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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140화 (95/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40화

32. 사랑과 용기와 사탕(1)

할아버지, 방태호와 의논하여 프랑스 국립 예술 살롱전의 특별 전시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비록 2028년 12월 14일부터 17일까지 나흘간의 짧은 전시회지만 그 취지와 화제성을 고려하면 참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앙리 마르소의 추천 덕분인지 프랑스 국립 미술 협회는 많은 일을 배려해 주었다.

전시하고 싶은 작품은 미리 고지만 하면 얼마든지 걸 수 있고.

독립된 장소를 원할 시에는 파리 마레 지구 오-마레(Haut-Marais)에 위치한 작은 갤러리를 임대해 주겠다고 한다.

수수료도 작품 판매액의 20%를 가져갈 뿐이라 지금까지 했던 어떤 전시회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이렇게 해서 남는 게 있어요?”

이번 작품도 팔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이렇게 운영해서 홍보 비용과 장소 임대 비용이 충당될까 싶다.

“이익을 내려는 행사가 아니니까.”

방태호는 앙리 마르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프랑스 국립 미술 협회를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예술가와 미술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건 참으로 다행이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살롱전 공모에서 수상하지 않았는데 특별 전시회를 열어준다는 점.

대충 찾아보니 특별 전시회 대상이 모두 살롱전 수상자는 아니지만 그 중심으로 이뤄졌다.

“수상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응. 꼭 그런 규정은 없어. 혹시 참가하고 싶어?”

“그런 건 아닌데.”

예술가들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만들어진 살롱전이라고는 하지만 심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절차를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해도 심사위원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일부의 평가로 작품의 순위가 정해지는 게 달가울 리 없다.

동시에 앙리 마르소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열었단 평을 받고 싶지도 않다.

그런 생각을 전하자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셨다.

“그럼 정정당당히 경쟁해서 차지하면 되겠구나. 적어도 조건은 같잖니.”

“…….”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을까.

지금 내가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프랑스 국립 예술 살롱전이라면 이름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 테고 좋은 공부가 되겠다.

마음을 굳혔다.

“할래요.”

“괜찮겠어? 굳이 안 해도 좋은 기회인데.”

“마르소에게 기대고 싶진 않아요. 기회는 제힘으로 얻고 싶어요.”

방태호가 씩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쪽에는 그렇게 전달할게.”

이번 일에서 방태호가 얻을 수익은 없는데 이렇게까지 나서주니 고맙다.

내년에는 그도 나도 좀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준비해 봐야겠다.

“내년에는 돈 되는 일 알아봐요.”

“돈 되는 일?”

“네. 올해 수익 나는 일이 적었잖아요.”

“아. 괜찮아. 쉬민케 일도 있었고 휘트니 비엔날레 경매도 있고. 게다가 뉴튜브 조회 수도 잘 나오고 있고.”

쉬민케와 휘트니 비엔날레 일은 그렇다고 쳐도 뉴튜브 조회 수가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후원도 받지만 큰 돈은 아니고.

“그게 돈이 돼요?”

“응. 아직 수익 실현은 안 되었는데 잘 크고 있어. 벌써 구독자 3만 명이야.”

방태호가 영상을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광고 수입 또는 프리미엄 사용자가 내는 비용 일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나오는데요?”

“아직은 적지. 40만 원?”

방태호와 계약할 때 외부 활동의 경우 10퍼센트를 주기로 했으니 뉴튜브 수입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포테이토 피자 두 판도 못 사 먹을 돈에 만족하니 갑자기 방태호가 안쓰러워졌다.

날 위해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으니 뭐라도 더 하고 싶다.

더욱이 굳이 그림을 팔지 않더라도 수익을 올릴 방법이 생긴다면 나로서도 좀 더 안정된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

“그거 어떻게 하면 더 벌어요?”

“조회 수가 많아지는 게 제일이지. 영상도 자주 올려야 하고.”

“방송 세 번밖에 안 했는데 괜찮아요?”

“사실 이제 편집할 게 떨어졌어. 하하!”

오늘 당장 해야겠다.

마침 차시현과 같이 수채화를 그리기로 했으니 뭘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할게요.”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아니에요. 재밌어요.”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송은 충분히 즐겁다.

몇 번 하다 보니 방송을 어떻게 켜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고 덕분에 채팅창을 관리해 주는 방태호가 굳이 집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딩동- 딩동-

마침 차시현도 도착한 모양.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주자 잠시 후 힘차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그래. 그래. 시현이도 잘 지내지?”

“네!”

할아버지가 차시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럼 일 진행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탁함세.”

방태호가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언제 하려고?”

“한 시간 정도 뒤에요.”

“오케이.”

차시현이 방태호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가 웃으니 꾸벅 인사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인사는 하는 걸 보면 역시 가정 교육을 잘 받았다.

“들어가자.”

“응. 나 엄청 연습했다?”

“이제 잘 그려?”

“잘 그려.”

작업실로 들어가자 차시현이 가방에서 그림 한 장을 꺼냈다.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내 기분이 다 좋아진다.

“오.”

“예쁘지!”

멋진 파란색을 찾았다.

색을 만드는 원리를 가르쳐 준 게 얼마 안 되었는데, 그간 정말 많이 알아본 듯하다.

직접 섞어서 만들었는지 아니면 판매되는 물감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았는지 몰라도 아주 멋들어진 파란색 나무다.1)

“예쁘다.”

못 그렸지만 여러 작품을 접하다 보니 잘 그리는 게 중요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차시현이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이렇게 잘 와닿으니까.

“근데 왜 이렇게 울어 있어?”

“울어?”

“종이. 물 안 먹였어?”

차시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뭔데?”

아무래도 처음부터 설명해야 할 듯싶다.

“수채화는 물이 많아서 배접 작업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종이가 굽어져.”

“배접이 뭐야?”

“이리 와 봐.”

오늘 차시현과 같이 쓰려고 미리 준비해 둔 수채화지를 찾았다. 물을 먹이고 물테이프로 고정해 둔 것을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물을 바르고 반듯하게 펼쳐서 말려야 나중에 이 위에 그림을 그려도 변형이 없어.”

“미리 늘려놓는 거야?”

“맞아.”

똑똑한 녀석답게 이해가 빠르다.

“오늘은 이거 써.”

“어떻게 만들어? 이 테이프 떼면 종이도 뜯기는 거 아니야?”

“칼로 잘 벗겨내야 하긴 하는데 처음부터 테이프 붙은 곳은 활용하지 않으면 되니까.”

“응.”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또 다르다. 할아버지가 사 주신 수채화지를 한 장 더 꺼냈다.

“종이가 달라.”

“코튼지야.”

“뭐가 달라?”

“변색이 거의 없고. 튼튼해. 말라도 그라데이션 주기 쉽고.”

아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 수채화는 다뤄보지 않아서 할아버지의 설명을 전달할 뿐이다.

“할아버지가 수채화는 코튼으로 만든 종이에다가 그리는 게 제일 좋다고 하셨어.”

“몰랐어.”

“나도 몰랐어.”

붓에 물을 묻혀 종이 뒷면에 충분히 발랐다. 화판에 올려두곤 앞면도 물을 가득 바르고 고개를 드니 차시현이 물테이프를 신기하게 살피고 있었다.2)

“나 이렇게 큰 테이프 처음 봐.”

“할아버지가 큰 걸로 사 주셨어. 한 번 사면 오래 쓴대.”

“가위 가져올까?”

“손으로도 잘 찢어져.”

물테이프를 찢어내 한쪽 면을 화판에 밀착해 붙였다. 네 면을 모두 붙여주었다.

“여기 벌써 뜨는데?”

“마르면서 펴지더라.”

차시현이 입술을 쭉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고 말리면 나중에 수채화 그려도 종이가 안 망가지고 번지는 것도 잘 된다고 하셨어.”

“할아버지가?”

“응.”

그림 그릴 준비를 하면서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나눴다. 기억을 되찾았다고 하니 호들갑을 떨었다.

“다행이다! 그럼!”

갑자기 말을 멈추기에 의아하게 바라보니 입꼬리를 내리곤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왜?”

“부모님…….”

생각이 깊은 녀석답게 부모님 일을 걱정해 준다.

“괜찮아.”

“…….”

“안 괜찮지만.”

괜찮을 리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꾀병을 부려서라도 그날만은 나가지 말자고 했을 거다. 아니, 단 1분이라도 늦췄다면 그 트럭과 부딪치는 일은 없었을 터.

“많이 울어서 괜찮아. 1년 만이지만 봉안당도 가봤고. 할아버지랑 같이 있으니까. 계속 슬퍼하고 있으면 더 속상해하실 거야.”

차시현이 나를 빤히 보다가 갑자기 안았다.

당황스럽지만 나를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등을 툭툭 다독였다.

그러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간식을 들고 오셨다.

“얘들아, 수박 먹자.”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곤 눈을 깜빡이신다.

“위로받고 있어요.”

“해주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셨나 보다.

냉장고 안에서 냉기를 머금은 수박은 향긋하고 달콤한 과즙을 자랑했다.

“참. 이따 방송하면서 그려도 괜찮아?”

“응. 나 뭐 해야 해?”

“평소대로 하면 돼.”

“그런 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구독과 좋아요 같은 거.”

“안 해도 괜찮아.”

“안 돼! 그런 거 말해야 눌러준단 말이야.”

“…….”

“어떡해? 나 갑자기 떨려. 진짜 방송 나가는 거야? 옷 괜찮나? 실수하면 어쩌지?”

“무슨 실수.”

당황하는 모습이 조금 재밌다.

“그림. 못 그리면 막 욕하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생각해 보니 무슨 팬티 입었냐고 묻거나 방송 시간 내내 앙리 마르소와 뭐 했냐고 묻는 인간들도 있는데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아니. 그럴지도?”

“아아. 안 돼. 그럼 나 카메라 밖에 있을래.”

“그래. 그럼.”

“그리고 막 얼굴 보이는 거 부끄럽단 말이야.”

“그렇게 해.”

“절대. 절대 보여주면 안 돼?”

의심 많은 녀석이다.

* * *

1)디아민사의 케싱턴 블루.

사진 출처: 펜노니아 공식 홈페이지(www.pennonia.eu), Diamine Kensington Blue (30 ml bottled ink, blue)

2)종이가 클수록 배접 작업은 필수가 된다.

작업을 할 때는 종이 겉면만 젖는 것이 아니라 물이 속까지 침투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종이를 고정하는 방법에는 타카를 이용하는 방법과 물테이프를 이용하는 방식이 있는데, 타카를 활용하는 편이 이후 제거가 용이한 편이다.

고수열의 경우 고훈이 어리기에 타카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물테이프를 권했다.

300lbs 이상의 두꺼운 종이에서는 배접 작업을 생략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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