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33화
44. 없었는데요 생겼어요(1)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데미안 카터는 자진해서 영국으로 돌아가 조사를 받았고, 영국 소더비와 다이몬에 관련한 일을 증언하였다.
첫 번째 재판에서 징역 3년과 탈세해 온 금액의 두 배를 벌금형으로 선고받았고 항소하지 않았다.
탈세액에 대해서는 최고형을 받았지만,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점과 법정 증인으로 나선 점이 감안되어 징역은 감형받았다고 마르소가 설명해 주었다.
불처럼 타올랐던 비난 여론도 데미안 카터가 재산 전부를 기부하고 그의 과거가 알려지면서 조금은 가라앉았다.
나 또한 언젠가는 그가 그의 팬들에게 용서받길 바랐다.
그것만이 그가 다시 미술을 할 수 있는 길이니까.
한편 주동자였던 제이 조플링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변사체로 발견된 그는 조사 결과 직원에게 배신당하고, 호텔에서도 쫓겨나 무일푼으로 한겨울의 로테르담을 전전했다고 한다.
타살로 확인되었는데 동업자였던 왕 첸이란 사람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할아버지와 마르소, 방태호 모두 그 일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 기사로만 접했지만 아마도 보복이지 않았을까 싶다.
용의자가 사망하여 수사가 종결될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었는데, 제이 조플링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국 소더비와 사치 갤러리는 철저하게 조사받았고, 한 언론은 두 사업장이 회복 불능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그 말도 이해가 되는 것이 두 곳 모두 사업 정지 처분을 받고 관련자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마르소가 말하길 여론이 워낙 안 좋은 탓에 정치권에서도 문제로 삼아서 큰 문제가 없는 한, 항소가 들어가더라도 법정 최고형이 유지될 거라고 한다.
그렇게 어수선한 2월에 나는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조기유학 비자를 받았다.
3월에는 앙리 4세 중학교와 가깝고 조용한 편이라는 파리 5구에 집을 샀다.
프랑스에서 집을 구하려면 보증인이 필요한데, 피에르 말로가 나서 주어 드디어 마르소의 악랄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할아버지가 마르소에게 설득당하신 탓에 포테이토 피자와 디저트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비록 이뤄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간식 때문에 뛰지 않아도 되니 만족한다.
새로 장만한 집은 지하실을 포함한 5층이다.
할아버지와 둘이 살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감이 없지 않아 있으나 작업실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있다.
차고로 활용되던 1층은 개조해서 작업실로 꾸몄고 지하는 할아버지의 소장품을 전시해 두었다.
습기와 온도, 빛에 예민한 작품이 많아서 설비에 꽤 공을 들였다.
2층은 거실 겸 주방으로 쓰고 3층과 4층은 할아버지와 내가 각각 쓰기로 했는데.
4층까지 걸어 올라가기가 귀찮아서 대부분 1층과 2층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울 집처럼 정원도 꾸몄다.
할아버지와 함께 심은 꽃이 얼마나 예쁘게 필지 기대된다.
그런 이야기를 편지에 담아 사진과 함께 봉했다.
“훈아, 출발하자.”
“네.”
편지 봉투를 챙겨 1층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앙리 4세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날이다.
일반 입학을 하고 싶었는데, 예술반이 좀 더 활동하기 편하다고 해서 예술반 미술 전공으로 원서를 넣었다.
앙리 마르소가 소개해 준 가정교사 말로는 무리 없이 합격할 수 있을 거란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중학교 입학시험 따위에 떨어질 내가 아니다.
“가는 길에 편지 부쳐도 돼요?”
“편지?”
할아버지께 쓰다 보니 제법 두꺼워진 편지를 보여드렸다.
“시현이한테 보내려고요.”
“허어. 편지. 어디 보자. 우체통이 어디 있더라.”
“저 골목 돌면 있어요.”
할아버지와 산책할 때 발견한 노란색 우체통을 말씀드리자 고개를 끄덕이신다.
자동차에 시동을 거셨다.
“할아버지도 젊었을 땐 편지 많이 썼는데. 언제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나는구나.”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다들 택배는 많이 주고받으면서 편지는 잘 안 쓰는 것 같다.
문자 메시지나 전화를 사용하면 쉽고 빠르고 연락할 수 있어서 이해 못 할 것도 없으나 편지만의 장점도 분명하다.
신중하게 한 문장, 한 문장 적다 보면 내 생각을 정리해 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을 수도 있다.
말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대화를 시작하면 한없이 길어지는데, 글로 쓰면 필요한 말만 정리할 수 있으니 통화하는 것보다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우표 같은 건 잘 챙겼고?”
“네.”
인터넷으로 한국까지 편지를 보내는 법을 배웠다.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 문제없이 도착할 거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앙리 4세 중학교로 향했다.
언제 봐도 사치스러운 학교다.
앙리 4세 고등학교에 딸린 학교로, 낭만적으로 사치스러웠던 한국 초등학교와 달리 바로크적으로 사치스럽다.
차에서 내렸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할아버지가 심심할까 봐 걱정하는 거니?”
“네.”
“이 녀석아, 시험 걱정을 해야지 쓸데없는 걱정을 해.”
“겨우 애들 시험인걸요.”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아버진 교장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열심히 해.”
“네.”
시험 자체는 어렵지 않아도 과목이 여럿이다 보니 오래 걸릴 텐데, 그동안 심심하진 않으실 것 같아 다행이다.
“안녕하세요. 훈이 어서 와.”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입학 상담을 받으러 왔을 때 안내해 주었던 교직원 마고 씨가 맞이해 주었다.
“이따 봐요.”
“그래. 파이팅!”
“파이팅!”
할아버지가 교장실로 향하기 전에 주먹을 들어 보이며 파이팅이라고 크게 외치셔서 따라 했더니 마고가 웃었다.
“참. 기암성 오늘 개봉하던데.”
“알고 계셨어요?”
마고가 <기암성> 개봉일을 기억하고 신경 써 주었다.
“그럼. 당연하지. 잘 됐으면 좋겠다.”
“저도 그래요.”
프랑스 문학에 프랑스 배경이다 보니 파리나 마르세유처럼 큰 도시에서 시사회도 많이 했는데, 많이들 봐주면 좋겠다.
“재밌을 거예요.”
마고가 영화관 표를 보여주며 씩 웃었다.
“어?”
시험장에 도착해서 보니 아무도 없고 책상도 하나뿐이다.
“저 혼자 봐요?”
“응. 잠깐만 기다려.”
1학년에 나만 다닐 리는 없고 유학생 중에 시험을 보는 사람이 나뿐인 듯하다.
하긴. 이제 곧 4월이니 입학시험을 보기엔 조금 늦은 편이다.
필기구를 꺼내서 기다리고 있으니 마고가 시험지를 들고 왔다.
* * *
가정교사가 말했던 대로 시험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벌써 다 했어?”
“네.”
지식을 요구하는 과목은 정답이 정해져 있으니 문제없고, 논술이 조금 걸렸다.
동시대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서술하라는 문제였는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예술가의 행위가 동시대 예술이라는 말을 장황하게 풀어냈다.
가정교사에게 논설문 쓰는 법을 배운 덕에 그 양식에 맞춰 기술했다.
남은 시험은 프랑스어 관련 시험.
20분 동안 교사와 자유 질의 문답을 나눈다고 알고 있다.
면접 같은 거다.
시험지를 걷어간 마고 씨가 어디론가 연락했다.
기다리고 있으니 깡마른 노인이 교실로 들어섰다.
할아버지보다도 나이가 한참 많아 보이는데, 가냘픈 몸과 달리 눈에 지혜와 의지가 깃들어 있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길고 큰 코에 작은 안경을 얹고 있어 꼭 스코틀랜드에 있는 마법 학교 교장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인터뷰 시험 상대일 테니 이곳의 교사지 싶다.
“안녕하세요.”
“안녕.”
노인이 빙그레 웃곤 맞은편에 앉았다.
“앙리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단다.”
“앙리 마르소요?”
설마 하며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말썽꾸러기라면서?”
이 인간이.
대체 뭐라고 떠들었길래 보자마자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앙리 마르소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면, 셰리가 말했던 마르소의 은사일 것이다.
“혹시 교장 선생님이세요?”
“어떻게 알았니?”
“셰리에게 들었어요. 마르소의 은사시라고.”
“하하. 은사라. 그 녀석 덕분에 내 머리가 다 셌지.”
“잘 어울려요. 덤.”
“덤?”
하마터면 딱총나무 지팡이를 든 마법 학교 교장 선생 이름으로 부를 뻔했다.
“아니에요.”
푸생 교장이 싱긋 웃곤 깍지를 꼈다.
“그래. 우리 학교에서 뭘 배우고 싶니?”
인사도 나눴으니 본격적으로 시험이 시작된 모양이다.
“되도록 다양한 지식을 얻고 싶어요.”
“다양한?”
“네.”
“우리 학교는 너처럼 재능 있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이란다.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심도 있게 다루지. 너도 미술 전공으로 입학하려고 했잖니.”
고개를 끄덕였다.
“분야를 정해서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미술 전공을 지원하긴 했지만 미술보다는 문학이나 음악, 사회, 과학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미술은 미술이란 학문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푸생 교장이 좀 더 이야기해 보라는 듯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을 그리는 건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나를 알아야 내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 여러 공부를 하고 싶다는 뜻이구나.”
“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있고요.”
“계속해 보렴.”
“예술은 교류하면서 생겨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들뢰즈가 말했죠.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고.”
푸생 교장이 턱을 받쳤다.
“그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해요. 화가 개인의 독립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와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 모두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큰 의미에서 대화이기 때문이에요. 창조하는 행위도 그것을 전시하고 감상하는 행위도 모두 대화예요. 대화는 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일이고요.”
“대화.”
“네. 저는 재작년에 해바라기라는 그림으로 저를 표현했어요. 마르소는 그걸 보고 그림자를 그렸고요. 저는 그 그림자를 보고 총탄이란 그림을 구상할 수 있었어요.”
내가 없었더라면 마르소는 내 작품을 바라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표현한 <그림자>를 그릴 수 없었을 거다.
나 또한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카페>와 앙리 마르소의 <그림자>가 없었더라면 <총탄>을 그릴 수 없었다.
모든 창작은 완전히 새로운 것일 수 없다.
누가 시작이라고 할 것도 없이 어디에선가 받은 영감을 자신만의 것으로 해석하고.
또 그것을 누군가 새롭게 받아들이는 과정.
대화와 같다.
“그러면 네게 미술 수업은 큰 의미가 없겠구나.”
“이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해줄지 몰라서 확답할 순 없어요. 만약 기술적인 부분이라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너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해서?”
“네.”
푸생 교장이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