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42화
32. 사랑과 용기와 사탕(3)
고훈의 개인 방송을 지켜보던 앙리 마르소가 피식 웃었다.
수채 물감을 다루는 솜씨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던 가락은 있지만 수채 물감의 특성을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고훈에게도 못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는 꼬맹이 주제에 감히 자신을 감동시킨 소년을 잔뜩 비웃어 주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은 두 가지.
하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일이었고 둘은 고훈이 특별 전시회를 거절한 일이었다.
채팅으로 고훈이 무슨 생각으로 초대전을 거절하고 공모전에 지원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그뿐.
고훈은 여전히 한국말로 방송을 이어나갔다.
도중에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를 언급하는 것 같았지만 그에 관해서도 뭐라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림을 구경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오늘은 영 아니었다.
그가 방송을 끄려던 차.
갑자기 고훈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뚜뚜루뚜뚜
앙리 마르소가 눈매를 좁혔다.
“무슨 짓이야?”
기가 막혔다.
저 한심한 수채화를 그리고도 노래 부를 생각이 드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러게. 무슨 짓이야?”
미셸 플라티니가 발로 앙리 마르소의 등을 쿡쿡 찔렀다.
“제정신이 아닌 거지. 색칠하며 놀고 싶으면 내가 보낸 거나 할.”
앙리가 고개를 돌리다가 순간 멈칫했다. 미셸이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왜?”
“왜?”
미셸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앙리는 아침을 먹고 아무 말도 없이 한 시간가량 누워 있던 그녀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젯밤 해준 페디큐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밤사이 사랑 가득한 눈빛을 보내던 그녀였다.
앙리의 생각을 읽은 미셸이 고개를 저었다.
“많이 보세요.”
“볼 필요 없어.”
앙리 마르소가 TV를 끄라고 말하자 고훈의 노랫소리가 끊어졌다.
동시에 화면이 투명하게 되고 TV 너머 방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침대 테이블 위에 비치던 적외선 키보드도 사라졌다.
TV가 천장으로 말려 들어가자 미셸이 입을 열었다.
“왜. 더 봐.”
“알아듣지도 못하는 걸 뭐 하러 봐? 그림도 엉망이고.”
앙리 마르소가 일어나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을 들었다.
“배우지 그래?”
“뭘.”
“한국어. 훈이 말대로 방송 보는 사람이 대부분 한국 사람들인데 불어를 쓰겠어?”
“안 봐. 재미없어.”
미셸은 재미가 없어서 한 달에 한 번 함께 있는 날, 새벽부터 일어나 방송을 봤냐고 묻고 싶었다.
다만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지 않을 뿐이었다.
미셸이 시선을 스마트폰으로 옮기곤 물었다.
“그리고 훈이 괴롭히지 마. 기특하던데 뭐.”
“기특해?”
“그래. 당신 도움 안 받고 경쟁해서 전시회 하고 싶다잖아. 어린애가 얼마나 기특해.”
미셸의 말대로 루브르 국립 예술 살롱전 특별 전시회는 전 세계 예술가가 바라는 무대였다.
2024년 앙리 마르소가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 이사직을 맡으며 대대적으로 개편한 뒤로는 가장 오래된 살롱전이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그해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인정받게 되었다.
내로라하는 유명 예술가도 루브르 국립 예술 살롱전 특별 전시회에 참가하고 싶으나 자격이 안 되어 아쉬움을 삼키는 실정이었다.
“흥.”
앙리 마르소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녀석이 나가면 다른 사람 기회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 일부러 따로 마련해 줬는데 그걸 걷어차?”
“…….”
다른 사람의 기회를 들먹이고 있지만 그저 본인의 호의를 거절당해 성이 났음을 미셸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혹시 몰라? 훈이가 입상 못 할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앙리가 정색했다.
“그놈도 알고 저러는 거야. 자기가 대상 탈 거 아니까 공모전 참가한다고 하지. 그런 확신도 없는데 그런 기회를 거절하겠어?”
“전부터 생각한 건데. 왜 그렇게 싫어해?”
“뭘.”
“그렇잖아. 훈이가 낙하산 소리 듣기 싫다고 그런 일을 한다고? 그 착한 애가? 직접 들었어?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그거야!”
앙리 마르소가 순간 말을 멈췄다.
<해바라기>부터 최근 작업 진행과정을 모조리 확인한 <총탄>까지 고훈이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이 넘어서야 할 존재로 여기는 꼬맹이가 누군가에게 밀린다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다.
“……잘하니까.”
앙리의 말에 미셸이 얼굴을 찌푸렸다.
“뭐?”
“됐어.”
앙리 마르소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미셸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기애와 자부심이 워낙 강한 사람이라 생각지 못했지만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미셸은 앙리가 고훈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열등감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고 생각했다.
미셸이 앙리의 목을 감았다.
“내가 보기엔 네 그림이 훨씬 멋진데?”
반응이 없었다. 미셸은 진심으로 앙리 마르소의 그림을 더 사랑했기에 마음을 담아 한 번 더 확신을 주었다.
“정말.”
앙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마음을 다지는 듯한 목소리에 미셸이 웃으며 입을 맞췄다.
“나가야겠어.”
“어딜?”
“공모전.”
“……어?”
미셸이 드물게 당황했다.
“잠깐. 나가긴 어딜 나가? 네 입으로 기회 어쩌고 했잖아.”
“내 알 바 아니야.”
앙리 마르소가 눈빛을 불태웠다.
언제부터였을까.
미셸의 예상대로 그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낯선 감정에 당황하고 있었다.
열등감.
앙리 마르소는 그 저열한 감정을 인정할 수 없었다.
본인을 스스로 부정하게 됨을, 타인을 시기하는 상태를 용납할 수 없었다.
다른 공모전이라면 모를까.
다행히 루브르 국립 예술 살롱전 심사위원단은 그가 버러지처럼 여기는 평론가 중에 그나마 쓸만한 인간과 명망 높은 예술가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미셸이 그를 말렸다.
“자기가 주최하는 공모전에 참가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국립이야.”
“이름만 국립이지! 사람들을 바보로 알아?”
미셸이 답답한 마음에 소리 질렀다.
올해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 예산은 개인 및 단체의 후원금 28%, 정부 보조금 22%, 협회 소속 예술가의 회원비 9%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 41%는 앙리 마르소가 지원하고 있었다.
앙리 마르소는 2024년 이사로 취임한 이후로 줄곧 거액을 기부하고 있었고 사실상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는 앙리 마르소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프랑스 예술인 중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앙리 마르소가 공모전에 참가할 경우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셸의 지적에 앙리 마르소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익명으로 내지.”
“어?”
“얼굴 내놓을 필요 없잖아.”
“익명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어쩌려고? 시상식 때는? 어차피 밝혀질 텐데 짜고 치는 거라는 의심만 받아.”
“수상하려고 나가는 거 아니야. 고훈만 이기면 돼.”
미셸은 앙리를 바라보다가 그가 진심이라는 걸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성질머리는 익히 알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
미셸이 침대 위에 드러누우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뉴스를 읽어가던 중 한 기사에 눈이 갔다.
[고수열 한국대학교 학장직을 내려놓다]
과감하고 역동적인 화풍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고수열 화백이 내달 3일, 한국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직을 내려놓는다.
미술계는 지금껏 교육자로서 살아 온 그가 예술가로 다시금 활동할 것으로 예측하며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대학교 미술대학은 고수열의 퇴임식을 맞이해 개인전을 연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소재의 서울 미술관에서 8월 3일부터 2주간 고수열의 작품을 19년 만에 볼 수 있을 예정이다.
“고수열 경이 퇴임하나 봐.”
앙리가 고개를 돌렸다.
“다음 달 3일부터 개인전 연다는데?”
미셸이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앙리가 기사를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10년은 늦은 일이야.”
고수열이 젊었을 적 남긴 작품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양 미술에 크게 관심 없던 앙리 마르소에게 고수열이 새로 정립한 한국화의 기개 넘치는 필치는 그가 생각지 못한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가 활동을 멈추고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으니.
앙리 마르소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미셸에게 스마트폰을 넘기려던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투병 중인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어제 휘트니 미술관 행사에 참여한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급격히 위독해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석 달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눈에 띄게 초췌했고 취재 결과 그가 후천면역결핍증후군(AIDS)에 걸렸음이 확인되었다.
측근에 따르면 이미 석 달 전 시한부 선고를 받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자산을 모두 정리하였다고 한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설립한 루이 재단은 그의 마지막 작품의 전시 유지와 빈곤층 후원을 위해 활동한다.
현대 미술계의 상징이었던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비보에 미술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마지막 작품은 8월 1일부터 전 세계 90개 미술관에서 동시 전시될 예정이다.
[미 대선을 앞두고 정쟁의 희생이 된 예술가]
미국의 젊은 예술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커밍아웃 이후 논란에 휩싸였다.
사건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와 작품 전시 협의 중이던 여러 미술관이 계약 중지를 통보하면서 발발했다.
이에 미술계와 성소수자들이 반발하고 나서서 비난 여론이 확산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인 만큼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와 관련한 일은 정계까지 번지고 말았다.
공화당 측 인사는 미술관에게도 곤잘레스의 작품을 전시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고 민주당은 공화당은 이미 17년 전에 폐지된 DADT에 머물러 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1)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언론전이 오가는 가운데,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한 공화당 하원의원이 “봐라. 동성애의 끝은 항상 불행하다. 지금이라도 동성애자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여 빈축을 샀다.
이에 반박하던 민주당 상원의원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를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며 작품 전시마저 차단한 미술관에 배상금을 물려야 한다”며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미술계에서는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정치 싸움에 희생되고 있다며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인의 마지막 작품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편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어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
“왜 그래?”
앙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미셸이 걱정스레 물었다. 몸을 일으켜 앙리와 나란히 붙어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투병 소식에 미셸이 입을 가렸다.
대중과 격리되어 있던 개념 미술의 대중화를 이룬 위대한 예술가에게 닥친 시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 *
1)Don’t ask, don’t tell(DADT).
묻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직역되는 미군 내 불문율.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만 하지 않는다면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직접적인 비난이 아니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도 있으나 성소수자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따르다가 2011년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