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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179화 (134/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79화

36. 성스러운 봄(5)

천장 프레스코화에 정신이 팔려 눈치채지 못했지만 주변 역시 멋지다.

천천히 시야를 넓히면 주변 천장이 마치 액자처럼 느껴진다.

피에르 말로 같은 훌륭한 액자 장인이 만들어낸 거대하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액자다.

기둥은 어떠한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돔 홀로 가는 방향을 바라보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올라왔던 계단 위에 천사 둘이 조각되어 있었으며 황금으로 빛나는 궁전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르네상스 예술의 신격화>를 보며 신전처럼 느껴진다고 했는데, 인간 세상에 이보다 유려한 공간이 또 있을까 싶다.

“멋있지?”

“네. 과할 정도로요.”

“그래. 과하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모든 집단은 마지막에 국수적으로 행동한단다.”

기사 계급의 몰락이 그러했다.

총기가 발명되어 더 이상 말을 타고 싸우는 사람이 필요 없어질 즈음 기사들은 그들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기사도를 내세웠다.

망나니 같은 당시 기사들을 규제하기 위한 기사도가 기사의 고결한 신분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 되며 망가진 거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

빈 미술사 박물관은 오스트리아 황제의 마지막 발악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아름답고 웅장한 제국 정신이 박제된 공간이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바로크 시대 예술가들은 이렇게 멋진 기술을 가지고도 자신을 표현하지 못했어.”

“……그래서 더 기술에 집착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생각과 감정을 담을 수 없고 오직 왕의 위엄을 표현해야 했던 예술가들은 향상심을 기술에 풀지 않았을까 싶다.

대리석을 깎고 다듬어 천, 갑옷, 피부 같은 질감을 내놓는 당시 조각가들은 분명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저 어마어마한 크기의 천장 프레스코화 <르네상스 예술의 신격화>는 또 어떠한가.

대체 몇 년이나 걸렸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눈치 못 챘구나.”

“뭘요?”

“바로 클림트 그림이 보이잖니.”

아무리 둘러봐도 클림트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테세우스 조각상과 천장 프레스코화는 다른 사람 작품으로 설명해 주셨으니 남은 곳은 아치 옆 벽화뿐인데.

모르겠다.

“벽화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클림트 작품이야.”

할아버지가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위 세 개의 아치 위를 가리켰다.

잘 안 보인다.

너무 멀어서 안 보이기도 하고 가까이 가면 그림이 너무 높이 있는 탓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들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니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신다.

“예전에는 저기에 계단을 만들어서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말이야.”1)

“그럼 제대로 못 봐요?”

“한 층 더 올라가면 망원경이 있을 거야. 건너편에서 볼 수 있지.”

“빨리 가요.”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

망원경으로 본 클림트의 벽화에 말문을 잃고 말았다.

정통 미술로 크게 성공했었다더니 과연 그럴 만한 솜씨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클림트는 과거 양식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이상적인 얼굴, 자세, 섬세하고 정돈된 표현.

이것을 클림트가 그렸다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그의 그림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여성은 아마도 아테나.

그리스 예술의 진수다.

오른쪽 나체의 여성은 이집트인 같은데, 그쪽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나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것 같다.

“어떠니.”

“멋져요. 그런데.”

“그런데?”

“클림트가 그린 그림인데, 클림트 그림은 아니네요.”

할아버지가 작게 웃으셨다.

망원경을 돌려 왼쪽 아치를 보았다.

“교황의 왕관을 들고 있지?”

“네.”

“에클레시아야.”

헬라어 ecclesia는 본래 아테네 시민의 민회를 뜻한다.

사도 바울을 비롯해 기원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 단어를 차용해 ‘교회’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할아버지 말씀대로라면 법복을 입은 여성은 아마 에클레시아, 즉 교회 자체를 의인화한 사람이다.

오른쪽으로 망원경을 돌렸다.

“아.”

이제야 클림트가 그렸다고 할 수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클림트가 그린 거 맞네요.”

“그렇지?”

15세기 이탈리아 북부에서 발발한 초기 르네상스에 사용되던 양식이다.

그리고 클림트가 이후 <키스>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등과 같은 후기 작품에서 보여준 금박 활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그린 거란다.”

“신곡이요?”

“신곡도 알아?”

“학교에서 배웠어요.”

“으잉?”

한국 초등학교 다니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써먹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아무튼 알고 있으니 잘 보이겠구나.”

“네. 고대 이집트, 그리스, 교회, 이탈리아 르네상스. 클림트는 이곳에 예술의 역사를 기록해 뒀어요.”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요제프가 그렇게 시켰으니까요.”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제 요제프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 예술 양식을 고집한 탓이다.

예술의 성전을 만들고자 했던 마지막 황제는, 예술은 바로크, 고전, 르네상스와 같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르네상스 예술의 신격화>란 작품도 그러하고 이곳을 이루는 모든 작품이 과거를 향한 향수로부터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프랑스에서 인상주의가 유행한 뒤에도 오스트리아는 아직 과거에 머물고 있었어. 덕분에 이렇게 멋진 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 말씀처럼 이곳은 기록으로서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어디까지나 기록으로서.

“어?”

“왜?”

“저 금박 기법 나중에 활용하잖아요.”

베아트리체가 입은 옷이 추후에 활용했던 기법과 유사하다.

원과 사각형을 이용한 패턴을 이용한 의복은 그가 기존 기법을 통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저 그림 그릴 때도 고민하고 있었나 봐요.”

“그래. 어디까지나 장식화가로 남을 수 없었던 거야.”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모자이크, 금속 활용, 그리스 도자기, 이집트, 바빌론 부조, 등등 정말 많은 기법을 익히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그린 작품이란다.”

할아버지가 왜 이곳에 먼저 오자고 하셨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청년 구스타프 클림트가 거장으로 거듭나기 전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어떻게 번뇌했는지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제국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

차디찬 겨울 동안 착실히 자신을 갈고닦아 스스로의 힘으로 봄을 이끌어낸 천재 구스타프 클림트.

점점 더 그가 좋아진다.

* * *

미술관이 너무 넓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여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벨탑도 멋있었어요.”

“피테르 브뢰헬이 죽은 해에 그린 작품이야.”

“죽기 직전에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도 멋있어요.”

“껄껄. 아주 눈이 반짝반짝하는구나.”

할아버지와 함께 미술사 박물관에서 본 작품 이야기를 하며 걷는데, 작은 점포가 눈에 띄었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 같다.

“안 돼. 저녁 먹어야지.”

“애피타이저로요. 조금만.”

간절히 바라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신다.

점포 앞으로 갔다.

“아이스크림 어떻게 팔아요?”

“2유로에 콘 하나. 어떻게 줄까?”

“두 개 주세요.”

원뿔 과자에 아이스크림을 떠 주는 것 같다. 아이스크림은 떠먹거나 쭈쭈빠 형태로만 먹어봐서 기대된다.

주인장이 뜬 아이스크림은 쫀뜩쫀득할 정도로 찰기가 있어서 더욱 설렌다.

“자~ 여기 있다.”

“고마워요.”

아이스크림을 쥐려고 하는데 갑자기 채를 돌렸다.

무슨 짓인가 싶어 노려보자 싱글싱글 웃는다.

“어서 가져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건네기에 다시 한번 손을 뻗자 이번에도 피한다.

“흐흫흐흐.”

할아버지가 소리를 내기에 올려다보니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으신지 자꾸만 웃으신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을 보자 손바닥을 펴 보이며 사과한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콘이라는 과자를 쥐자 마트료시카처럼 또 다른 콘이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와 빈 과자만 손에 남았다.

과자부터 먹어보란 소린가?

“합.”

바삭바삭하지만 별맛이 없다.

아이스크림이나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인상을 쓰자 주인장이 더 당황한 눈치다.

“빨리 내놔요.”

“어?”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 사람 놀리려고 장사해요?”

진지하게 화를 내니 할아버지 눈치를 본다.

“하핳핳하. 훈아, 원래 이렇게 놀면서 먹는 거야.”

“…….”

이해할 수 없어서 인상을 쓰고 있으니 주인장이 미안하다며 아이스크림을 한 덩이 더 올려주었다.

이번에도 뺏어가면 매대 위로 올라갈 생각이다.

“자,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재밌게 놀다가.”

“……합.”

맛있으니 봐준다.

* * *

1)2012년 클림트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지상 12m에 위치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는 철골 계단을 설치한 바 있다.

직접 볼 수 있도록 한 빈 미술사 박물관의 조치는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에도 몇 차례 설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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