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43화
32. 사랑과 용기와 사탕(4)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자 차시현이 옆에서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흥을 돋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캠 각도를 돌렸다.
채팅창이 키읔으로 도배되었다.
촬영이라도 하시는 건가.
스마트폰 너머 할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괴롭다.
유치원 다닐 때 강제로 율동을 추며 노래 부르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1)
닉네임 쭝쭝과 장미래를 용서할 수 없다.
“이제 돈 주지 말아요. 안 받아요.”
엄포를 늘어놓으니 뭐가 그렇게들 좋은지 다들 웃고 난리다.
캠 각도를 원래대로 고치는데 자꾸 누가 후원한다는 소리가 난다.
└[백유진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한 곡 더
└그냥 얼굴 보여줘ㅋㅋㅋ
└한 곡만 더 가자.
“안 할 거예요.”
└[맞춤법 대법관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마지막 가사 오예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감탄사입니다. 다만 명사로 ‘지저분하고 더러움’이란 뜻으로는 기재되어 있습니다.
└앙리하고 듀엣 불러주세요.
└솔직히 10만 원에 한 곡만 부르는 건 에바지.
└[장 프랑수아 미래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짜장면 사 줄게. 춤도 추자.
└[Jiwoo K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기사에 영상 첨부하게 편집본 올려줘.
장미래에게 짜장면 내 돈 주고 사 먹으면 된다고 말하려던 차, 김지우가 보낸 채팅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딴 걸 기사로 올리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썼단 봐요! 인터뷰 다시는 안 할 거예요!”
시청자들이 또 불 모양 이모티콘을 올린다.
“언론 탄압.”
“시끄러워!”
차시현이 입방정을 떠는 바람에 채팅창이 언론을 탄압한다는 말로 가득 차버렸다.
겨우 진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커터칼을 눕혀서 힘을 빼고 물감을 조금씩 긁어냈다. 물감이 벗겨지면서 흰 선이 나타난다.
“사탕 표면이 매끈하지 않잖아요. 이렇게 긁어내면 비슷한 느낌이 나요.”
“수채 물감도 되는지 몰랐어.”
차시현이 신기한 듯 관찰했다.
“살살 힘 조절을 잘해야 해. 아니면 종이까지 일어나.”
공들여서 작업하다가 문득 채팅창을 확인하니 머리 때문에 안 보인다고 다들 성을 내고 있다.
“다 돼가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시계 부품을 꺼냈다.
“이게 뭐야?”
“시계.”
“시계인 건 알아. 왜 이것만 있어?”
“여기에 달려고. 네 것도 있어. 가져가.”
차시현이 눈을 깜빡이며 나와 시계 부품을 번갈아 보았다.
“이런 건 어디서 사?”
“다있소.”
“다 있소?”
“응. 다 있어.”
다있소에는 다 있다.
사탕 그림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벽시계에서 분리해 둔 시침과 분침, 초침을 차례로 연결했다.
되도록 간단한 구조로 된 물건을 찾아서 조립이 어렵진 않았다.
건전지를 넣으니 잘 돌아간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응.”
차시현도 잘 만들었다.
└시계 리폼?
└예쁜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닼ㅋ
└제육덮밥 먹고 싶다.
└시간 맞추세요.
└구슬처럼 생겼네ㅋㅋㅋ
└이제 숫자 적으면 될 듯.
└사탕이래잖아.
└시계 주제에 맛있게 생겼다.
“사탕 시계 맞아요. 숫자는 안 그릴 거예요. 시현아, 그거 좀 빌려줘.”
“응.”
화면에 나와 차시현의 사탕 시계가 나란히 보이도록 했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휘트니 비엔날레에 벽시계 두 개를 나란히 걸어두었어요. 제목은 없지만 부제는 완벽한 연인이래요.”
채팅창을 보니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똑같이 생긴 시계에 동시에 새 건전지를 넣어서 시간이 같이 흐르도록 했어요. 첫날에는 완전히 같아 보였는데 얼마 전에 가서 보니까 한쪽은 멈췄고 다른 한쪽은 위태롭게 움직이더라고요.”
“하나 멈췄구나.”
차시현이 적절히 호응해 주어서 말하기 편하다.
“아마 그것까지 상정하고 전시했을 것 같아요.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언젠가는 어느 한쪽을 먼저 보내야 한다고요.”
누군가 그러면 완벽한 연인이 아니지 않냐는 채팅을 올렸다.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어도 그를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곤잘레스가 멋있어요. 함께했던 시간 모두 완벽했단 뜻이잖아요.”
할아버지와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되면서 이 작품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완벽한 연인이 정말 연인을 말하는 걸까 싶기도 해요.”
“무슨 말이야?”
“요즘 예술을 동시대 예술이라고 하잖아. 같은 시대의 예술이라는 말인데, 그렇게 묶어서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예술가 모두 다른 시간을 살고 있으니까.”
“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동시대성을 띠면서도 한 사람씩 눈을 감게 되겠지.”
“슬프다.”
“어쩔 수 없지.”
사람마다 허락된 시간이 다르고 시작과 끝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 미술을 ‘동시대 예술’로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할아버지, 장미래, 앙리 마르소 그리고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에게 영향을 받았듯.
앙리 마르소가 할아버지와 내게 영향을 받은 것처럼.
서로에게 강한 영감을 주기 때문이리라.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비록 죽더라도 그의 정신은 내 마음 한쪽에 남아 있으리라.
“기사 보신 분 계실지 모르겠는데. 곤잘레스에게는 루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많이 아프대요.”
곤잘레스가 아픈 사실은 아직 비밀로 하는 것 같아서 언론에 보도된 루이에 관해서만 언급했다.
└나도 봄.
└죽어가는 애인 생각하면서 만든 거였구나.
└무제: 완벽한 연인 오마주 작품이었네.
└오늘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광고 방송임?
└아, 나 걱정된다. 훈이한테 괜히 해꼬지 하는 인간 생길까 봐.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위선자임. 동성애하고 싶으면 혼자 하면 되지 굳이 그걸 밝혀야 했나? 그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봐봐 ㅠ 저 또라이
└또라이라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방금 뜬 기사 보면 곤잘레스도 에이즈 걸림. 동성애 끝은 다 안 좋음. 후회한다는 사람도 있었어.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사실 무서워요. 괜한 말 꺼내서 괜한 미움 살 수도 있으니까요.”
무섭지 않을 리 없다.
나는 명성과 평판 그리고 인기로 작품을 파는 사람이다.
그림을 팔든 이렇게 방송을 하든 쉬민케와 한 계약처럼 광고든 모두 사람들의 관심을 기반으로 한다.
대중에게서 내 인식이 나빠지면 나는 수입원을 잃고 만다.
다시 저 나락을 떨어지는 거다.
그래서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를 지지하고 나서는 게 두려웠다.
할아버지와 장미래의 말을 들어 보면 그들을 혐오하는 사람이 생각 이상으로 많으니까.
그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도 우스운 것이 나조차 동성애에 대해선 그리 우호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지 너무나 명확하다.
“동성애 끝이 안 좋다고 하셨는데,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조심스럽게.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꼭 더 좋은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그 좋은 결과라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 하고.”
방태호가 싸움이 난 몇몇 시청자에게 경고를 주었다.
채팅으로 그들을 내보내지 말라고 부탁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할아버지랑 미래 이모가 알려줬어요. 자유가 좋은 이유는 더 좋은 결과를 낳기 때문이 아니라고. 그 자체로 소중한 거라고.”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자유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스스로 자유를 찾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자유를 제창하던 사람이 권력을 탐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 가면을 쓴 돼지가 황제로 즉위하기도 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 귀족층을 모조리 죽여버린 프랑스 시민들은 이후 벌어진 전쟁에서 지휘관이 없어 참패를 당하며 또 다른 사실을 배웠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에 책임이 따름을.
내 자유는 나만이 누릴 수 있고 나만이 책임질 수 있다.
그렇기에 타인을 책임질 수 없고 타인의 자유를 앗아가는 행위가 범죄인 것이다.
“동성애를 싫어하시는 분이 틀렸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서. 그래서. ……응원하고 싶어져요.”
내가 뭐라고 그를 동정할까.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평생 개념 미술이라는 난해한 장르를 대중과 연결하기 위해 투쟁해 온 위대한 예술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를 보호하겠다고 미국 민주당 사람들처럼 이상한 말을 해대는 게 아니라.
근사한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게 아니라 그가 외롭지 않도록 할 뿐이다.
내게도 그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사탕처럼.
“숫자는 안 그리는 게 좋겠다!”
옆에서 사탕 시계를 빤히 보던 차시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녀석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서 묻자 나와 같은 생각을 꺼냈다.
“언제 멈추는지 모르잖아.”
* * *
어떻게 또 한 번 고비를 넘긴 것 같다.
“페르디난도.”
눈을 뜨자 매니저가 다급히 의사를 불렀다.
주치의는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각오했던 일을 확인해 주었다.
내일이 될지 일주일 뒤가 될지 모르나 이제 잠들면 다시 못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가까스로 의식의 끈을 붙잡은 채 일 분이라도 더 루이와 함께하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두어서 다행이다.
루이 재단은 자산 운용가들이 제 역할을 해주는 한 <79㎏>과 <34㎏>을 전시해 줄 터.
매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예술가들을 도와줄 거다.
“루이.”
“어?”
“……루이랑 통화하고 싶어.”
힘겹게 말을 꺼내자 매니저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성질도 급하지.
마지막 인사도 없이 먼저 떠나려는 모양이다.
“솔직하게. 말해줘.”
매니저는 말을 몇 번 삼켰다.
“의식이 없대. 이제 힘들 거라고.”
“……그래.”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했던 일이 찾아왔을 뿐이다. 그나마 혼자 남아 있을 시간이 길진 않을 것 같다.
분명 그렇게 생각할진대.
목이 조여온다.
가슴이 미어진다.
항상 함께하니까.
죽어서도 함께하니까 괜찮다고 여겼지만, 그 능글맞은 미소를 더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다.
동시에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을까 하는 의문이 밀려든다.
10년 동안 해온 일들이 내가 죽은 뒤에는 아무 의미도 없이 잊히진 않을까.
<79㎏>과 <34㎏>이 그저 쓰레기처럼 여겨지진 않을까.
끝에 이르자.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어졌다.
부우웅- 부우웅-
매니저가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조심스레 묻는다.
“고수열 경이신데.”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벅차다.
-페르디난도!
“……수열.”
매니저가 연락해 주었나?
아니면 기자들이 벌써 내 이야기를 알리기라도 했나. 아니, 행사 도중에 쓰러졌으니 당연히 그랬겠지.
액정 너머 비치는 수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난.”
자꾸만 눈이 감긴다.
“수열이 더 많이 활동하면 좋겠어요.”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을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훈이랑 같이. 더 멋진 세계를 보여줘요. 더 많은 사람에게.”
-자네…….
“훈이에게. 고맙다고 해줘요. 79㎏하고 34㎏. 달콤한 행복이 아니었으면 생각 못 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쇼콜라티즘이란 말이 장난스럽게 느껴졌다.
몸이 안 좋아서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가상 전시회를 통해 캐롤라인 스트릭이 얼마나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행복을 전하는 달콤함.
거짓 하나 없이 꾸밈없는 사랑.
<79㎏>과 <34㎏>을 이루기에 초콜릿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많은 양을 쌓아 올리는 문제와 보관 문제로 사탕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 아이디어는 고훈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내 지금 가겠네. 서두르면.
“수열.”
한 번 더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잘 되겠죠?”
무섭다.
내가 죽은 날은 제법 시끄럽겠지.
어쩌면 1년 뒤에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년 뒤나 20년 뒤에는?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내가 지워지진 않을까.
자꾸만 불안해진다.
-자네 작품은 내 책임지고 지키겠네.
수열이 믿음직스럽게 약속했다.
그라면 믿을 수 있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
“고마워요.”
루이의 몸무게만큼의 사탕을 여러 미술관에 둠으로써 방문객들이 그것을 자유롭게 즐길 테고.
나와 루이는 그들 속에 영원히 살아가게 될 거다.
비워도 비워도 내일 아침에는 또다시 차오르는 사랑처럼 영원히.
영원히 남기를.
-훈아, 시현아. 그거 잠깐 들고 있어 볼래?
수열이 카메라 방향을 돌려 시계를 들고 있는 두 소년을 보였다.
한쪽은 작년에 알게 된 멋진 화가였고 다른 한쪽은 모르는 아이다.
싱긋 웃고 말았다.
“멋지네요.”
마지막으로 보는 미술품이 설마 내 작품을 재구성한 것일 줄이야.
그것도 앞으로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갈 어린 천재가 헌정해 준 작품이라니.
비록 단 한 번 인사를 나눴을 뿐이지만 고훈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나를 보여주고 있다.
저 아이와 같은 시간을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서로에게 좀 더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제목은 페르디난도와 루이예요.
어린 화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게 페르디난도. 이게 루이.
아아.
그래.
잊히진 않겠구나.
저 아이가 나를 기억해 주는 한, 혹시라도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지우더라도 고훈과 저 아이의 작품세계에 내 흔적이 남아 있겠구나.
“……영광이야.”
저 아이들의 앞날에 희망이 깃들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가 함께하길 바란다.
“쉬어야겠어요.”
-그러게. 내일 보세.
내일.
내일이라.
* * *
1)2024년 당시 만 6세였던 고훈은 유치원 교사 앙브르(33세)의 초콜릿 몽블랑에 회유되어 ‘Sur le pont d'Avignon(아비뇽 다리 위에서)’에 맞춰 율동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