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130화 (85/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30화

30. 73점과 100점(3)

고수열이 쪼그려 앉아 해바라기 씨를 관찰하는 고훈과 차시현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땅에 안 심어도 돼?”

차시현이 따뜻한 물에 담가 둔 씨앗을 바라보며 물었다.

씨앗은 땅에 심어야 하는데 대야에 물을 받아서 씨앗을 넣으니 의아했다.

“이렇게 물에 불리고 심어야 발아가 잘 된대.”

“아.”

고훈이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을 전했다.

두 소년은 씨앗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지가 오뜨 타르트보다 몽 셰르 통통이 맛있냐고 물으셨어.”

“오뜨 타르트?”

고급스러운 파이란 뜻은 알고 있지만 상품명으로서의 오뜨 타르트는 처음 들었다.

“우리 집에서 만드는 과자. 안 먹어봤어?”

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

“응. 엄청 맛있어.”

음식 맛 평가에 박한 차시현이 맛있다는 말로도 모자라 엄청이란 부사까지 덧붙이니 고훈이 입맛을 다셨다.

몽 셰르 통통의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함을 넘어서는 타르트를 상상하자 절로 군침이 돌았다.

“먹고 싶다.”

“학교에 가져갈까?”

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소년 사이에 말이 잠시 끊겼다.

따뜻한 물에 넣어 둔 해바라기 씨앗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를 얼마간.

차시현이 물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해?”

“30분?”

“심심해.”

고훈이 작은 바구니에서 모종삽을 꺼냈다. 하나를 챙기고 다른 하나는 차시현에게 넘겼다.

“봐 봐.”

고훈은 1평 남짓한 작은 텃밭으로 가 작은 구멍을 파냈다.

“이렇게 서른 개 팔 거야.”

“이렇게?”

“응. 간격은 이 정도?”

고훈이 50㎝ 정도 간격을 두고 씨앗을 심을 곳을 파냈다.

차시현이 고개를 끄덕이곤 함께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해바라기 피면 어떻게 할 거야?”

“구경?”

“구경?”

“그림 소재로도 그리고.”

“그럴 거면 사는 게 빠르지 않아?”

“키우는 재미지.”

차시현은 친구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구멍을 다 내고도 시간이 꽤 남았기에 두 소년은 또 쪼그려 앉아 해바라기 씨앗을 관찰했다.

“심심해.”

“해바라기씨 먹을래?”

고훈이 봉투에서 해바라기씨를 조금 꺼냈다.

“그걸 어떻게 먹어.”

“이렇게.”

고훈이 해바라기씨를 입에 털어 넣었다. 살짝 깨물어서 껍질은 벗겨내 뱉고 알맹이의 고소함을 느꼈다.

볶지 않아서 비린 맛이 살짝 돌았지만 심심한 입을 달래기엔 적당했다.

“……맛있어?”

차시현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물었다. 씨앗을 먹는 것도 이상했고 입에서 우물거리며 껍질을 뱉는 모습도 꺼려졌다.

“먹을 만해. 먹어 볼래?”

고훈이 해바라기씨를 권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친구가 먹으니까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은 순간 고수열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이고. 그걸 왜 먹어? 안 비려?”

“좀 비리긴 해도 나쁘지 않아요.”

“게다가 흙 만진 손으로! 내가 못 살아. 뱉어. 어서. 시현이도 먹지 마.”

고훈이 입안에 든 해바라기씨가 아까워 한 번 더 씹자 고수열이 한 번 더 타일렀다.

고훈이 아쉬워하며 뱉었다. 그러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차시현에게 물었다.

“왜?”

“나 이제 네가 주는 거 안 먹을래.”

“왜? 먹어도 돼.”

차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되긴 뭐가 돼! 차에 리스테린 있으니까 어서 헹구고 와.”

“그거 혀 아파요.”

“어서!”

차시현은 어쩔 수 없이 자동차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고훈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가 가끔 상식 밖의 행동을 해서 혼란스러웠다.

* * *

시험 첫날을 마쳤다.

수학과 과학, 영어 과목을 봤는데 예상보다 쉬워서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영어야 어린아이 수준이라 걱정하지 않았고 수학은 차시현에게 하도 시달려서 시험 문제가 시시하게 보일 정도였다.

과학은 절반은 긴가민가하며 풀었고 절반은 대충 찍었다.

점심시간.

밥을 먹고 나서 교실로 돌아왔다.

차시현이 내 시험지를 확인하면서 깜짝 놀란다.

“수학도 백 점이야!”

초등학교 3학년 시험에서 백 점 받은 게 어디 자랑할 일이겠냐만.

자기 일도 아니면서 기뻐해 주니 별 감흥이 없다가도 괜히 뿌듯해진다.

“…….”

과학 시험지를 살피던 차시현이 사정없이 빗금을 친다.

동물과 구름, 빛의 직진에 관련한 문제는 모두 맞혔는데 자석과 액체, 기체, 혼합물 분리 문제는 모두 틀리고 말았다.

“오늘부터 과학 공부할 거야.”

“넌 다 맞혔잖아.”

“나 말고 너.”

“오늘은 방송하기로 했어.”

“45점이잖아. 방송이 중요해, 점수가 중요해?”

“방송보다는 나 찾으러 오는 분들하고 한 약속이 더 중요하지.”

차시현이 눈을 깜빡인다.

“약속도 중요한데……. 그럼 내일부턴 과학 공부하자?”

“그래.”

내일 시험 보는 국어와 사회는 과학보다 자신 없다. 내일은 시험지를 보여주지 말아야겠다.

눈을 뜨고 고작 1년밖에 안 되어서 생전 처음 접하는 걸 반 이상 맞혔으니 내 머리가 어디 가지 않았구나 싶어 대견스러운데.

차시현 기준에는 엄청나게 큰일인 듯하다.

시험 기간에는 오후 수업이 없어서 돌아가려고 짐을 챙기던 차, 반 아이들의 시선을 느꼈다.

나와 차시현을 보며 키득거린다.

“45점이래.”

“어떻게 45점을 받아?”

시험 점수를 가지고 비웃는 걸 보니 어리긴 어리다.

신경 쓰지 않고 일어섰다.

“웃지 마!”

그때 차시현이 소리쳤다.

이 녀석이 학교에서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낸 건 처음이라 나도 반 아이들도 놀랐다.

“웃는 것도 못 하냐?”

“어이없어.”

반 아이들이 이번에는 차시현을 비아냥댄다.

“아버지가 노력하는 사람 비웃는 거 나쁘다고 하셨어! 훈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도 모르면서 비웃지 마!”

복습 정도는 했지만 그나마도 그림, 수면, 식사보다는 중요하지 않아서 노력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한 아이가 일어났다.

“너 많이 컸다? 우리한테 소리도 지르고. 친구 생기니까 뭐 된 거 같아?”

이 반에서 덩치가 가장 큰 녀석이다. 차시현은 겁먹었는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차시현을 건들면 저 녀석의 턱주가리를 날려도 될까 고민하던 차에 박현우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만해.”

덩치 큰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얘가 열 받게 하잖아.”

“유치해. 우리가 애야?”

덩치 큰 아이가 나와 차시현을 내려다보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혹시나 차시현이 혼자 있으면 해코지할 것 같아서 짐을 챙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교실 밖으로 나왔다.

“흐이응.”

교실 안에서는 겨우 참았던지 나오자마자 울먹인다.

“겁도 많으면서 왜 나섰어.”

“애들이. 너 욕하니까.”

“난 괜찮으니까 너 욕할 때 그렇게 해.”

코를 훌쩍이길래 손수건을 꺼내 가져다 대자 눈썹을 찡그린다.

“뭐 해?”

“코 풀라고.”

“다른 사람 손수건에 어떻게 풀어.”

“신경 쓰지 마.”

“내 거 있어.”

차시현이 손수건을 꺼내 흥 하고 시원하게 코를 풀었다.

“그런 말 무시하면 돼. 모든 사람하고 친하게 지낼 순 없어.”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사랑을 주다 보면 언젠가는 그 마음을 알아주리란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 의지나 진리와 무관한 불의와 증오가 있었고 그것은 어느 누구의 힘으로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야.”

차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걔들이 틀렸어.”

강인한 힘은 없지만 올곧은 눈으로 말했다.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넌 그런 소리 들을 애 아니야. 훨씬. 훨씬 더 멋있단 말이야.”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했던 적이 언제였더라.

“그래. 고마워.”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그 고독한 시간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 * *

오후 2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방태호의 도움으로 방송을 켰다.

조금 기다리니 사람들이 한 사람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쉬민케 홍보 방송을 할 때와는 다르게 100명이 조금 넘는다.

아무래도 홍보가 덜 되고 처음이라 그런 듯하다.

채팅 올라오는 속도가 적당해서 읽기 수월하다.

└와! 생방송!

└훈하

└훈이 어서 오고

└지금 시작한 거?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선 넘네;;

└지킬 건 좀 지켜라.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안녕하세요.”

채팅창을 보니 훈하라는 말을 자주 쓴다.

“훈하가 뭐예요?”

훈이 하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별걸 다 줄여 쓴다.

└[백유진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첫방 ㅊㅎ

첫방은 처음 하는 방송이란 것 같은데 치읓 히읗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치읓 히읗이 무슨 뜻이예요?”

축하를 줄여서 치읓과 히읗으로 쓴다는 채팅이 마구 올라왔다.

우리나라 말은 그러지 않아도 경제적인데 그것마저 줄여 쓰니 배우기 어렵다.

내일 국어 시험에 이런 게 나오진 않겠지.

“백유진 님 후원 감사합니다.”

곁에 있던 방태호가 인사했다. 의아하여 쳐다보니 백유진이라는 사람이 내게 1,000원을 후원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일단 인사부터 했다.

“돈이 어디 있는데요?”

“여기 계좌에서 나중에 이체할 수 있어. 수수료 30퍼센트 떼고.”

“왜 그렇게 많이 가져가요? 뭘 했다고?”

“쉿. 쉿. 플랫폼이랑 싸워서 득될 게 없어.”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해야죠.”

└ㅁㅈㅁㅈ

└갓직히 뉴튜브 도둑놈 아님?

└플랫폼 사업하는 놈들 전부 강도임.

└[장 프랑수아 미래 님이 5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첫방 파이팅

└늬들 300원 가져가라고 1,000원 내는 거 아니다!!

└헐 ㅁㅊ

└5만 원 ㄷㄷ

“초면에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저 밥 잘 먹고 살아요.”

1,000원 정도는 부담이 없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50,000원이나 받았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럽다.

포테이토 피자를 큰 사이즈로 주문하고도 22,000원이나 남는 큰 돈이다.

└초면에 많이 주지 말랰ㅋㅋㅋ

└귀여워 ㅠㅠ

└후원하지 말란 소리는 안 하네

└장미래 아님? 왜 초면이지?

└맞네. 찐이다.

└장미래 작가님 팬이에요 ㅠㅠㅠ

“아, 미래 이모예요? 이름이 다른데? 미들네임 있었어요?”

“무슨 소리야.”

뭐가 그리도 웃긴지 방태호가 웃는다. 채팅창도 ‘ㅋ’으로 도배되다시피 채워졌다.

“뭐가 웃겨요?”

“닉네임이잖아. 별명 같은 거야. 설마 맞춤법 대법관 이분이 진짜 대법관이겠어?”

하긴 그건 그렇다.

“여기 개벽의 앙리도 진짜 앙리 마르소 씨는 아니고.”

“…….”

내 생각엔 이 사람은 진짜 앙리 마르소 같은데 그냥 그렇게 알아듣고 넘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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