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27화 (182/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27화

43. 죄와 벌(3)

한편.

마르소 가문의 법정 소송을 전담하는 변호사 모리스 숌즈 또한 데미안 카터 관련 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공인 탐정 시절 활용했던 정보처와 마르소 가문의 막강한 지원 그리고 아르센이 입수한 첩보 자료를 통해 데미안 카터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수집, 취합해 분석했다.1)

그러나 변호사이자 탐정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범죄를 다뤘던 그조차 데미안 카터와 영국 소더비, 사치 갤러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숌즈는 게시판에 붙여둔 여러 사진을 두고 고민을 이어갔다.

그중 그가 주목하는 사진은 무명이나 다름없던 데미안 카터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주었던 <영원>이었다.

고훈과 차시현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에도 몇몇 사람은 그가 어떻게 1만여 개의 사파이어를 구했는지 의문을 제시했었다.

사치 갤러리 창립자 자레드 사치가 설립한 후원 재단 다이몬이 데미안 카터를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은 일단락되고.

자레드 사치는 뛰어난 예술가를 발굴해낸 것으로 또 한 번 이름을 알렸었다.

“그게 알고 보니 가짜였다라…….”

<영원>이 5,000만 파운드란 거액에 낙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성과 고가의 재료가 사용된 점이었다.

1만여 개의 사파이어가 활용되었으니 자연스레 높은 가격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고.

데미안 카터의 죽음에 관련한 깊은 철학과 해골과 보석의 조화라는 기이한 미관 때문에 많은 사람이 경매에 참여했었다.

이후로도 데미안 카터는 사파이어를 활용한 작품을 몇몇 더 발표했었다.

“…….”

숌즈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파이어가 진품일 경우를 가정했다.

<영원>에 사용된 사파이어가 진품이라고 추측하는 근거는 두 가지.

작품의 진위를 감정할 때는 경매장뿐만 아니라 외부 인사가 여럿 참가하는 점이 첫 번째 근거였다.

특히나 <영원>처럼 초고가 물품은 거래 직전까지 약 한 달간 확인 작업이 반복되었다.

데미안 카터와 영국 소더비가 나섰어도 작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고용한 모든 감정사를 매수할 순 없었다.

일이 가능해지려면 최소한 낙찰자인 제이 조플링이 공범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번째 근거로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영원>을 구입한 사람은 데미안 카터의 후원자 제이 조플링이었는데 가짜 사파이어를 사서 그가 취할 이득이 없었다.

제이 조플링이 자금세탁을 목적으로 데미안을 후원하고, 데미안이 그 돈으로 사파이어를 구매해 <영원>을 만들었다면 제이 조플링이 구매해서는 아니 되었다.

돈이 이중으로 들기에 중간에 데미안 카터가 수익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자금세탁이 성립되지 않았다.

또한 투기였든 자금세탁을 목적으로 했든 언젠가는 <영원>을 처분해야 할 테니 사파이어가 가짜라면 제이 조플링은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숌즈는 제이 조플링이 그런 모험을 할 리 없다고 판단했다.

“흐음.”

막다른 길목에 이르렀다.

숌즈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지금까지의 가설을 기반하여 데미안 카터와 제이 조플링, 영국 소더비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상상했다.

<영원>에 사용된 사파이어는 데미안 카터가 밝히길 약 600캐럿 정도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이 조플링이 데미안 카터에게 재료비를 주었다면 대략 20만 파운드.

데미안 카터는 20만 파운드로 <영원>을 만들어 영국 소더비에 등록했다.

영국 소더비는 경매를 과열시켜 <영원>의 가격을 5,000만 파운드까지 올려 제이 조플링에게 팔고, 제이 조플링은 20%의 수수료와 5%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6,250만 파운드를 지불했을 터.2)

제이 조플링이 투자한 금액은 6,270만 파운드 정도로 예상되었다.

이 일로 데미안 카터는 영국 소더비에 수수료로 5%인 250만 파운드를 지급하고 남은 4,750만 파운드에서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영국 예술가는 예술품 판매 수익의 최대 80%를 손비처리할 수 있으니, 최대치로 상정했을 경우에는 950만 파운드에 40%의 소득세를 적용하여 380만 파운드를 납부했을 터였다.

즉, 데미안 카터에게 남은 돈은 최대치로 계산했을 때 4,370만 파운드.

“후우.”

숌즈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양도소득 총액이 3만 5,000파운드 이상일 경우 40%를 과세하는 영국의 자본이득세를 고려하면 제이 조플링은 <영원>을 최소 8,800만 파운드에 다시 팔지 않는 이상 손해를 보았다.

계산상의 오류로 수익이 조금 나더라도 수억 파운드의 자산가인 그가 굳이 몇백만 파운드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리 없었다.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단 한 가지.

제이 조플링이 정말로 데미안 카터가 유명한 작가가 되리라 믿고 투자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앙리 마르소가 의심한 불온한 일은 없었던 것이 되었다.

더 이상 사파이어가 진품인지 가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우웅- 부우웅-

숌즈가 세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아르센이었다.

숌즈는 오랜 악연이자 든든한 아군의 전화를 다급히 받았다.

“뭔가 알아냈나?”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더군.

숌즈는 아르센의 말투에서 그가 마침내 비밀을 밝혀냈다고 확신했다.

“어서 말해보게.”

-자료 올려두었으니 전화 끊지 말고 열어 봐.

아르센은 허탈하게 웃었다.

숌즈는 마르소 가문이 활용하는 독립 서버에 접속해 아르센이 올려놓은 파일을 열었다.

작은 규모의 쓰레기 처리장을 찍은 사진이었다.

“쓰레기 수거 업체 대표가 되더니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나?”

-농담이 아니야.

사진을 확인하던 숌즈가 미간을 좁혔다.

쓰레기들이 석고, 돌, 대리석, 철, 가죽 등 일반 가정에서 나올 법한 재질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의심한 나머지 몇 번이고 반복해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럴 수가.”

작게 부서져 있던 탓에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몇몇 사진을 통해 그것이 데미안 카터가 최근에 발표한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매에 유찰된 것들이야.

“팔리지 않는 건 폐기한다고?”

-그렇게 많은 작품이 팔리지도 않고 전시되지도 않았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했는데.

아르센이 이어 말했다.

-모조 사파이어도 토끼 모피도 모두 여기서 나왔어. 팔리지 않아서 처분한 걸로 봐야겠지.

“희소성 때문인가?”

-그럴 수도. 거래량을 의도적으로 줄여서 사기 힘든 물건으로 포장했을 수도 있고. 문제는 그게 아니야. 마지막 파일 열어 봐.

숌즈가 아르센의 요구대로 마지막 파일을 열었다.

짙은 푸른색 사파이어로 장식된 <영원>이 찍혀 있었다.

“그새 제이 조플링 집까지 들어간 건가?”

-아니. 쓰레기가 나오는 건물 안이야. 데미안 카터의 작업실이거든.

“……팔았던 물건을 가지고 있다?”

-데미안 카터와 제이 조플링이 연대하고 있다고 봐야지.

숌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연대하고 있음은 이미 상정해 둔 일이었고, 아르센이 데미안 카터의 작업실에서 발견한 <영원>은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부정거래로 잡아넣을 수 있겠는데.”

-그렇게만 끝날 사안이 아니었어. 재밌는 짓을 했더라고.

숌즈가 의아해했다.

-작가님과 같이 얘기해야겠어. 내일 아침에 도착할 거야.

“이런 사진을 찍었으니 한 소리 듣겠는데.”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금지한 앙리 마르소가 카터의 작업실에 몰래 잠입해 사진을 찍어온 아르센을 가만둘 리 없었다.

-내가 찍은 게 아니야.

“그럼?”

-정의감 넘치는 기자가 있었거든.

* * *

앙리 마르소는 아르센이 들고 온 증거 자료를 확인하곤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아르센에게 정보를 받은 김지우 기자가 잠입 취재한 내용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정리하면 카터와 조플링, 영국 소더비가 짜고 후원단체를 등쳐먹었다는 말이야?”

“네. 제이 조플링이 인맥을 활용해 후원자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데미안 카터의 작품을 팔아 왔습니다. 영원은 데미안 카터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한 투자였고요.”

아르센이 설명을 마치자 숌즈가 덧붙여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 소더비는 융자를 내주며 최대 300%의 이자를 챙겼습니다. 제이 조플링은 영국 소더비와 데미안 카터의 수익의 절반을 나눠 받았습니다.”

앙리 마르소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두통을 달랬다.

“영원을 가져온 건 무슨 뜻이야.”

“거기까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파이어랑 모피는 뭐고.”

“팔리지 않은 것을 폐기하고 남은 잔여물이었습니다. 보관할 장소가 없으니 그리 처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앙리 마르소는 데미안 카터에게 다시 한번 실망했다.

자기가 만든 작품을 고작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분쇄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러고도 예술가라 할 수 있나. 카터.’

앙리 마르소가 서류를 집어 던지곤 눈을 감았다.

“계속해.”

숌즈가 나섰다.

“사기죄는 모호합니다만, 탈세는 확실합니다. 손비처리를 80%나 했는데 부풀려진 부분이 많더군요. 실제로 들어가지 않은 비용도 있고.”

“HMRC는 지금까지 그것도 못 잡아내고 뭘 했어?”3)

“챙겨 받은 게 있었겠죠.”

숌즈의 말에 앙리 마르소가 혀를 찼다.

“자금세탁 관련해서는 정말 놀라운데.”

“또 있어?”

숌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매자 대다수가 유령법인회사를 통해 금액을 지급해 왔습니다.”

데미안 카터, 제이 조플링, 영국 소더비에게 속아 작품을 사들인 이들도 역으로 카터 일당을 자금을 세탁하는 용도로 이용했다는 말에 앙리 마르소는 기가 막혔다.

“한 놈도 놓치지 마.”

아르센과 숌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기어 다니며 후회하게 해.”

앙리 마르소는 예술계를 좀먹는 이들을 용서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브렉시트 이후.

미술 시장의 핵심이었던 런던은 미술품 거래로 톡톡히 이득을 보고 있었다.

유럽 연합으로 묶여 세금이 부여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영국에 미술품을 판매할 때도, 구매해 올 때도 관세가 붙었다.

미술 경매 시장의 과반을 차지한 강력한 장악력 때문에 프랑스, 독일 등 국가와 출신 예술가, 수집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관세를 부담하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압도적인 시장을 내세워 갑질을 해대는 영국 미술계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럴 예정입니다.”

아르센과 숌즈는 관련 내용을 프랑스와 유럽뿐만 아니라 영국과 북미, 아시아 등에 보도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앙리 마르소가 신호만 보내면 영국 및 후원자들이 소속된 국가에 고발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각국의 국세청은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을 잡아들일 터.

모든 일이 앙리 마르소의 지시에 달려 있었다.

“그 사진. 김지우가 찍었다고?”

“알고 계십니까?”

모를 리가 없었다.

몇 번 귀찮게 굴었던 기자였으나,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보여준 기사는 앙리 마르소의 마음에 드는 몇 안 되는 보도였다.

“단독 보도 내게 해.”

“파장을 크게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보상은 충분히 했으니 마음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가 들어가 찍었는데 차이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한 시간이라도 둬.”

앙리 마르소의 말에 숌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르센과 숌즈가 방을 나섰고.

모든 준비를 마친 앙리 마르소는 내일로 다가온 데미안 카터와의 경합을 기다렸다.

압도적인 차이를 벌려 이기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짓이겨낼 요량이었다.

* * *

1)프랑스는 1983년, 안전확보를 위한 사적. 업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공인 탐정 제도가 시행되었다.

2)유럽에서는 경매장이 수수료를 판매자에게 크게 부담되는 것을 경계하여 구매자에게도 부가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보통 구매자에게 20%를 부가하고 판매자(작가)에게는 2~8%를 부가한다.

연간 10만 파운드 이상의 고소득자는 한도를 초과하는 모든 소득에 최대 40%의 소득세를 납부한다.

예술가는 최대 80%까지 손비처리 가능하다.

3)영국 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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