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38화
31. 갈등(7)
제목: 에버리치 미술관입니다
보낸 사람: Robert_Reed
받는 사람: Ferdi_love
안녕하십니까,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님. 에버리치 미술관 큐레이터 로버트 리드입니다.
귀하의 작품 전시 요청에 감사드립니다.
제안해 주신 새 작품 <79㎏>과 <34㎏>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여 고유한 담론을 형성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에버리치 미술관은 귀하의 미술품을 전시하길 희망하며, 전시 및 판매 방식을 비롯한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래 소개한 직통 번호로 연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무표정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뭐야. 잘 안 됐어?”
그의 연인 루이가 물었다.
“아니. 만나보고 싶대.”
에버리치 미술관에서 온 메일을 보여주자 루이가 씩 하고 웃었다.
“거봐.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연인 루이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몸무게 174파운드의 건장한 신체를 가졌던 루이는 앙상하게 뼈만 남아서 현재는 75파운드밖에 나가지 않았다.1)
말하기조차 버거워하면서도 허세를 잃지 않는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그나저나 그게 다 얼마야. 돈 좀 들겠는데. 130곳이라고 했지?”
“어.”
루이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작품 전시에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았다.
전 세계 130개 미술관에 요청했고 거장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작품을 거절할 미술관은 없을 테니 <79㎏>, <34㎏>을 각각 130점씩 준비해야 했다.
사탕을 대용량으로 사 본 적 없기도 하고, 킬로그램보다는 파운드에 익숙하기에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었다.
루이가 물었다.
“1㎏에 얼마야?”
“대충 25달러?”
“워우.”
그가 작게 감탄했다.
나라마다 물가 차이가 있기에 추측일 뿐이나 130개 미술관에 설치하는 재료비만 따져도 37만 달러 가까이 들었다.
더욱이 시간이 흐를수록 유지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 터였다.
사람들이 사탕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하고 미술관이 전시를 포기하기 전까지는 무한정 공급하기로 했으니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네가 그렇게 돈이 많은 줄 알았으면 브랜디 좀 더 얻어 마실 걸 그랬어.”
루이의 농담에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피식 웃었다.
“고작 브랜디?”
“고작 브랜디라니.”
작게 웃은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루이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날이 좋은데.”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태닝하기 좋겠어. 브랜디도 함께라면 완벽하고.”
“그놈의 술.”
“뭐 어때.”
루이가 잠시 간격을 두고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 하고 싶은데.”
곤잘레스가 무엇이든 말하라는 뜻으로 눈썹을 들어 올렸다.
“병원에서 내가 죽을 것 같다고 하면 브랜디 좀 가져와 줘.”
지금은 투병 중이라 참고 있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그 호화로운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 건배하자.”
곤잘레스가 힘겹게 답했다.
“무슨 소리야.”
루이가 단호히 말했다.
“간도 안 좋은 녀석이 술은 무슨. 나만 마실 거야.”
“야.”
“부럽지?”
루이의 황당한 질문에 곤잘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꺼내는 그가 신기했다.
“다른 건.”
“다른 거?”
“필요한 거 없냐고.”
“글쎄.”
루이가 고개를 돌려 침대 옆 서랍을 보았다.
“서랍 좀 열어 봐.”
“여기?”
“아니. 제일 아래.”
곤잘레스가 세 번째 서랍을 열었다.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돌아보니 루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게 뭐야.”
“갖고 싶은 거. 열어 봐.”
곤잘레스가 상자를 열었다.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반지를 꺼내어 살폈다. 안쪽에 두 사람의 이니셜이 각인되어 있었다.
“언제…….”
“까먹었어.”
곤잘레스가 결혼반지를 소중히 바라보았다.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2)
다만 루이는 아직도 편견이 팽배한 사회에서 유명인인 연인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보수적인 인물이 다수 포진한 공화당이 정권을 잡은 지 오래.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의 예술 활동에 큰 걸림돌이 되리라 생각했다.
연인이 오직 작품으로 평가받길 바랐던 루이는 몇 번이고 커밍아웃하려던 연인을 만류했다.
“한번 끼워나 보자고.”
루이가 힘겹게 왼손을 들었다.
곤잘레스가 반지를 꺼내 루이의 손가락에 끼웠다. 앙상해진 그의 약지가 더욱 애처롭게 보였다.
“엄청 크네. 예전엔 딱 맞았는데.”
루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곤잘레스가 자신에게도 끼워달라며 반지와 손을 건넸다. 루이가 반지를 겨우 들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괜찮네.”
“그렇지?”
두 사람이 씩 하고 웃었다.
그렇게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나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곤잘레스가 일어났다.
“내일도 올게.”
“그래.”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돌아서자 루이가 다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야, 반지 빼고 가야지.”
루이가 눈짓으로 반지를 가리키자 곤잘레스가 피식 웃었다.
“싫은데?”
“뭐?”
“줄 땐 언제고 돌려달래. 이제 내 거야.”
“그게 아니라.”
“내 거라니까?”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본인의 입장 때문에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일을 후회했다.
한때는 비난이 두려워서.
힘들게 다진 기반을 잃을까 무서워서 루이의 조언에 따랐지만 그가 오랜 세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숨겨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갑자기 뭔 소리야. 빨리 두고 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싫다니까.”
* * *
[눈에 띄게 여윈 페르디난도]
[세기의 예술가와 반지를 나눈 사람은 누구?]
[캐롤라인 스트릭, “전 세계 동시 전시는 시대성을 반영하는 일.”]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전 세계 동시 전시 준비]
17일. 개념 미술을 선도한 미국의 예술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새 작품을 선보인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전 세계 130개 미술관과 계약을 진행 중이라며, 작품이 판매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전시된다고 덧붙였다.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어떠한 보상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한편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그의 자랑이었던 탄탄한 근육을 잃은 채 두 달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팬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와 관련한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아무래도 앙리 마르소, 장미래와 함께 시대를 이끄는 예술가로 인정받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130곳이나 되는 미술관에 동시에 전시하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장미래도 전 세계 동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각자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나름대로 추측해 보고 있자니 승무원이 기내식을 가져다주었다.
치즈와 드레싱을 곁들인 토마토 샐러드와 파스타, 브로콜리와 함께 익힌 닭고기다.
“곤잘레스 작품 한국에서도 전시할까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서울에서도 볼 수 있을지 궁금하여 할아버지께 여쭸다.
“그럴 거다. 배움 미술관에 의뢰했다고 들었으니.”
방태호의 도움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던 미술관이다. 집 근처라서 구경하는 데 별문제 없을 것 같다.
할아버지가 식사는 안 하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신다.
“무슨 생각 하세요?”
“아니다. 먹자.”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데 거짓말하신다. 빤히 바라보니 어쩔 수 없이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단다.”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곤 브로콜리를 골라내다가 할아버지에게 핀잔을 받았다.
“골고루 먹어야지.”
“맛없어요.”
“건강에 좋아.”
“할아버지도 아스파라거스 안 드시잖아요.”
절대로 먹고 싶지 않아서 반격하자 할아버지가 아스파라거스와 나를 번갈아 보셨다.
누구나 먹고 싶지 않은 게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바랐거늘.
남은 아스파라거스를 한입에 다 털어 넣고는 우적우적 씹으신다.
“…….”
“자, 봤지?”
얼마나 싫으면 눈을 부라리면서 억지로 턱을 움직이는데, 반론의 여지가 없다.
조금이라도 맛을 숨기기 위해 파스타 소스를 묻혔다.
파프리카, 미나리, 마늘처럼 맛있는 채소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이걸 먹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으음.”
맛도 식감도 느끼기 싫어 대충 씹고 삼키자 할아버지가 신음했다.
역시 무리하신 듯하다.
식사를 마치고 뉴스를 보다 보니 잠이 밀려들었다.
-……잘레스의 전 세계 동시 전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이야기에 눈을 떴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네 시간 정도 잤던 모양이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후원자 중 일부는 후원 중단 의사를 밝혔습니다.
무슨 말이지.
눈을 비비고 모니터를 보니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충격의 커밍아웃’이라는 문구가 하단에 대문짝만하게 달렸다.
무엇을 밝혔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혹은 잠든 사이에 보도되었거나.
“끄응.”
할아버지가 잔뜩 인상을 쓰고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한쪽 이어폰을 빼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할아버지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에 비밀이라고 했던 말 있잖으냐.”
“네.”
“……페르디난도 이야기였어. 동성애자라고 밝힌 모양이구나.”
놀랐다.
그가 동성애자란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 사실에 놀란 내게 더 놀랐다.
교조화된 교회에 그렇게 실망했으면서도 아직 그들의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후원하지 않겠다고 하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
휘트니 비엔날레는 정말 다양한 작품으로 가득했다.
장르와 형태, 목소리에 구애받지 않고 너무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모두가 서로를 존중했다.
그런 사회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로 후원을 중단하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앞선다.
그런 생각을 전하니 할아버지가 또 한 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람이나 집단은 어려워질수록 보수적으로 행동한단다.”
무슨 뜻으로 한 말씀인지 알 것 같다.
14~16세기 봉건사회의 변화와 총, 대포 등이 발명될 시기에 기사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보단 기사도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특권의식을 고취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음에도 기사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규율을 만들어 스스로 옭아매고 점차 폐쇄적으로 변질했다.
스페인의 한 작가는 <라만차의 돈키호테>라는 소설로 이를 풍자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인구가 계속 줄고 있어. 지금 남은 세력은 교리를 강하게 내세우는 곳뿐이고.”
“곤잘레스하고는 무슨 상관이에요?”
“영향력이 강하니까. 그러지 않아도 세계적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는데, 페르디난도처럼 유명인도 합세하니 위기의식을 느낀 거란다.”
그들에게는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원래 숨기고 있었어요?”
“법적으로는 허용되었어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힘이 세거든. 특히나 공격받기 쉬운 입장에서는 무서울 수밖에.”
평판에 따라 좌우되는 예술가에게 완벽한 적이 생긴 건 크나큰 장벽이 되리라.
-한편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로 한 에버리치 미술관은 계약을 전면 파기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
-여러 미술관이 지지와 전시 계획 철회 입장을 표명하는 가운데,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전 세계 동시 전시 성공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일은 모르겠다.
정치적인 일도 모르겠다.
동성애에 관한 일 또한 모르겠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일도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생을 마무리하는 뜻으로 구상한 예술품을 전시하려는 그를.
예술 하는 사람으로서 같은 사람으로서 돕고 싶다.
* * *
1)174lb는 약 79㎏, 75lb는 약 34㎏
2)뉴욕주는 2011년 7월 24일부터 동성애 커플의 결혼이 합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