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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184화 (139/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84화

37. 개벽(2)

“안녕하세요.”

유럽으로 떠나기 전 오랜만에 방송을 틀었다.

너무 오래 쉬어서 찾아와 줄까 싶었는데, 그래도 600명이나 들어와 줘서 놀랐다.

“잘 지냈어요?”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채팅창이 마구 올라간다.

└아니 못 지냈어!

└훈손실 한 달 실화냐?

└제육덮밥 먹고 싶다.

└스트리머가 한 달 동안 방송 안 하는 거 직무유기 아님?

└화가야 인맠ㅋㅋㅋㅋㅋ

└구독자 줄었잖아.

└방송 왜 이렇게 안 켰어 ㅠㅠ

└앙리 마르소가 구해줬을 때 어땠어요?

└그동안 뭐 하고 지냄?

다들 여전하다.

제육덮밥 먹고 싶다는 사람은 아직도 못 먹은 건지, 아니면 항상 먹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나중에 만나면 사 주고 싶다.

앙리 마르소도 들어와 준 모양이다.

“이것저것 하고 지냈어요. 다큐멘터리 대본 연습하고, 아. 뉴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라고 알아요? 거기에 전시하기로 했어요. 가면.”

방태호가 소개해 준 여러 미술관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준 뉴 테이트 모던에 <가면>을 전시하기로 했다.

└다큐멘터리? 무슨?

└바빠서 못 켠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안 킨 거 아님?

└벌써 자전 다큐도 만들어? 11살이데?

└쓸데없는 짓 말고 작품 활동에 집중해.

└가면 전시하면 얼마나 받아요?

└앙리 마르소하고 얼마나 친해졌어요?

중간에 눈치 빠른 사람은 무시하자.

경험상 빈틈을 주면 안 된다.

방송 보는 사람들은 사람을 놀리고 싶어 안달 나 있다.

“반 고흐 재단에서 만드는 거예요. 빈센트의 일생을 따라가는 이야기인데 몇 작품 제 방식으로 따라 그리면서 해설하게 되었어요.”

언제 촬영하냐고 물어서 아르누보 공모전이 끝난 뒤라고 덧붙였다.

“계약 조건은 뉴 테이트 모던에서 비공개로 해달라고 했어요. 많이 받았어요.”

1년 전시 계약에 3만 파운드를 받기로 했고, 작품이 손상되었을 시에는 600만 파운드를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도 가입해 주었다.

할아버지와 방태호, 장미래 모두 그보다 좋은 조건을 받긴 어려울 거라 말했으니,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으리라.

“그리고 공부했어요. 전에 같이 방송한 친구 기억해요? 걔가 이것저것 챙겨줬어요.”

심화 수업을 따라가는 건 애초에 포기했고, 정규 과정이라도 공부할 계획이었는데, 차시현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자꾸 함수의 극한이니 연속이니 하는 걸 가지고 와서 기본 지식이라고 우기는 것만 빼면 알찬 수업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숙제 있어요. 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어요?”

└숙제?

└학교 숙제 도와달라고?

└공부 손 놓은 지 오래되긴 해도 초등학교 숙제 정도는 껌이지.

└숙제는 혼자 힘으로 해야 해요.

└제육덮밥 먹고 싶다.

“SNBA에서 홍보 좀 해달라고 했거든요. 아르누보 공모전. 돈 많이 받았어요. 7,000유로.”

방태호가 광고를 받은 사실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해서 언급하자 채팅창이 키읔으로 도배되었다.

└아닠ㅋㅋㅋ그 숙제였냐곸ㅋㅋㅋ

└세상에.

└7,000유로가 얼마임?

└천만 원 정도 되나?

└ㅁㅊ 우리 핑구가 대기업이었다니.

└서리 밀밭 얼마에 팔렸는지 잊었냐? 훈이한테 방송은 취미야.

└광고비 누가 책정했어.

└근데 우리한테 광고해봤자 못 가는데.

└곱하기 나누기 정도 생각했던 내가 이상한 건 아니지?

└다들 눈치 챙겨!

└아, 다음 주에 파리 마실이나 가야겠네.

└그러네. 가는 김에 크루아상이나 먹고 와야겠다. 이렇게 하는 거 맞지?

광고비를 누가 책정했냐니.

그런 걸 왜 물어보는지 따지려다가 자막도 안 넣었는데 한국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해졌다.

파리 가면 물어봐야겠다.

“이거 해서 받은 돈은 기부했어요. 도빈 재단이라고 어려운 아이들 도와주는 곳이래요.”

방태호가 전해준 기부증서를 카메라에 비추었다.

“파리 안 가도 볼 수 있어요. 루브르 박물관 홈페이지에 아르누보 공모전 가상 전시관 운영하니까 거기서 보면 돼요. VR 같은 거 있으면 더 사실적으로 볼 수 있대요. 실제 전시된 공간이랑 똑같이 구성했다고 하니까 많이 이용해 주세요.”

고개를 돌리자 대본을 만들어준다던 방태호와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SNBA측에서 제공한 이미지를 클릭해서 열었다.

아르누보 공모전 포스터가 모니터에 나왔다.

“다음 주 목요일이죠? 11월 30일 오전 9시부터 12월 6일 오후 10시까지예요. 파리 기준으로요. 무료예요.”

파일을 넘겨 첫 번째 이벤트를 보여주었다.

“이벤트가 엄청 많아요. 첫 번째는 작품 찾기. 우리나라 여의도처럼 파리에 시테라는 섬이 있어요.”

다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아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맞아요. 노트르담 대성당 있는 곳. 거기에 작품들이 전시될 텐데, 전시관이 각각 떨어져 있거든요. 일주일 동안 백 작품을 발견하면 추첨을 통해서 상품을 나눠준대요. 많이 발견할수록 확률이 올라간다고 하니까 되도록 많이 찾아보세요.”

└실내면 찾기 너무 어렵지 않나?

└빡셀 거 같은데;;

└찾은 걸 어떻게 인증함???

└VR 보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아르누보 공모전 앱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으면 대조해서 판별해 준대요. VR 쓰는 분은 경로로 파악하니까 걱정 마세요.”

혹시 놓친 게 있나 싶어서 채팅창을 다시금 확인했다.

“아, 작품은 모두 1층에만 있고 지하나 2층 이상은 아니에요. 또 문에 공모전 로고가 붙어 있으니까 찾는 게 어렵진 않을 거예요. 실외 전시된 작품도 있고요.”

└솔직히 너무 귀찮을 것 같은데.

└ㅁㅈㅁㅈ

└눈치 챙기라고!

└다시 생각해 보니 선녀 같은 이벤트네.

└와 너무 재밌겠다.

미셸 플라티니와 여러 큐레이터가 생각해낸 이벤트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 않다.

확실히 너무 어렵기도 해서 걱정인데, 우선 전할 이야기가 남았으니 계속해야겠다.

“상품이 있다고 했죠. 백 작품 이상 찾아낸 사람 중에서 천 명을 추첨해서 1,000유로 준대요. 직접 찍은 사람 500명, VR로 참가한 사람 500명.”

└??????????

└1,000유로가 얼마임?

└130만 원 정도 될걸?

└진짜 선녀였네;;;

……어떻게 잘 된 것 같다.

“또 작가 맞히는 이벤트도 있어요. 홈페이지나 앱 들어가면 작가 이름 입력하는 곳이 있는데, 본명을 영어로 적어 주셔야 해요. 이건 많이 맞히는 백 명한테는 3,000유로 준대요.”

첫 번째 이벤트가 보다 많은 작품을 관람객이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면 두 번째 이벤트는 단순히 발견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 것 같다.

익명으로 전시되다 보니 작품을 깊이 들여다봐야만 하는 방법을 생각한 모양이다.

└전부 맞힌 사람이 백 명 넘으면 어떡함?

└말이 되냐? 1,700명이 넘는데 그걸 다 맞히는 인간이 어딨겠음.

└오타쿠 무시하면 안 됨. 게다가 양덕들은 진짜 상상을 초월한 인간이 많음.

“그렇게 되면 추첨으로 간대요.”

나도 도전해 볼 생각이지만, 이 시대 예술가를 잘 몰라서 아마 힘들 것 같다.

할아버지와 방태호도 전부 맞히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셨으니, 아마 시청자들이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직접 방문하면 퀴즈 맞히면 힌트를 받을 수도 있어서 재밌을 거예요. 저랑 할아버지도 도전할 거고요. 만나면 사인해 드릴 테니 많이 와주세요.”

* * *

2028 제1회 아르누보 공모전은 같은 해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 이상으로 주목받았다.

마르소 갤러리 대표 미셸 플라티니의 파격적인 제안 덕분이었다.

당초 전 세계 홍보비로 2,000만 유로를 책정했던 SNBA는 홍보비를 대폭 감축할 수 있었다.

미셸 플라티니가 제안한 작품 찾기, 작가 맞히기 이벤트는 고작 130만 유로만으로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추가로 유명 작가 및 인플루언서에게 들인 홍보비와 기본적인 홍보비를 추가하여 절반에 해당하는 1,000만 유로가 들 뿐이었다.

아르누보 공모전에 관련한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미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관련 트래픽이 늘어나니 언론사들은 앞을 다투어 기사를 게재했고.

아르누보 공모전 공식 애플리케이션은 개막일 직전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미술 행사 최고의 흥행을 예고했다.

“있잖아.”

고수열과 방태호가 잠든 늦은 밤.

침대에 엎드린 채 현대 미술가를 공부하던 차시현이 입을 열었다.

“그림만 보고 어떻게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있어?”

여러 작가의 이름을 외우고 특징을 공부하던 차시현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나란히 누워 함께 공부하던 고훈이 답했다.

“색감이나 붓 터치. 뭘 그렸는지. 여러 면에서 보는 거지.”

“완전 다른 거 그릴 수도 있잖아.”

“보통은 일관되게 만들어.”

“왜?”

“진정성? 한 주제를 두고 오래 사색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작품에도 드러나고.”

“음…….”

“이미지를 얻는 일로도 중요해. 이 작품은 누가 그렸다는 게 명확할수록 기억하기 쉽잖아. 네가 만약에 화가로 활동하면 파란 나무가 네 상징이 되는 거야.”

“알 것 같아.”

차시현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저었다.

“아니. 모르겠어. 같은 것만 그리면 재미없지 않아?”

“너도 파란 나무만 그리잖아.”

“다 다르게 그리는걸.”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야. 앙리 마르소는 자화상을 800점이나 그렸는데 다 다르잖아.”

앙리 마르소의 자화상을 예시로 들자 차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앙리 아저씨도 나오면 좋겠다. 그럼 한 사람이라도 맞힐 텐데.”

“참가한다는 말 없었어.”

“하는데 말만 안 했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나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야. 게다가 SNBA가 여는 대회잖아. 본인이 여는 공모전이나 다름없는데 설마 참가하겠어?”

“그렇긴 한데 또 모르지. 그 아저씨는 이상한 행동 많이 하잖아.”

“…….”

차시현의 지적이 일리가 있었다.

고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설마.”

“장미래 교수님도 그랬잖아. 이렇게 크게 열릴 줄 알았으면 참가하고 싶었다고.”

듣고 보니 주목받길 좋아하는 앙리 마르소에게 최고의 무대였다.

가상 전시관을 포함하여 천만 명 이상이 관심을 보인 행사에 앙리 마르소가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네가 공모전 나가면 다른 사람이 상을 못 받잖아!’

그러나 이내 앙리 마르소의 채팅을 떠올린 고훈이 피식 웃었다.

“예전에 방송할 때 여러 사람한테 기회 주는 일에 내가 나가면 어떻게 하냐고 했거든. 절대 안 나올 거야.”

“웅…….”

“이상하긴 해도 자기가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야.”

차시현은 친구의 말을 믿곤 다시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내일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어떤 작품을 만날지 기대되어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블랑쉬 파브르. 블랑쉬 파브르. 이 사람은 되게 특이하다. 그치?”

고개를 돌린 차시현은 금세 잠든 고훈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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