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10화
26. 콜렉터(4)
일행은 당황했다.
앙리 마르소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집가란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한 나라의 국보급 걸작, 아니, 인류 전체가 보물로 여길 작품이 종종 눈에 띄었다.
특히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어린 코퍼와 마돈나>, <양치는 소녀와 양떼> 같은 작품은 작품 가격을 논할 수 없었다.
프랑스의 추리 소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도둑이 가장 이상적으로 꾸며놓은 개인 화랑’조차 앙리 마르소의 전시실에는 비할 수 없었다.
“밀레는 정말 최고예요. 그거 알아요? 당시에 농부를 그린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요. 가장 천하게 보던 이들의 일상에서 야훼를 본 거라고요.”
고훈이 장 프랑수아 밀레를 예찬하기 시작했다.
앙리 마르소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리며 호응했다.
“당연히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시 받았어요. 하지만 끝까지 자신을 놓지 않고 살았다고요.”
빈센트 반 고흐.
고훈에게 장 프랑수아 밀레는 단순히 선배 또는 앞선 세대의 거장이 아니었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시리라.’
독실한 크리스천이자 런던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빈센트 반 고흐에게 밀레는 이정표와 같았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노동자의 삶을 거룩하게 표현했다.
빈센트의 눈에 그의 작품은 마치 형체가 없는 야훼가 깃든 것처럼 보였고, 동시에 밀레와 같이 가장 낮은 곳을 비추고자 했다.
그의 첫 자신작 <감자 먹는 사람들>은 그만의 방식으로 밀레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앙리 마르소가 고훈의 말을 이어받았다.
“끝까지 농부의 삶을 놓지 않았다는 데 의의가 있어.”
앙리 마르소는 실로 장 프랑수아 밀레를 존경했다.
아무도 농부의 삶을 표현한 그림을 사 주지 않았기에 밀레는 반평생 생활고에 시달렸다.
최소한의 생활은 해야 했고 재료비를 충당하고자 수요가 있던 누드화를 그려야 했다.
“그가 당시 귀족들이 바라던 그림을 그려주었다면 적어도 그 천박한 그림을 그리진 않아도 되었을 테지.”
하지만 장 프랑수아 밀레는 자신이 그리고자 했던 농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점점 주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밀레를 천박한 그림이나 그리는 사람으로 취급했으나.
밀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밀레가 온갖 오명과 고난 속에서 자신을 지켜낸 증거야. 자신이 누군지 명확히 알고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한 남자다.”
자존심을 내려놓는 대신.
편안한 삶을 포기하는 대신 ‘나’를 지킨 남자를 앙리 마르소는 깊이 흠모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테오도르 루소의 역할이 컸지.”
“맞아요.”
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 프랑수아 밀레 이야기에 흥분한 고훈이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밀레와 루소의 일화를 풀어냈다.
“바르비종으로 이사한 밀레가 접목하는 농부를 판 이야기죠?”
“그래.”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긴 밀레는 재료비는커녕 생활비부터 걱정해야 하는 무명이었다.
아무도 이름 없는 화가의 풍속화를 사려고 하지 않았고 밀레는 그렇게 점점 여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테오도르 루소가 300프랑을 건네며 말했다.
‘실은 널 화랑에 소개했더니 관심을 보이더라고. 그림 중에 가장 멋진 걸 골라서 가져와 달라고 하더라. 몇 점 꺼내 봐.’
‘내 그림을? 대체 누가?’
‘지금 그게 중요해? 이 돈이 안 보여?’
밀레는 크게 기뻐하며 <접목하는 농부>를 넘겼다.
비록 큰돈은 아니었지만, 당장 배를 곯던 밀레는 한동안 생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그림이 더 팔릴 수 있다는 희망은 당장의 식사 이상으로 그를 응원했다.
그렇게 몇 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 밀레는 여유를 얻어 친구 테오도르 루소의 집을 찾았다.
그때 거실에 걸린 <접목하는 농부>를 보곤 감격했다.
“밀레가 훗날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을 정도로 성공했던 건 모두 테오도르 루소 덕분이야.”
앙리 마르소가 콧김을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고훈이 앙리 마르소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 * *
나는 이 사람을 이용했다.
어떻게 유명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어서, 돈 많고 철없는 사람의 명성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가 <해바라기>에 빠졌다는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해바라기>를 사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유명한 사람과 작은 일을 만드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작은 화제가 되었을 테고 그렇게 점점 이름을 알릴 생각이었다.
돈 밝히는 아이, 주제를 모르는 신인이라는 말 따위 감내할 생각이었다.
부정적인 말보다 무관심이 무섭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으니까.
비겁하다고 약아빠졌다고 해도 살아남기 위해,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가 있었다.
장 프랑수아 밀레 스승처럼.
그것이 가시나무 수풀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걸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앙리 마르소가 <해바라기>를 200만 유로에 정말 사면서 예상보다 빨리 안정된 환경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그에게 실망하기도 질리기도 했지만 <해바라기>부터 <손님>, <서리 밀밭>에 이르기까지 난 그의 도움으로 명성을 쌓아 나갔다.
사람들은 앙리 마르소가 거액을 들여 수집한 ‘고훈’에 관심을 가졌고 비로소 내 가치를 알아주었다.
아무리 잘난 그림을 그리더라도 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으니까.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그렇게 화제가 되었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이 사람 덕분이다.
그림을 네 점이나 걸 수 있던 것도 그 덕분이고, 내 그림이 더 큰 관심을 얻은 것도 <그림자> 덕분이다.
할아버지와 장미래, 방태호, 김지우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 아니, 앙리 마르소가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없었을 거다.
밀레 스승의 벗 테오도르 루소를 언급하는 앙리 마르소를 보며.
아직 제대로 인사하지 않았음을 걸 깨달았다.
“고마워요.”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내 그림 사 주고 휘트니 미술관에도 걸어줬잖아요. 손님은 어떻게 구한 거예요?”
“뭔 소리야.”
앙리 마르소가 다음 방으로 향했다.
비서 아르센이 일행을 안내해 제2전시실로 향하는데, 방태호가 웃으며 말했다.
“전이랑 분위기가 다른데? 무슨 일 있었어?”
“네.”
무슨 일이 있긴 했지만 말로 풀어내기 어렵다.
그가 왜 내 그림을 산 것부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그를 어떻게 보았는지 등 한 시간으로도 부족할 거다.
적당히 대답하고 방을 옮기니 이번에는 상당히 잘 아는 사람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로 어마어마하게 긴 캔버스에 연못을 배경으로 한 버드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1)
처음 보는 작품이지만 한눈에 클로드 모네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어찌나 큰지 이 방의 한쪽 면을 오직 한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이거 가로로 얼마나 해요?”
“12.75m입니다.”
가로 12.75m에 높이가 2m 정도 되는 대작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마치 그림 속에 동화된 듯하다.
클로드 모네라는 연극의 막이 오르듯, 양옆의 버드나무가 커튼처럼 걷어지는 중이다.
연못 위에 비치는 버드나무 그림자와 떨어진 잎 그리고 어여쁘게 핀 수련이 앙증맞다.
“내 생각에 여긴 공개해야 해.”
아트 디렉터 네이선 에반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같은 생각이다.
이만한 작품을 혼자 보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비서 아르센이 빙그레 웃었다.
“이곳에 있는 작품은 2031년 완공 예정인 앙리 마르소 미술관에서 상설 전시할 계획입니다.”
“미술관을 세워요?”
“네. 마르소 가문이 소유한 벵센느 숲 일부를 부지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벵센느 숲? 거기가 개인 소유였습니까?”
방태호가 화들짝 놀랐다.
나도 놀랍긴 하지만, 사실 이젠 앙리 마르소가 얼마나 부자인지 감이 안 잡히는 수준이라 크게 감흥은 없다.
그저 반가운 작품을 둘러볼 뿐이다.
한참을 구경한 끝에.
마지막 방을 찾았다.
지금까지 들른 방 중에 가장 넓었는데, 이곳은 현대 작품을 수집한 곳 같다.
연대순으로 방을 나누고 작가별로 정리한 듯하다.
“할아버지다.”
“으잉?”
할아버지 이름을 발견했다.
<혼>이라는 제목이다.
1986년이라고 적힌 걸 보니 할아버지가 20대 시절에 그린 작품 같다.
할아버지의 예전 그림을 보기는 처음인데 지금과는 화풍이 무척 다르다. 두꺼운 붓을 거침없이 써서 기백이 느껴진다.
수묵채색화인데 활을 당기는 군인의 모습이 이렇게 격렬할 수 없다. 뒤틀리고 과장된 구도와 힘찬 필치는 지금껏 내가 본 그림들과는 또 다르다.
앞으로 뻗은 손과 화살촉이 어마어마하게 큰데, 사실 원근법을 보면 이렇게까지 크게 보일 리 없다.
이건 전쟁에 임하는 사람의 패기와 상대방 입장에서 얼마나 공포스럽게 보일지를 상징하는 거다.
“할아버지 그림인 줄 몰랐어요.”
“이게 왜 여기 있다냐.”
사람들이 <혼> 앞으로 몰려들어 저마다 감탄을 터뜨린다.
“고수열 경 작품을 직접 보는 건 처음입니다.”
“정말 희소한 그림이네요. 동양화를 꽤 접하긴 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입니다.”
나도 수묵화를 공부하는 중이지만 할아버지의 수묵채색화는 확실히 다르다.
할아버지의 수묵화는 여백이라든지 단아함, 깊이 같은 전통적인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과격하다.
“작가님께서는 고수열 경의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셨습니다만 현재까지 네 작품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비서 아르센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앙리 마르소를 대신해서 설명했다.
“네 점이나?”
할아버지가 눈을 깜빡였다.
예전에 듣기로 할아버지의 작품은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 여러 수집가가 사들이고 공개된 전력이 없다고 들었다.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네 점이면 정말 많은 거다.
“네. 앙리 마르소 미술관에 고수열 경 전시실을 따로 꾸밀 예정이라 지금도 매수 중에 있습니다.”
“……내 그림을 전시한다고요?”
“네.”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앙리 마르소를 보았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앙리 마르소가 아르센을 탓했다.
할아버지의 눈이 흔들린다.
작품을 팔라고 귀찮게 굴던 앙리 마르소를 개잡놈으로 여기던 할아버지로서는 당황하실 수밖에 없을 거다.
“아르센 뮈소 씨가 한 말이 참인가?”
할아버지가 앙리에게 물었다.
“그럴 예정이었는데 수급이 원활하지 못합니다.”
할아버지의 작품이 지금 시장에 나오면 얼마나 될지 예상할 수 없다.
경매가 20년 이상 중단되었고 작품 공개도 아주 드물게 했으며 더더욱 연세가 있다.
빌어먹을 수집가들이 빌어먹은 이유는 작가가 죽길 바란다는 거다.
모든 수집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작품을 투기 대상으로 삼는 수집가는 작가가 죽길 바란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으니 희소성이 높아지니까.
때문에 나이 많은 유력 작가의 작품은 고가에 거래되곤 한다.
아마 앙리 마르소만 한 수집가가 할아버지의 작품을 더 구하기 힘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좀 파시는 게 어떻습니까.”
앙리 마르소가 평소와 같이 건방을 떨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
할아버지는 길게 앓는 소리를 내더니 아무 대답 없이 시선을 돌리셨다.
* * *
1)수련-버드나무와 맑은 아침(Le Matin clair aux saules), 클로드 모네, 캔버스에 유화, 1914~1926, 오랑주리 미술관 소장.
모네의 수련 연작 중 하나로, 살아생전 작가가 국가에 기부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