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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135화 (90/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35화

31. 갈등(4)

몸에 이상이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한 뒤에 할아버지와 단둘이 병실에 남았다.

“기억이 나? 응?”

뺨을 어루만지는 애틋한 손길과 표정으로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하셨는지 알 수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정말 지옥에 떨어진 줄 알았다.

그러나 온몸이 부서질 듯한 압박 뒤에 찾아온 익숙한 감각들에 당황했다.

공기, 소리, 감은 눈 너머로 느껴지는 빛은 이승의 그것이었다.

당시에는 다시 태어났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

갓난아이의 신체에 기겁하여 내 몸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해코지를 당하는 건 아닌지 있는 힘껏 저항하려고 했다.

친근감을 느낀 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뿐이라 그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는 몹시 불안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눈을 뜰 수 있게 되어서야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태어났을까.

그런 고민도 잠시.

놀랍도록 변한 세상에 홀리고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에 겨워 깊이 생각지 않았다.

매일 건강한 몸에 감사하고.

매일 새로운 경험에 놀라며 그렇게 조금씩 고훈으로서의 새 삶에 익숙해졌다.

피카소를 처음 본 경험을 두 번이나 한 것은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피카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손도 제대로 못 쓰면서 그를 따라 해보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못난 그림을 보고도 아들이 천재라고 기뻐하셨다.

삐뚤빼뚤한 선으로 형태조차 잡히지 않은 그림을 보고도 좋아하셨으니, 예전처럼 그리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적당히 힘이 붙고 펜 쓰는 일에 몸이 익숙해진 뒤에도 굳이 드러내려고 하진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린 곤충도감에서만 조금씩 연습했다. 어떤 그림을 그려도 이해받을 만한 적당한 시기가 되면 차곡차곡 쌓아온 기량을 마음껏 펼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 아버지가 사 오신 할아버지의 <소나무 3>을 보곤 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난생처음 보는 물감으로 그린 소나무는 30P 캔버스에 담은 그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기개가 넘쳤다.

그렇게 굵고 강렬한 필치는 보지 못했다.

분명 한 번에 그린 듯한데 농도 조절로 음영을 표현해냈으니 신의 기술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을 2~3살 때 보았던 할아버지가 그렸다는 걸 알곤 깜짝 놀랐다.

“소나무 그림 봤어요. 할아버지가 그렸다고 하셔서 보고 싶었어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억이 넘치는 만큼 슬픔은 깊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할 수 있는 한 담담하게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을 찾고 싶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목이 메어 다음 말을 잇지 못하자 할아버지가 이마를 대고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래. 돌아가면 같이 가자.”

다음 날.

퇴원하고 토마스 아서를 통해 상속 관련한 일을 처리했다.

특별히 복잡한 일 없이 서명만 하고 나머지는 부모님의 법무대리인 토마스 아서가 처리하도록 했다.

그와 몇 번 만난 기억도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그를 신뢰했기에 믿고 일을 맡겼다.

이것저것 처분한다면 일이 복잡해졌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부모님의 자동차는 지금 내가 운행할 수 있지도 않으며, 할아버지가 쓴다고 해도 미국에 거주하지도 않아 쓸 일이 많지 않지만 팔고 싶지 않았다.

그분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은 욕심인데, 할아버지도 그러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제오늘 좀 지친 터라 피자를 주문해 먹기로 했다.

이곳에 살 때 매번 시켜 먹던 곳에 전화하자 피자집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

-사우스 스팍스 거리 325번지? 설마 훈이냐?

버뱅크 최고의 피자집 사장 샘 플레밍의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안녕하세요, 샘.”

-맙소사. 이게 얼마 만이야. 소식은 들었어. 정말 유감이구나.

“고마워요.”

-그래. 씩씩하게 살면 언젠가 또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시간이 흘러 이 상처가 아물지언정 흉터마저 없어질까.

-오늘은 내가 살 테니 말만 해. 뭐 가져다줄까?

“포테이토 피자요. 치즈 많이 올려서요.”

-좋아. 40분 정도 걸릴 거야.

“네. 고마워요.”

통화를 마치자 기사를 훑어보시던 할아버지가 샘에 대해서 물었다.

“친한가 보구나.”

“매일 시켜 먹었거든요.”

“매일?”

“바쁠 때가 많아서 늦게 들어오시는 일이 종종 있었거든요.”

샘 플레밍의 피자가 맛있기도 했고 한국과 달리 배달 주문할 만한 게 마땅히 없기도 했다.

“그래서 물렸구나.”

할아버지가 어머니의 일기를 언급하셨다. 포테이토 피자를 싫어했다고 적으셨는데 오해가 있다.

“아뇨. 맛있었어요. 샘 피자랑 급식은 차원이 다르거든요.”

“그래?”

혼자 저녁을 먹다 보니 외롭기도 하고 두 분이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 아버지와 느긋한 저녁을 먹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었을 텐데, 미안하다며 피자 시켜 먹을 돈을 두고 가셨다는 어머니께 피자가 싫다고 한 기억이 있다.

내 딴에는 쑥스러워 그런 것을 어머니는 학교 급식 문제와 함께 그것을 마음에 담고 계셨던 듯하다.

그런 뒤에는 직장을 옮길 생각도 하셨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런 오해가 잦았다.

어렸을 적 그림이 움직이고 말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말을 배우려고 봤던 스펀지빵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신 거라든지.

지금은 쓰지 않는 옛말을 쓰면 스펀지빵 같은 만화영화에서 배웠다고 여기신다든지.

이상하게 생각하실 법도 한데, 내가 보기엔 부모님도 만만치 않게 이상하신 분들이라 그냥 이상한 채로 서로를 받아들였다.

괴짜로 손가락질당하던 그때와 달리 부모님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준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려주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몇 번이나 울었지만, 그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마 할아버지도 마찬가지.

그동안 혼자 달랬을 상처를 어루만지고 또 위로받으며 버뱅크의 집에서 이틀 더 머물렀다.

괜찮다 싶다가도 무심코 터져 나오는 눈물도 할아버지와 함께 있다 보니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놀릴 생각으로 파일을 따로 저장해 두고, 레이어를 병합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웃기도 했다.

“잘도 그런 짓을 했구나.”

할아버지가 끔찍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눈치 없이 계속 웃어서 큰일 날 뻔했어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부른 즉시 몰래카메라라는 걸 밝히지 않았으면 가정법원에 갔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참았어?”

“그날은요.”

“그날은?”

“아버지가 잘 때 침대에 맥주랑 물 섞은 걸 쏟으시더라고요.”

며칠 뒤 어머니가 몰래카메라에 대한 복수로 새벽에 아버지 가랑이 사이에 맥주와 물을 부었다.

“그래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어요. 당황해서 만져보다가 냄새도 맡더라고요.”

“크흐흘.”

“이불 들고 몰래 세탁실 가는데 어머니가 시치미 떼고 아침부터 빨래하냐고 물었을 때가 최고였어요. 거의 울면서 오줌 싼 것 같다고. 어디 아픈 것 같다고. 그때 아버지 표정을 보셨어야 했는데.”

할아버지와 같이 한참을 웃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

나흘 정도 되었나.

훌훌 털고 일어날 일은 아니지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신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일어서야만 한다.

“자자. 양치하고.”

“네.”

거실에 이불을 깔고 함께 잤다.

다음 날.

근처에 올 때는 한 번씩 들를 생각으로 가족사진과 곤충도감만 챙기고 나머지는 집에 그대로 두었다.

토마스 아서에게는 지금처럼 관리해 주길 부탁했다.

할아버지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와 만나기로 약속하기도 하셨고 오랜만에 휘트니 미술관도 찾을 생각으로 뉴욕으로 향했다.

* * *

앙리 마르소가 미팅을 마치고 귀가하고 있었다.

올해 12월에 개최 예정인 루브르 국립 예술 살롱전과 관련한 일정을 정하는 자리였다.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Société Nationale des Beaux Arts. SNBA)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앙리 마르소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주길 요청했다.

“빌어먹을 노친네들.”

앙리 마르소가 이를 바득 갈았다.

루브르 국립 예술 살롱전은 현존하는 살롱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행사로 그곳의 심사위원을 맡는 건 큰 영광이었다.

비서 아르센은 그런 일을 거절한 앙리 마르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거절하셨습니까? 좋은 자리지 않습니까.”

“좋은 자리는 무슨. 퇴물들이나 모여 거드름 피우는 자리가 좋아?”

앙리 마르소는 멀쩡히 예술가로 활동하는 자신을 심사위원으로 초청한 SNBA(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가 못마땅했다.

“애초에 그럴 시간이면.”

불평을 늘어놓던 앙리 마르소의 눈에 한 소년이 들어왔다.

셍떵뚜안느 거리에서 바스티유 광장으로 이어지는 장소에서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 7월 기념비(Colonne de Juillet)을 그리고 있었는데.

남자 셋이 소년을 둘러싸고 있었다.

“차 세워 봐.”

앙리 마르소의 말에 아르센이 의아해하며 횡단보도를 지나쳐 차를 세웠다.

앙리 마르소는 아르센이 뭐라 묻기도 전에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소년에게 다가갔다.

“이, 이거만 그리고 갈게요.”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에게 애원했다.

“그리고 자시고 꺼지라고. 어?”

한 남자가 소년의 이젤을 발로 툭툭 차며 엄포를 주었다.

“이러지 마세요. 전 정말 저게 멋지다고 생각해서.”

“너 같은 무슬림들이 뭘 알아! 험한 꼴 보기 전에 꺼지라고!”

남자가 주먹을 들어 보이며 위협하자 소년이 움찔했다.

앙리 마르소는 무슬림으로 보이는 소년과 남자들 사이로 보이는 그림을 보고자 좀 더 다가갔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앙리 마르소를 알아보고 일행에게 눈치를 주었다.

“마르소?”

갑자기 유명인을 눈앞에 둔 그들은 당황했고 무슬림 소년은 도와줄 사람이 왔음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도와, 도와주세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7월 기념비 그림을 보던 앙리 마르소가 슬쩍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왜?”

“……네?”

앙리 마르소의 차가운 태도에 소년이 당황했다.

이목이 쏠리자 자리를 피하려고 했던 남자들은 안도했다. 앙리 마르소도 프랑스인으로서 무슬림을 증오한다고 판단했다.

“난 경찰이 아니야.”

앙리 마르소는 소년에게서 눈을 떼 그림을 살폈다.

파스텔로 그린 자유의 수호신(Génie de la Liberté)은 빛을 받아 성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틀렸잖아.”

마음 놓고 소년을 쫓아내려던 프랑스인 남자들도 소년도 당황했다.

“오른손에 든 건 붓이 아니라 횃불이야. 왼손에는 사슬이고. 머리 장식물은 어디 갔어?”

“어…….”

“여기서 저게 제대로 보이기나 해? 이따위로 그릴 거면 사진 찾아서 봐.”

소년이 당황해서 어쩌지 못하고.

무슬림 소년을 구박하던 남자들은 김이 새 돌아갔다.

“뭐 해? 안 고치고.”

“아, 네.”

소년 비다 라바니는 자신도 모르게 파스텔을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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