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151화 (106/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51화

33. 해송(7)

미셸이 샤워실로 향하자 딴청 피우던 앙리가 사인지를 꺼내 살폈다.

지금껏 <해바라기>, <손님>, <서리 밀밭> 등 고훈의 대표작을 대부분 사들였으나 모든 작품을 살 생각은 없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음에도 그의 마음을 움직인 고훈의 그림은 그가 소장한 세 점과 영화 기암성의 콘셉트 아트 <총탄>뿐이었다.

사인 따위 오늘 마주할 작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앙리가 고훈의 해바라기 사인을 구겨지지 않도록 책 사이에 고이 끼어두었다.

‘고수열…….’

앙리 마르소는 19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 걸린 고수열의 <전쟁>을 잊을 수 없었다.

2009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식은 14살 소년의 가슴을 뛰게 했다.

제노비오 궁전으로 이어진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이곳저곳에서 함성과 웃음이 튀어나오고.

이국적인 음악이 들려오는 가운데 로마 사진이 낙엽처럼 흩날리는 거리는 소년 앙리 마르소를 설레게 했다.1)

본전시에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 있을까.

한껏 기대했던 앙리 마르소는 제노비오 궁전 정원 한쪽에 걸린 그림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지 위에 그려진 14그루의 소나무.

하나는 불에 타버려 그을리고 또 하나는 쪼개져 반만 남아 있었다.

밑동만 남아 있는 소나무도 있었으며 가지 하나, 잎 하나 없이 볼품없는 나무도 있었다.

이곳저곳에 전시된 소나무 그림 14점은 아름다운 제노비오 궁전 정원을 전장의 한복판으로 만들었다.

앙리 마르소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 전쟁을 표현한 작품임을 깨달았다.

<전쟁>은 전쟁 속에 희생된 한국 사람을 총탄과 포화 속에 망가진 소나무에 빗대어 그린 작품으로 14점의 그림이 하나의 구성이었다.

평면 위에 세상을 담았던 앙리 마르소에게 여러 소나무 그림을 공원 이곳저곳에 배치하여 공간 자체를 활용한 고수열의 <전쟁>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19년이 흐른 현재.

그가 그 긴 기다림 끝에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 * *

{오늘도 잘 부탁해}

{그리고 인센티브 확정} 08:37

“으흥흫.”

월간지 예화의 김지우 기자가 이상철 편집장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곤 웃었다.

고훈과 앙리 마르소의 모습을 담은 사진 기사가 큰 화제를 모은 덕이었다.

조회 수는 어젯밤 이미 인센티브 기준을 훨씬 웃돌았고 오늘 아침 대표로부터 격려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근거는 없지만 왠지 여름 휴가비를 두둑이 챙겨 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루 정도는 호텔에서 자도 되겠지?’

올해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벨베데레 미술관을 관람하려던 김지우는 들뜬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울 미술관 일대는 한 시간 전부터 인파로 뒤덮여 있었다.

해송 고수열의 개인전다운 현장 분위기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되려나 봐.’

김지우는 올해 봄 고훈의 ‘달콤한 행복’이 일반 대중에게 큰 관심을 얻으며 미술계가 부흥하길 바랐었다.

그런데 여름, 한국 미술계의 거목 고수열이 19년 만에 나서며 대한민국 전체가 시끌벅적해지니 그 바람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누구 차지?”

“앙리 마르소다!”

“비켜 봐요!”

그때 황금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앞뒤로 경호를 받으며 서울 미술관 앞에 이르렀다.

기자들이 앞다투어 그 주변을 감쌌다. 김지우도 어떻게든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려고 애썼다.

호위하던 사람들이 기자들을 물리자 앙리 마르소가 인상을 쓴 채 차에서 내렸다.

“앙리 마르소! 고수열 화백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르소 미술관에 소장품을 추가할 예정이신가요?”

“고수열 화백의 작품을 특히 선호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몇 점이나 보유하셨나요!”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영화 <기암성>으로 그의 소장품 일부가 공개되고 마르소 미술관이 시공에 착수한 이후 언론은 그가 어떤 작품을 사들일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영감을 준 작품을 모두 전시하겠다는 대부호는 몇 달째 작품을 새로 들이지 않았고.

몇몇 이는 그 이유를 고수열의 작품을 노리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서울 미술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판매할 작품은 단 한 점이라고 합니다! 경매에 참가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앙리 마르소는 달려드는 기자들을 날파리처럼 여기며 미술관 안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던 기자들이 아쉬워하던 사이, 세계적인 액자 장인 피에르 말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술관 입구와 피에르 말로를 번갈아 보던 김지우가 마음을 굳히고 발을 옮겼다.

미술관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인터뷰할 수 없긴 해도 오늘은 앙리 마르소가 고수열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는지, 그의 손자이자 천재 화가 고훈은 또 할아버지의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 취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입구에 쌓인 사탕 하나를 챙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김지우가 서울 미술관의 평면도를 찾았다.

오늘 서울 미술관은 고수열의 개인전 ‘대한’을 위해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 그리고 특별 전시관을 모두 할애하고 있었다.

제1전시관은 용기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으며 제2전시관은 사랑, 특별 전시관은 그의 호를 연상시키는 소나무로 명명되어 있었다.

‘앙리 마르소는 어디로 갔지.’

그녀가 앙리 마르소를 찾고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실내에서 선캡과 목토시,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고훈이 친구 차시현과 함께 있었다.

“너도 빨리 써.”

“싫어.”

“왜 싫어?”

“창피하단 말이야. 우리 할머니도 이렇게 안 입으셔.”

“너랑 같이 있으면 나인 거 들킨단 말이야.”

“뭐 어때.”

“훈아.”

김지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소년은 반응하지 않았다.

잘못 봤나 싶어서 자세히 살피고자 자세를 숙이니 고훈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응?”

“…….”

“혹시 어제 사진 때문에 그래? 화났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고훈이 목소리를 평소와 달리 내자 김지우가 웃으며 쪼그려 앉았다.

“할아버지 전시회 보니까 어때? 평소에도 본 적 있어?”

“사람 잘못 보셨어요.”

“응?”

“고훈 아니에요.”

고훈의 쌀쌀맞은 태도에 김지우가 입을 내밀었다.

“다들 귀엽다던데? 정말 싫은 사진 말 해주면 내릴게. 화 풀어.”

고훈이 답하지 않자 김지우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어제 잘 잤어? 머리는 안 아프고?”

고훈이 한숨을 푹 내쉬곤 선캡과 선글라스를 벗었다.

“이걸로는 안 되나 보네.”

“픕.”

김지우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왜 노년층 위주의 등산 모임에서나 볼법한 차림을 하고 있나 싶었더니 나름 변장한 듯했다.

고훈이 입술을 샐쭉거렸다.

“오늘은 인터뷰 안 할 거예요.”

“왜애.”

“오늘뿐만 아니라 당분간. 기자님 때문에 노래 부른 동영상도 그렇고 어제도 그렇고 창피해서 못 살겠어요.”

“흐흐흐흫.”

창피해서 못 살겠다는 말을 11살 소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하나만. 앙리 마르소 어디 있는지 알아?”

“특별 전시관이요.”

“땡큐. 이따가 연락할게.”

“인터뷰 안 할 거예요.”

“치즈 케이크 어때?”

“…….”

“조각 말고 통째로.”

고훈이 망설이는 눈치를 보였다.

“수플레 치즈 케이크 안 먹어 봤지?”

“수플레?”

“엄청 부드러운데. 맛있게 하는 집 알거든. 훈이 주려고 사 왔는데.”

김지우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갸웃하니 고훈이 차시현에게 물었다.

“맛있어?”

“응.”

고훈이 한 번 더 고민한 끝에 인터뷰를 수락했다.

“그럼 이따 봐요.”

“그래. 둘이 재밌게 구경하고.”

김지우가 앙리 마르소를 찾고자 특별 전시관으로 향하던 중 고훈과 차시현이 투닥거렸다.

“봐. 너 때문에 들켰잖아. 빨리 이거 해.”

“싫다니까.”

한편.

앙리 마르소는 그의 마음을 흔들었던 고수열의 소나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화풍이 변했다거나 작품을 더 이상 그리지 못한다는 뜬소문도 있었지만 세월이 무색하게 고수열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고상한 풍모를 자랑했다.

‘과연.’

높이 3m 폭 1.8m의 한지 위에 먹으로 그린 <정이품송>을 보던 앙리 마르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서 함께 감상하던 미셸도 작게 감탄했다.

농담 조절만으로 기나긴 역사를 품은 소나무의 장대함이 느껴졌다.

반쪽이 크게 훼손됨에도 신의를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자태가 보는 사람을 경건하게 했다.

미셸은 <정이품송>의 소나무가 왜 다쳤는지, 왜 다친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정이품송이 무슨 뜻이지?”

앙리 마르소가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한국과 관련한 지식이 없기에 고수열의 <정이품송>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하나 그림 속 소나무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어떠한 가치를 지켜내 왔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음에 드시나 봐요.”

작품을 감상하던 앙리와 미셸에게 장미래가 다가갔다.

미셸이 반색하며 장미래를 반겼고 앙리 마르소는 그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작가에게 시선을 주는 것으로 예를 표했다.

미셸이 물었다.

“제목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무슨 뜻인지 알려주시겠어요?”

“벼슬이에요.”

장미래가 정이품송에 관련한 설화를 풀어냈다.

“600년 전에 조선의 왕이 행차할 때 이 나무가 방해되었대요. 그때 가지가 저절로 열려서 기특하다며 벼슬을 내렸단 이야기죠.”

어딘가에 있을 법한 전설이었다.

“그럼 상상화인 거예요?”

“그렇진 않아요. 보은이란 곳에 있어요. 40년 전만 해도 잘 지냈는데 폭설 때문에 가지가 훼손돼서 지금은 이런 모습이에요.”

미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기품이 넘치네요. 실제로도 이런가요?”

“글쎄요. 최근에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을 투영한 것 같아요. 모진 일을 많이 겪은 민족이거든요.”

앙리 마르소가 장미래의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수열의 그림에는 슬픔과 고독 그리고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비극을 극복하겠다는 강렬한 열망과 그로부터 샘솟는 품격이야말로 해송의 정체성이었다.

본인은 한국화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고 말해도, 그보다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천천히 구경하세요.”

“고마워요, 장.”

장미래와 미셸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도 앙리 마르소는 <정이품송>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 *

1)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김아타 개막 퍼포먼스.

대한민국의 사진작가 김아타(1956~)는 ‘앞으로’, ‘반달’과 같은 한국 동요와 함께 10m 높이의 사다리차 뒤에서 한지에 출력한 로마 사진 1만 장을 흩뿌려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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