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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117화 (72/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17화

28. 생일(3)

이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는 몰라도 100g에 30,000원은 정도가 지나치다.

한 팩에 200g이라고 적혀 있으니 할아버지가 준비한 소고기 값을 합하면 30만 원이나 된다.

1㎏ 정도 되는 라지 사이즈 포테이토 피자가 28,000원이고 두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쟁반짜장이 16,000원인데.

이건 말이 안 된다.

방태호가 식탁에 올려둔 철판에 불을 올렸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고기를 관찰하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장미래에게 항복 선언을 하셨다.

“알겠다. 알겠어.”

장미래가 어깨를 쭉 펴며 승리를 과시했다.

“내가 널 함부로 대하면 학생들도 그럴 수 있어. 이제는 그 아이들의 선생님이잖니.”

“말씀 낮춘다고 무시하는 건 아니잖아요. 함부로 대하지도 않으시고.”

“생각이 행동을 따르듯 언행도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거야. 봐라. 벌써 가르치고 있잖으냐.”

“그럴 수도 있죠.”

방태호가 손으로 철판 온도를 확인하더니 드디어 새우살이라는 이름의 소고기 포장을 뜯었다.

“새우살?”

“새우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른대.”

더더욱 의심스러운 이름이다.

소고기를 즐겨 먹진 않았지만 접하기 힘든 식재료는 아니었다.

마을에서 젖을 주던 소가 늙어 죽으면 도축해서 나눠 먹기도 했고, 그 외에도 크게 비싼 재료도 아니라서 스튜 재료로 넣곤 했다.

두툼하게 잘라다가 구워 먹기도 했으니 어떤 맛인지 안다.

아니까 소고기에 새우살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100g에 30,000씩 받는 불합리함이 이해가 안 된다.

치이익-

방태호가 달궈진 불판에 소고기를 얹었다.

고기 익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올라온다.

“그러고 보니 학장님 퇴임식은 언제 하십니까?”

“퇴임식은 무슨. 바쁜 학생들 오라 가라 하는 거 안 좋아하네.”

“무슨 말씀이세요. 다들 선생님 퇴임식이 동창회라고 하는데. 꼭 하셔야 해요.”

“동창회하고 싶으면 따로 하면 되지.”

“에이. 선생님 퇴임식만 한 명분이 어디 있어요. 아마 졸업생 대부분 다 올걸요?”

여러 사람에게 인망을 얻은 할아버지니만큼 사람들이 많이 오려나 싶다.

방태호가 소고기를 뒤집었다.

겉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고기 잡내가 나지 않는 걸 봐선 뭔가 특별한가 싶기도 하다.

“그런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정년 퇴임식에 맞춰 전시회를 여는 것도. 전시회 갖지 않은 지 오래되지 않으셨습니까.”

“흠.”

“그거 좋다! 작품도 많이 있으시잖아요. 저희가 장소 마련해 볼게요.”

“그건 생각 좀 해보자꾸나.”

“생각하실 일 없어요. 이제 활동 많이 하셔야죠.”

“말씀만 해주시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학장님 전시회라면 꼭 한번 맡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망설이시는 것 같다.

“저도 하셨으면 좋겠어요.”

방태호와 장미래의 말을 거들자 할아버지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장미래 말대로 교육자로서 가졌던 부담을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셔야 하니.

정년 퇴임식이 고수열 화백의 복귀전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방태호가 가위를 들었다.

저걸로 뭘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고기를 잡고 자르기 시작한다.

너무 놀라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기를 가위로 자르다니.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다.

삼겹살을 먹을 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져 있어서 몰랐거늘. 그것도 가위로 자른 건가 싶다.

“먹어도 되겠다.”

방태호가 나와 차시현 앞에 새우살을 한 점을 놓았다.

할아버지와 장미래도 한 점씩 집어 먹는데, 황홀한 표정이다.

“맛있다아.”

장미래가 호들갑을 떨며 한 점 더 집어 소금에 찍어 먹었다.

“훈아, 어서 먹어.”

방태호가 재촉하여 젓가락을 들었다. 장미래와 같이 소금을 살짝 찍어서 입에 넣었다.

아.

정녕 이것을 소고기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알던 소고기의 질긴 육질과는 달리 야들야들한 살 속에서 육즙이 흥건하다.

입안을 가득 채운 육즙의 감칠맛과 함께 묵직한 향미가 비강을 채운다.

잡내 따위가 아니다.

녹아내린 지방의 끈적한 육즙의 진중함은 마치 바로크 양식의 궁전처럼 고상하기 짝이 없다.

“맛있지?”

차시현의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었다.

이 위대한 음식을 어떻게 맛있다는 말로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 새우살은 렘브란트의 빛과 그림자와 같은 품위가 있다.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육질은 그의 섬세한 필치를, 터져 나오는 육즙은 그의 빛을 소금은 그 빛을 더욱 강조하는 그림자와 같이 기능한다.

아아.

감사하자.

이토록 훌륭한 고기가 되어 저녁 식탁을 빛내준 소에게 감사하자.

살아서는 밭을 일구거나, 젖을 내어 사람을 이롭게 하더니 죽어서는 이토록 황홀한 양식을 주는구나.

내 비록 너의 이름은 모르나 진실로 감사한다.

네가 평생을 가꾼 훌륭한 육신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울어?”

차시현이 묻는다.

“왜, 왜 울어? 훈아.”

할아버지의 당황한 목소리에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감사해서 그래요. 기뻐서.”

너를 잡아먹는 나를 용서해다오.

너를 먹어 행복해하는 나를 용서해다오. 실로 나는 너를 먹어 행복하구나.

“감동 받았구나?”

그렇다. 이것은 감동이다.

이 순간만큼은 소고기야말로 나의 뮤즈다.

* * *

생일 축하를 받던 고훈이 울먹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이 아팠다.

불행한 사고를 겪고 기억을 잃은 고훈에게는 오늘이 첫 번째 생일처럼 다가올 터.

가까운 사람끼리 모여 저녁을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기뻐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너무 맛있어요.”

고훈의 발언에 소년을 짠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어요? 식감도 향도 육즙도 너무 맛있어요.”

“큽.”

장미래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진짜 못 말린다. 소고기 맛있다고 그런 거였어?”

“그럼요?”

“이 녀석아, 놀랐잖아.”

고수열이 손자를 장난스레 꾸짖으며 한 번 더 웃었다.

방태호가 얼른 고기 몇 점을 덜어주며 말했다.

“맛있지. 품종 개량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품종 개량이 뭐예요?”

고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단어였다.

“고기가 맛있는 소를 교배시키는 걸 반복하는 거야. 예전처럼 소를 농사짓거나 젖 짜는 데 쓰다가 먹는 게 아니라 맛있게 먹기 위한 소를 만드는 거지.”

고훈이 눈을 크게 떴다.

한 생명을 오직 맛있게 먹기 위해 인위적으로 교배시켜 사육한다는 발상이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은 한 번 더 소고기를 입에 넣었을 때 사소한 일이 되어버렸다.

소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소에게 감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감동적인 저녁 식사 후.

거실로 나선 고훈은 앙리 마르소 저택에서 경험했던 회복 캡슐이 설치되어 있음을 발견하곤 크게 놀랐다.

“할아버지.”

“너무 자주 쓰면 안 된다? 미래 이모도 말했듯이 쉬는 것도 중요해. 이것만 믿고 밤새우고 그러면 가져다 버릴 거야.”

“훈이 좋겠다. 이거 엄청 비싸지 않아요?”

“이게 뭐예요?”

장미래와 차시현이 회복 캡슐을 요리조리 살폈다.

고훈은 흐뭇하게 웃는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버지, 큰아버지로부터 의절당하다시피하여 가족의 문제아이기만 했던 그는 테오도르 외의 형제들에게도 무시당했었다.

몇 없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틀어지고. 그는 동생이 보내준 편지로 외로움을 달랠 뿐이었다.

그때와 너무나 다른 지금에.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다독여야만 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 * *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이어가던 미셸 플라티니가 기지개를 켰다.

앙리 마르소의 대표작을 모아 유럽 순회전을 기획하는 중이었다.

마르소 갤러리 운영에 더하여.

전시관을 꾸미는 일부터 스폰서를 구하기까지 전시회의 전반을 총괄하는 입장이다 보니 몸이 열두 개라도 부족했다.

그러나 앙리 마르소의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나머진 내일 할까.’

미셸이 집무실 불을 끄고 나섰다.

직원들은 퇴근한 지 오래라 갤러리 내부는 지시등만이 빛을 내야 할 텐데, 맞은편 앙리 마르소의 집무실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미셸은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다.

앙리가 컴퓨터 앞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해?”

“……이리 와 봐.”

미셸 어깨를 으쓱이곤 그의 곁으로 향했다.

모니터에는 디지털화해 둔 앙리 마르소의 766개의 자화상이 파일로 띄어져 있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살피는 걸 보니 이번 순회전에 작품을 추가하려나 싶었다.

“뭔데? 더 넣으려고?”

“하나 골라 봐.”

미셸이 화면을 쓸어내리다가 <앙리 마르소 285>를 선택했다.

이집트 벽화처럼 옆모습에 눈만은 정면을 바라보게 그린 독특한 자화상이었다.

“이거.”

앙리가 한 번 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뭔데. 뭐 하려고.”

“꼬맹이 생일이래.”

“꼬맹이? 훈이?”

“어.”

“그래서 이거 선물하게?”

앙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셸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르소의 보석> 연작을 보낸 것으로도 질색했는데 생일 선물로 자화상을 보낸다고 하니 황당했다.

“엄청 싫어할 것 같은데.”

“걘 나 안 싫어해.”

“이제 싫어하게 될걸?”

미셸이 어깨를 으쓱이곤 소파에 앉았다.

“평범한 거 어때?”

앙리가 미셸의 제안에 고개를 돌렸다.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뜻으로 팔짱을 꼈다.

“컬러링북 좋아하는 것 같던데.”

“그딴 걸 누가 선물로 줘.”

“네 자화상보단 좋아할 거야.”

“그럴 리가.”

미셸이 고개를 저었다.

한번 결정한 일은 무슨 말을 해도 바꾸지 않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몰랐네. 언젠데?”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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