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14화
27. 비밀(3)
할아버지와 방태호 모두 잠들었다.
색칠공부도 다 해버려서 심심하던 차 크리스틴 노먼이 말한 배도빈이라는 지휘자가 궁금해져 스마트폰을 펼쳤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악단을 운영하는 사람 같다.
신기한 건 고작 만 22세인데 첫 활동을 2009년에 했다는 거다.
올해가 2028년이니까 활동한 지 19년. 만 3세부터 음악을 했다는 말인데,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싶다.
물론 모차르트와 베토벤처럼 아주 어릴 적부터 명성을 쌓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은 참으로 신비롭다.
어떤 음악을 했는지 궁금하여 그가 공식 무대에서 처음 지휘했다는 영상을 틀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은 툴루즈 로트렉 덕에 몇 번 접한 게 전부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은 내가 알던 악단과 사뭇 다르다.
움직임이 절도 있고 표정은 진중하여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품격이 느껴진다.
잠시 후 아주 작은 아이가 무대에 나섰다.
단원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어린 지휘자를 맞이하는 걸 보니, 베를린 필하모닉에서도 그를 인정하는 듯하다.
한국 나이로는 6살 무렵이라고 했는데 막상 영상으로 보니 그보다도 한두 살 어려 보인다.
그러나 화면에 가득 잡힌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자신감과 비장함이 함께 감돌아, 앳된 얼굴과 사뭇 대조적이다.
배도빈이란 남자가 인사하고.
공연장은 조금의 잡음도 없이 고요해졌다.
어린 소년이 두 팔을 들어 올리고 다독이듯 흔들자 관악기 소리가 그믐밤 호숫가에 드리운 안개처럼 깔렸다.
곡 이름은 드보르자크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지휘자 배도빈이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안개처럼 이어지던 연주가 갑작스레 무거워졌다.
마치 위기를 알리는 듯한 호른 소리와 심장이 뛰는 듯 울리는 북소리가 번갈아 들린다.
그 간격이 좁혀질수록 불안해진다.
뭔가 터질 것 같을 때.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어루만졌다. 콘트라베이스의 진중함이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던 큰 위기를 대신한다.
목관 악기가 구름 사이로 비추는 달빛처럼 아름답게 비추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모든 악기가 격정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슴을 죄다가 풀어주는 선율이다.
잔뜩 불안하게 했다가 세상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고, 안도하면 그 어떤 힘보다 위엄을 보인다.
지휘자가 이끄는 대로 감정이 유린당하는 듯했다.
‘이게 대체.’
음악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압도적 심상의 연주가 드보르자크라는 작곡가가 곡을 잘 쓴 덕인지.
지휘자가 뛰어난 것인지 오케스트라의 역량 덕인지 알 수 없다.
그저 44분 3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휘자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이외에는 어떤 표현도 무의미하다.
제목 그대로.
어두운 밤을 지나 새벽을 맞이하는 위대한 걸음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라 그저 심상이 이끄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자동으로 다음 영상으로 넘어갔다.
지휘자 배도빈이 베를린 필하모닉 입단 심사를 치르고 나눈 첫 인터뷰라고 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입단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기자로 보이는 독일인이 지휘자 배도빈에게 질문했다.
-그렇소. 법적인 문제라고 하는데, 정확한 내용은 모르오. 하나 악단에서 잘 처리해 준다고 하니 믿을 뿐이오.
“…….”
아이가 쓰는 독일어가 아니다.
못 알아들을 수준은 아니지만, 배도빈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단어를 구사했다.
‘뭐지?’
독일어가 독특하다는 기자의 말에 배도빈은 오래된 독일 영화를 보며 독일어를 배웠다고 했다.
억양이나 발음은 더할 나위 없이 독일인의 그것인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니만큼 억양이나 발음에 민감할 수도 있겠지만 사장된 단어를 쓰는 건 몹시 의아하다.
오래된 영화라고 해봤자 20세기에 나왔을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나는 어째서 지금 사람들과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막 정신을 차렸을 때는 분명 ‘19세기 언어’를 사용했다.
병실에서 지낸 두 달간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건 내가 구사하는 언어가 단순히 외국어라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부를 따로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가 쓰지 않던 여러 언어의 단어와 활용이 떠올랐다.
집에 온 뒤로는 프랑스어로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이걸 왜 지금에서야.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과 건강한 몸, 별천지와 같은 세상,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기쁨에 정신이 팔렸다곤 해도 이렇게 둔할 수 있나.
이 아이의 기억인가?
어쩌면 ‘고훈’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것 말고는 내가 현대 프랑스어와 영어를 자연스레 구사할 수 있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원래 외국에서 살았다고 하니 아주 무관하진 않을 거다.
“…….”
정말 그럴까.
알 수 없는 뉴튜브 인공지능이 다음 영상으로 스펀지빵을 보여주었다.
* * *
“모시겠습니다.”
“아니야. 자네도 힘들 텐데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집에도 어서 들어가 봐야지.”
“맞아요. 할아버지랑 택시 타고 가면 돼요.”
공항에서 굳이 데려다주겠다는 방태호를 말렸다.
아내와 자식이 있는 사람이 5주나 집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싶다.
한사코 데려다주겠다고 하던 방태호도 결국 못 이기는 척 수긍했다.
“그럼 이번 주는 푹 쉬고. 다음 주부터 또 일하자. 중간중간 연락할게.”
“네.”
“노먼 감독에게 보낼 거 있으면 나한테 보내줘. 파일 공유는 쉽지만 실물은 보내기 번거롭잖아.”
“그럴게요.”
방태호와 손뼉을 마주쳤다.
“그럼 선생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고맙네. 덕분에 편하게 다녔어.”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 올랐다.
“흐아.”
집에 도착하려면 한참인데 이미 지쳤다.
“흐흐. 힘들지?”
“네. 마르소네 회복 캡슐 당장 사야겠어요.”
“그건 천천히 좀 더 알아보고 사자.”
“네.”
비싼 물건이니 여러 정보를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 핸드폰을 살 때와 달리 신중한 할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기자들까지 왔으면 정말 쓰러졌을 거예요.”
“방 대표가 모레 입국한다고 알렸대. 공항에서 사람 몰리지 않게.”
아주 멋진 기만전술이다.
“내일까진 학교도 쉬고. 할아버지랑 목욕탕 갈까?”
“네. 살살 밀어주세요.”
힘이 얼마나 센지 할아버지에게 걸리면 가죽이 다 벗겨질 듯하다.
또 등은 어찌나 넓은지 밀어드리다 보면 진이 빠지지만 목욕하고 나와서 먹는 바나나 우유를 놓칠 순 없다.
“그런데 휘트니 비엔날레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젠 안 가도 돼요?”
“따로 연락이 올 거야. 폐막 전에 한번 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어.”
당장 <기암성> 콘셉트 아트를 그리고 나면 특별한 일정이 없겠다.
일상으로 돌아온 만큼 할아버지와 차분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영화 일 끝나면 또 전처럼 그림 그리면서 놀아요.”
“좋지. 방학 때는 좀 느긋하게 지내자꾸나. 못 봤던 그림도 보러 다니고.”
“오르세. 오르세 가고 싶어요.”
“그렇지. 파리를 몇 번 갔는데도 제대로 못 봤구나.”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이보다 반가울 수 없다.
고작 5주 여행했을 뿐인데 할아버지 집이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한 걸 보면 이제는 정말 내가 사는 곳처럼 느끼는 모양이다.
짐을 대충 풀고 할아버지와 같이 씻었다.
“훈아, 로션 발라야지.”
미끄덩거리는 감촉이 싫지만 양치질과 함께 할아버지가 항상 강조하시는 일이라 조금만 덜어냈다.
“누구 코에 묻히려고 그것만 짜?”
오늘도 할아버지에게 강제로 얼굴 마사지를 당했다.
“아이고. 힘들다. 훈아, 시켜 먹어도 되지?”
“네. 짜장면 먹어요.”
“짜장면?”
“그동안 못 먹었잖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유일한 불만은 짜장면 같은 훌륭한 한식을 먹을 수 없었던 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국 음식 문화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속 괜찮아? 계속 기름진 거 먹었잖아.”
할아버지는 속이 안 좋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식문화가 다르니까. 여행하는 도중에 훌륭한 음식을 두고도 라면을 찾으셨다.
매운 순두부찌개를 먹기도 하셨고.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아요.”
할아버지를 위해 짜장면은 내일로 미루도록 하자.
“그래? 그럼 김치찌개 먹을까?”
“안 맵게요.”
“그래. 그래.”
할아버지가 기뻐하며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셨다.
샤워도 했겠다 TV를 보고 있자니 노곤함이 밀려들어 눈이 감기는데, 초인종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니 할아버지도 잠들어 계신다.
골프채로 문을 열어주니 할아버지가 깼다.
“왔어?”
“네.”
“끄응.”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저런 소리를 내지 않으셨는데.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이번 여행이 무척 고되셨던 듯해 마음이 아프다.
조금이라도 손을 덜어드리려고 상을 들고 오니 할아버지가 말렸다.
“아이고. 무거워. 다쳐.”
“이 정도는 들 수 있어요.”
상이 조금만 더 작으면 좋겠다.
거실에 상을 펼치고 할아버지가 가기 전에 주방으로 달려갔다.
수저와 접시는 높은 곳에 있어서 의자를 끌고 오니 할아버지가 웃으며 손을 뻗었다.
“훈이 다 컸네. 할아버지 도와주기도 하고.”
“더 커야죠.”
여기서 성장이 멈추면 삶이 고단할 거다. 그 털털하고 호방한 툴루즈 로트렉도 술만 마시면 자기 몸에 불만을 늘어놓았을 정도니까.
“흫흐흐. 철이 들었단 소리야.”
“철?”
할아버지가 프랑스어로 말해주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말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관용적 표현이 너무 많다.
할아버지가 포장을 뜯으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드럽게 익은 김치와 가지런히 놓인 두부, 뭉툭하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가 어울려 있다.
붉은색과 흰색 갈색 거기에 초록색 파가 심심함을 달래주니 참 멋진 색감이다.
‘맵지만 않으면.’
할아버지가 그릇에 김치찌개를 덜어주셨다.
“맛있겠지? 할아버지가 이걸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숟가락으로 국물과 돼지고기, 김치를 함께 떴다. 김이 피어오르는 걸 보니 상당히 뜨거울 듯하다.
“뜨겁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바람을 불어 식히곤 입에 넣었다.
“후. 후. 하흡. 하호홉호홉.”
뜨겁고 맵다.
짜고 시고 감칠맛이 확 돈다.
익은 김치가 숭덩숭덩 씹히고 그 안에 돼지고기가 육질을 과시하며 한국에 돌아왔음을 상기시켜 준다.
“흐허헙. 허후. 허후. 크으~”
“하흡. 하으흐으.”
숟가락을 움직일수록 속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