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37화
31. 갈등(6)
-물어보긴 뭘 물어봐!
앙리 마르소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셰리 가도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은 것 같다.
-메일이나 확인해.
전화가 끊어졌다.
셰리 가도의 요리를 또 맛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허무히 사라지고 말았다.
메일함을 열었다.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Société Nationale des Beaux Arts. SNBA)에서 보낸 편지가 막 도착해 있었다.
편지를 열었다.
제목: SNBA에서 보냅니다
보낸 사람: Salon_SNBA 님
받는 사람: PotatoPizza 님
안녕하십니까, 고훈 작가님.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 운영관리팀의 로빈 위고입니다.
우리 SNBA는 매해 12월 프랑스 국립 예술 살롱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12월 14일부터 17일까지 세계 각국의 예술가를 초청하여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이에 고훈 작가를 모시고 싶습니다.
우리 SNBA의 앙리 마르소 이사님은 고훈 작가의 대담한 화풍과 도전 의식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공문을 첨부하여 소속사 선플라워와 고훈 작가님께 보내드리오니 회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앙리 마르소가 뭐 하냐고 고집스럽게 물었던 이유가 이것인 것 같다.
처음부터 말을 돌리지 않고 초대전 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봤으면 기쁘게 받아들였을 텐데.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그나저나 들어본 이름인데.’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를 검색해 보았다.
테오필 고티에, 외젠 들라크루아,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에두아르 마네 등이 1861년에 창설한 단체라고 나온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왕립 미술원에 반발하여 만들어진 단체가 160년도 훌쩍 넘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다.
좀 더 찾아보니 이후로도 꾸준히 활동하고 실패하길 반복하다가 샤반, 듀란, 로댕 등에 의해 다시금 구성되었다고 한다.1)
프랑스 예술가들의 혼이 이어진 곳으로 지금은 앙리 마르소도 한 축을 담당하는 듯하다.
훌륭하다.
나도 한때는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예술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랐다.
두 달도 안 되어 실패하고 말았지만 내가 아를과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2)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나로서는 부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무례하고 뻔뻔하다고는 하지만 앙리 마르소 또한 예술가들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나 역시 포기했던 꿈을 다시 찾아야겠다.
그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
부우웅-
마침 방태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아저씨.”
-훈아, 메일 봤어?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에서 보낸 거.
“방금 봤어요. 어때요?”
-괜찮아. 그러지 않아도 일정 알아보고 있었거든. 후보 추려서 보내줄 테니 한번 살펴봐.
프랑스 국립 예술 살롱전 말고도 다른 행사를 알아보고 있었던 듯하다.
어떤 전시회가 있는지 모르는 나로서는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럴게요.”
-응. 내가 보기엔 앙리 마르소가 조건을 잘 잡아준 것 같아.
방태호와 통화를 마치고 앙리 마르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길게 이어지다가 앙리 마르소의 심술 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
“메일 봤어요. 다른 행사 알아보던 중인데 참고할게요.”
-그러든가.
“고마워요.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았잖아요.”
-시끄러워.
앙리 마르소가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대충 한 시간이 흘렀는데, 할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없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와 이야기가 길어지는 듯하다.
연락하실 테니 그때까지는 여유롭게 돌아다녀야겠다.
“오.”
전에 왔을 때는 못 보던 작품이 있다.
천장에 색을 칠한 막대를 여럿 걸어두어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작품이다.
막대를 여러 색으로 칠함으로써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이 보인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재료부터 구상, 말하고자 하는 내용까지 정말 가지각색이라 매번 놀라게 된다.
다음 작품은 또 무엇일지 설레며 발을 옮겼다.
부우웅- 부우웅-
전시회를 즐기다 보니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 7시니 대충 4~5시간이 순식간에 흐른 거다.
“네. 할아버지.”
-많이 기다렸지.
“아니에요. 재밌는 거 많아요.”
-데리러 가는 중이야. 10분 뒤에 앞에서 보자.
“네.”
할아버지 목소리가 잠겨 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하며 밖으로 나서자 곧 택시 한 대가 휘트니 미술관 앞에 섰다.
할아버지가 타라고 손짓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깨가 늘어지고 얼굴이 어두운 것이 잔뜩 지쳐 보이신다.
“무슨 일 있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서 이야기하자.”
호텔로 가는 도중에 할아버지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많이 안 좋아요?”
고개를 힘겹게 끄덕이신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라면 39살로 알고 있는데 죽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다.
“못 고친대요?”
“너무 늦게 알았대. 치료제가 있는데, 합병증이 함께 와버리면 대책이 없다고 하더구나.”
할아버지가 후천면역결핍증후군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암에 걸렸다고 설명해 주셨다.
전자는 무슨 병인지 모르나 암이라면 어머니와 함께 본 드라마에서 들어본 적 있다.
이식 수술을 받으면 낫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른 모양이다.
“수술 같은 걸로도 치료 못 해요?”
“이식을 못 받는 경우래.”3)
“…….”
그를 뛰어난 예술가로만 보는 나조차 이렇게 안타까운데 개인적인 친분을 나눈 할아버지는 오죽할까.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어서 손을 얹었다.
* * *
“어?”
WH배움 미술관의 김정민 사원이 두 눈을 의심했다.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거물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직접 보낸 이메일 때문이었다.
“저, 과장님.”
방태호가 퇴사하고 승진하여 과장을 맡은 성귤 과장이 고개를 돌렸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작품 전시 의뢰를 했습니다.”
성귤 과장이 눈을 깜빡였다. 아침부터 무슨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느냐는 눈빛이었다.
“정말로요.”
김정민이 사내 메신저로 메일함 링크를 보냈다.
성귤 과장은 눈매를 좁히며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보낸 이메일을 확인했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공개한 이메일 주소와 동일했으며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엔 내용이 구체적이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전시할 작품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탕?”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8월부터 WH배움 미술관의 입구 또는 휴식 공간에 79㎏의 사탕을 놓아주길 바랐다.
또한 그와 마주한 공간에 34㎏의 직사각형의 녹색 사탕을 잔디처럼 깔아주길 원했다.
사탕의 종류는 한국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자유롭게 하며 하루에 한 번씩 줄어든 무게만큼 더해주길 요구했다.
사탕을 보충하는 돈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기획사가 한 달에 한 번씩 대납하는 조건으로.
기한은 WH배움 미술관이 그 작품을 더 이상 전시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까지였다.
그의 작품들이 평범하지 않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곤잘레스 메일 확인하고 30분 뒤에 회의 좀 하자.”
“네.”
WH배움 미술관이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요청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세계 곳곳의 미술관도 같은 요청을 받았다.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의 큐레이터 카로 세도르프는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카로.”
반 고흐 미술관 관리처장 케빈 맥컬리가 퇴근 후 펍을 찾았다.
“재밌는 일이라도 있어?”
케빈 맥컬리가 맥주를 주문하며 물었다.
“그게.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전시 요청을 했거든.”
케빈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멋진데. 좋은 일이잖아.”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라고 하면 세계 어디서든 초청하길 바라는 작가였다.
그런 사람이 먼저 전시 요청을 했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격이었다.
“전시회는 아니고. 두 작품뿐인데 조건이 이상해서 말이지.”
케빈이 주문한 맥주를 들이켜며 친구와 시선을 마주했다.
시립 미술관 큐레이터 카로 세도르프는 사탕 79㎏과 34㎏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매일 채워 놓으라는 말이지?”
“그래. 전시하고 싶지 않을 때까지. 비용은 한 달 간격으로 청구하고.”
“흠.”
여러 미술을 접했던 케빈에게도 낯선 이야기였다.
“어떻게 생각해?”
친구의 질문에 케빈이 고민을 이어갔다.
곤잘레스는 네덜란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탕을 미술관 입구나 휴식 공간에 아무렇게나 쌓아달라며, 그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듣기로는 작품을 전시하는 것보단 아이들을 위한 일 같은데. 미술관에서 아이들 끌어들이려고 하는 방법처럼.”
“그러니까 말이야.”
케빈이 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긴 하지만 문제 될 거 있나? 곤잘레스의 작품이면 뭐든 화제가 될 테고 방문객도 많아질 텐데.”
“그건 그렇지.”
케빈과 카로가 잔을 부딪쳤다.
한편.
앙리 마르소의 추천으로 고훈에게 살롱전을 제안한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도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제안서를 받았다.
운영관리팀 소속으로 살롱전 기획에도 참여하는 로빈 위고 또한 여러 미술관 직원들과 같이 의아해했다.
사탕을 어떻게 배치해 달라는 이야기도 없이 그저 무게만 계속 유지해 달라고 요구하니,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중요한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요구를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을 이어가던 중에 팀원 중 한 명이 나섰다.
“누군가는 이해하겠지. 다른 작품을 내리고 전시해야 하는 조건도 아니고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야 그렇지.”
“저, 이상한 게 점심시간에 비슷한 이야기 들었거든요.”
“비슷한 이야기?”
“네. 빅토리아 앤 앨버트 어린이 박물관에 일하는 친구가 곤잘레스에게 같은 제안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로빈 위고와 팀원들이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이야?”
“네. 제가 먼저 이야기도 안 했는데 똑같은 내용이라 이상했어요.”
잠시 고민한 로빈 위고가 입을 열었다.
“다들 알 만한 사람들한테 물어봐. 내용은 말하지 말고 페르디난도 곤잘레스한테 의뢰받은 일이 있는지.”
* * *
1)자료 출처:
Salon des beaux arts 공식 홈페이지(http://www.salondesbeauxarts.com/histoire-snba)
2)빈센트 반 고흐는 아를에서 화가 공동체를 이루길 바랐다. 지인들에게 참여를 독려했지만 이에 호응한 작가는 폴 고갱뿐이었으며 두 사람은 함께한 지 약 두 달 만에 갈라서게 된다.
3) 활동성 에이즈 환자는 간 이식 수술을 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