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118화 (73/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18화

29. 해바라기씨(1)

날짜를 헤아린 미셸이 피식 웃었다.

보름도 더 남은 생일을 챙기려고 벌써부터 준비하는 앙리가 귀여웠다.

“그런데 생일은 어떻게 알았대?”

질문을 내뱉은 미셸이 곧 그가 고훈에 관련한 일을 수소문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의 정보력이라면 생일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낼 터였다.

“알면서 왜 물어.”

앙리가 285번째 자화상을 어디에 보관하는지 검색했다. 곧 마르소 갤러리 2번 보관실 다섯 번째 열에 있음이 모니터에 표기되었다.

“그나저나 괜찮아?”

“뭐가?”

“기암성 투자. 훈이 작업 과정 보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미셸 플라티니의 말에 앙리 마르소가 멈칫했다.

“아닌데.”

“아니야?”

미셸의 말대로였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훈의 작업물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한 투자였다.

어쩌다 보니 곧장 촬영지를 둘러보고, 고훈이 개인 일정 때문에 잠시 독일에서 머물렀다.

파리에 왔을 때는 소장품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작업 과정을 확인하지 못했다.

“영화가 괜찮아 보여서 투자한 것뿐이야.”

“흐음.”

미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앙리를 바라보았다.

“진짜라고.”

“그래.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해서 투자한 것보단 나으니까. 나 먼저 간다.”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앙리 마르소가 입술을 씰룩였다.

이번에야말로 고훈의 비밀을 밝혀낼 생각이었는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말았다.

소년은 영악하게도 밀레 등 소장품을 잔뜩 칭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셰리 가도의 음식 솜씨를 찬양하다시피 하여 상황을 회피했다.

‘약아 빠진 놈.’

분명 작업 과정을 확인하겠다고 말했거늘 입에 발린 말로 사람을 혹하게 했다.

이제야 시건방진 꼬맹이가 제법 귀여워졌다고 여기던 앙리 마르소는 285번째 자화상을 선물해 주려던 마음을 접었다.

‘컬러링북이라고 했지.’

그가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유아용 색칠놀이 노트를 찾았다.

* * *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방태호와 모르는 사람이 비어 있는 방에서 무언가 하고 있다.

못 보던 물건을 들여놓았다.

방태호에게 인사하자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어때?”

어떠냐고 물어도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 됐나?”

할아버지가 뒤따라 들어오시며 물었다.

“네. 테스트만 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방태호가 작은 TV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하니 곧 얼굴이 비쳤다.

카메라로 보이는 물건은 없는데 신기하다.

“카메라가 어디 있어요?”

“여기.”

작은 TV 위에 앙증맞은 렌즈가 있다.

이 작은 것으로 방송국에 있는 것처럼 촬영할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에도 있지 않냐고 해서 놀랐다.

사진만 찍을 수 있는 줄 알았거늘.

정말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영상 통화도 할 수 있는데 그걸 기록할 수 있다는 걸 생각 못 했다.

벌써 머리가 굳은 건가 싶다.

“이거 누르면 마이크가 켜지고 이건 캠 켜는 버튼이야.”

“캠이 뭐예요?”

“캠코더를 캠이라고 줄여서 말해.”

“캠코더?”

방태호와 함께 온 사람이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당분간은 방태호가 도와주기로 했다.

“어차피 방송할 때는 내가 같이 있을 거야. 채팅창 관리도 해야 하고 혹시 무슨 문제 있으면 고쳐야 하니까.”

믿음직하다.

“그럼 앞으로는 저기서 작업해야 해요?”

“굳이 안 그래도 돼. 기암성이나 전시회 준비할 때는 아무래도 미리 공개되면 안 되니까 그럴 땐 안 하는 게 맞지. 팬들하고 소통하고 싶을 때 편하게 하면 돼.”

방태호가 고글이란 사이트에 가입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꼭 그림 그려야 하는 건 아니죠?”

“응. 정말 하고 싶을 때 아무거나 다 해도 괜찮아. 나중에 재미 붙이면 그때 본격적으로 해도 되니까.”

일단은 부담 없을 듯하다.

쉬민케 홍보 방송할 때 느낌이 제법 괜찮아서 도리어 기대된다.

“그럼 나중에 할게요. 기암성도 마무리해야 하고 시험도 있어서요.”

“시험?”

방태호가 의아해한다.

“왜요?”

“초등학교는 시험 안 볼 텐데. 한국 초등학교는 다른가?”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니 어색하게 웃으신다.

“워낙 별난 곳 아닌가.”

어쩐지 이해하지 못할 내용을 가르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유별하다고 생각했다.

학비도 너무 비싸고 속은 기분이다.

“역시 국립 다니는 게 옳았어요.”

“그럼 시현이 못 만났을 텐데? 맛있는 밥도 못 먹고.”

“…….”

생각해 보니 아주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매일 점심마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다.

그게 연간 1억 원의 가치를 하는지는 몰라도.

“그리고 시험공부 안 해도 괜찮아. 빵점 받으면 어때. 좋아하는 거 열심히 하면 돼.”

“기분 나쁘잖아요.”

빈센트로 살 적에는 천재는 아니라도 수재 소리는 종종 듣곤 했다.1)

아무리 그래도 10살 먹은 아이들이 보는 시험을 죄다 틀릴 순 없는 법이다.

“괜찮아. 학교는 원래 친구 사귀려고 다니는 거야.”

그런 이유라면 굳이 좋은 학교를 보낼 필요 없을 텐데.

할아버지의 사랑은 못 말린다.

잠시 후.

방태호와 설치 기사가 돌아간 뒤 간식 시간을 가졌다.

하교하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포장해 온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져 오늘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인물 설정화는 모두 그렸으니 남은 건 팀원들이 작성한 배경 설정화를 기반으로 장면을 그리는 거다.

내가 맡은 장면은 두 장이다.

하나는 이지도르 보트를레가 초대장을 뒤집는 장면.

아르센 뤼팽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의 극중 상황이 반전되어, 영화 <기암성>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둘은 아르센 뤼팽의 연인 레이몽드가 죽는 장면이다.

원작에서는 헐록 숌즈가 쏜 총에 죽는다고 하는데, 노먼의 각본에는 아르센 뤼팽을 잡아서 공적을 세우려는 경관에 의한 일로 바뀌었다.

절망하는 뤼팽과 연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린 레이몽드의 싸늘한 시신.

그리고 경악에 찬 이지도르와 헐록 숌즈의 표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야 한다.

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 노먼, 제작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이 장면을 그리지 않고서는 <기암성>을 그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고집을 부렸다.

첫 장면은 대강 어떻게 그려야 할지 생각해 두었지만, 두 번째 장면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구도.

실제로 촬영을 해야 하기에 비현실적인 구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노먼은 ‘그릴 수 있는 건 촬영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몰라도 노먼의 말이니 믿을 뿐이다.

아무런 제약도 없으니.

오로지 뤼팽, 이지도르, 레이몽드, 숌즈, 경관 이 다섯 명을 한 장면에 어떻게 배치하는가는 내 역량에 달렸다.

‘이런 건 마네가 잘했지.’

또 한 명의 천재 에두아르 마네는 <폴리 베르제르의 카페>이란 작품을 통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2)

적어도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 말이다.

머리를 식힐 겸 태블릿으로 폴리 베르제르의 카페를 찾았다.

언제 봐도 에두아르 마네의 특출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정면을 보고 있는 여성의 뒤로 거울에 비친 여러 사람이 보인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은 우측 거울에 비친 신사의 시선에서 여성을 바라보지만, 거울의 반사면은 몹시 왜곡되어 있다.

사실적으로 그렸다면 정면에 놓인 여성의 뒷모습은 그림 중앙으로 와야 하고 중절모를 쓴 남성은 모자와 귀, 어깨 정도만 비쳐야 할 것이다.

당시 평론가들은 이 그림을 보고 에두아르 마네가 빛의 반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머저리라고 비난했지만.

이는 폴리 베르제르의 전경을 보다 넓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 화려한 장소 속에 놓인 우울한 개인을 함께 표현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다.

정말이지 과감하고 비상한 발상이다.

똑똑-

“훈이 그림 그려?”

할아버지가 문을 두드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다.

“아니요. 들어오세요.”

할아버지가 들어오시자마자 <폴리 베르제르의 카페>을 보곤 반가워하신다.

“오. 마네구나.”

“네. 콘셉트 아트 구도 잡고 있는데 참고 좀 해보려고요.”

“좋지. 좋지.”

할아버지가 곁에 앉았다.

“처음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마네가 기본도 모르는 멍청이라고 욕했단다.”

작가의 의도는 무시한 채 기본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마네를 욕한 건 지금도 유명한 일화인 듯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구도가 가능하다는 게 밝혀졌지.”

“네?”

놀랐다.

에두아르 마네의 의도를 추측했을 뿐 실제로 가능하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말콤 박 박사와 그렉 칼란이란 사진 작가가 실제로 찍어냈어. 시점이 정면이 아니라 이 여성의 우측에서 비스듬히 바라보는 거라면 이런 구도가 나온단다.”

설명만 들어서는 얼핏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할아버지가 검색해 준 라는 기사를 보니 과연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다.3)

그림에 표현된 여성이 정면을 보고 있어서 당연히 식탁과도 평행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성도 살짝 자세를 틀고 있으니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카페>와 같은 구도가 가능해진다.

아마도.

에두아르 마네가 직접 보고 그린 장면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비판을 받았을 때 상황을 재현하는 것만으로 해명하기 쉬웠을 테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이 2000년이 되어서야 밝혀지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카메라가 발명된 뒤로 현실을 복사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원근법과 명암을 일부러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에두아르 마네는 누구보다도 원근법에 통달했던 화가일지도 모르겠다.

“어때. 신기하지?”

“네. 이렇겐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반성해야 한다.

“마네가 이걸 알고 그렸는지, 아니면 의도와 사실이 우연히 겹쳤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하지만 적어도 당시 평론가들이 내세운 이유로 마네의 이 작품을 깎아내리진 말아야지.”

할아버지 말씀대로다.

마네가 이것을 오직 술집 전경을 넓게 표현하려고 하다가 우연히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든.

아니면 순간을 포착해냈든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폴리 베르제르의 카페>가 당시 파리에서 가장 화려했던 카페의 단면을 완벽히 표현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다섯 명의 인물을 어떻게 한 장면에 담을 수 있을까.

시선이 여럿인만큼 쉽지 않을 듯한데.

마네의 작품을 보고 나니 의욕이 샘솟는다.

* * *

1)빈센트 반 고흐는 여러 언어에 능통했으며 성경을 두루 암기할 정도로 총명했다.

그가 목사 시험을 앞두고 가정교사에게 라틴어 실력이 미천하여 시험을 포기했다는 일화로 그의 라틴어 실력은 별 볼 일 없었다는 오해가 있지만.

동생 테오도르에게 보낸 편지에 “신학대가 바리세인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시험 보기를 포기했다. 내가 그깟 라틴어 가지고 애먹을 리 있겠니.”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그가 신학대 시험을 포기한 이유는 당시 신학대와 교회에 대한 회의감 때문으로 보고 있다.

2)폴리 베르제르의 카페, 에두아르 마네, 캔버스에 유화, 1882.

배경이 된 폴리 베르제르는 음악회와 연극, 서커스 등을 관람할 수 있는 당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였다.

그림 왼쪽 위를 보면 천장에 달린 봉을 딛고 있는 곡예사의 발을 볼 수 있다.

3)Photograph showing a reconstruction of the bar arrangement as seen from the offset viewpoint, Greg Callan Courtesy of Malcolm Park,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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