, 그리면서 생각해 볼게요. 최대한 원색을 활용할 거예요. 채도가 높은 쪽으로 해서 검은색이랑 대비되게요.”
고훈은 가운데에 해바라기를 그리고 꽃잎을 그려 넣는 손을 세 개 그렸다.
“포스터 하면 빠질 수 없는 화가가 두 사람 있어요. 툴루즈 로트렉이라고 혹시 알아요?”
채팅창에 이응과 니은이 도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전시회 여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세요. 포스터 같은 미디어아트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고훈이 옛 친구를 홍보하며 물감을 칠했다.
“다른 사람은 알폰스 무하라는 화가예요. 얼마 전에 마르소네 집에서 알게 된 사람인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채팅창에 물음표가 여럿 올라왔다.
“나중에 꼭 한번 다룰게요. 아시는 분은 모르시는 분들 위해서 참아주세요. 조금만 알려달라고요?”
고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화가마다 추구하는 미학이 다르고 어떤 작품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저는 알폰스 무하만큼 아름다움에 순수하게 다가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고훈이 포스터 상단에 함께해요라는 문구를 적었다.
하단에 연락처를 적으려고 하자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도배하다시피 글을 올렸다.
└하지 마! 하지 마!
└전화번호를 왜 적어!
└큰일 난다!
└[백유진 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전화번호 적지 마!
전화번호를 적어 넣느라 채팅창을 신경 못 쓰던 고훈이 후원 알림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왜요?”
고훈이 의아해하며 채팅창을 천천히 살폈다.
└왜긴 왜야. 이상한 사람들이 계속 전화할 게 뻔한데.
└개인정보 막 노출하는 거 아님.
└장난 전화 엄청 올걸?
└장난 전화만 오면 다행이지. 자기 힘들다고 돈 빌려달라, 안 빌려주면 나 죽이는 거다 지랄 지랄 생지랄을 해댈 게 뻔함.
└그런 사람이 있다고?
└유명하고 돈 많아 보이는 사람들 다 겪음.
└이 방에만 3,000명 넘게 있는데 그 사람들이 문자 하나씩만 보내도 훈이 오늘 잠 못 자요.
“아.”
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충분히 겪어 왔기에 시청자들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연락을 해야 만날 수 있잖아요. 아, 편지 보내라고 하면 되겠다. 집 앞 우편함에 넣으라고 하면 되죠?”
└이 방 진짜 다행인 게 다들 훈이 아끼는 게 보인다. 못된 놈들 있는 방이면 안 말렸을 텐데.
└편짘ㅋㅋㅋㅋㅋㅋ
└뭔 편지야 ㅋㅋ
└얘 12살 아닐지도 몰라.
└이메일 보내라고 하면 되잖아.
고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스터 하단에 [email protected]으로 연락처를 적었다.
“이제 됐죠?”
시청자들이 니은을 반복해 올렸다.
└근데 만나는 것도 문제임.
└ㄹㅇ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을 어떻게 믿고 만나려고?
└진짜. 훈이 어리고 돈 많은 거 노리고 못된 짓 하면 어떡함?
└신원이 확실해야지.
└요즘 제정신 아닌 사람 너무 많아. 조심해야 해. 아직 어리잖아.
└솔직히 요즘엔 어른도 낯선 사람 만나는 거 조심해야지.
└그냥 혼자 하면 안 됨? 아니면 아는 사람 중에 구하거나.
└앙리 마르소하고 같이 그려요.
처음에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고훈도 마르소 갤러리 총기 난사 사건이 떠오르자 심각해졌다.
시청자들의 말대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쉽게 만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만나는 건 할아버지랑 같이 보면 돼요.”
몇몇 시청자가 그래도 위험하다며 말렸다.
“괜찮아요. 사람이기만 하면 할아버지가 이길 거예요.”
고훈이 터질 듯한 근육을 자랑하는 할아버지를 떠올리고는 시청자들을 안심시켰다.
“조건을 좀 상세히 적어야겠어요. 일단 범죄자는 거절할게요.”
시청자들이 이응을 연달아 치며 동의했다.
“또 뭐가 좋을까요?”
└건강한 사람이면 좋지. 몸이든 정신이든.
└장애인 차별하면 안 되니까 지병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자.
└좋네. 좋네.
└지병 있는 사람은 왜 안 됨?
└아, 그것도 그렇네. 그럼 건강한 사람을 우대한다고 하자.
└건강한 걸 어떻게 증명하는데ㅋㅋㅋ
└보통 헌혈 자주하면 체크가 됨. 혈액에 이상이 생기면 따로 연락 주거든.
고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채팅창을 읽어 내렸다.
└O형이 사교적이고 좋아.
└유사 과학이 또;;
└MBTI 보자. ISFP나 ESFJ 어떰?
└나이도 봐야지. 너무 많이 차이나는 것보단 적당히 비슷한 또래가 좋지 않나?
└담배 피우는 사람은 받지 마. 냄새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받음. 쓰레기도 문제고.
└알콜중독자나 약쟁이도 받으면 안 됨.
채팅창에 모르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왔다.
“O형이 사교적이에요?”
미신이라는 사람과 근거는 없어도 겪어보면 그럴듯하다는 사람이 반반이었다.
“MBTI는 뭐예요?”
성격 유형 검사라는 말에 고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것도 있어요? 어떻게 봐요?”
시청자들이 고훈에게 MBTI 검사를 직접 받아보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한 시청자가 10만 원을 후원하며 해달라고 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해볼게요. 여기 들어가면 돼요?”
고훈이 붓을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막상 MBTI 홈페이지에 접속해 질문에 답을 선택해 넣으니 진지해졌다.
마지막까지 신중히 답을 적고 나니 ENFP라는 단어가 나왔다.
└오 좀 의외다
└나도. ISFP라고 생각했는데
└ENFP도 예술가적 성향임.
“재기발랄한 활동가?”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타인과 정서적 유대 관계를 맺으며 행복을 느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직관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타인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에는 깜짝 놀랐다.
“이거 진짜 신기해요.”
다시 태어나고 건강한 몸과 부모님, 할아버지의 사랑, 안정적인 일상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진 점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호의를 가지고 한 행동에 오해받거나, 타인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던 터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기한데. 꼭 확인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요. 성격은 다들 다르니까 직접 대화하면서 맞는 사람 찾고 싶어요.”
고훈이 메모장 프로그램을 열어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내용을 정리했다.
[함께할 사람을 구합니다]
그림 그리실 분을 찾습니다.
나이는 10대에서 40대 사이로 성별은 무관히 모집합니다.
건강한 사람 우대.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흡연자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혈액형 O형을 선호하지만 다른 혈액형인 분도 환영합니다.
사교적인 분도, 조용히 작업하고 싶으신 분도 환영합니다.
매일 맛있는 간식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사정상 전화번호를 남길 수 없으니 연락은 이메일을 통해서 해주세요.
“또 뭐 있었죠?”
구인공고 문구를 작성하던 고훈이 채팅창을 확인했다.
└이게 왜 이렇게 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저런 구인공고 보면 경찰에 신고할 거임.
└다시 써. 장기밀매업자가 쓴 것 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