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06화
39. 왕과 영웅 그리고 펭귄(4)
마르소가 하려던 말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예술가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본인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처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활용하여 다른 의미를 상기하는 것처럼 달리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앙리 마르소에게는 ‘제일 멋지다’는 표현이 아주 당연한 말이니 예술가가 할 말이 아니라는 것.
남에게 이것저것 말하는 걸 귀찮아하는 마르소치고는 어린 화가에게 제법 상냥하게 조언한 것이리라.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좋은 시도지만 당연한 말을 하지 말랬잖아. 틀린 말 하라고는 안 했어.”
마르소가 말을 덧붙였다.
자기를 싫어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란다.
가끔 저 인간처럼 생각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편할지 부럽기도 하다.
파브르는 앙리 마르소를 잔뜩 노려보다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앙리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데?”
차시현이 얼어붙은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맞는 말.”
옳은 말인데 한 대 맞아도 할 말 없는 말을 했다.
9위, 8위, 7위가 연달아 발표되고.
수상의 기쁨을 들으며 박수를 보내고 있자니 슬슬 가슴이 졸여온다.
할아버지가 처음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순위에 연연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앙리 마르소에게는 지고 싶지 않다.
그보단 수백만 명이 <여름 너울>을 좋게 봐주었단 데에 집중해야 하는데도.
<해바라기> 때부터 잘 알아봐 준 그에게 계속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마르소도 이런 마음 때문에 내게 집착했을까.
긴장된다.
“그럼 2,940,642표를 받은 3위는?”
그러지 않아도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 덕에 더 불안해진다.
“군집 구름! 아니쉬 푸어입니다!”
가운데 화면에 <군집 구름>이 떴다.
오목하게 들어간 표면에 반타블랙이라는 안료를 칠한 작품으로 줄곧 상위권에 들더니 결국 3위를 차지했다.
연달아 이어진 발표로 이제 지칠 만도 한데, 사람들은 또 한 번 열렬히 환호했다.
“난 저거 너무 신기했어.”
차시현이 박수를 보내며 말했다.
“나도.”
반타블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색이라고 한다.
보고 있으면 정말 이렇게 어두울 수 있나 싶다. 덕분에 오목하게 들어간 표면을 평면처럼 느낄 정도다.
나 또한 그 어둠이 인상 깊어서 ‘일식’을 그릴 때 꼭 한번 사용하고 싶다.
“결국 아니쉬 푸어가 받게 되네요.”
“흠. 메시지가 확실한 사람이니. 욕심만 덜어낸다면 좋겠네만.”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아니쉬 푸어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욕심이요?”
“반타블랙 말이다.”
고개를 갸웃하니 할아버지가 씁쓸한 소식을 전해주셨다.
“반타블랙의 예술적 사용권을 독점했어.”
“그럼.”
“그래. 다른 예술가는 반타블랙을 쓸 수 없단다.”
“물감을 독점할 수도 있는지는 몰랐어요.”
“그러니 말이다.”
일식의 어둠을 표현할 때 꼭 쓰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써보고 싶은데.”
“허용할 생각은 없는 것 같더라고. 로열티를 내고 쓰고 싶다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다 거절당했대.”
할아버지 말씀대로 욕심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아니쉬, 약 300만 명에게 지지를 받고 이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아니쉬 푸어가 무대에 올라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여러 상을 받았지만 오늘처럼 기쁜 날은 없었습니다.”
“군집 구름.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었는데 짧게라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흠.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싶진 않습니다.”
“아.”
“다만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관객과의 대화죠. 관람객은 반타블랙의 어둠에 이끌려 자연스레 군집 구름을 관찰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오목하단 설명을 보고 열심히 관찰했겠죠. 그래도 알 수 없으니 손으로 직접 만져서 그것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확실히 저도 그랬습니다.”
“네. 그렇게 관객이 시선을 움직이도록. 손을 뻗게 해 작품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저의 의도였습니다.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죠.”1)2)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이번에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신 듯합니다. 축하합니다, 아니쉬.”
아니쉬 푸어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벗어났다.
나도 기꺼이 손뼉을 쳤는데, 그의 욕심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예술을 대하는 마음만큼은 그와 같기 때문이다.
그가 언젠가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겨 반타블랙에 걸어둔 독점 사용권을 풀길 바란다.
“자, 이제 단 두 작품만을 남기고 있습니다.”
사회자 우진의 목소리에 반타블랙을 쓰지 못하는 아쉬움도 잊게 되었다.
* * *
“난 진짜 고훈이 아직까지 안 나왔다는 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아르누보 공모전 폐막식 방송을 하던 알렉스가 고개를 저었다.
“까놓고 말해서 고훈이 수상 못 하는 게 말이 안 된단 말이야. 해바라기랑 손님, 서리 밀밭, 가면 다 그랬잖아. 2028년은 고훈의 해였어.”
알렉스의 말에 시청자들이 동조했다.
“그래. 패널티를 감수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고훈이 그렸다고 하면 분명 인정받을 것 같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알렉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본심을 꺼냈다.
“이 정도 되면 정말 미가 고훈 작품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지 않나?”
└결국 자기 추측이 맞다는 말이넼ㅋㅋ
└근데 확실히 여름 너울이랑 미 중에 뭐가 고훈 느낌에 가깝냐고 하면 미라고 할 듯.
└ㅇㅇ. 분위기는 여름 너울이긴 한데 솔직히 지금까지 고훈 화풍이랑 너무 다르니까.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미랑 더 어울리긴 함.
“그러니까.”
동조하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자 알렉스도 힘을 얻었다.
“솔직히 여름 너울이 많이 따라 오긴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우승은 미가 할 것 같단 말이지? 그럼 고훈이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우승한다? 캬. 진짜 제대로 혁명이지. 스토리가 나오잖아?”
예술을 사랑하는 뉴튜버는 잔뜩 흥분했다.
“예술계 영웅 앙리 마르소가 주최한 대회에서 21세기 최고로 성공한 예술가 데미안 카터가 사퇴했어. 그리고 그 자리를 신성 고훈이 차지한다? 이게 혁명이지. 진짜 아르누보. 새로운 미술이라고.”
알렉스가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갖다 붙이는 건 진짜 잘한닼ㅋㅋ
└근데 새로운 미술이라는 공모전 이름하고는 확실히 맞네. 영웅이 가져온 혁명이라는 점에서.
└근데 그럼 여름 너울은 누구임?
“그러니까. 내 생각엔 앙리 마르소가 아르누보 공모전을 기획한 게 고훈에게는 최고의 기회였던 것 같아. 한국 기자가 말했던 것처럼 데미안 카터가 계속 참가했어도 우승은 점칠 수 없었거든. 여름 너울이 고훈 그림일 수도 있지 않냐고?”
알렉스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그렇다면…….”
채팅창이 잠시 멈췄다.
“솔직히 무서울 것 같아.”
* * *
2028년 12월 6일 오후 10시 20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두 작품이 각자의 아우라를 뽐내고 있었다.
우아하고 신성한 느낌을 주는 고전적인 인물화 와 착시 효과를 준 애잔한 분위기의 풍경화 <여름 너울>이었다.
폐막식 무대를 장식한 두 작품에 초청객과 시청자 모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아르누보 공모전도 이제 대단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우승작을 공개하면 이벤트 추첨만을 남기고 있는데요.”
사회자 우진은 시청률을 의식하며 작가 맞히기 이벤트가 남았다고 언급했다.
“끝까지 정말 치열한 접전을 보였던 두 작품. 여름 너울과 미가 받은 표는 17,334,053표로 전체 표의 56%를 차지하였습니다.”
관람석에서 탄복이 흘러나왔다.
단 두 작품이 과반을 확보했으니 과연 아르누보 공모전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었다.
“두 작품의 표 차이는 257표.”
투표 현황이 비공개로 전환될 시점에 <여름 너울>과 <미>는 700표가량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과연 한 시간 동안 여름 너울이 미를 따라붙었을지. 아니면 아쉽게 더 이상 차이를 좁히지 못했을지 저 또한 궁금해집니다.”
우진이 대본이 적힌 카드를 넘기고 아 하고 작게 감탄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이 결과에 놀라지 않을 분이 있을까요?”
결과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이 우진의 말과 행동에 집중했다.
<여름 너울>과 <미> 둘 중 어떤 작품이 우승을 거두어 새로운 미술을 선도할지.
또 정말 고훈이 <미>의 작가인지.
혹은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는지 궁금해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광고…….”
우진이 광고를 언급한 순간 분위기가 차게 식었다.
“보자고 하면 다들 화내시겠죠. 바로 공개합니다. 2028 아르누보 공모전! 새로운 미술의 주역을 소개합니다!”
우진의 힘찬 외침과 함께 중앙 스크린에 두 작품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1st <미(Beauté)>
Henry Marceau
(프랑스. 33세)
득표: 8,667,155(28.0%)
2nd <여름 너울>
Hoon Go
(대한민국. 10세)
득표: 8,666,898(28.0%)
순간 폐막식장과 생중계 채팅창 모두 얼어붙었다.
“말도 안 돼.”
누군가 말을 흐렸다.
예술계 종사자들은 본인들의 눈을 의심하는 데 이르렀다.
앙리 마르소가 아르누보 공모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그리 큰 충격이 아니었다.
그들을 놀라게 한 점은, 그 지체 높은 앙리 마르소가 본인의 작품에 다시 한번 고훈을 드러냈다는 사실이었다.
고독한 영웅이 마침내 다른 예술가의 특징을 소화하여 아름다움의 끝에 닿으니.
여태 앙리 마르소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가 드디어 외로움에서 해방되었음에 놀라며 기뻐했다.
한편.
“어떻게.”
의문의 작품 <여름 너울>이 고훈의 출품작이었다는 사실 또한 크나큰 충격이었다.
미술 애호가들은 <가면> 이후 고훈이 보인 작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면>으로 작은 반 고흐란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길 선언했던 고훈은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작품을 선보였다.
<여름 너울>은 결코 고훈의 작품일 수 없는 그림이었다.
닮은 점은 오직 인상주의, 탈인상주의, 포비즘적 태도와 심상뿐이었다.
<여름 너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고훈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변할 수 있다고?’
저명한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은 전율했다.
고훈이 아쉽게 우승하지 못한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자신의 화풍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니야.’
캐롤라인 스트릭은 그제야 <여름 너울>에서 고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임파스토.
자연에 감정을 더하진 않았지만 인위적으로 구성한 추상적 풍경에서 전해지는 애잔함은 분명 고훈이 <해바라기>와 <손님>, <서리 밀밭>에서 보였던 그것이었다.
정도만 다를 뿐.
앙리 마르소와 마찬가지로 고훈도 자신을 지키며 스스로 변화한 것이었다.
짝-
짝짝짝짝-
충격 속에서 마침내 박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또 한 번 틀을 깨고 나아간 두 예술가를 향한 경의의 목소리였다.
* * *
1)“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작가가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관객과의 대화로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 내 작품의 감수성.”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2)내러티브(Narrative): 정해진 시공간 내에서 인과 관계로 이어지는 허구 또는 실제 사건들의 연속. 예술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는 사건과 그 흐름을 말하는 서사성을 말하기도 한다. 인물의 행동과 동기, 그로 인한 영향에 따라 이야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는지 등이 내러티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