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24화
43. 아이리스(4)
촬영 콘셉트는 아를을 둘러보며 감상을 전하는 거란다.
필요에 따라서는 질문도 한다고 하는데 급히 만들어 준 쪽대본만으로 자연스레 풀어낼 수 있을까 싶다.
어디로 갈 건지, 어떤 질문을 할 건지 정도만 적혀 있는 탓에 막막하다.
“어제처럼 편하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해.”
대니얼 스콧 감독이 과장할 필요도 재밌게 꾸밀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대본을 적긴 했지만 지침일 뿐이지 절대적인 건 아니야.”
작위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일이야 좋아하니 감독을 믿고 편히 이야기해 봐야겠다.
추억을 길잡이 삼아 발을 옮겼다.
포룸 광장의 카페는 어제 저녁을 먹으며 들렀으니 굳이 다시 찾을 필요는 없을 거다.
투우 경기를 관람하는 이들을 그린 <구경꾼들>의 배경인 원형 경기장은 어떨까.
지금도 투우를 하고 있을까.
어제는 스쳐 지나갔던 생 트로핌 교회도 추억을 회상하기에 좋은 장소다.
그러나 화가 공동체의 꿈을 꾸었던 노란 집만 한 곳은 없다.
전처럼 론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노란 집이 있던 곳으로 가볼 생각이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바닥에 박힌 노란색 타일이 눈길을 끈다.
검은색 세모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밀짚모자를 쓰고 짐을 짊어진 채 어디론가 향하는 남자는 꼭 예전의 나를 표현한 것 같다.
“이건 뭐예요?”
“반 고흐와 관련된 장소로 안내하는 블록이야.”
“이것만 따라가도 다 둘러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진 않고 참고하는 정도로만.”
고개를 돌리며 묻자 대니얼 스콧 감독이 답해주었다.
신기한 마음에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마침 생폴 드 모솔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론강으로 가는 길 도중에 있으니 잠시 들러도 괜찮을 듯싶다.
“이쪽부터 가볼게요.”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 탓에 아랍식 건물처럼 견고한 느낌은 없다.
입구 장식에 풀이 조금 돋아나 있고 외벽 겉면이 떨어져 나가거나 어둑어둑하다.
지금은 병원이 아닌 모양.
에스파스 반 고흐(반 고흐의 장소)라고 소개되어 있다.
입구를 지나 정원으로 들어섰다.
외관과 달리 내부는 도색을 새로 했는지 하얀 바탕에 테두리는 밝은 노란색을 칠해 정돈된 분위기다.
이곳 아치형 회랑 안에 꾸며진 작은 정원에서 평화를 찾곤 했었다.1)
겨울이라 꽃은 피어 있지 않지만 화단이나 연못은 그때와 같다.
정신병원이긴 했어도 그리 삭막한 곳은 아니었는데 허용된 시간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고 2층 테라스에 나와 정원을 구경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일종의 요양원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 입원하기 전에 홍수가 났었어요.”
정원을 거닐며 입원 당시 일을 떠올렸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도 시립 병원에 몇 번 입원했었거든요. 레이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레이?”
“시립 병원 의사였어요. 입원하고 나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낮에는 외출시켜 줬죠.”
다들 나를 가둬놔야 한다고 말했지만, 레이가 내게서 붓을 빼앗지 않은 덕에 조금이나마 숨이 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답답했던 시립 병원도, 이곳 생폴 드 모솔 정신병원도 나를 위한 공간이었다.
단지 내가 호의조차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예민했던 탓에 갈등이 잦았을 뿐이다.
“덕분에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발작이 길어진 시기에 하필 홍수가 났거든요. 론강이 범람해서 집 근처까지 물이 불어났었어요.”
“큰일이었네.”
“큰일이었죠. 난방이라도 했다면 조금 나았을 텐데. 벽이 잔뜩 젖어서 엄청 습했거든요. 치료받으면서 그린 작품이 다 망가졌어요.”
육신과 정신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했거늘 홍수 때문에 그림이 손상되자 맥이 풀리고 말았다.
“어쩌면 패배가 결정된 싸움을 해왔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했어요.”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이 내가 죽길 바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궁지에 몰렸었다.
“계속 테오에게 의지해 살았거든요. 그림은 팔리지 않고, 인간관계는 모두 무너지고. 병도 있었고.”
겨울바람이 정원을 찾았다가 스쳐 떠나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그렸는데 그림마저 망가지니까 견딜 수 없었어요. 치료는 받았지만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죠.”
대니얼 스콧은 대꾸하지 않고 그저 내 말을 들어 주었다.
“아, 원래부터 안 되는 일이었나 보다. 모든 게 나를 방해하고 있구나. 어쩌면 처음부터 해선 안 되는 일이었을지도 몰라. 그럼.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나는 대체 뭐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발작이 심해져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붓꽃을 그렸어요. 별이 빛나는 밤이나 사이프러스 나무 같은 것도요.”2)
“사이프러스 나무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하던데.”
대니얼 스콧이 질문을 던져 이야기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맞아요. 신화부터 슬픈 죽음을 다루니까.”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폴론이 총애하는 키파리소스는 수사슴과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키파리소스가 실수로 던진 창에 사슴이 죽고 말았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키파리소스는 따라 죽으려 했으나 아폴론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키파리소스는 좌절했다.
죽을 수 없다면, 자신을 영원히 슬픈 존재로 만들어달라고 빌었고 아폴론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사이프러스 나무로 만들어 주었다.
“반 고흐가 죽음을 생각했을까?”
대니얼 스콧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어요.”
말을 꺼냈다가 잠시 멈췄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빈센트 반 고흐라고 착각하는 아이로 여길 듯하다.
“정말 외롭고 비참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니얼 스콧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가라고 주문했다.
“다만 사이프러스 나무를 다룬 게 단순히 좌절이나 슬픔, 죽음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어요.”
“다른 의미가 있다면?”
“빈센트에게 그림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일차적인 감정을 그대로 담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표현일 뿐이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일차적인 감정 표현이 나쁘거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다.
그림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절망을 계속 담아봤자 나아지는 건 없거든요. 하지만 자신을 성찰하면서 그리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별이 빛나는 밤처럼?”
“네.”
지금은 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다는 에스파스 반 고흐를 나섰다.
론강을 향해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별이 빛나는 밤에서 빈센트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가장 앞에, 가장 크게 그려서 강조했어요. 그 때문에 죽음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카메라를 봤다.
“덕분에 나무가 하늘에 닿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아름답게 뜬 별로 가는 길이라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고 생각했던 거 아닐까.”
대니얼 스콧과 제작진 모두 진지하게 듣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요.”
죽는다는 건 어떻게 바라봐도 좋을 수 없다.
스스로 그런 짓을 하긴 했지만, 피할 수 있었다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적에는 정말 세상 모든 것이 내게 죽으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그 불안을 견디기 위해 밤하늘에 닿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렸다.
피할 수 없다면 망설이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광장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발을 재촉했다.
곧 론강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변을 따라 산책할 수 있도록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하늘을 머금은 론강을 바라보며 걸었다.
대니얼 스콧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굳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론강의 정취를 카메라에 담아내며 기다려 주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막상 아를에 오니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찾았을 때와는 또 다르다.
꿈과 용기를 간직했던 시기에 찾았던 지역인지라, 죽음을 각오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와는 달리 추억이 많다.
론강을 바라보며 걷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이곳에서 그린 그림들을 떠올리다 보니 꾹꾹 눌러오기만 했던 꿈을 다시 펼치고 싶어진다.
자유롭게 그리며 함께하는 곳.
어제 얀센과 대화하면서도 생각했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일은 그림을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다.
평화롭게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여주고, 그는 어떠한지 아는 과정.
역시 하루라도 빨리 파리에 그런 장소를 마련하고 싶다.
함께할 사람도 모아야 할 텐데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할아버지와는 계속 함께할 테고.
워낙 바빠서 모임에 가입하긴 힘들겠지만 장미래나 앙리 마르소가 가끔은 놀러 와 주면 좋겠다.
그림을 계속 그릴진 몰라도 차시현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블랑쉬 파브르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속내를 알 수 없어 물어봐야 하겠고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없는 건 조금 쓸쓸할 것 같다.
사탕이라도 놓아두자.
“…….”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할 텐데.
아니지.
꼭 그럴듯한 건물에서 모이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조금 좁고 비루해도 뜻이 맞는 사람들이 만나면 즐겁지 않을까.
파리로 돌아가면 구인 광고라도 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걸으니 어느새 노란 집이 있던 장소에 이르렀다.
* * *
고훈을 배웅하고 돌아온 대니얼 스콧은 이틀 동안 촬영한 영상을 반복해 확인했다.
“벌써 시작했나?”
마틴 얀센이 커피를 권하며 벌써 편집을 시작하냐고 물었다.
“아뇨. 생각할 게 있어서.”
대니얼 스콧은 영상을 멈추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그리는 행위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어요.”
“그리 말했지.”
마틴 얀센이 호응했다.
“고훈의 예술관이겠죠.”
“음.”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정말 분분하잖습니까.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들더군요.”
“같은 생각일세.”
“사회 문제를 비판해야 한다, 근원적인 미를 탐구해야 한다,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등등 여러 의견이 있지만 그것들 모두 포괄하는 말이잖습니까.”
“그렇지.”
“반 고흐에게나 훈이에게나 그림은 단순히 그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응원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우리 모두와 닮아 있었기에 마음이 가는 것 아닐까.
대니얼 스콧은 그리 판단했다.
“또 나도 해볼까 하는 용기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게 두 사람이 사랑받는 이유겠지.”
대니얼 스콧이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생각했다.
고훈이 다큐멘터리 마지막에 노란 건물을 짓고 조부와 장미래, 앙리 마르소, 블랑쉬 파브르 같은 화가들과 함께 화가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고 한 말이 어린아이의 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곧 일어날 일처럼 느껴졌다.
* * *
1)아를 병원의 정원, 빈센트 반 고흐, 1889, 캔버스에 유화
2)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1889, 캔버스에 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