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69화
35. 에로이카(5)
이런 건 처음이다.
“…….”
앙리 마르소가 보여준 황금색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여태까지 봤던, 아니, 상상했던 그 어떤 색보다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럽다.
이렇게 멋진 황금색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게 뭐예요?”
“너희 나라에서 나는 거잖아.”
“몰라요.”
다시금 앙리 마르소가 작업 중인 작품을 들여다보았다.
순백의 케이프를 두른 앙리 마르소 뒤로 수많은 사람이 뒤따르는 그림이다.
앙리 마르소가 다른 사람을 그린 건 처음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얼굴이 완성된 사람은 몇 없는데 모두 잘 아는 얼굴이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등등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화가들.
나도 있다.
지금 보니 앙리 마르소에게서 멀리 있을수록 오래전 사람이고, 가까이 있을수록 최근에 태어난 사람으로 배치한 듯하다.
회화의 역사 최전선에 본인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모양.
이 얼마나 오만한 발상인가 싶기도 하나 부정할 수 없다.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하고 또한 이어나가니까.
“자.”
앙리 마르소가 그릇에 뭔가를 담아 왔다.
이것이 케이프의 끝단과 신발, 빛을 표현한 도료인 것 같다.
“이름이 뭐예요?”
“황칠.”
“……황칠?”
앙리 마르소가 시큰둥하게 종이 한 장을 꺼내 황칠이란 것을 발랐다.
아주 선명하고 밝은 노란색이다.
“마르코 폴로는 칭기즈 칸의 갑옷과 천막이 황금색으로 빛난다고 기록했어.”1)
“칭기즈 칸?”
“몽골 초대 황제.”
몽골 제국에 대해서는 역사 시간에 들어본 적 있다. 대단한 정복 군주로 알고 있는데,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앙리 마르소가 설명을 이어가기에 잠자코 들었다.
“또 중국 통전을 보면 백제 서남쪽 바다 세 군데 섬에서 황칠이 나는데 수액을 6월에 채취하여 기물에 칠하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고 적혀 있어.”
말하는 도중에도 황칠을 겹쳐 여러 번 바른다.
아주 밝은 노란색이 점차 기품을 찾아간다.
“그렇게 기록에는 분명 존재하는 물건인데 아무도 그걸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몰랐지. 그러다가 90년대 한국에 자생하고 있는 게 발견되었고.”2)
배울 게 너무나 많기도 했지만 정말 유명하다면 그간 내가 몰랐을 리 없다.
“최근에는 도료보단 건강 식재료로 활용하는 것 같지만.”
마르소가 설명을 덧붙였다.
최근 몇 달 구도에 집중한 나와 달리 앙리 마르소는 색채에 집중한 것 같다.
색은 그 자체로 감정을 품었기에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될 요소.
이 작품은 황칠을 완벽하게 활용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거기에 특유의 섬세한 묘사까지 함께하니 걸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정말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재능이다.
“멋져요.”
“당연하지.”
붓을 빌려서 황칠을 직접 칠해보았다. 겹쳐 바름에 따라 색감이 정말 달라진다.
마르는 과정에도 변색이 있다.
하루 이틀로 다룰 수 있는 도료가 아니다.
마르소가 그동안 이것을 다루느라 다른 작업을 못 한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한국으로 돌아가면 방태호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해서 차분히 익혀야겠다.
“넌.”
한참 재미를 보던 중 마르소가 말을 걸었다.
“넌?”
“넌 뭐 그렸냐고.”
“바다요.”
앙리 마르소가 눈살을 찌푸렸다.
“바다가 파도치는 걸 그렸어요.”
“그게 뭔데.”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지만 말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내놔.”
“없어요. 말로에게 맡겼다니까요.”
“내놔.”
“보고 싶으면 가서 보여달라고 하세요. 얘기해 둘 테니.”
이만한 작품을 보여주고 몰랐던 재료도 알려줬으니 나만 숨기는 건 도리가 아니다.
말로에게 앙리 마르소가 찾아가면 여름 너울을 보여주라고 말해둬야겠다.
“웃기지 마. 내가 네 그림이나 보러 거기까지 갈 것 같아?”
보러 갈 거 뻔히 아는데 저런다.
“……어?”
내 해바라기 사인이다.
마르소의 신작에 정신이 팔려 못 봤는데, 탁자에 뉴욕에서 팬들에게 해주었던 해바라기 사인이 놓여 있다.
그것도 아주 멋스러운 액자에 담겨서.
“왜.”
앙리 마르소가 뒤돌았다.
해바라기 사인과 그를 번갈아 보니 잽싸게 달려와 감춘다.
“어떻게 가지고 있어요?”
“뭘.”
“내 사인.”
“네 사인 아니야.”
“맞는데?”
“아니라고.”
“설마 말로가 만든 액자예요?”
“아니야!”
궁금해서 묻는데 자꾸 화를 낸다.
“그래서 어떻게 구했어요? 샀어요?”
“아니라고 했지.”
“갖고 싶으면 해 달라고 하지. 굳이 왜 돈을 주고 샀어요.”
“안 닥쳐?”
“말로에게 액자까지 부탁하고.”
앙리 마르소의 눈에 핏발이 섰다.
“나가!”
이겼다.
차릉- 차릉-
종이 울렸다.
점심이 준비된 모양.
발을 재촉했다.
얼마 후.
셰리 가도가 차려준 점심은 역시나 훌륭했다.
만약에 그녀가 식당을 운영했다면 오직 그녀의 음식을 먹기 위해 파리까지 오는 것도 불사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
두 시간가량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앙리 마르소는 뚱한 표정으로 날 노려볼 뿐이다.
행복에 겨워서 이 순간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시간인지 모르는 거다.
“다 먹었으면 꺼져.”
“내가 밥 먹으러 왔어요? 어떻게 그래요.”
“누가 봐도 밥 먹으러 왔어. 너 대체 그게 다 어디로 가냐? 어?”
오늘은 좀 과식한 것 같기도 하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네.”
셰리 가도가 입가심으로 말차 아이스크림 한 덩이를 주었다. 아주 멋진 마무리다.
셰리 가도가 마르소를 타이른다.
“앙리, 친구하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만해. 그러지 않아도 피곤해.”
나도 몇 시간 내내 싸우느라 조금 지쳤다.
훌륭한 점심을 먹고 나니 조금은 당황스럽다.
다시 태어난 뒤로 이렇게까지 누구와 싸운 적 없는데, 저 인간에게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
그를 인간쓰레기나 양아치로 여겨서가 아니다. 되레 난 그를 정말 멋진 리더이자 숭고한 예술가로 생각한다.
그런데 왜 항상 싸우게 되는지 참 알 수 없다.
“황칠한 그림은 언제쯤 완성돼요?”
“다음 주.”
크기는 30P 캔버스로 크지 않다.
단지 황칠 특유의 색감을 표현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다.
“더 보고 싶으면 갤러리 가든가.”
“더 있어요?”
“그래.”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기 전에 마르소 갤러리에도 들러야겠다.
“언제까지 있게? 내일도 놀러 와.”
“오지 마.”
“할아버지가 일이 있어서요. 이번 주까지는 있을 것 같아요.”
“그렇구나. 언제든지 오렴. 블루베리 타르트는 항상 준비해 둘 테니까.”
“힘들게 그걸 왜 준비해?”
“안 그러셔도 돼요. 오고 싶을 땐 연락할게요. 아, 이건 선물이에요.”
가방에서 선물로 사 온 다식을 꺼냈다.
“받지 마.”
“어머머. 예뻐라. 이게 뭐야?”
“미숫가루 다식이에요. 한국 전통 디저트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색이 너무 예쁘다.”
“차랑 마시면 좋아요.”
기웃거리는 앙리 마르소에게도 한 상자 주었다.
“이딴 걸로 환심 살 생각 마.”
“싫으면 말고.”
“언제 싫댔어?”
셰리 가도가 선물로 준 다식을 함께 먹자고 홍차를 타 주었다.
할아버지와 먹을 땐 둥글레차나 녹차와 함께 먹었는데 건포도와 카카오로 블렌딩한 루이보스 티란 차도 잘 어울린다.
입맛이 까다로운 앙리 마르소도 곧잘 먹는다.
“그럼 다음 주에 돌아가겠구나.”
“아뇨. 빈에 가려고요.”
다식을 먹던 앙리 마르소가 고개를 돌렸다.
“거긴 왜.”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 보러요.”
“……괜찮지.”
다식을 하나 더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구스타프 클림트는 인정하나 보다.
김지우가 침이 마르도록 찬양했으니 대단한 사람이겠거니 싶은데, 감동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 참고 있는 게 힘들다.
솔직히 조금만 검색해도 이미지가 떠서 몇 번 스쳐보기도 했고.
“어디 갈건데.”
“벨베데레 미술관이요.”
“제체시온도 가.”
“제체시온?”
독일어다.
분리한다는 뜻인데, 검색해 보니 19세기 말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예술사조 운동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건물 또한 제체시온으로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분리파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 뭐가 있는데요?”
“벽화.”
앙리 마르소가 드물게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빈 분리파는 종합예술을 추구했어.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 음악, 동선을 고려해서 전시장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꾸몄지.”
최근에는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것 같던데 그 시작이 빈 분리파였구나.
“그 시작이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흉상이야.”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요?”
“달리 누가 있어.”
앙리 마르소가 다식을 하나 더 집어 먹고 말했다.
“그땐 다 그랬어. 베토벤을 찬양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유행이라 미술 하는 사람들은 하나쯤은 만들었대.”
“합.”
“아무튼 돌아와서. 막스 클링거를 위해 그가 만든 베토벤 흉상을 전시장 가운데에 두고 보니 전시장 전체를 베토벤에게 헌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거지.”
주제를 정하고 기획하는 거다.
“그때 클림트가 벽면에 벽화를 그렸고.”
“마르소가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거 보니 대단한 작품인가 보네요.”
“그걸로 망했어.”
“……?”
“하지만 걸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베토벤 9번 교향곡은 들어봤지?”3)
고개를 젓자 앙리 마르소가 마차에 치인 들쥐라도 본 듯 인상을 썼다.
“지금껏 뭐 하고 살았어?”
“안 들을 수도 있죠.”
“그럴 수가 있긴 뭐가 있어. 들어봤는데 모르는 거 아니야?”
“안 들어봤다니까요.”
“아르센. 아르센!”
앙리 마르소가 외쳤지만 항상 그의 곁에 있던 아르센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건 또 어디 갔어?”
아르센이 없자 앙리가 신경질적으로 종을 울렸다.
다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베토벤 9번 교향곡 공연 찾아서 예매해.”
“알겠습니다.”
“뉴튜브에서 찾으면 나올 텐데.”
“실연을 들어야지. ……아니지. 베를린으로 가. 거기가 제일 나아.”
“할아버지 일 있다고 했잖아요.”
“끝나고 가면 되지.”
“언제 하는지도 모르잖아요. 빈에서도 오래 못 있어요.”
“왜.”
“학교 가야 해요.”
개학한 지 오래다.
학년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채우는 중이다.
마르소가 탐탁지 않은 듯 날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설명을 해야 알아들을 거 아니에요. 클림트 벽화랑 베토벤 교향곡이랑 무슨 관계라도 있어요?”
“9번 교향곡을 표현한 작품이니까.”
베토벤이란 사람을 추모하는 작품인가 싶었는데 그렇게 단순한 그림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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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방견문록
2)정순태 씨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 ‘황칠’을 본 후 연구한 끝에 발견했다.
출처: 천년 만에 부활하는 신비의 도료 ‘황칠’, 주간동아, 2001.02.17, 최영철 기자.
황칠에 관련한 이야기는 위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3)베토벤 9번 교향곡 D단조 Op.125.
평화와 인류애를 담은 곡으로 흔히 합창으로 불린다.
초연 이후 세계사와 함께한 곡으로 바그너는 “베토벤 9번 교향곡 이후 교향곡의 시대는 종결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후대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곡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