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145화 (100/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45화

33. 해송(1)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에 침묵한 미국 사회]

[공화당 상원 의원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장례식 찾아. “흠모하던 예술가를 기리기 위함일 뿐.”]

[캐롤라인 스트릭, “위대한 미국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인터넷 뉴스로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에 관련한 기사를 찾아 읽었다.

정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서로 싸우던 이들이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죽고 나서야 싸움을 멈춘 듯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은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사회였기에 미국이 위대해질 수 있었다고 말하는 한편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에게 애도를 표했다.

또한 그가 남긴 편지를 인용하기도 했다.

단 두 줄뿐이었는데, <79㎏>과 <34㎏>이 내 첫 개인전 ‘달콤한 행복’에 큰 영감을 얻었다는 말이었다.

캐롤라인 스트릭은 이를 각박한 삶 속에서 우리를 구원할 길은 서로를 향한 증오가 아닌 화합이라며, 소통을 바탕으로 행복을 전하는 쇼콜라티즘적 행위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이고 오늘날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주장했다.

다른 말은 차치하고.

증오가 아닌 화합이 필요하단 말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내가 살기 힘든 이유를 남에게 돌리면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듯 경제가 어려워지니 각 나라가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가능한 많은 것을 사랑해야 한다.1)

상대를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대화를 해볼 필요는 있다.

그 작은 용기로 아주 조금씩 발전해 오지 않았는가.2)

나는 그리 믿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던 차 저번 주에 개기일식이라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개기일식?”

기사에서는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는데 사진이 참 묘하다.

꼭 컴퓨터 그래픽처럼 보인다.

이것이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다.

“이모.”

장미래에게 개기일식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거 정말이에요?”

“개기일식이네.”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서 볼 수 있어요?”

“글쎄?”

장미래가 개기일식에 대해서 찾아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저번 주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볼 수 있었대.”

“우리나라에선 못 봐요?”

“쉽진 않은 것 같아. 부분 일식은 종종 볼 수 있었어도.”

꼭 한번 보고 싶다.

사진만으로도 이렇게나 마음이 들뜨는데 직접 보기라도 한다면 어떨까 싶다.

“아. 볼 수 있대.”

“언제요?”

“2035년 9월 2일.”

“…….”

“고성에서.”

“고성은 어디에 있어요?”

“강원도 북쪽에?”

7년이나 기다려야 볼 수 있고 그마저도 서울에서 볼 수 있진 않다니.

좋은 기회를 놓쳤다.

구경할 경황이 없기도 했지만.

“장소 상관없이 따지면 18개월 주기로 볼 수 있대. 보고 싶어?”

“네.”

<서리 밀밭> 이후로 <가면>, <총탄>, <페르디난도와 루이> 모두 목적을 가지고 ‘관념’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일식과 같이 순수하게 이미지만으로 그리고 싶은 대상은 오랜만이다.

“완벽하게 가려지는 건 한 장소에서는 오래 못 본대. 고작 몇 분?”

지구든 달이든 태양이든 참 급하기도 하다.

아쉬운 마음에 개기일식 사진을 찾아서 보고 있기를 얼마간 할아버지가 타고 온 비행기가 도착했다.

“훈아!”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드니 반갑게 달려와 끌어안으셨다.

숨이 막힌다.

“밥 잘 먹고 있었어? 로션도 잘 바르고? 양치는? 할아버지 보고 싶진 않았고?”

고작 일주일 떨어져 있었을 뿐이고 매일 영상 통화도 했는데 이렇게나 반가우실까.

생각보다 기운을 차리신 것 같아 나도 안심이다.

“잘 먹었어요.”

저번 삶처럼 잇몸이 내려앉아 맛있는 음식을 못 먹는 게 두려워 양치는 잘하고 있지만 로션은 가끔 잊고 만다.

“할아버지는.”

괜찮냐고 물으려다가 아직 눈빛에 슬픔이 남은 것을 보곤 말을 삼켰다.

대신 꼭 안아드리자 괜찮다며 내 등을 쓸어내리셨다.

내게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죽음은 뛰어난 예술가가 세상을 떴다는 정도지만, 개인적인 친분을 나눈 할아버지에게는 큰 상처일 터.

당분간은 많이 안아드려야겠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곤 일어서서 장미래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훈이가 말썽부리진 않든?”

“그림만 그리던걸요?”

장미래가 뭔가 떠올린 듯 손뼉을 쳤다.

“아, 과자 몰래 하나씩 더 먹더라고요.”

장미래가 출근했을 때를 노리는 치밀한 계획을 짜두고 티 나지 않도록 아주 소량만 은밀하게 먹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들키고 말았다.

당황해서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볼이 포동포동해졌구나.”

* * *

장미래와 함께 저녁을 먹던 중 할아버지 정년 퇴임식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퇴임식보단 전시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대학교가 생각 이상으로 크게 준비한 모양이다.

서울에서 가장 큰 영화 상영관 하나를 빌렸다고 한다.

“700석?”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너무 좁죠.”

“좁긴. 올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넓은 곳을 빌려. 어서 취소해라.”

“올 사람이 어디 있다뇨. 온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선착순으로 받았어요.”

장미래가 참여 의사를 늦게 전한 재학생, 졸업생에게는 서울미술관에서 만나자고 달래느라 애먹었다고 하소연했다.

“다들 바쁠 텐데 뭐 하러 와.”

“바쁘게 살아서 그동안 못 만났으니 이번 기회에 얼굴이나 보는 거죠. 선생님 퇴임식 아니면 언제 또 보겠어요.”

장미래가 할아버지를 대할 줄 안다.

존경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거라고 말씀하시면 완강히 나오셨을 텐데 동창회가 목적이라고 하니 별말씀 안 하신다.

할아버지도 내심 제자들을 만나볼 생각에 조금은 기대하시는 눈치다.

“얼마나 오길래?”

“나리 말로는 2,000명 정도 온다고 했대요.”

“2,000명?”

나도 할아버지만큼이나 놀랐다.

퇴임식에 참석하겠다고 연락이 온 사람만 천 명이란 말이니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다.

할아버지가 새삼 대단해 보인다.

“할아버지가 가르친 사람이 그렇게 많아요?”

“그럴 리가.”

내가 알기로 할아버지가 학생을 직접 가르친 시간은 14년 정도다.

동양화 전공을 한 학년에 몇 명이 수강하는지 몰라도 2,000명이나 될까 싶다.3)

“미대 전체 따지면 훨씬 많죠. 동양화 강의만 하신 것도 아니고.”

“허.”

할아버지가 당황해서 입김을 허 하고 불자 장미래가 아쉬워했다.

“외부 인원 자리를 먼저 채워서 좀 아쉬워요. 학생들은 미술관에서 만나셔야 할 거예요.”

“그건 무슨 말이냐?”

“교수 회의 때 유명하신 분들 자리를 먼저 잡아두고 학생들 채우자고 해서요.”

“아니. 우리 대학 일에 왜 다른 사람들까지 불러?”

“저도 처음엔 무슨 말씀이시냐고 했죠. 그런데 명단 보니까 오지 말라고 하기에도 그렇더라고요.”

“대통령이 온다고 해도 양해를 구해야지. 명단 있어?”

“잠시만요.”

장미래가 스마트폰을 펼치더니 곧 알람이 울렸다.

대체 누가 오기에 장미래마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지 궁금해서 할아버지 곁으로 갔다.

[2028 한국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정년 퇴임식 참가 희망 명단]

한국대학교 이응겸 총장

한국대학교 배진기 인문대학장

한국대학교 권대식 사회과학대학장

주로 한국대학교 관련 인물들이 많이 참석한다. 각 대학과 학과 교직원들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다.

할아버지도 직장 동료들이 오는 걸 꺼리진 않으신다.

대한예술협회 최영수 회장

대한예술협회 나정웅 이사

고려당 이성진 국회의원

고려당 김동윤 국회의원

신라당 이지영 국회의원

백제당 박은순 국회의원

길상수 서울시장

국회의원과 시장은 그렇다고 치고 대한예술협회는 무슨 일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대한예술협회가 뭐 하는 곳이에요?”

“우리나라 예술가 권익 지켜주는 척하는 데야.”

“척?”

“척.”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도, 장미래도 협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한 적 없다.

“이 사람들이 내 퇴임식에 왜 와? 얼굴도 모르는데.”

“동문이라고 하시던데요?”

“난 정치하는 인간들 동문 취급 안 한다.”

장미래를 보자 그저 웃는다.

계속 보니 어디 기업 임원도 온다고 하고, 예전에 나 때문에 일정이 변경되었던 김형우라는 작가를 포함해 예술가들도 많이 오는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개인적인 친분을 나눈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반 고흐 재단 이사장이자 할아버지의 친구 마틴 얀센과 제품 디자이너 리처드 필립스 등 외국 사람들 이름도 눈에 띈다.

“…….”

“…….”

앙리 마르소다.

“이 녀석한테는 왜 연락했어?”

할아버지가 펄쩍 뛰었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했어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상한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내가 앙리 마르소를 두둔하자 할아버지가 끄응 하고 혀를 찼다.

“할애빈 거만한 사람이 제일 싫어.”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나저나 저번 방송을 끝내고 전화한다고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까먹고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전화 한번 해봐야겠다.

“쓸데없이 일이 커졌구나.”

“다들 축하하고 싶은 거예요. 해송 고수열 화백의 복귀전이니까.”

보통 퇴임이라고 하면 슬픈 느낌일 텐데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다들 반가워하는 눈치다.

방태호도 그렇고 장미래도 그렇고 얼마 전에 안부를 물었던 피에르 말로도 할아버지가 전시회를 연다고 하니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고 서운해했다.

“그럼 일정이 어떻게 되나?”

“내일 오후 6시에 WH시네마에서 식 시작하고 9시부터는 같은 건물 3층에서 파티 예정해 두었어요. 전야제 느낌으로.”

“끄응.”

“다음날부터 서울미술관에서 전시회 하는 건 알고 계실 테고.”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신다.

다들 할아버지의 예전 화풍만 기억하고 있을 텐데 모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일 9시부터 한다는 이브닝 파티 또한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많이 나올지 기대된다.

장미래의 말로는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뷔페를 즐길 수 있단다.

“내일은 밥 먹지 말아야겠어요.”

그런 희망을 품고 말하자 할아버지가 눈을 깜빡이신다.

“무슨 말이냐?”

“밤에 맛있는 거 많이 먹으려면 배를 비워둬야죠.”

“밤 9시부터 하는데?”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면 반나절 정도 굶는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시간이 너무 늦잖니. 집에 있어.”

“그래. 이모가 피자 사다 줄게. 행사 중에 데려다주기도 힘들고 집에 있으면 안 될까?”

“…….”

그 맛있는 걸 포기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신다.

그러나 고집을 부려봤자 할아버지와 장미래에게는 애가 떼쓰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터.

어머니, 아버지를 설득할 때 사용하던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집에 혼자 있기 무서워요.”

* * *

1)인생을 가장 멋지게 사는 방법은 가능한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

-빈센트 반 고흐

2)우리가 아무것도 시도할 용기가 없었다면 삶은 어떠했을까?

-빈센트 반 고흐

3)한국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모집 인원은 수시 15명. 자율전공은 수시와 정시 합이 1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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