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155화 (110/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55화

34. 여름 너울(1)

혼자만의. 혹은 특정 집단을 위한 행위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예술은 태생부터 개인적인 행위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작품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다면 최소한 그들과 작품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것이 견고한 철근으로 만든 다리든, 징검다리든.

그런 노력조차 없이 누군가 헤엄쳐 와주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관객이 찾아와 주었다면 남은 일은 작가의 몫. 현학적인 태도로는 좋은 전시회를 이룰 수 없다.

“훈아.”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김지우다.

아직 기자 회견 중일 텐데 벌써 찾아올 줄은 몰랐다.

“할아버지는요?”

“정리할 것만 확인하고 왔어. 어차피 단독 인터뷰는 힘드니까.”

하긴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였으니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없을 거다.

“괜찮아?”

차시현에게 물었다.

“응. 구경하고 있을래.”

“그래. 연락할게.”

30분 정도 걸릴 거라는 말을 덧붙이고 김지우와 서울 미술관 미팅실을 찾았다.

평소에도 기운 넘치는 사람이지만 오늘따라 더 밝아 보인다.

“좋은 일 있어요?”

“그럼. 고수열 화백의 개인전이잖아.”

할아버지가 전시회를 열었단 사실만으로 이렇게 기뻐하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할아버지 작품도 좋아하겠지만, 지금껏 지켜본바 그녀는 예술 전반을 사랑한다.

아마 미술 전시회가 큰 관심을 얻는 것도 반가우리라.

“게다가 인센티브 탈 것 같거든.”

“인센티브?”

성과급이라고 알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도 성과급을 받을 땐 무척 기뻐하셨다.

게임기와 골프채를 사고 좋아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젖병을 빨며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응. 기사 조회 수에 따라서 받게 되거든.”

“……어제 사진 때문이죠?”

예화는 영세한 잡지사다.

김지우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내는 기사들이 그나마 조회 수가 나오는데 최근에 올린 기사는 내 기사였다.

“아. 하하.”

김지우가 멋쩍게 웃었다.

“에휴.”

그래.

어차피 할아버지 작품들 덕에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니, 무의미한 저항이다.

받아들이자.

창피하고 민망하지만 저들이 나를 귀엽게 본다면 그 또한 활용할 방법이 있을 거다.

내가 생각해도 귀여운 얼굴이니까.

“돈 많이 벌면 뭐 하려고요?”

“여름 휴가비랑 저금해 둔 거랑 해서 여행 가려고.”

“좋네요.”

“그치. 못 가본 데 다닐 거야. 일단 빈.”

“오스트리아요?”

익숙한 지명을 언급해서 확인해 보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라고 하면 역시 음악.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등 내가 빈센트로 살 적에도 이미 전설이었던 이들이 활동했던 곳이다.

“음악도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어…… 좋아하는데 그거 때문에 가는 건 아니야.”

“그럼요?”

“당연히 그림 보러 가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화가가 누가 있었나 고민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무슨 그림인데요?”

“클림트.”

“클림트?”

“응. 구스타프 클림트. 몰라?”

“네.”

김지우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에 도리어 내가 당황스럽다.

“몰라요.”

“세상에. 어떻게 클림트를 몰라.”

김지우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검색해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수염이 머리카락보다 많은 남자가 앉아 있다.

1862년생으로 1853년에 태어났던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에요?”

“가장 많은 화가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누구의 그림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사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통 엄청난 거장이 나타나면 다른 작가 작품에도 그 사람의 흔적이 묻어나게 되잖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사조다.

“그런데 클림트는 뭐랄까. 자기 같은 그림을 더 이상 못 그리게 했어. 그런 의미로 영향을 주긴 했지만 흔적은 없는 거지.”

“이해가 안 돼요. 좋은 그림이면 따라 해 볼 수 있잖아요?”

모네와 마네 이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들의 빛을 화폭에 담았는지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너무 대단해서? 아니. 개성이 너무 강해서라고 해야 할까. 그런 화가야.”

김지우의 설명을 들어보면 대단한 인물이다.

원체 시골에서 살았던 탓에 세상사에 어두운 편이긴 했어도 그만한 인물을 모를 리가 없는데.

내가 죽었을 때는 고작 20대였을 것을 감안하면 무리도 아니다.

“추천해 줄 작품 있어요?”

“엄청 많지. 일단 키스가 가장 유명하고. 유디트도 좋아. 해바라기도 그렸는데, 반 고흐랑 비교하면서 보면 재밌고.”

“해바라기? 어떤데요?”

“잠깐만. 질문은 내가 해야 하는데 왜 네가 하고 있어.”

한창 흥미를 느끼던 차 김지우가 고개를 저었다. 녹음기와 수첩을 꺼내고 자세를 잡았다.

구스타프 클림트에 관해선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우선 프랑스 국립 예술 살롱전 참가한다며?”

“네.”

“앙리 마르소가 특별전 초대해 줬다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맞아요.”

“어떻게 진행되는 거야?”

유서 깊은 살롱전이라고 알고 있는데 미술 관련 지식이 해박한 그녀가 진행 방식을 모른다니 의아하다.

“예전 방식이야 잘 알지. 근데 앙리 마르소가 참여하고 나서 매해 너무 바뀌어서.”

“아.”

이것저것 손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공모전을 연대요. 초대받지 못한 작가에게도 기회를 주려고요.”

“좋다. 그럼 성적은 얼마나 내야 해?”

“상위 10명이래요.”

김지우가 중요한 단어만 기록하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최근에 심사를 폐지한단 이야기도 있던데. 성적은 어떻게 정해?”

“망할 놈 말로는 투표로 한대요.”

“망할 놈?”

“마르소요.”

“흫흐으흥. 오케이.”

펜으로 머리를 툭툭 건들며 고민하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좀 걱정되는데.”

“뭐가요?”

“협회야 앙리 마르소가 차지하고 있지만 평단 무시 못 하거든. 애초에 학연, 지연으로 엮여 있기도 하고 작가가 평론도 겸하는 경우도 많아. 끈끈할 수밖에.”

연대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이 좋게 들릴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으나.

고여버린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일자리 없앤다고 하면 그 여파가 어마어마할 거야. 살롱전의 위신 문제도 제기할 테고.”

“위신?”

“응. 자기들 없이 대중에게 판단을 맡기면 격이 떨어진다고 할걸. 뻔해.”

김지우의 예측일 뿐이나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보다 우스운 상황도 없을 것이다.

권력을 쥔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한다면 예전 프랑스 왕립 미술원이 했던 짓과 다를 바 없다.

더군다나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저질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어리석다.

무엇이 더 훌륭한 작품인지 줄 세울 수 있다는 그 거만함이 역겹다.

“근데 기대되긴 한다. 투표로 하면 진짜 누가 제일 인기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저도 그래요.”

“그럼 제출할 작품은?”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잉? 11월 10일까지잖아. 두 달밖에 안 남았어.”

“모레 할아버지랑 동해안 여행 가기로 했는데 거기 가서 그리려고요.”

“거기 가야만 그릴 수 있는 거야? 바다 그리게? 풍경화?”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조용한 곳에서 며칠 쉬면서 그리려고요. 그리고 싶은 건 많은데 뭘 제출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음. 뭐, 괜찮겠지. 네가 우승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

“잘 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확신할 수 없어요.”

“글쎄. 요즘에는 회화 그리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너 말고 딱히 들어본 이름이 없어. 다들 크로스오버로 넘어갔으니까.”

“크로스오버?”

“요새는 순수하게 미술만 하는 사람이 진짜 없어. 문학, 음악, 영화 등등 다른 장르랑 결부해서 하지. 그래서 동시대 미술이라는 말보다 동시대 예술이라고 하잖아.”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림책도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다.

영화도 여러 분야가 함께하는 종합적인 예술이다.

휘트니 비엔날레에서는 설치물을 구경할 때 특정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게 해서 독특한 효과를 주는 작품도 있었다.

“꽤 오래된 경향이야. 베르나르 뷔페 이후에 앙리 마르소가 나타나기 전까지 프랑스 회화는 끝났다고 했었어.”1)

“그렇게나요?”

“응. 솔직히 말해서 그림만으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니까. 넌 정말 특이한 케이스야.”

아무렴.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는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 다음 질문. 최근에는 앙리 마르소랑 친하게 지내던 것 같던데. 실제로는 어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김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한다.

“나쁜 사람이었어요.”

“어?”

“생각해 보세요. 얼굴에 짜장면 묻히고 먹는 모습이 미술관에 걸린다고. 그것도 라파엘로나 마네, 밀레, 할아버지 작품들 사이에요.”

김지우가 눈을 굴리며 고민하더니 흐 하고 웃었다.

“아,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그런 말?”

“좀 전에 앙리 마르소하고도 인터뷰했거든. 사랑7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놀려 먹기 딱 좋다고 하더라.”

“…….”

코피 흘리고 싶다고 말만 하면 얼마든지 도와줬을 텐데.

굳이 온몸으로 죽고 싶다고 한다.

건강한 몸과 사랑, 행복을 주신 부모님과 할아버지 덕분에 온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기어이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 * *

“작가님, 셰바송 협회장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제1전시실을 구경하던 앙리 마르소가 손바닥을 보였다. 비서 아르센이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 주자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았다.

“왜.”

-자네 급히 좀 와야겠네.

“어딜?”

앙리 마르소가 전시실을 벗어나 복도에 이르자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장 셰바송 씨몽이 버럭 소리 질렀다.

-파리지 어디겠나!

“한국 와 있는 거 몰라서 그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공모전 심사 없이 간다고 하니 탈퇴하겠다고 다들 난리일세. 자네라도 와서 설득해야지 않겠나.

“나가라고 해.”

-뭐, 뭐?

“자리만 차지하던 쓰레기 버릴 때도 되었지.”

앙리 마르소의 태도에 셰바송 협회장이 가슴을 쳤다.

-그렇게 쉬운 일이면 옛날옛적에 그랬을걸세! 3천 명이 넘게 성명서를 냈는데 그걸 어떻게 무시하나!

“쓰레기는 얼마나 있든 쓰레기야.”

-됐네. 아무튼 난 이 일 진행 못 하니까 와서 합의를 보든 기존 방식으로 하든 알아서 하게!

신경질적으로 끊어진 전화기에서 귀를 뗀 앙리 마르소가 비서 아르센에게 전화기를 던졌다.

“귀국하십니까?”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아르센이 물었다.

“아니. 나간다고 성명서 쓴 인간들 명단이나 구해 봐.”

“알겠습니다.”

감상 시간을 방해받은 앙리 마르소가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섰다.

* * *

1)앤디 워홀은 “내가 인정하는 프랑스 회화의 마지막 거장은 베르나르 뷔페다”라는 말을 남겨 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세기말로 향하는 시대적 상황과 회화에 더 이상 발전이 있기 힘든 상황을 결부한 말로 재해석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실제로는 이런 말 없습니다.

다른 질문으로 정말 회화는 끝났을까.

1839년, 카메라가 발명되었을 당시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는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고 했지만 도리어 사물을 정확히 담기를 거부한 화가들은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너무나 멋진 작품을 그려 왔습니다.

2000년대 초 대한민국 미술계에서도 회화의 시대는 지났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회화를 버리고 설치 미술 등으로 쏠리는 경향이 강해졌지만.

최근 대중과 격리되는 흐름에서 벗어나 회화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끝났다, 죽었다는 말은 항상 있었지만 화가들은 그럴 때마다 기어이 멋진 그림들로 우리를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