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112화 (67/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12화

27. 비밀(1)

[앙리 마르소, 노먼 사단에 소장품 쾌척!]

[크리스틴 노먼, “마르소 가문의 전시실은 미술의 역사와 미래를 품고 있다.”]

[앙리 마르소의 소장품을 확인한 미술품 감정인들,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수준.”]

[수집가 앙리 마르소의 저력 첫 공개]

어제 프랑스의 유명 화가 앙리 마르소가 자신이 투자한 영화 <기암성>에 소장품을 대여해 주기로 합의했다.

최근 노먼 프로덕션은 영화 <기암성>에서 사용할 미술품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완벽주의자 크리스틴 노먼 감독이 작중 아르센 뤼팽의 화랑을 진품으로 꾸미고자 한 탓이었다.

이에 앙리 마르소가 기꺼이 자신의 전시실을 공개했다.

노먼 사단은 앙리 마르소가 라파엘로의 <어린 코퍼와 마돈나>, 밀레의 <양치는 소녀와 양떼> 외 다섯 작품을 대여해 주었다고 전했다.

한편 작품 목록이 공개되면서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반 고흐 미술관 관리처장이자 유럽 미술비평가협회 회원 케빈 맥컬리 씨는 “국가 규모의 관리가 필요한 작품들이다.”라고 평했고.

저명한 문화 평론가 한이슬 씨는 “유실되었던 세계문화유산이 마르소 저택에서 발견되었다.”고 감상을 내놓았다.

감정인들은 앙리 마르소가 노먼 프로덕션에 대여해 주기로 한 작품은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경매장에 오를 경우 한 점당 최소 1억 유로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앙리 마르소의 소장품은 2031년 완공 예정인 마르소 미술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앙리 마르소의 개인 소장품이 공개되면서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걸작품은 물론 문헌상으로만 존재했던 작품들도 공개됨에 따라 수집가 앙리 마르소의 위상이 한껏 치솟았다.

현재까지 가장 값비싼 전시실을 소유했다고 알려진 러시아의 대부호 이반 모로조프.

헤지펀드 투자자이자 총자산이 4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알려진 21세기 미술시장 최고의 파워맨 스티븐 코웰.

세계 100대 갑부로 손꼽히는 유대계 미국인 헨리 브라운보다도 귀중한 작품을 많이 보유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오갔다.

미술 애호가들의 의문을 언론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기자들은 앙리 마르소가 외출할 때를 노려 달려들었다.

“마르소 씨! 소장품을 전부 공개할 계획은 없으십니까!”

“아직 노먼 감독과 함께하고 계신가요? 기암성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마르소 씨가 이반 모로조프만큼이나 많은 작품을 보유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계십니까?”

“영국 가디언지에서 현재 미술시장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후보에 윌리 루퍼트 회장과 앙리 마르소 씨, 에릭 다우어 관장을 후보에 올렸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자들이 쏟아낸 질문 중에 앙리 마르소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이 있었다.

앙리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살짝 열려 있던 자동차 창문을 마저 내렸다.

“후보?”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앙리 마르소가 헛웃음 짓고는 한껏 비아냥거렸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

세계 최대 미술 경매회사 소더비의 윌리 루퍼트 회장도, 세계 최대 규모의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휘트니 미술관의 에릭 다우어 관장도 앙리 마르소의 성에 차진 않았다.

“잘 들어.”

그가 엄포를 늘어놓았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조연일 뿐이야.”

순간 말문이 막힌 기자들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 말씀은…….”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소더비 따위 엄두도 못 낼 옥션을 만들었어.”

앙리 마르소가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앙리 마르소 미술관이 완공되면 파리를 찾는 사람들이 루브르를 갈까? 오르세? 아니. 날 먼저 찾지.”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조각을 하고 회화를 하기에 의미가 있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알아들어?”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이 오만방자한 예술가의 말에 반론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재력과 수많은 소장품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인기까지.

그가 최고가 아니라면 누구를 내세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 기자가 질문을 틀었다.

“지, 지금은 어디로 가는 길이십니까?”

“피자 사러.”

앙리 마르소가 창문을 올렸다.

기자들이 질문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인터뷰를 시도하느라 그의 값비싼 애마에 상처를 낼 순 없었기에 기자들은 멀어져가는 앙리 마르소의 차량을 허망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 * *

앙리 마르소의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자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들은 마치 이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앙리 마르소의 오만함을 비판했다.

또한 국보급, 나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한 소장품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음을 문제 삼는 것으로도 모자라, 앙리 마르소가 소장품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소 재단 측에서 소장품을 차후 미술관을 설립해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음에도 평소 그를 아니꼽게 여기던 이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진짜 구역질 난다. 모든 게 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라는 사고방식 역겹지 않냐?

└우리 형 욕하지 마. 알고 보면 그렇게 미친 사람 아니야.

└인터넷에서 남 욕하는 너보단 덜 역겨움.

└말이 되나? 돌려주는 게 맞지 않아? 어차피 약탈해서 가져간 거잖아?

└뭔 소리야?

└프랑스가 도적질했던 게 마르소 가문에 흘러 들어갔을 줄 누가 알아?

└ㅋㅋㅋㅋㅋ확실한 것도 아니네.

└그런 의심도 할 만한 게 진짜 말도 안 되는 수준이던데. 심지어 경매에 나오지 않은 물건도 엄청 많아.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할 수도 있지.

└그것도 궁금하긴 한데 진짜 저런 작품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신기하다.

└[링크] [미술관 건립 사유를 묻는 질문에 “미술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답한 앙리 마르소]

└이런 생각 하는 애라서 그런가 봐. 기사 보면 미술관에 전시할 작품 모두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래.

└미쳤나 봨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또라이 같앜ㅋㅋㅋㅋ

└근데 생각해 보면 또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듯. 자기한테 영향을 준 작품들을 자기 작품이랑 함께 전시한다는 거잖아. 자기 이름 내건 미술관에서.

└미술관도 작품처럼 여기는 거네.

└그러니까. 왜 이렇게들 열폭이지? 솔직히 앙리 말 틀린 거 있나? 누구나 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지 않아?

└다른 예술가들 다 쩌리 취급하는 게 정상임?

└다른 사람 하찮게 여겼으면 자기 작품만 전시했겠지.

└맞아. 앙리는 그런 사람 아님. 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야.

└인정하는 방식이 그래. 멋지구나. 내 인생의 주연을 맡기에 충분해. 이런 느낌이라 거부감 있는 듯ㅋㅋ

└그건가 보다. 앙리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데, 예술가들 사이에선 호불호 명확한 게 그거 때문인 듯. 자존감 강한 사람 입장에선 내가 저놈 조연이라고? 하는 느낌 아닐까?

└나만 귀여워? 세상 모든 게 자기중심인 거 유치원생 사고방식이잖아ㅋㅋㅋ

└귀여움ㅋㅋㅋㅋ

└솔직히 저 정도 되면 뭘 해도 되지. 남 눈치 안 보고 사는 게 난 부럽다.

└돈 많지. 잘생겼지. 키 크지. 옷 잘 입지. 인기 많지. 재능 쩔지. 진짜 신도 만들어 놓고 실수했다고 생각했을 듯.

└그래서 인성은 안 줌.

“귀여워?”

본인 기사를 검색하던 앙리 마르소가 인상을 썼다.

고훈은 앙리 마르소가 직접 포장해 온 피자 박스를 열며 그를 관찰했다.

본인을 비난하는 글에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귀엽다고 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그가 그저 신기했다.

“셰리 가도 씨는 어디 갔어요?”

“휴가.”

“그럼 저녁은요?”

“피자 사다 줬잖아!”

앙리 마르소가 직원 대부분이 휴가를 나간 사이 갑작스레 방문한 고훈 때문에 친히 포장해 온 피자를 가리켰다.

아펜니노 산맥에서 생산한 모차렐라 치즈.

밀가루, 물, 효모, 소금만으로 배합해서 손으로 직접 반죽한 도우.

토마토 소스와 바질, 화덕에서 구워내야 하는 규정 등을 철저하게 지킨 완벽한 피자였다.

고훈이 마르게리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잘 먹을게요.”

토핑과 소스가 잔뜩 들어간 피자에 익숙해진 소년은 마르게리타에 실망했다.

더욱이 셰리 가도의 멋진 요리 솜씨를 기대하고 온 터라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고훈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별일이네요. 그럼 오늘은 아르센 씨랑 단둘이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이야. 조금 있으면 아르센도 퇴근할 거고. 너도 빨리 먹고 돌아가.”

“그렇구나.”

앙리 마르소는 걸신들린 듯 식사하던 고훈이 어제와 달리 깨작깨작하는 모습이 몹시 불편했다.

“……뭐 하러 왔어?”

“그냥요.”

“그냥은 무슨. 전시실 보러 왔어?”

“그렇다고 할게요.”

고훈이 아쉬움을 감추며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었다.

분명 치즈가 향기롭고 담백한 빵과 토마토소스가 적절히 어울렸지만, 취향은 아니었다.

셰리 가도가 없는 줄 알았다면 액자 장인 피에르 말로의 초대를 정중히 거절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잘 먹었습니다.”

“더 먹어.”

“배불러요.”

몽마르트까지 직접 가서 사다 준 앙리 마르소의 정성 때문에라도 그가 사 온 피자가 맛이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단지 어제 셰리 가도가 해놓은 음식이 남아 있는지 어떻게 물어볼까 궁리할 뿐이었다.

고훈이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자 앙리 마르소의 얄팍한 인내심이 결국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할 말이 있으니까 그렇게 보는 거 아니야! 보고 싶으면 눈치 보지 말고 가서 봐!”

“어제 다 봤어요.”

“아까는 전시실 보러 왔다며!”

“아, 그랬네요. 그럼 그런 걸로.”

앙리 마르소가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오늘 예정된 중요한 약속 때문에 고훈을 돌려보내야 하는데, 좀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고훈이 슬쩍 본심을 드러냈다.

“……셰리 가도 씨랑은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어요?”

“유모하고는 상관없잖아! 왜 왔냐고!”

앙리는 고훈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빨리 내보낼 생각뿐이었다.

“마르소는 밥 안 먹어요?”

“이따 먹을 거야!”

“뭐요? 혼자 있어도 제대로 챙겨 먹는 게 좋아요.”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내가 알아서 해!”

“그렇게 화만 내면 건강에 안 좋아요. 건강에 좋은 블루베리는 어때요?”

“끄으으으으으아아아악!”

앙리 마르소는 갑자기 찾아온 고훈이 쫑알대는 통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된다느니.

물감을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냐, 곤충은 안 좋아하냐, 펭귄이 왜 물고기가 아닌지 아냐 같은 이상한 질문을 해댔다.

그뿐만 아니라 규칙적으로 살아야 한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쉼 없이 떠드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너 나 싫어하잖아! 갑자기 왜 참견이야? 괴롭히려고 왔어?”

“이젠 안 싫어해요.”

앙리 마르소가 멈칫했다.

“뭐라고?”

“안 싫다고요. 좀 별나다곤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고훈이 아쉬운 마음에 마르게리타 피자를 쿡쿡 찔러보며 말했다.

“마르소야말로 나 싫어하잖아요. 누군 뭐 노력도 안 하고 하루아침에 그림 그리는 줄 알아요?”

앙리 마르소는 귀를 의심했다.

고훈이 의자에서 폴짝 내려왔다.

“택시 좀 불러주세요. 갈래요.”

“기다려.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앙리 마르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본인이야말로 싫어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 고훈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들어야만 했다.

“웬 피자 냄새? 내가 해준다고 했잖아.”

그때 미셸 플라티니가 안으로 들어섰다.

식재료가 가득한 종이봉투를 안고 있는 그녀가 고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앙리 마르소도 화들짝 놀랐다.

고훈이 갑작스러운 말을 꺼내는 바람에 한 달에 한 번, 저택의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미셸 플라티니와 데이트하는 날을 순간 잊고 말았다.

미셸이 앙리를 노려보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했다.

당황한 앙리 마르소가 어떻게든 상황을 숨기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르센은 이미 퇴근했는데. 미셸 플라티니 대표.”

미셸이 미간을 잔뜩 좁혔다. 고작 생각해낸 거짓말이 그뿐이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아, 그래요? 연락을 못 받았나 봐요. 실례했습니다, 앙리 마르소 작가님.”

미셸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훈에게 인사를 건넸다.

“훈이 안녕. 요새 엄청 바쁘다며? 영화 작업은 재밌어?”

고훈이 미셸 플라티니와 앙리 마르소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 미안해요.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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