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04화
39. 왕과 영웅 그리고 펭귄(2)
미셸 플라티니는 앙리 마르소의 가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데미안 카터의 작품은 현재 살아 있는 예술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작품에 따라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보다도 높은 가격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런 데미안 카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예술가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잖아. 네 말대로 우연일 수도 있고.”
“그래서 알아보는 거야.”
앙리 마르소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다.
데미안 카터와 제이 조플링이 해온 일이 의심스러웠지만, 설사 그들이 비리를 저질렀더라도 망가진 자존심은 회복될 수 없었다.
아르누보 공모전은 오늘로 끝날 테고 모욕당했단 사실은 변치 않았다.
“빌어먹을.”
앙리 마르소는 아르누보 공모전을 망친 데미안 카터를 용서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밝혀낼 테고 설령 깨끗하여도 어제의 치욕은 기필코 갚아줄 요량이었다.
오직 수단과 방법만이 고민거리였다.
* * *
2028년 12월 6일 오후 여덟 시.
공모전 종료를 두 시간 앞두고 폐막식이 시작되었다.
미술계 여러 인사가 나와 아르누보 공모전의 성공을 축하했고, 파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축하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폐막이 다가오면서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그중 공모전 초반부터 우승권을 지켜온 <미>와 <여름 너울>은 막바지에 다른 작품들과의 격차를 크게 벌리고 말았다.
투표 현황을 확인하던 차시현이 흥분했다.
“이거 봐! 이제 1,000표 차이도 안 나!”
“어디!”
순위에 연연하지 말라고 했던 고수열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차시현과 고훈이 당황해서 몸을 뒤로 뺀 가운데, 고수열과 방태호만이 눈을 부릅뜨고 공모전 투표 현황을 살폈다.
“그렇지!”
방태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2028 아르누보 공모전 투표 현황
1st <미(Beauté)>
득표: 8,272,270(28.0%)
2nd <여름 너울>
득표: 8,271,329(28.0%)
3rd <크게 벌린 입>
득표: 3,486,171(11.8%)
총투표수 29,543,824표.
폐막을 앞두고 <여름 너울>이 앙리 마르소의 <미>를 턱밑까지 추격한 것이었다.
최대 14만 표까지 차이가 나자 순위는 중요치 않다며 고훈을 위로하던 고수열과 방태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암. 누구 그림인데!”
고수열이 고훈을 번쩍 들곤 덩실거렸다.
‘그렇게 좋으실까.’
고훈은 본인보다도 기뻐하는 할아버지 덕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가 어지러움을 느꼈다.
“진정하세요.”
“진정하게 생겼어!”
고훈은 이 광경을 장미래가 보면 분명 한마디 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참을 기뻐한 일행은 표 차이가 더욱 좁혀진 것을 확인하고 또 한 번 난리를 피웠다.
“근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돼요?”
“그동안 투표 안 했던 사람이 많아서 가능했을 거야. 어쨌든 오차 범위 안에 계속 들어 있었으니까.”
방태호가 유일한 소속 작가이자 간판 작가의 성공에 기뻐하며 말했다.
“다들 알아본 게지. 할아버진 다 믿고 있었어.”
고훈이 할아버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거 좀 보세요.”
차시현이 기사 하나를 보였다.
아르누보 공모전 관련 기사였는데, 댓글이 4만 개를 넘을 정도로 크게 주목받고 있었다.
“어?”
고훈이 눈을 깜빡였다.
월간지 예화의 김지우가 올린 칼럼형 기사였다.
[아르누보 공모전을 지킨 사람]
지난밤, 데미안 카터가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사퇴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가 데미안 카터는 기자회견을 열어, “내 의도와 달리 다른 작가들의 기회를 박탈하게 되었다”며 “더 늦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대다수 언론과 시민들이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데미안 카터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 중 몇몇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범하고 있다.
미술 포럼 사이트 미켈란젤로와 레딧 등에 다음과 같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첨부사진]
데미안 카터 덕분에 <미>와 <여름 너울>이 우승, 준우승을 거둘 수 있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아르누보 공모전이 시작된 이래 <미>와 <여름 너울>은 고글에서만 하루 평균 137만 3,019번 검색되었다.
반면 데미안 카터의 <이별>은 같은 기간 평균 3만 325건 검색되었다.
또한 아르누보 공모전 공식 애플리케이션에 따르면, 공모전 방문객의 99.8%에 해당하는 13,002,955명이 <미>와 <여름 너울>을 감상했다.
<이별>의 7,947,698명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별>이 <미>와 <여름 너울>에 앞섰던 수치는 4일 차에 뒤집혔던 중간 득표수다.
더 적은 사람이 감상했는데, 더 많은 표를 얻었으니 더 훌륭한 작품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간 집계 표수는 어디까지나 진행 과정일 뿐이다.
6일 차와 7일 차에 추가된 표는 5일 차까지의 합계보다 많다.
실제로 4~5일 차에 잠시 부진하여 표 차이가 보이던 <여름 너울>은 폐막을 12시간 앞둔 시점에 <미>와의 격차를 1만 표 이하로 좁히고 있다.
데미안 카터가 사퇴하지 않더라도 우승을 확신할 순 없는 상황이다.
혹자는 아르누보 공모전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데미안 카터의 행동에 찬사를 보낸다.
필자 또한 그의 용기 있는 결정을 존중하고 경의를 보내나,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르누보 공모전의 의의를 지킨 사람이 소외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미>와 <여름 너울>의 작가다.
최상위권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두 작품은 유독 작가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때 <미>가 고훈의 작품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지만 몇몇 평론가에 의해 그럴 가능성은 있으나 확실하다고 할 순 없다고 결론지어졌다.
그렇다면 <미>와 <여름 너울>의 작가는 왜 본인들의 정체를 숨기며 천재 화가 고훈은 본인의 작품을 공개하지 않을까.
필자는 그들이야말로 아르누보 공모전의 정신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익명성을 끝까지 지키려는 행동은 곧 함께한 경쟁자를 존중하는 일이다.
아르누보 공모전을 준비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참가자들은 이들과 같이 행동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다른 참가자들은 어떠할까.
절반을 조금 넘는 977명의 참가자가 본인의 작품을 명시하는 행위를 지양했다.
결국에는 대다수 작품이 밝혀졌지만, 평소 본인의 작풍을 비틀어 전문가 또는 팬이 아니고서는 쉽게 알 수 없는 작품이 과반이었다.
SNS에 본인 작품 사진을 올리거나 연작, 본인의 상징물을 아낌없이 사용한 다른 작가들에 비해 이들 977명의 참가자는 얼마나 순수한가.
또한 우승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끝끝내 본인을 드러내지 않은 <미>와 <여름 너울>의 작가는 또 어떠한가.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행동을 취한 두 집단에 관련하여 미술 애호가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알 수 없다.
오늘 저녁 10시를 기다려본다.
-김지우(예화)
김지우의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기사는 여러 매체에서 인용하고 나선 덕에 수백만 명이 찾아보게 되었다.
대중은 반응했다.
데미안 카터라는 위대한 예술가에게 집중한 탓에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김지우의 주장에 크게 공감했다.
└이게 맞지 ㅋㅋㅋㅋㅋ
└그래. 솔직히 데미안 카터도 대단하지만 끝까지 안 나선 <미>랑 <여름 너울> 작가가 진짜 아닌가?
└데미안 카터한테 100만 유로가 그렇게 절박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데미안 깎아내리진 말자. 큰 대회 우승 포기한 건데.
└지들은 데미안 빨려고 <미>랑 <여름 너울>이 데미안 덕에 우승한다고 지랄했으면서 인제 와 개소리는ㅋㅋㅋ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말이 진짠가 싶네. 적당히 좀 하지.
└생각해 보면 <미>랑 <여름 너울> 작가는 얼마나 빡치겠냐 ㅋㅋㅋㅋ 우승 확정도 아닌데 양보하겠다고 하닠ㅋㅋㅋㅋ
└찾아보니까 이 기사 말대로 <미>랑 <여름 너울>이 중간 득표 빼고는 압살하고 있었네?
└기레기들 또 조회 수 때문에 우승작이 포기했다고 과장했던 거지.
└한국 기자들은 대체 데미안 카터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지?
└맞아. 저번에도 그렇고 데미안 카터 일부러 깎아내리려는 것 같은데.
└깎아내리긴 뭘 깎아냌ㅋㅋㅋ 데미안 카터가 한 행동 칭찬하면서 진짜 잊고 있던 게 뭔지 상기시켜주는 기사잖아.
└또또 저 봐. 데미안 욕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저러는 거 보면, 진짜 데미안이 불쌍해진다.
└너희 때문에 데미안이 욕먹는 거야. 제발 닥쳐 좀.
└근데 정말 이런 거 보면 마음이 아픔. <미>랑 <여름 너울>도 그런데 자기 작품 안 밝힌 사람이 977명이나 있다며.
└그러니까. 말없이 자기 할 일 하는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하니까.
└홍보하는 사람들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데, 가만있으면 저렇게 되잖아.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봐. 데미안도 맞는 말이라고 하잖아.
└[데미안 카터, “옳은 지적. 묵묵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 조명받았으면 한다.”]
└크~ 역시 데미안 카터다.
“김지우 기자님이 한 건 했네요.”
댓글을 확인하던 방태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
* * *
“흐헤헿.”
김지우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보며 웃었다.
아침만 해도 들끓던 화는 온데간데없었다.
본인의 목소리가 세상에 닿았다는 생각에 감격할 뿐이었다.
“축하해요. 정말.”
이인호 기자가 다가와 커피를 건네자 김지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운이 좋았어요.”
김지우의 기사는 게시되고 얼마 후 몇몇 인플루언서에 의해 알려졌다.
에릭 다우어 휘트니 미술관 관장은 SNS 계정에 ‘우리가 놓친 진실’이라는 문구와 함께 김지우의 기사를 링크했고.
뉴튜버 알렉스는 방송에서 김지우의 칼럼을 분석했다.
구독자 100만 명의 뉴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장미래 또한 관련 내용에 공감한다는 짧은 영상을 올리며 일조했으며.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을 포함한 몇몇 평론가들도 나서자 김지우의 기사는 금세 유럽과 북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운을 잡는 것도 실력이에요. 지우 씨 기사가 그 사람들을 움직인 거잖아요.”
이인호의 말에 김지우는 목울대가 묵직해졌다.
큰 기대 없이 한 일이.
단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예상 밖으로 크게 호응받자 그간 영세한 언론사에서 활동하며 느낀 서러움이 북받쳤다.
댓글을 보며 웃던 김지우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