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54화
33. 해송(10)
고수열 화백이 19년 만에 연 전시회는 개막 첫날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 미술관 추산.
오전에 입장한 사람만 16,000명에 달하여 개인전으로서는 기존 기록을 무난히 경신할 것으로 예측되었다.1)
제3전시실을 제외한 모든 구역을 고수열의 작품으로 구성하는 한편, 시청각실를 따로 운영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던 서울 미술관조차 인파를 감당키 버거웠다.
손자 고훈이 올해 봄, ‘달콤한 행복’을 열어 2주간 총 17만 명을 끌어들이며 미술계에 활력을 돋우고.
여름을 맞이해 조부 고수열이 거대한 흐름을 일구니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김지우 기자는 앙리 마르소와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고수열을 기다렸다.
‘제목을 뭐라고 하지?’
앙리 마르소와 고수열, 고훈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기본 조회 수는 보장할 테지만 어렵게 따낸 단독 인터뷰를 쉽게 내보낼 순 없었다.
‘놀리기 좋다. 놀리기 좋다?’
<사랑7>은 어린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시선과 고훈의 귀여움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옅은 노란색을 배경으로 하여 따스한 색채가 주는 포근함이 좋았다.
‘춘장 묻히고 먹어서 그런가?’
김지우가 피식 웃었다.
‘설마. 애도 아니고.’
적절한 제목을 떠올리지 못한 김지우는 가필한 기사 위에 우선 ‘앙리 마르소의 고훈 사랑’이라고 적었다.
“안녕하십니까.”
진행자가 알리며 행사 시작을 알렸다.
“서울 미술관을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사회자 유진입니다.”
기자단과 내빈 그리고 관람객들이 박수로 환영했다.
“오늘부터 한 달간 진행될 대한은 해송 고수열 화백이 지난 19년간 작업하신 작품을 망라한 전시회입니다.”
사회자 유진의 말과 함께 정면 스크린에 서울 미술관의 단면도가 비쳤다.
“제1전시실 용기는 최근 6년 사이에 작업하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김지우는 사회자의 말을 들으며 도록을 펼쳤다.2)
고수열은 인사말에서 아들과 멀어지고 나서야 헛된 자존심을 내려놓았다며,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고 후회했다.
“제2전시실 사랑은 고수열 화백이 지난여름부터 손자 고훈 작가를 관찰하여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고훈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이 느껴졌기에 김지우와 다른 이 모두 슬며시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특별 전시실은 고수열 화백의 소나무 연작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든 작품이 철저한 보안 속에 관리되고 있었지만, 특별 전시실에 전시된 소나무 연작은 특히나 엄중히 보호되었다.
김지우는 강화 유리 뒤에 있던 작품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고수열의 소나무 연작은 내로라하는 수집가들이 지난 수십 년간 바라던 작품이었다.
과도한 사랑 때문일까.
고수열이 활동을 중단한 19년간 <소나무>들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소나무>를 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를 지불하든 좋다는 말이 나돌 지경이었으나 고수열의 <소나무>를 팔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차 한 사업가가 사업 실패로 소장하던 <소나무 2>를 경매로 내놓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경매에 참여했으며 <소나무 2>는 결국 2,100만 달러라는 놀라운 액수로 낙찰되었다.
그나마도 19년간 유일한 거래였기에 이번 전시회에서 소나무 연작의 가치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서울 미술관과 서울 옥션은 <정이품송>의 거래가를 200억 원에서 300억 원 사이로 예상했고.
여러 매체가 서울 미술관과 서울 옥션이 고수열의 작품 거래액을 보수적으로 책정했다고 평했다.
“그러면 손자 고훈 작가의 축사로 행사 시작하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 * *
사회자의 소개에 맞춰 앞으로 나섰다.
사람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이 넓은 공간이 누구 하나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지 알 것 같다.
리처드 필립스, 마틴 얀센, 피에르 말로, 장미래, 방태호, 김지우, 이인호, 미셸 플라티니, 망할 놈 등등 낯익은 얼굴도 많다.
마음을 담아 감사드리자.
“할아버지의 전시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말 신기합니다. 평일 오전부터 찾아와 주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출근 괜찮으세요?”
사람들이 작게 웃었다.
“입장료 3만 원이면 피자 한 판과 콜라를 사 먹을 수 있는 큰돈인데, 할아버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쓰셨으니 이 또한 정말 가슴 벅찬 일입니다.”
방태호가 얼굴에 손을 얹었다.
장미래는 소리 내지 않고 웃는데 왜 저러는지 모를 일이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평일 오전에 3만 원이나 내고 찾아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보통 다른 전시회가 15,000원에서 20,000원인 걸 감안하면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할아버지도 나와 같은 마음이신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제게 영감을 준 화가는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만큼이나 훌륭한 스승은 없었습니다.”
진심이다.
“할아버지는 늘 저와 함께 고민해 주셨습니다. 답을 주지 않고 제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셨습니다. 가르침을 주실 땐 말이 아니라 행동과 작품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제게 이번 전시회는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교재입니다. 아주 멋진 교재요.”
마음이 전해졌을까.
사람들이 작게 미소 지었다.
“거듭 감사 인사드리며, 할아버지께도 축하드립니다. 할아버지, 오늘은 제가 소고기 사 드릴게요.”
“그래! 껄껄껄.”
할아버지가 시원하게 답하자 몇몇 사람이 웃었다.
축사를 부탁받긴 했지만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생각나는 대로 했는데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역시 나는 연설에 소질이 있다.
“마지막으로 제2전시실은 아주 개인적인 공간이니 주로 제1전시실과 특별 전시실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특별 전시실에 걸린 작품은 정말 멋지니까요. 종일 머물러도 괜찮을 거예요.”
특별 전시실에 있는 소나무 연작은 탄복할 수밖에 없다.
일단 사람들을 그쪽으로 넣어버리면 어지간해서는 발을 떼지 못할 거다.
그런 생각을 전하자 사회자가 손을 흔들며 말린다.
소기의 목적은 이뤘으니 이쯤에서 할아버지께 마이크를 넘기는 편이 좋겠다.
무대에서 내려와 할아버지와 차시현 사이에 앉았다.
“제2전시실이 제일 인기 있던데?”
한 칸 떨어져 앉은 장미래가 알고 싶지 않았던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훈 작가가 할아버지 고수열 화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주인공 고수열 화백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박수를 부탁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일어나 손뼉을 쳤다.
엉겁결에 나도 일어났는데 모두가 이렇게 경의를 표하니 내가 다 뿌듯해진다.
할아버지가 좌우로 한 번씩 허리를 숙이곤 마이크 앞에 서자 박수 소리가 잦아들었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감개가 무량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19년 만에 연 전시회다.
찾아와 준 분들 이상으로 벅차실 거다.
“태어났을 때만 해도 숨을 꼴딱거리던 훈이가 이젠 제 할애비 전시회에서 축사도 해주니 말이에요.”
“……?”
무슨 말씀이시지.
“방금도 너무 잘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말을 제대로 배운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저렇게 말을 잘해요.”
할아버지가 하라는 인사는 안 하고 내 자랑을 늘어놓자 장미래가 입을 틀어막곤 끅끅 웃는다.
팔불출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다.
“지난 19년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회의를 느끼기도 했고 자책할 때도 있었죠.”
할아버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마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려다가 말을 삼키신 듯하다.
“그러다 훈이랑 살게 되면서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함께한 모든 시간이 행복했죠. 제2전시실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꾸몄으니 많이들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배신당했다.
조금 부끄러울 뿐이고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말하긴 했지만 저렇게 홍보하실 줄이야.
물론 괜찮다고 했지만.
좋긴 하지만 그래도.
아니, 본인 작품을 홍보하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지.
“…….”
이젠 뭐가 어떻게 돼도 모르겠다.
손뼉이나 쳤다.
제2전시실을 소개한 할아버지는 제1전시실과 특별 전시실도 간략히 소개한 뒤 찾아와 주신 분들께 인사했다.
취재 나온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는 통에 한동안 바쁘실 것 같아서 입구에 있는 사탕을 두 개 챙기곤 미술관을 구경했다.
“우와. 진짜 멋지다.”
차시현이 할아버지의 수묵화 <돌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림을 잘 그린다, 못 그린다 정도로 평하던 평소와 다른 감상이다.
“힘이 엄청 센 것 같아.”
“세지.”
반 고흐 미술관의 케빈 맥컬리와 함께 매달렸는데도 성큼성큼 걸으며 앙리 마르소를 혼내겠다고 하신 분이다.
“저런 건 어떻게 그려? 힘주고 그리면 저렇게 돼?”
저렇게 박력 있는 선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힘만 줘선 안 되고 빠르게 칠해야 해. 이 선도 한 번에 그리신 거야.”
“이렇게 큰데 어떻게?”
“붓이 엄청 커. 우리만 해.”
“그런 붓이 어딨어.”
“우리 집에.”
“정말?”
할아버지가 작업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는데, 그걸 보여주니 입을 떡 벌린다.
“엄청 크다.”
“그래서 바닥에 놓고 그릴 수밖에 없어.”
“응.”
차시현이 <돌풍>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수묵화는 필압을 조절하여 농담을 가지고 노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이토록 강렬한 맛 또한 새롭고 흥미롭다.
할아버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정말 훌륭한 작품으로 가득하지만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다.
곤잘레스의 작품만 해도 그의 삶을 알고 난 후에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멋있다.”
차시현이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해 못 해도 괜찮아.”
“왜? 깊이 아는 게 더 좋잖아.”
“좋아하게 되면 깊게 알고 싶어져. 지식은 그럴 때 의미가 생기는 거야.”
모든 미술 작품이 그렇다.
“교양으로 접근하면 재미없어. 그걸 모른다고 교양 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넌 그림은 모르지만 수학은 잘하잖아.”
“국어랑 사회랑 과학도 잘해.”
“그래. 억지로 관심도 없는 거 있어 보이려고 공부할 필요 없어. 그럼 시간이랑 돈만 아깝지.”
“음. 그래도 공부잖아.”
“3만 원이면 포테이토 피자 먹으면서 뉴튜브 보는 게 훨씬 좋다고 할 사람도 많을걸?”
“그게 의미가 있어?”
“그런 사람도 있다는 말이야. 그림에 관심이 없으면 그럴 수 있지.”
차시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비싼 음식 먹을 때 가끔 이 돈이면 짜장면을 먹겠다고 하잖아.”
“포테이토 피자 먹겠다는 말을 더 많이 했어.”
“아무튼. 나는 그렇게 고급 식당 음식보다 포테이토 피자나 짜장면이 더 좋아. 그렇다고 내 입이 싸구려는 아니잖아. 선택일 뿐이지.”
“그런 거 보고 애기 입맛이래.”
“애기 입맛이면 어때. 심심한 음식 별로야. 삼계탕 같은 정도는 좋지만 초장이나 간장 없는 회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어.”
“미술관 오는 거랑 관련 있는 이야기야?”
“새로 생긴 식당에 기껏 용기 내서 찾아갔는데 몸에 좋다고 소금도 안 친 음식 줘 봐. 다시 가겠어?”
“우리 어머니는 간 안 된 거 좋아하시는데.”
“……멋스러움을 아는 훌륭한 분이시네.”
“응!”
“근데 대부분 사람은 잘 안 가게 될 거야. 비싼데 입맛에 안 맞거든. 미술관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기껏 그림 좀 보려고 갔는데 점 하나 찍어놓고 구경하려면 만 원, 2만 원 내라고 하면 좋아하겠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그럴 바엔 차라리 뉴튜브 보는 게 낫다는 거지?”
“맞아.”
* * *
1)2019년 통계 기준.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 전시 관람객 수는 1~3월간 총 47만 7,241명이었다.
하루 평균 약 5,300명꼴.
또한 조선일보가 인용한 ‘미술 전시시장 티켓 판매 추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2018~2019) 1/4분기 대한민국 유료 전시장의 월평균 관람객은 22만 명 수준.
대한민국 전체 유료 관람객이 하루 7,333명 정도라고 참고할 수 있다.
*엑스포 등 특수 환경 제외.
*2012 여수 엑스포의 경우 첫날 약 3만 명이 방문했다.
2020년 통계는 같은 기간 16만 3,118명이나 이 역시 코로나 사태로 인한 특수 상황이라 배제하였다.
2)그림이나 사진을 책자로 엮어 설명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