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20화
42. 예술과 예술 사이(5)
늦은 시간.
데미안 카터는 SNBA 살롱전 특별 전시관에 걸린 앙리 마르소의 <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완성작인 줄로만 알았던 <미>는 총 세 점이었고 나란히 전시되고 나서야 그 뜻과 의미, 감정이 명확히 전달되었다.
왼쪽에는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을 표현한 그림이 걸렸고.
가운데는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발표한 그림이 차지했다.
오른쪽에 걸어둔 그림은 앙리 마르소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해바라기 한 송이가 비치고 있었다.
지난 시대의 예술가를 통해 과거를 표현하고, 본인의 뒷모습을 보여 현재를 규정하며, 해바라기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미래를 상징한 작품이었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서 창조에 이르기까지.
미술사를 요약해 둔 듯한 <미>는 하나의 긴 이야기를 담고 경건하기까지 하여 세 폭 제단화처럼 보였다.1)
어제 일로 영향을 받을 만도 한데, 앙리 마르소의 <미>는 극찬을 받았다.
데미안 카터는 과연 그럴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그림이야.’
데미안 카터는 앙리 마르소의 재능에 실로 감탄했다.
수없이 많은 변화를 걸쳐 2028년에 이른 현재의 미술관으로 볼 때 앙리 마르소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형태와 색을 사용하는 방식은 고전적이면서도 다른 작가, 작품과의 차별점이 명확했다.
독특한 화풍을 시도하기보다는 전통적 가치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다듬었다.
‘이렇게 그리면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데미안 카터는 분명 앙리 마르소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카터.”
그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데미안 카터는 반갑게 인사했다.
“고수열 경.”
고수열은 데미안 카터가 내민 손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잡고 흔들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어쩐 일이십니까.”
고수열이 시선을 옮겼다.
“같은 생각이셨군요.”
“조용히 보고 싶어서 말이지.”
데미안 카터가 작게 웃고는 다시금 <미>를 보았다.
나란히 선 두 거장은 말없이 작품을 감상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고수열이 침묵을 깼다.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무얼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학부생일 시절에는 참으로 편협한 교육을 받았잖은가. 모나리자가 예술이 아니라고 하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데미안 카터가 씩 웃었다.
현대적 의미의 예술관으로 봤을 때 <모나리자>는 예술이 될 수 없었다.
화가가 주체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의뢰를 받아 탄생한 그림인 탓에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예술관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모나리자>를 향한 감동은 예술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경이로운 그림 기술에 대한 경의로 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나리자>가 예술 작품이 아니라니.
미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개념 충돌이었다.
“당시에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네. 예술은 주체적이어야 하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더군.”
데미안 카터는 귀를 기울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끊임없이 되물었네. 정말 모나리자와 천지창조가 예술이 아닐까.”
“답을 찾으셨습니까?”
고수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일세.”
두 거장이 눈을 마주했다.
“의뢰를 받아 만들어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어찌 표현하는지는 행위자의 창조성에 달려 있으니까.”
“하하. 예술가들이 들으면 기겁하겠습니다.”
데미안 카터는 고수열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모나리자>에게서 받은 감동은 작품과 개인이 교감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명화니까.
유명한 사람이 그렸으니까.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으니까.
그런 고착된 인식으로 인한 주체적 감상이 아니고, 설사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접 감상하여 감동하였다고 해도 전시된 <모나리자>는 진품일 가능성이 작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데미안 카터가 웃음을 멈췄다.
“예전의 나는 예술이 미술가에게 달린 일이라고만 생각해 왔네. 그런데 질문을 거듭하다 보니 감상자는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지더군.”
“…….”
“예술이 오직 주체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편협한 것 아닌가 하고. 감상자가 감동했다면 그 순간 예술이 되지 않을까.”
“관습화된 경험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들어 낸 것도 경험에 기댄 일이지 않은가.”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생각을 정리했다.
고수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라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기준이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을 가르고 있지.”
데미안 카터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과거 기술자가 금전을 대가로 후원자가 바라는 무엇을 만들어 주는 일과 현대 기술자가 수익을 위해 대중이 바라는 무엇을 만드는 일을 같이 보았다.
“대중 예술에 정말 예술성이 없는 건가? 그래서 대중이란 말을 붙인 건지 아니면 대중적인 예술이란 의미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듯하네.”
데미안 카터가 중지와 엄지를 붙였다 떼며 생각에 잠겼다.
“난 마르소가 사랑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보네.”
고수열이 <미>를 보았다.
자신을 원 없이 드러내어 주체로서 기능하면서도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사람들은 경이로운 기술에 경탄하고 동시에 그의 사고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눈과 가슴이 밀도 높게 공명하니 찾는 것 아닐까.
고수열은 사람들이 단순히 교육된 미술관 때문에 전시회를 찾진 않는다고 믿었다.
허영과 자기 최면, 거짓된 감상에 만족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제는 훈이가 자넬 괴롭게 했네.”
데미안 카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 또한 훈이와 같은 생각일세.”
고수열은 사과하지 않았다.
“다음에 만날 때는 오늘 나눈 대화에 답을 내려보세.”
단지 다음을 약속할 뿐이었다.
“기대하지요.”
데미안 카터가 사람 좋게 미소 지었다.
* * *
“하악. 하악.”
“상쾌하지?”
할아버지가 즐거운 듯 물었다.
대답할 힘도 서 있을 힘도 없어서 주저앉아 고개만 저었다.
벌써 일주일째 할아버지와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기뻐하실 줄은 몰랐다.
요즘 표정이 좋으시다.
“힘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꾸준히 하면 금방 체력이 붙어서 더 뛰고 싶어질걸?”
“그럴 리 없을 거예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산에 올라가는 건 좋아하지 않았느냐.”
“구경할 게 많으니까요.”
산책이나 등산은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라도 있지, 달리기는 좀처럼 좋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뛰어야 한다.
이 얼마나 참혹한 비극인가.
신체의 고통은 내일의 음식을 위해 참을 수 있지만, 내일 또 괴롭다는 걸 알면서도 고열량의 음식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은 가련한 존재다.
“보자. 아침 먹고 가면 얼추 맞겠구나.”
할아버지가 시간을 확인하셨다.
오늘은 마틴 얀센과 약속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날이다. 방태호도 촬영장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빨리 일하고 싶다.
여기 있으면 셰리 가도의 요리 때문에 계속 뛰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겠다.
그런 생각도 잠시.
샤워하고 찾은 식당에서 형용하기 힘든 고소한 냄새가 비강을 유혹했다.
“무슨 냄새예요?”
셰리 가도를 찾았다.
“오랜만에 빵 구웠지. 이즈니 버터를 듬뿍 발랐는데. 먹어볼래?”
“네.”
셰리 가도가 구운 크루아상은 죽은 사람도 되살릴 만큼 맛있었다.
뛰다가 죽어도 이것만 코에 가져다 대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더 먹어도 돼요?”
“그럼. 그거 하나 더 먹는다고 살찌겠니. 지금 찐 살은 다 키로 가니까 괜찮아.”
셰리 가도의 말대로다.
성장기니까 영양 공급이 원활해야만 한다.
방금은 빵과 버터 고유의 고소함을 느꼈으니 이번에는 잼을 발라 먹고 싶다.
셰리 가도가 직접 담근 호두잼을 먹고자 병을 찾았다.
꽉 닫혀 있어 낑낑대고 있자 눈앞으로 불쑥 손이 나타나 호두잼을 가져가 버렸다.
고개를 드니 앙리 마르소가 내려다보고 있다.
또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고 저러는지 의심하던 차, 녀석이 마개를 열어주었다.
별일이다.
“고마워요.”
“고맙긴.”
작은 칼을 들어 호두잼을 듬뿍 떴다.
“500m.”
“…….”
“안 먹어?”
“방금 무슨 뜻이에요?”
“그만큼 먹으면 500m 정도는 더 뛰어야지.”
빨리 방태호가 왔으면 좋겠다.
“좋은 아침일세.”
마침 샤워를 끝낸 할아버지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셨어요?”
“오늘도 좋은 냄새가 나네요.”
할아버지가 마르소, 셰리와 정답게 인사를 나누곤 크루아상을 하나 집었다.
호두잼을 좋아하셔서 망설이지 않고 듬뿍 발라 드셨다.
할아버지에게는 왜 아무 말 안 하고 내게만 그러냐는 의미로 노려보자 앙리 마르소가 피식 웃었다.
“스스로 관리하는 사람과 시켜서 하는 사람이 같을 수 있나?”
이 인간이 정말 오냐오냐했더니 이제는 아주 가정교사라도 되는 것처럼 군다.
“작가님.”
한마디 해주려던 차 휴가를 간 아르센을 대신해 다른 집사가 마르소를 찾았다.
“앙리 4세 중학교에서 언제 방문하실 수 있는지 문의해 왔습니다.”
“때 되면 간다고 해. 귀찮게 굴지 말라고 덧붙이고.”
“전하겠습니다.”
“……?”
불길하고 의뭉스러운 마음에 집사가 나선 문을 바라보는데 할아버지가 물었다.
“앙리 4세 중학교? 훈이가 가려는 곳 아닌가.”
“그렇습니다.”
“거기서 왜 오라고 해요?”
“미술 강사가 시원치 않다고 하더군.”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강의를 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 돼!”
할아버지 말씀이 정말로 이뤄질까 두려워 벌떡 일어났다.
* * *
1)종교화 형식.
르네상스, 종교 개혁 이후 교회의 힘이 줄어들며 쇠퇴한 형식이나 역사가 길었던 만큼 서양 미술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세 폭 제단화의 구도를 활용한 작품으로는 대표적으로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