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00화 (155/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00화

38. 그림 그리는 사람(8)

한편 이인호 기자가 던진 화두에 미술 애호가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맞는 말 아니냐? 익명 참가하는 대회에서 자기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게 표 달라는 말하고 뭐가 다른데.

└인기 투표 맞음.

└공모전 취지 자체가 대중에게 새로운 미술을 맡기는 거였잖아. 근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나서면 아무 의미 없어지지.

└그것도 대중의 선택임.

└아르누보 공모전이 대단하긴 하다. 평소에는 미술 관심도 없던 인간들이 나서는 걸 보면.

└ㅇㅈ 언제부터 전시회 다녔다고 저러는지 몰라.

└거장이 괜히 거장이 아니야. 작품성 있는 작품을 꾸준히 냈으니까 인정받는 거고 그 사람들한테 표가 쏠리는 게 뭐가 어떻다는 건지 모르겠네 ㅋㅋ

└알렉스는 어떻게 생각함?

└그래. 한마디 해봐.

뉴튜버 알렉스는 방송 중에 올라오는 채팅을 보곤 이 일을 묵과하고 넘어갈 순 없다고 판단했다.

“자자, 싸우지들 말고. 여기서 싸우다가 내 방송 안 들어오는 사람 생기면 난 뭐 먹고 살라고. 싸우지들 마.”

알렉스는 시청자들끼리 싸워, 자기 방송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생길 것이 두려웠다.

그의 솔직한 모습에 시청자들도 잠시나마 논쟁을 멈추었다.

“우선 보험 좀 들고 말하면 누구나 자기 생각은 말할 수 있어. 그건 한국 기자도 마찬가지고 내 방송 보는 여러분도 마찬가지고 나도 그래.”

채팅창에 긍정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래. 그리고 자기가 뱉은 말을 책임도 져야 하고. 그래서 되게 조심스러워.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근데 난 시청자 없으면 안 되거든. 까놓고 말해서 지금 엄청 쫄린다고.”

알렉스가 피식 웃었다.

└그치. 말은 조심해야지.

└그냥 하지 말아요.

└알렉스 초심 잃었네. 3년 전만 해도 모두까기 인형처럼 다 씹고 다녔는데.

└ㅁㅈㅁㅈ 그때가 그립다.

“저놈들이 제일 나빠. 내 방송 젤 오래 본 인간들이 저런다니까? 초심은 개뿔. 너희는 회사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랑 과장 달았을 때랑 같냐? 대학 처음 들어갔을 때랑 졸업반일 때랑 같아? 같으면 그게 인간이야? 어떻게든 어그로 끌어서 이름 알려야 할 때랑 지금이랑 같으면 안 되지.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생각하니까 열 받네. 너 나가, 인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건 또 ㅇㅈ이지요.

└괜히 논란될 수 있으니까 그냥 하던 거 해요.

└ㅉㅉ 쫄았네.

└ㅋㅋㅋㅋㅋㅋ이게 알렉스지.

분위기를 한 번 풀어낸 알렉스가 진중한 태도로 본론을 꺼냈다.

“난 솔직히 좀 그래. 기존 작풍 때문에 알려지는 거야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작가 정체성인데 그게 어디 가겠어? 문제는 SNS에 나 좀 뽑아달라고 하는 거지. 제정신이야? 그럼 인기 없는 사람들은? 10만 명, 20만 명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 무명하고 같은 조건이 아니잖아.”

알렉스는 차마 어떤 작가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명확히 꼬집어 말하진 못했다.

“익명에 심사위원까지 배제한 공모전이라고. 그것도 수상하면 인생역전할 수 있는. 근데 그러지 않아도 돈 잘 버는 사람들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난 한국 기자 말 틀린 거 없다고 봐.”

채팅창이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

이럴 거라는 걸 예상했던 알렉스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알아.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유명한 작가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냥 좀 가만있으면 안 되냐는 거야.”

그는 송출 화면에 아르누보 공모전 투표 현황을 비추었다.

2028 아르누보 공모전 투표 현황

1st <미(Beauté)>

득표: 1,478,601(19.0%)

2nd <이별>

득표: 1,470,818(18.9%)

3rd <여름 너울>

득표: 1,369,651(17.6%)

총투표수는 크게 늘어 7,782,111표에 도달해 있었다.

“솔직히 이건 누구나 다 인정할 거야. 이번 공모전 최고 작품은 미랑 여름 너울이야. 그냥 가슴에 때려 박히는 감정이 다르다니까? 근데 뭐야, 이게.”

알렉스가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평론가고 언론이고 방문객들이고 인터넷 반응이고 전부 미랑 여름 너울 이야기뿐인데, 정작 투표수는 왜 이래? 이대로면 밀리잖아.”

채팅창에 데미안 카터를 무시하냐는 말들이 올라왔다.

“그게 아니라고! 내가 지금 데미안 카터를 평가 절하하고 있어? 나도 좋아해. 근데 이번에는 아니라고. 검색 트래픽 보여줄까?”

알렉스가 고글 트렌드에 접속하여 <미>와 <여름 너울>, <이별>을 검색했다.

“봐. 미랑 여름 너울은 공모전 시작한 이후로 하루에 수십만 번이나 검색되었어. 근데 이별은? 만 건 왔다 갔다 하지?”

시청자들이 관련 내용을 신기하게 보았다.

검색량에서 크게 차이를 보이는 세 작품이 정작 공모전 투표에는 비슷한 표를 얻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복 투표 때문에 그래. 미랑 여름 너울은 지금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많은 사람이 뽑고 있어. 작가가 알려진 작품들은 그냥 남은 표 중에서 찍는 거라고. 실제로 미랑 여름 너울을 더 좋아하는데, 결과는 여름 너울이 밀리고, 이젠 미까지 역전될 상황이라니까?”

알렉스가 숨을 내쉬었다.

“데미안 카터가 그랬다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이 자기 작품이 뭐라고 알린 적은 없잖아. 이건 심사방식에서 SNBA가 오류를 간과한 일이고 다음 공모전부턴 고쳐야 해. 난 단지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거고.”

수많은 채팅을 보며 압박감을 느낀 남자는 얼굴을 쓸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가 뭘 제출했는지 밝히지 않는 고훈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알렉스가 고훈의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직 확고한 팬은 없어도 인지도는 꽤 쌓았거든. 투표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근데 아직 움직이고 있지 않잖아.”

시청자 중 몇몇이 <미>가 아직 1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럴 수도 있지. 미가 진짜 고훈이 그린 거면 그럴 수 있어. 왜 인제 와서 고훈 작품이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말하냐고? 솔직히 몰라. 어그로 좀 끌었다. 왜.”

알렉스가 정색하고 말했다.

“솔직히 모르겠어. 그나마 닮은 게 미였어. 앙리 마르소가 말한 것도 있었고. 여름 너울? 글쎄. 고훈이 그런 그림을 그린다는 상상은 못 하겠는데.”

시청자들이 또다시 질문했다.

“왜냐고? 아니 그렇잖아. 여름 너울은 진짜 구성적으로 완벽해. 주제를 표현하려고 사용한 착시 효과를 진짜 완벽하게 구사했어. 그런 걸 단기간 안에 익힐 수 있나? 갑자기? 만약에 진짜 여름 너울이 고훈 작품이면 난 미를 그린 것만큼 대단하다고 봐. 어쩌면 더. 자기가 추구하던 방향이랑 전혀 다른 화풍에 도전했고 그만큼 성과를 거뒀으면 앞으로 고훈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아무도 상상 못 하지. 진짜 무서운 건 걔가 아직 10살밖에 안 됐다는 거야. 지금도 대단한데, 앞으로 뭘 할지 모르는 그 가능성 때문에 고훈이 주목받는 거고. 그래. 곧 있으면 11살이지.”

└데미안 카터 인터뷰 올라옴

└[링크] [데미안 카터, “더 많은 작가에게 기회가 돌아갔으면 한다.”]

└현재 많은 표를 얻은 예술가를 비난하는 뜻이 아니라고 믿는다. 나 또한 더 다양한 작품이 조명받길 바란다래.

└크으. 역시 데미안이네.

└아량 넓은 것 좀 봐.

└데미안이 저렇게 말했으니 분위기가 좀 달라지겠네.

터너상 수상자로, 현존하는 예술가 중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이자 인격자로 소문난 데미안 카터가 나섰으니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가라앉을 터.

알렉스가 손뼉을 쳤다.

“진짜 대단하다. 원래 이런 말이 힘 있는 사람이 해야 더 효과적이거든. 데미안 카터 진짜 너무 멋있다. 존경해. 정말로.”

* * *

앙리 마르소가 눈매를 좁혔다.

데미안 카터의 인터뷰가 보도되고 세 시간 뒤, 그의 출품작 <이별>이 <미>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서 있었다.

첫날 이후 줄곧 정상을 지키던 앙리 마르소의 자존심이 구겨지고 말았다.

앙리 마르소는 데미안 카터의 인터뷰를 찾아보곤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약삭빠른 놈.’

어젯밤과 오늘, 아르누보 공모전은 전환의 기회를 맞이했었다.

한 외신 기자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그동안 불만을 가졌던 예술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관람객도 그에 호응하고 있었다.

아르누보 공모전을 연 앙리 마르소에게는 그보다 좋은 일도 없었다.

명성에 기대지 않고 작품으로 다가가는 길이 시작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데미안 카터는 언론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섣불리 거스르지 않고, 대중과 예술가들이 바라는 방향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을 더욱 확고히 했다.

이미 출품작이 무엇인지 알려진 데미안 카터를 향한 지지도는 상승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투표에 반영된 것이었다.

“언제 이런 인터뷰를 했지?”

곁에 있던 미셸이 의아하다는 듯 기사를 살폈다.

“무슨 말이야?”

“어제 제이 조플링 파티에 참석한다고 알고 있었거든. 이렇게 긴 인터뷰를 할 시간이 있었나?”

“파티장에서 했겠지.”

“기자 출입 금지라고 들었거든.”

미셸의 말에 앙리 마르소가 미간을 모았다.

어젯밤에 인터뷰할 상황이 안 되었다면 적어도 오늘 아침에 했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정돈된 느낌이 강했다.

기자들이 아침부터 그를 찾아가진 않았을 테니, 앙리 마르소는 데미안 카터가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확신으로 굳혔다.

그러나 그 또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기 있는 거 보면 참 신기해.”

미셸이 데미안 카터의 작품을 떠올리며 말했다.

큐레이터 사이에는 미술품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개인적으로 작품을 사는 행위가 암묵적으로 지양되고 있었다.

때문에 데미안 카터의 작품을 살 수 없는 입장이었으나,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작가, 작품마다 취향이 갈린다고 하지만 동물을 토막 내고 박제하여 전시하는 악취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그런 작품이 인기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생각에 잠겼던 앙리 마르소가 입을 열었다.

“무슨 관계야?”

“뭐?”

“데미안 카터하고 제이 조플링.”

“글쎄. 아, 2010년이었나. 데미안 카터 작품 5,000만 파운드에 낙찰되었을 때. 그때 제이 조플링이 샀을 거야.”

앙리 마르소도 기억을 떠올렸다.

그전까지만 해도 무명이나 다름없던 데미안 카터는 작품을 파는 일조차 변변치 못했었다.

그런 그의 작품이 갑자기 5,000만 파운드에 팔리며 큰 화제가 된 적 있었다.

“…….”

미셸이 생각에 잠긴 앙리를 보곤 미소 지었다.

자존심 강한 그의 속이 얼마나 끓고 있을지 훤히 보였다.

“일시적인 일이야. 오늘부터 투표하는 사람이 늘 테니 금방 다시 역전할 거고.”

“알아.”

앙리 마르소는 주먹을 폈다가 쥐길 반복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