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182화 (137/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82화

36. 성스러운 봄(8)

벨베데레 미술관을 찾은 김지우가 눈을 빛냈다.1)

코발트 틸(Cobalt teal) 블루 지붕 아래 우아하고 장엄한 바로크 건축물이 그녀를 압도했다.

부풀 대로 부푼 기대감이 재촉했지만 김지우는 조급하지 않았다.

차분히 발을 옮기며 잘 가꾸어진 정원을 눈에 담고 곳곳에 자리한 조각상에 눈길을 주었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보고 싶지 않았다.

상궁 미술관에 들어서자 천정을 받치고 있는 네 명의 역사가 그녀를 반겼다. 기둥조차 조각하여 예술품으로 만든 벨베데레 미술관은 창문틀을 제외하곤 온통 흰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순간 들이마신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아치문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조각상, 회화, 때때로 궁전 자체를 둘러보았다. 벽도 기둥도 천장도 무엇하나 마음을 흔들지 않는 작품이 없었다.

아름답게 떨어진 샹들리에 위로는 천사들이 있었고 작품이 전시되지 않은 벽면은 섬세히 조각되어 있었으며, 기둥마다 이상적인 모습의 인체 조각상이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간.

애타는 마음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김지우는 발길을 돌렸다.

8월에 예정되었던 여름 휴가가 밀리고 밀려 10월이 다 되어서야 쓸 수 있었던 상황도.

비행기 연착으로 반나절을 공항에서 머물러야 했던 짜증도.

그 탓에 비싼 돈 주고 예약한 호텔에서 눈만 붙이고 나와야 했던 일 모두 상관없었다.

오직 <키스>를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한 계단, 한 계단.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온전히 작품을 앞에 둔 순간에야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찬란하다? 아니.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는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2)

거룩한 황금빛 앞에서 김지우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사진으로, 모조품으로 반복해 보고 <키스>에 관련한 여러 말을 들었었다.

나름대로 공부하고 기사로도 다뤘지만 그녀는 여태 자신이 <키스>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앙증맞게 핀 이름 모를 꽃.

관능의 화가였던 클림트가 그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청초함이 잎마다 묻어 나왔다.

절벽 위에 핀 꽃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아니, 그렇기에 더욱 순수하리라.

한 걸음 더 내디뎠다간 나락으로 떨어질 그곳에 있기에 존재는 더욱 소중하다.

“…….”

재회한 연인은 서로를 끌어안아 한 몸이 되었다.

남자가 입은 옷에 네모난 패턴이 있고, 여자의 옷에 둥근 무늬가 없었더라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은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될 정도로 각별한 사랑은 대체 어떠했을까.

입을 맞추지 않은 상태를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김지우는 그 답을 추측하고 있었다.

클림트는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에밀리에를 깊이 사랑했다.

관능을 그렸던 화가로서 에밀리에의 에로스를 화폭에 담고 싶었지만, 클림트는 에밀리에에게서 그 어떤 성적인 욕망도 영감도 얻을 수 없었다.

그녀를 마주하면 그 맑고 깨끗한 영혼에 이끌려 그림을 그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클림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에밀리에는 의상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위해 멀어졌다.

<키스>는 클림트가 에밀리에와 헤어진 뒤에 그린 작품이었다.

몸이 멀어진 만큼, 그녀를 향한 갈증은 더욱 커졌기에 번민과 애정을 담아 그렸고.

이전까지 여성의 나체 속에서 고혹적이고 치명적인 면을 그렸던 관능의 화가는 마침내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키스>를 완성하기까지 장장 2년에 걸쳐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에밀리에를 찾았고 두 사람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김지우는 클림트가 <키스>를 입술이 닿지 않은 모습으로 그린 이유가 다시금 구애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김지우는 카메라를 꺼내 플래시 기능을 꺼두곤 <키스>를 찍었다.3)

그러나 몇 번을 거듭해도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순 없었다.

안타까워하며 사진을 포기한 김지우가 이번에는 좀 더 멀리서 <키스>를 감상하고자 고개를 돌리곤 깜짝 놀랐다.

고훈과 고수열이 바로 곁에 있었다.

“어?”

고훈이 입술에 검지를 댔다.

김지우가 오기 전부터 <키스>를 보던 고훈은 뒤늦게 그녀를 알아보았지만, 사랑에 빠진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이 전시실에서 벗어나 1층 기념품 상점 앞에 자리했다.

* * *

“어머. 세상에. 학장님, 아니, 작가님 얼굴이 너무 좋아지셨어요.”

“껄껄. 고마워요.”

“훈이랑 같이 여행 다니셔서 그런가 봐요. 참, 훈아. 여긴 어떻게 왔어? 파리에 있던 거 아니었어? 그보다 괜찮아? 병원에서 이상 없다고는 해도 나중에 오는 후유증도 있다고 들었거든. 잠은 잘 자고?”

김지우가 평소처럼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조금 전 <키스> 앞에서 애절한 표정을 짓던 사람이 맞나 싶다.

분명 나도 넋을 놓고 봤지만 감상하던 모습과 온도 차가 심하다.

그래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니 반갑다.

“기자님한테 이야기 듣고 와 보고 싶었어요. 말로에게 액자 부탁하러 온 김에 구경하고 있었어요.”

“액자? 아! 아르누보 공모전?”

“네.”

“작품은? 완성했어? 어때?”

“잘 나왔어요.”

다 큰 사람이 두 팔을 번쩍 들고 기뻐해 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대상 받겠네. 대상.”

“그건 몰라도 꽤 좋아해 줄 것 같아요.”

“왜애. 잘 나왔다고 할 정도면 너도 만족하는 거 아니야?”

“재능 있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김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액자 만들어 준대?”

고개를 끄덕이자 무릎을 치며 좋아한다.

“뭐야. 역시 따 놓은 당상이네.”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긍정적일 때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문구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피에르 말로가 인정했단 뜻이잖아. 우승 기사 미리 써두길 잘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어떻게 써요?”

“원래 중요한 일은 기사 빨리 내려고 가안 잡아두거든. 세계 최대 규모의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천재 화가 고훈. 크으~ 좋다. 좋아.”

언제 봐도 기운찬 사람이다.

“근데 여름 휴가 때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특집호 내려고 엄청 바빴거든.”

“특집?”

“응. 아르누보 공모전에 참가한 사람들 정리하고 추리고. 이번 달은 넘기고 짬 내서 왔지.”

세계에서 가장 큰 상금이 걸린 공모전이라 그런지 월간지 <예화>에서도 준비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9월호는 꼭 봐봐. 11월에도 아르누보 공모전 특집이겠지만 9월호엔 누가 나오는지 그간 어떤 작품을 발표했는지 소개해 뒀거든.”

“그런데 어차피 익명 전시잖아요.”

“얘는. 아무리 익명이라도 작풍이 어디 가겠어? 다 알아볼걸?”

“알려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리던 대로 그리지 않으면 못 알아볼 텐데.”

“그런가? 수상하고 싶으면 오히려 자기가 누군지 확실히 드러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김지우의 말대로 그러는 편이 팬을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라는 족속들은 워낙 기행을 많이 해서 그런 일반적인 상식이 통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네?”

“어땠어? 클림트.”

김지우가 눈을 초롱초롱 떴다.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요 며칠간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난 감상을 내놓자, 그의 열렬한 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치.”

그러나 이내 고개를 주억거린다.

“클림트와 동시대에 살았던 화가는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어. 그만큼 독보적인 존재였거든. 영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전 시대의 반 고흐정도?”

“…….”

“게다가 에밀리에를 생각하며 그린 키스까지. 아, 그거 알아? 오스트리아가 키스가 발표되자마자 사들인 거?”

“할아버지가 알려주셨어요.”

<키스>는 그야말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다.

황제가 바랐던 고전적 예술에서 거부했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정부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 작품이니까.

“발표한 해부터 클림트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전시됐어. 자신만의 사조를 만들고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모든 면에서 정점을 찍었던 거야.”

클림트 자랑을 이어가던 김지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키스> 이후 급변한 그를 안타까워하는 거다.

“재능이란 대체 뭘까?”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작가님, 재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흠.”

작게 신음하신 할아버지가 생각을 정리하셨다.

“내겐 없는 거라 생각해요.”

“내겐 없는?”

“본인은 자기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 남이 가진 건 잘 보면서.”

“아.”

“에곤 실레가 클림트에게 물었다죠. 자기에게 재능이 있냐고.”

클림트의 제자 에곤 실레.

작품은 보지 못했지만, 할아버지에게 클림트에게 대단한 화가가 제자로 있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재능이 많아. 너무 많아. 나도 자네처럼 사람 얼굴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어.”

김지우가 클림트가 제자에게 했던 말을 읊었다.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던 제자가 확답을 받길 기대하며 한 질문에, 클림트가 내놓은 답은 너무나 슬펐다.

그는 제자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일종의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설명을 이어가셨다.

“그래요. 클림트는 당시 예술평론가들 앞에서 고백했죠. 젊은 예술가들은 기존 예술가를 밟고 일어선다고.”

그래야만 자신만의 세계를 확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클림트는 그 말에 덧붙여 ‘이런 생각을 차분히 하기란 참 힘들다’고 했다.

“젊은 예술가들이 치고 올라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걸 알면서도 본인에게 그런 시기가 너무 빨리 찾아왔다고 한탄했단 일화 말씀이시죠?”

김지우의 확인 질문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나 보세요. 에곤 실레나 오스카 코코슈카 같은 화가들에 비해 클림트가 부족한가요?”

“아니요!”

김지우가 강하게 부정했다.

그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인정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클림트가 실레, 코코슈카와 같은 제자들에게 재능의 차이를 느낀 것과는 별개로 클림트는 그 자체로 대단한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씩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제자들에게 좌절한 세기말의 천재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스스로의 손으로 주류 미술계를 부쉈으나 그 본인이 주류가 된 것을 한탄했던 인간 구스타프 클림트.

베토벤 9번 교향곡을 통해 인류애와 고난 끝의 승리를 찬양했던 남자는 삶의 유한함을 깊이 절감하고.

이후 어두운 절망 속에서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다가 눈을 감는다.

다시는 <키스>와 같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인터넷 찾아보니까 황금 시기 이후 클림트가 퇴보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김지우가 풀이 죽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응?”

“사람이니까 자기에겐 없는 재능을 부러워할 수 있죠. 한탄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어요. 근데 클림트는 멈추지 않았잖아요.”

처음에는 그냥 이뤄놓은 일과 작품들로 그를 대단하게 여겼다.

“시대가 변하는 걸 깨닫고 자기가 이뤘던 화풍을 완성했던 사조를 스스로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거예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조해 주신다.

“묘사력도 색채감도 구성도 화려한 장식 패턴도 클림트가 대단한 화가인 증거지만. 저는 28살이나 어린 제자에게 질투를 느낀 열정과 그걸 극복하기 위해 고집을 꺾고 새로운 화풍을 찾으려 나섰다는 게 더 멋져 보여요.”

“맞아!”

김지우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언젠가는 꼭 마음이 맞는 사람들하고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고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때와 모든 것이 다르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었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 * *

1)벨베데레(Belvedere)는 이탈리아어로 전망대란 뜻이다. 의역하여 전망이 좋은 궁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획전이 전시되는 하궁을 지나면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상설전을 진행하는 상궁이 있다.

2)키스, 구스타프 클림트, 1908~1909, 캔버스에 유채와 금

3)벨베데레 미술관은 촬영이 허가되지만 소리 및 플래시 기능을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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