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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217화 (172/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17화

42. 예술과 예술 사이(2)

미련해서가 아니었다.

충동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순수하기에 견딜 수 없었다.

자신만의 미학을 구축해 온 고결한 영혼은 작은 얼룩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씻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오늘은 아닐세.”

셰바송 씨몽은 그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애정과 걱정을 담아 만류했다.

앙리 마르소는 답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셰바송 씨몽은 닫힌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격정의 시대라고 했던가.’

독일의 저명한 문화평론가 게르트 카리우스는 2020년대, 베를린의 젊은 음악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적 현상을 라이든샤프트(Leidenschaft: 격정, 격앙 *라이덴샤프트)로 명명한 적 있었다.

라이든샤프트 세대의 예술가들은 감정에 솔직했고 그것을 드러내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도리어 엘리트화, 협소화된 예술계의 구태의연함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전문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음악과 문학, 미술이 독창성만 인정되면 예술이 되어 버리는 이상 현상.

단순히 화젯거리로 전락한 예술계에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궐기한 것이었다.

허무주의가 팽배한 기존 예술계를 타파하고 끊임없는 열정과 순수한 정신으로 나선 새로운 세대.

감정을 직관적으로 표현하여 보다 쉽게 느끼는 예술.

학업, 취업, 생존에 급급한 현대인들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예술.

그들을 위로하는 예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이 라이든샤프트 세대의 예술이었다.

앙리 마르소 또한 그들과 유사한 면모를 보였다.

그의 과격한 언행은 기성세대로부터 반감을 샀으나 10대부터 40대에게는 열렬히 지지받았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억압받았던 젊은이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을 밀어붙이는 앙리 마르소에게 조금이나마 위안받았다.

가식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사회에 진절머리가 났기에, 앙리 마르소의 꾸미지 않은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평소 당당한 모습과 달리 초상화 곳곳에 남은 앙리 마르소의 고독과 번민에 공감하며 단칸방에 격리된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람들이 앙리 마르소와 그가 그린 수백 점의 자화상을 찾는 이유였다.

‘앙리…….’

셰바송 씨몽은 앙리 마르소를 말리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잘못 판단했길 바랐다.

앙리 마르소를 19세기 화가라고 비아냥거렸던 기성세대가 지금에 와서는 그를 함부로 비판하지 못하듯.

자신 또한 훗날 오늘 일을 웃음거리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터질 때도 되었지.”

그 또한 곪아버린 미술계에 변환점이 찾아와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형식 파괴와 독창성, 화제성만을 추구하는 시장에서 대중은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좁아지는 시장에서 젊은 예술가는 설 자리를 잃었다.

셰바송 씨몽은 앙리 마르소의 순수한 분노가, 아니, 뜻 있는 모든 예술가의 분노가 미술 시장을 잠식한 카르텔을 무너뜨리길 오늘도 기원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앙리 마르소가 다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나도 늙었군.”

셰바송 씨몽이 피식 웃었다.

미술 시장을 바로 세우고자 수십 년을 노력했지만, 어느새 조금씩 조심스러워졌다.

나이 탓일까.

혹은 이런 온건한 태도 때문에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것 아닐까.

셰바송 씨몽은 응원과 걱정 사이에서 오늘도 괴로워했다.

* * *

복도로 나선 앙리 마르소가 숨을 골랐다.

‘영감 말이 옳아.’

데미안 카터와 제이 조플링 사이에 모종의 연대가 있다고 의심하곤 있지만 증거가 없었다.

셰바송 씨몽의 경고대로 행동이 앞섰다간 역공을 받을 수 있기에 신중해야 했다.

까득-

앙리 마르소가 이를 갈았다.

비서 아르센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데미안 카터의 비리를 밝혀낼 터.

단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인데 지난 며칠간 쌓인 화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작가님!”

SNBA 직원이 앙리 마르소를 발견하곤 다급히 불렀다.

“바로 다음 순서예요.”

특별 전시상을 수상할 차례였다.

앙리 마르소는 혀를 차곤 식장으로 들어섰다.

“좋은 기회를 주신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에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침 고훈이 수상 소감을 마쳤다.

앙리 마르소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던 고훈은 그를 발견하자 살짝 인상을 썼다.

앙리 마르소는 그 시선을 외면하고 단상에 올랐다.

“다음은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우승을 거둔 앙리 마르소 작가를 모시겠습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내빈이 박수를 보냈다.

앙리 마르소는 무대 가운데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좌석 뒤를 가득 채운 카메라와 승냥이처럼 모여든 기자, 예술가인 척 으스대는 잡초와 악취 나는 꽃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파리떼까지.

구역질이 났다.

앙리 마르소는 고수열과 서인호 그리고 뒤에 서 있는 고훈을 응시하다가 정면을 향했다.

“어느 꽃에 가는지 보면 벌인지 파리인지 알 수 있지.”

뜻 모를 말에 사회자가 잠시 당황했다.

앙리 마르소는 속을 다스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화분을 옮기려거든 똑똑히 봐. 누가 썩은 내를 풍기고 누가 향기로운 꽃인지.”

언론은 믿을 게 못 되었다.

기자는 옳은 말을 하기보다 돈을 따르는 족속이었다.

해충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 앙리 마르소는 아주 작은 희망을 보았다.

처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작은 언론사 기자는 상처 입은 아르누보 공모전을 어루만졌다.

만일 이곳에도 뜻있는 기자가 있다면 악취를 풍기는 라플레시아에 달려들지 않고 벌과 나비처럼 향기로운 꽃을 찾을 터였다.

“썩은 내를 풍긴다는 말씀은 누굴 상정하신 말씀입니까?”

한 기자가 나섰다.

“네가 벌이라면 굳이 묻지 않아도 알겠지.”

앙리 마르소가 여유롭게 웃는 데미안 카터를 응시했다.

“파리는 몰라. 꽃인 것 같거든. 좋아하는 냄새를 풍기니까 달라붙지. 그게 악취란 것도 모르고 그저 세상에서 제일 커 보이니까 달려드는 거야.”

시상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앙리 마르소와 데미안 카터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포착했다.

‘뭐야?’

‘지금 데미안 카터 보고 있는 거 맞지?’

앙리 마르소가 데미안 카터에게 욕설한 일이 불과 얼마 전.

사람들은 두 예술가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이 다급히 나섰다.

“조금 전 발언에 관해 자세히 풀어주세요!”

“데미안 카터 작가와의 불화설이 사실입니까?”

여러 질문 중 영국 일간지 더 선(The Sun) 소속 기자가 던진 말이 좌중에 파문을 일으켰다.

“본인이야말로 치장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모두가 놀라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 상황에서도 기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파리역 광고판을 도배해서 유명해진 본인을 말씀하신 것으로 들리는데 정확히 누굴 지목한 말인지 알려주십시오!”

시상식장에 모인 사람 모두 기함했다.

가십성 기사를 다루고 유명인을 근거 없이 비난하기로 유명한 더 선이라고는 해도 정도가 있었다.

시상식장에서 수상자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조급했네, 마르소 군.’

상황을 지켜보던 데미안 카터는 표정을 관리했다.

프랑스 언론만 모인 자리였다면 아무도 앙리 마르소에게 저런 질문을 던지지 못했을 터.

그러나 이 자리는 제이 조플링이 후원하는 영국의 여러 언론사도 함께하고 있었다.

‘자네 눈에는 내가 라플레시아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자넨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일세.’

데미안 카터는 온 프랑스가 찬양하는 환경이 앙리 마르소를 더욱 거만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공개된 자리에서 느닷없이 적의를 드러내다니.

그간 얼마나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으면 이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강하게 말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야.’

데미안 카터는 어렸을 적부터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란 철없는 부잣집 도련님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저 즐길 생각이었다.

‘모든 꽃은 화분을 옮겨 줄 존재가 필요하지. 자네 말대로 내겐 파리가 될 수도 있겠고. 하나, 자네라고 벌과 나비 없이 번식할 수 있겠나?’

평소 언론과 타인을 적대시했던 만큼 앙리 마르소를 위해 나설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본인이 먼저 꺼낸 말이니 매듭을 지어야만 하는 상황.

여태까지의 행실을 따지든 지난번 욕설 논란이든 여론은 데미안 카터에게 지극히 유리했다.

상황을 판단할 줄 안다면 물러서야 했다.

‘저 높은 콧대도 무너지겠구만.’

데미안 카터는 편안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누구긴 누구야. 살롱전에 입상한 걸 알면서도 아르누보 공모전에 참가한 늙은이지.”

앙리 마르소의 발언에 데미안 카터가 순간적으로 평정을 잃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 한 탓에 하마터면 수십 명의 기자가 모인 장소에서 감정을 드러낼 뻔했다.

앙리 마르소가 충격에 빠진 이들을 꾸짖었다.

“SNBA 살롱전 입상 소식은 한 달도 전에 전파되었다. 아르누보 공모전을 취소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어. 그런데 넌 그러지 않았지. 데미안 카터.”

앙리 마르소가 데미안 카터를 노려보았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군, 마르소 군.”

데미안 카터는 답을 회피하는 대신 앙리 마르소가 흥분했음을 강조했다.

본인을 피해자로 인식시키고 상대를 가해자로 만들기 위한 행동이었다.

“안 좋은 일? 있지. 네가 살롱전에 입상하고도 아르누보 공모전에 참가했단 사실을 알았으니까.”

앙리 마르소는 다시금 화제를 돌려놓았다.

“살롱전 전시가 확정되었으니 언제든지 물러날 수 있었겠지. 안 그래?”

마르소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되었지만 똑똑히 전해졌다.

“그러니 역겨운 거짓말이나 해대며 사퇴했을 테고.”

“자네.”

“남들은 평생에 한 번 있을 기회로 여긴 공모전을 보험으로 참가했어? 대단한 거장께서?”

앙리 마르소가 단상을 내려가자 좌중이 술렁였다.

기자들은 데미안 카터와 앙리 마르소를 한 장면에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기어들어 와서 상을 받아? 수치심도 없나? 아니면 프랑스가. 아르누보 공모전 참가자들이 우스워 보여?”

앙리 마르소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 앙리 마르소를 모욕하고도 멀쩡할 줄 알았어?”

데미안 카터는 침착한 척했으나 놀란 가슴을 좀처럼 달랠 수 없었다.

불만을 품고 있음은 제이 조플링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직접 나설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너무도 이성적인 사람이라, 본인의 상식 밖에서 움직이는 상대를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온실 속 화초는 누구보다도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데미안 카터는 공모전 정신을 지키기 위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방금 그걸 부정하신 겁니까?”

더 선의 기자가 또 한 번 나섰다.

앙리 마르소가 고개를 돌렸다.

“첫날부터 자기 작품 앞에서 사인해 주고 사진 찍던 새끼가 뭘 지켜?”

화제가 될 만한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기자들도 앙리 마르소의 태도에 아연실색했다.

앙리 마르소가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는 하나 데미안 카터 역시 오랜 시간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인품으로도 존경받는지라, 공개 석상에서 맹비난하여 얻어낼 것이 없었다.

도리어 역풍을 맞을 터였다.

‘왜 저래?’

‘제정신인가?’

모두 앙리 마르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다.

“언행이 과하군.”

데미안 카터가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작품이 잘 전시되어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가 날 알아보는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을 뿐일세.”

“그래? 사파이어 사 준 사람이라도 있었나 보지?”

데미안 카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럴 셈이었나.’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앙리 마르소는 전 유럽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격자란 이미지로 보호받는 데미안 카터를 순식간에 화두로 삼았다.

아르누보 공모전을 이용했다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건가 싶던 데미안 카터는 그가 경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본인을 향한 경고가 아니었다.

데미안 카터라는 예술가를 후원하는 이들에게 주는 경고장이었다.

‘증거가 있을 리 없어.’

데미안 카터는 은밀한 작업실에 보관해 둔 <영원>을 떠올리며, 앙리 마르소가 <영원>에 관련한 비밀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 증거 역시 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제법이군.’

데미안 카터가 주먹을 쥐었다.

증거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앙리 마르소는 그저 사파이어를 언급함으로써 데미안 카터의 후원자들에게 경각심을 주었다.

데미안 카터를 계속 후원해서는 위험하다고. 곧 문제가 터질 테니 손을 떼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술계를 잠식하여 카르텔을 이룬 그들은 변화를 경계하고 위험을 배제하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개인 따위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특히나 쓸모없는 예술가라면 더더욱.

“안 그래?”

앙리 마르소가 한 번 더 데미안을 자극했다.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기에 데미안 카터의 민낯을 철저히 벗겨낼 작정이었다.

“억울하면 다시 붙든가. 이번에는 당당하게 이름 걸고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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