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31화 (186/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31화

43. 죄와 벌(7)

[자금세탁의 온상지 영국 소더비]

[유령법인회사를 통해 데미안 카터의 작품을 사들인 후원단체 적발]

[영국 소더비, 최대 300% 이자율 챙겨]

[영국 소비자신용법 이대로 괜찮은가]

[데미안 카터 탈세 의혹]

지난 한 달간 아르센 르블랑과 모리스 숌즈는 영국 소더비, 다이몬, 데미안 카터가 이룬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김지우가 작성한 기사를 신호탄 삼아 시시각각 새로운 정보를 순차적으로 풀어냈다.

거기에 SNBA의 셰바송 씨몽 회장과 뉴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마커스 앨런 관장 등이 증인으로 나서기까지 하니.

첫 번째 충격을 받았던 미술계는 연달아 전해지는 보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게 시발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알렉스 우드가 분통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던 그도 속속들이 올라오는 증거 자료를 보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개충격이다.

└나 좀 이해가 안 돼. 데미안 카터가 뭐가 아쉬워서 자금세탁하는 걸 도와줘?

└애초에 조작이었다고 하잖아

└미친 세상이다. 진짜. 도대체 뭘 믿어야 하지?

└정리 좀 해줘 봐. 뭔 일이야?

└난리네. 난리야. 영국 소더비 거래액이 얼만데.

알렉스 우드의 시청자들 또한 혼란스럽고 화나긴 마찬가지였다.

“상황 정리는 나중에 영상 따로 찍을 테니 그걸로 확인하고.”

말을 이어가던 알렉스 우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시장 확보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말 그대로 피땀 흘렸는지 잘 알 거야.”

알렉스의 목소리가 눈물을 머금었기에 채팅창이 갱신되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림 하나 팔아보겠다고. 전시회에 사람 한 명 더 끌어보겠다고 그 난리를 쳤는데. 여러분도 알잖아. 현대미술 솔직히 웃음거리밖에 안 됐어. 아닌데. 그게 아닌데 일반 대중한테는 현대 미술은 아직도 뒤샹식 개념 미술이었다고. 뒤샹을 답습하는 답답한 인간들 때문에 그 이미지를 벗어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력했어.”

알렉스 우드가 눈물을 닦았다.

“작년에 타계한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덕분에 개념 미술은 더 이상 어렵고 이상하기만 한 게 아니게 됐어. 베르나르 뷔페는? 바스키아는? 낙서였던 문화가 그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예술로 인정받고 위안이 되었어. 여러분도 그렇잖아. 주변사람들한테 전시회 같이 가자고.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서 작년 아르누보 공모전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거야.”

알렉스 우드가 영국 소더비와 데미안 카터 관련 기사를 화면에 띄웠다.

“근데. 근데 그걸 이 새끼들이 망쳤어. 이제 누가 믿겠어? 경매장이랑 평론가들이 담합하고 누구 한 사람 거장이라고 떠받들어 주면 작품을 수백만, 수천만 달러에 팔 수 있는 시장을? 자기가 감동해도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지 않겠어?”

알렉스 우드가 데미안 카터의 사진을 확대했다.

“앙리 마르소가 왜 이 인간한테 그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인격자? 이 새끼는 자기 작품에 감동한 사람들조차 병신으로 만들었어. 단순히 탈세한 사건이 아니야.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고.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어?”

└아,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앙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모를 리가 없지. 거장전 끝나자마자 이렇게 보도되는 거 보면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었을 듯.

└진짜 맞는 말이다. 나도 솔직히 데미안 카터 작품 좋아했는데 ㅋㅋㅋㅋ 난 뭘 좋아한 거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그래. 탈세했다고 쳐도 솔직히 큰 영향이 있나 싶고 부당 이익을 올린 것도 나랑 크게 상관 있나 싶었는데, 그러네. 상관이 있었네.

분을 이기지 못한 알렉스 우드는 자신의 뉴튜브 채널에 접속하여, 데미안 카터에 관련한 영상을 찾았다.

10분 내외의 영상이 다섯이었다.

조회 수는 각각 최소 8만에서 최대 47만.

데미안 카터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데, 덕분에 방향을 잡았다는 댓글도 수만 개였다.

그를 이해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사유하고 그것을 공유하고자 자료를 정리하고, 대본을 쓰고, 고증을 확인하고, 녹음하고, 편집했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알렉스 우드가 다섯 개의 영상을 삭제했다.

* * *

여론이 들끓었다.

사안의 중대함을 인지한 영국 정부는 엄중하고 신속한 수사를 약속했고 영국 국세청과 검경은 즉시 움직였다.

영국 소더비에는 이례적인 속도로 압수수색이 들어갔고, 데미안 카터와 제이 조플링에게는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제이 조플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제기랄!”

제이 조플링이 유리잔을 던졌다.

상당량의 증거가 풀렸으니 입국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제이 조플링이 주먹을 떨다가 거래 관계인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발신음만 돌아올 뿐이었다.

런던 시의원을 함께했던 이들에게도 전화를 돌렸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

철저히 이해관계였던 그들이 제이 조플링이 뻗은 손을 잡을 리 없었다.

“회장님!”

“뭐야. 또.”

“은행 계좌가 정지되었습니다.”

제이 조플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가.”

“HSBC, 바클레이즈, RBS 전부입니다.”

법원에서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영국 법은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계좌는 통보 없이 중지할 수 있었다.

‘너무 빠르잖아.’

고작 이틀 사이에 일어난 일.

평소와 같았다면 어떻게든 도주 자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을 텐데, 법원과 국세청, 검경, 언론이 작정이라도 한 듯 달려들고 있었다.

무장을 완전히 해제하고 귀국하자니 부담스러웠고.

호텔 밖에는 기자들이 포진하고 있어 제3국으로 도피한다는 선택지조차 없었다.

‘설마.’

제이 조플링은 이조차 앙리 마르소가 준비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보이만스 반 뵈닝겐 거장전에서 손써볼 겨를도 없었던 경험이 반복되는 듯했다.

‘아니야. 그 멍청한 놈이 그럴 리가 없지.’

제이 조플링은 애써 사실을 외면했다. 고아로 자라 귀족으로서의 품행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그럴 머리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기자들이 난리를 치는 지금, 어디로 몰래 이동한다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언론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순간일 뿐.

제이 조플링은 로테르담에서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유럽 외 국가로 피신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시간만 확보한다면 얼마든지 상황을 역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 계좌는 정지되었으나 스위스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 분산해 놓은 재산이 충분했다.

‘필리핀? 브라질?’

도피할 국가를 떠올리던 제이 조플링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연락했던 이들 중 한 사람이 회신했으리라 생각한 제이 조플링이 서둘러 번호를 확인했다.

‘처음 보는데.’

낯선 번호를 확인한 제이 조플링이 인상을 쓰다가 전화를 받았다. 잔뜩 경계하고 있으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받았으면 말을 해야지. 겁이라도 먹었나?

“마르소…….”

제이 조플링이 증오심에 움켜쥔 주먹을 떨었다.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정말 그게 궁금하나?

앙리 마르소가 비아냥댔다.

기껏 한다는 말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제이 조플링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고작 조롱이나 하려고 했다면 크게 실수한 거다.”

-머리가 나쁘군.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봐.

“……뭐야?”

앙리 마르소는 답하지 않았다.

제이 조플링은 프랑스의 건방진 애송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싸움을 걸어놓고 전화를 걸 이유가 없었다.

‘설마.’

제이 조플링이 씩 웃었다.

현재 보도되는 내용은 영국 소더비와 데미안 카터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앙리 마르소가 바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다이몬 회원들에 관한 정보일 터.

제이 조플링은 정지된 영국 계좌를 풀어주는 조건이라면 다이몬 회원들을 팔아넘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인제 보니 제법 말이 통하는군.”

-그래?

“조건을 들어보지.”

-흐. 흐하하하하하!

앙리 마르소가 드물게 소리 내어 웃었다.

궁지에 몰린 것도 모르고 조건 같은 말을 입에 담으니 그보다 우스울 수 없었다.

한참을 웃은 앙리 마르소가 말을 꺼냈다.

-훌륭했어. 아주 즐거운 코미디야.

“뭐라?”

-보아하니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더군. 멍청한 인간을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말이야.

앙리 마르소가 피식 웃었다.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피신하려고 했겠지?

제이 조플링이 속내를 들켜 짐짓 놀랐다.

-아주 멍청한 선택이야. 도피 생활을 하면서 네게 속은 범죄자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 인터폴도 거들겠군.

제이 조플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앙리 마르소의 말대로 그를 통해 불법 자금을 세탁해 온 범죄 단체를 상대하는 것도 시급했다.

거주지를 계속 옮겨 다니는 일도 한계가 있었다.

-알려주지.

앙리 마르소가 상냥히 말했다.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얌전히 영국으로 돌아가는 거야.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 고통 없이 죽길 기다리는 거지. 평생 베이크드 빈즈와 브로콜리를 먹으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하는 게 최선이야.

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

마치 사형 선고라도 내리는 듯한 말투에 제이 조플링이 분개했다.

“닥쳐! 내가 반드시 널 찢어 죽일 테다. 나 제이 조플링을 건든 놈은 누구도 무사하지 못해!”

-하하핫하!

앙리 마르소가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고마웠다.

얌전히 죄를 인정했더라면 무사히 감옥에서 죽는 날을 기다렸을 텐데, 고맙게도 발악을 해준단다.

즐겁지 않을 리 없었다.

-건투를 빌지.

제이 조플링은 통화가 끊어지자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스무 살이나 어린 망나니에게 조롱받았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 제이 조플링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마음만 먹으면.’

제이 조플링은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 아. 그게…….”

앙리 마르소에게 어떻게 복수할까 고민하던 차, 곤란해하는 비서의 목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뭐야!”

소리쳐 부르자 비서가 다가왔다.

“방금 호텔 지배인이 다녀갔는데.”

제이 조플링이 눈매를 좁혔다.

“그런데.”

“내일까지 방을 비워 달라고…….”

“뭐? 왜?”

“내부 수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사람이 있는데 수리를 하긴 뭘 해.”

“저도 의아해서 이유를 물었지만 너무 완고하게 나와서…….”

제이 조플링은 잇따른 악재에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다른 데 알아봐.”

“네.”

제이 조플링의 비서는 로테르담에 있는 모든 호텔에 전화를 돌렸고, 모든 방이 예약되어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보이만스 반 뵈닝겐 거장전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몰렸다고는 해도, 벌써 이틀 전 일.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고용주가 완전히 고립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저 인간하고 같이 있을 필요가 있나?’

한 번 든 의구심은.

‘같이 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위기의식으로 발전했고.

‘이번 달 월급도 못 받았잖아.’

그런 그녀에게는 제이 조플링의 지갑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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