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32화
31. 갈등(1)
[극단주의 이슬람교도에 몸살 앓는 프랑스]
프랑스 내 이슬람교도들의 테러 행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프랑스24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반무슬람 시위 현장에서 폭발 공격이 발생해 19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프랑스 정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또다시 발발했다”며 사망자 가운데는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비겁한 공격에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며 강력한 대응 의지를 덧붙였다.
“쯧쯧.”
2028년 6월 28일.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던 고수열이 혀를 찼다.
1991년 유고 내전부터 2003년 이라크 전쟁, 2010년 아랍권 민주화 운동, 2011년 시리아 내전 등으로 발생한 난민들은 가깝고 치안 유지가 잘 된 서유럽으로 이동하였다.
유럽 사회는 이들 난민을 최대한 수용하려고 했으나 갑작스레 수백, 수천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순 없었다.
각국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난민을 향한 구호 정책은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집은커녕 당장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난민을 인도주의적으로 대하자는 말이 설득력을 얻을 리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극단주의 이슬람교도들이 테러 행각을 벌이고 교사를 거리에서 살해하는 등 여러 사회 문제를 벌이니 유럽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어떻게든 난민을 수용하고자 했던 유럽 곳곳에서 이슬람교를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었다.
그뿐일까.
[도 넘은 중국의 역사 왜곡]
중국의 한 언론이 몽골이 영토를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또다시 국제 사회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베이징 통신은 몽골이 중국의 일부였음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들은 지난날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 반달을 자국 민요로, 한복은 중국의 전통의상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중국의 이러한 문화 약탈 행위는 우리나라와 몽골뿐만 아니라 베트남, 태국을 상대로도 일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호주 내정간섭, 위구르 인권 유린, 홍콩 시위 무력 진압 등 경제력을 앞세운 만행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 무역이 경제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을 교묘히 이용하는 이들의 역사 왜곡, 문화 약탈 행위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제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시기다.
21세기 초부터 이어진 경제 침체로 모든 나라가 국수주의적 행보를 걷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는 폭발 직전에 놓여 있었다.
아시아를 상대로 문화‧역사 찬탈 행위를 이어가는 중국은 자국 이권에 반하는 나라에 경제적 보복을 가하며 사실상의 제국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미국 및 서방 사회는 그런 중국을 견제하고 나선 지 오래였다.
“북이고 서고 남이고 죄다 미친 것들만 있으니. 쯧쯧.”
고수열이 신문을 넘겼다.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건강 문제로 휘트니 비엔날레 행사 불참]
[배도빈, 전설을 넘어서]
[아니쉬 푸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색을 독점하다]1)
[크리스틴 노먼, “기암성은 시각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것. 고훈과의 작업은 환상적.”]
[고훈, 첫 개인방송에 앙리 마르소 출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논란]
“허.”
절친한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건강 문제로 행사에 불참했단 소식에 고수열이 신음했다.
뉴욕에서 만난 뒤로 연락이 없었던 탓에 걱정되었다.
다음 기사로 시선을 옮긴 고수열이 이번에는 감탄했다.
대한민국의 천재 음악가 배도빈과 나윤희가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
고수열이 눈매를 좁혔다.
익히 알고 있는 조각가 아니쉬 푸어가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색을 독점했다는 기사 제목에 눈을 의심했다.
‘대체 무슨.’
기사 내용은 영국의 나노기술 기업이 인공위성 위장을 위해 빛의 99.96%를 흡수하는 페인트 ‘벤타블랙’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예술적으로 사용하는 권한을 아니쉬 푸어가 사들여 독점했다는 소식이었다.
고수열은 기가 차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다 완전한 독립을 추구한다지만, 색을 한 사람이 독점한다는 사실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욕심이 과해.’
고수열이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옮겼다.
크리스틴 노먼 감독이 고훈을 언급한 기사였다.
손자가 <총탄>을 비롯한 설정화를 그리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 왔기에 고수열은 흐뭇하게 기사를 읽어내렸다.
고훈이 노력을 인정받은 듯하여 자랑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이 녀석은 왜 또 이래?’
그러다 앙리 마르소가 고훈의 첫 방송에 나타나 사사건건 간섭했다는 기사에 눈살을 찌푸렸다.
서울 미술관과 퇴임 전시회를 논의하느라 첫 방송을 챙겨보지 못했는데, 다음부터는 앙리 마르소 때문이라도 챙겨봐야 할 듯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고훈이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아직 잠이 덜 깨어 있는 모습에 고수열이 싱긋 웃었다.
“훈아, 네 기사 났다.”
“기사요?”
고훈이 졸린 눈을 비비며 고수열에게 다가갔다.
기사를 확인한 고훈이 고개를 떨어뜨렸다가 들었다.
“흐흐흫. 졸려?”
“네. 노먼이 잘 챙겨주나 봐요. 무슨 영상도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이런 것도 기사가 나요?”
고훈이 앙리 마르소와의 일이 기사화된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만큼 관심받는다는 말이지.”
“그림 이야기가 많은 게 좋아요.”
유명인으로서의 관심보다는 화가로서 작품이 언급되길 바라는 마음가짐 또한 기특했다.
“그럼 그림을 그려야지. 시험도 끝났고. 미국 다녀온 뒤엔 할아버지랑 조용한 곳 가서 그림 그리자꾸나. 동해안 쪽에 좋은 곳이 있어.”
“네.”
* * *
“또?”
이번 주말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로 간다고 하니 차시현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부모님 집을 정리해야 한대.”
“응…….”
아무 말 안 하지만 애써 참는 게 얼굴에 드러난다.
시험이 끝나면 수채화 같이 그리자고 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하셨어. 정리하는 겸 뉴욕에도 한 번 들를 거라서.”
“응…….”
“돌아오면 놀러 갈래?”
“어디로?”
금세 표정이 좋아진다.
“삼척이란 곳에 할아버지 별장이 있대. 며칠 놀면서 그림 그리고 놀자.”
“응!”
냅다 대답한 녀석이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뜬다.
“왜?”
“이번에는 약속 지키는 거지?”
그간 본의 아니게 일정이 꼬여서 신뢰를 잃은 듯하다.
새끼손가락을 보였다.
“약속.”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나서야 만족한 듯 웃는다.
“근데 아버지 어머니께 여쭤봐야 해.”
“당연하지.”
차시현의 아버지가 만든다는 오뜨 타르트를 하나 집었다. 초콜릿과 치즈 두 가지 맛이 있는데 치즈 쪽이 끌린다.
아무래도 초콜릿 맛이 더 강할 테니 좀 덜 자극적인 걸 먼저 먹는 게 순서상 옳을 것이다.
포장지를 뜯자 길쭉한 막대 형태의 파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냄새부터 맛있다.
“아버지껜 이야기해 봤어?”
“뭘?”
“할아버지 이야기. 합.”
“으응.”
향은 치즈 케이크와 비슷한데, 파이보다는 좀 더 몽글한 식감이다.
케이크와 파이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단맛은 몽 셰르 통통처럼 강하고 진하지 않고 은은하게 남아 삼키고 나면 애절해지고 만다.
이건 한 번 더 먹어봐야 맛을 제대로 알 것 같다.
하나 더 뜯었다.
“왜?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건 아닌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서.”
“합.”
“저번에 아버지가 할아버지랑 왜 싸우셨는지 조금 말씀해 주셨거든. 절대로 화해 안 하실 것 같았어.”
치즈 향이 좀 더 진하면 좋을 것 같은데 또 이 아쉬움 때문에 자꾸만 손이 가니 의도한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합.”
“내가 할아버지도 좋아하는 나무를 파란색으로 멋지게 그리면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으실까?”
두 개로는 부족하다.
하나 더 먹어야겠다.
“이야기 듣고 있는 거야?”
“듣고 있어.”
혼자 먹기 아쉬운 간식이라 차시현 입에도 물려주었다.
“내 생각엔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야.”
“왜?”
차시현이 우물거리며 되물었다.
“마음을 전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그렇게 되려면 엄청나게 잘 그려야 할 거야.”
“응…….”
“그리고 너희 아버지께서 할아버지 그림 엄청 싫어하셨다며.”
“응.”
“그런데 네가 할아버지랑 비슷한 그림을 그리면 더 충격이지 않으실까? 어쩌면 네가 할아버지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해서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
“그럼 어떡해?”
어깨를 으쓱였다.
상황을 전부 아는 것도 아니고 설사 다 안다고 쳐도 두 사람 사이의 일을 함부로 재단할 순 없는 노릇이다.
들은 바로는 차시현의 조부가 잘못한 게 명백해 보이니 그쪽에서 먼저 사과를 하든 마음을 열어야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있을 텐데.
그마저도 아니라면 딱히 답이 없다.
“우리 집도 좀 복잡한 것 같더라.”
“너희도?”
“증조할아버지랑 할아버지랑 싸우고. 할아버지랑 아버지랑 싸우고 그래. 할아버지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엄청 후회하셨는데, 그렇다고 증조할아버지랑 화해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어른들은 너무 복잡해.”
차시현이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 사이 문제는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고 당사자들끼리 대화를 해야 하지만.
그조차 시간이 너무 흐르면 관성이 되어버리고 만다.
내가 큰아버지, 아버지와의 관계를 영영 회복하지 못했듯이 어느 한쪽이 죽은 뒤에야 후회하고 만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혹은 입장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나 같은 경우도 사랑과 그림이 더 소중해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끝내 회복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가족이니까 이해해 주리란 안일함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야기는 해봐야지.”
“어떻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돼. 걱정해서 괜히 다른 말을 덧붙이거나 돌려 말하면 오히려 안 좋아. 그렇다고 너무 세게 말하면 안 되고.”
지난날을 떠올리면.
여러 화가 친구와 사귀고 그들과 사이가 멀어진 이유가 어쩌면 내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서 내 생각을 강요하다 보니 안톤 반 라파드나 폴 고갱 같은 이들과는 멀어지게 되고.
에밀 베르나르나 툴루즈 로트렉처럼 나를 받아주는 이들하고만 친분이 유지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 *
1)아니쉬 카푸어: 1954년생 인도 출신 영국인 조각가.
1980년대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국 대표로 참가, 프리미오 듀밀라 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듬해 91년에는 터너상을 수상하여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가장 어두운색 ‘벤타블랙’의 예술적 사용권을 독점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