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106화 (6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06화

25. 포스터(9)

K20 주립미술관에 가려고 하다가 K21 현대미술관에서 특별 기획전을 연다고 하여 발길을 돌렸다.

지도로 볼 때는 근처인데 키가 큰 나무가 시야를 가리는 탓에 미술관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로 가는 건가 보다.”

할아버지 목소리를 따라 한적한 길로 걸어 들어가니 곧 근사한 미술관이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갈색 벽돌과 대리석을 품격 있게 쌓아 올린 K21 미술관 주변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인다.

건물 옆 테라스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음료수를 나눠 마신다.

유모차를 끌고 있는 남자가 눈인사를 보내서 웃으며 화답했더니 아이도 손을 흔들었다.

의미 없는 행동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반갑게 인사해 준 듯해 기분이 좋아졌다.

“북적거리지 않네요?”

특별 기획전을 열고 있다고 해서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었거늘 차분하다.

“그러게. 공원처럼 쓰이고 있구나.”

할아버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씀하셨다.

루브르나 오르세처럼 ‘미술관에 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해서 괜히 또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곳 사람들에게 미술관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휴식 공간일 뿐이다.

이렇게 멋진 호수가 있으니 무리도 아니리라.

“할아버지, 오리예요.”

“줄지어 다니는구나.”

오리 가족이 호수 주변을 걷고 있다.

엄마 오리를 따라 뒤뚱뒤뚱 걷는 새끼 오리들이 참 귀엽다.

한 아이가 다른 곳에 한눈을 팔자 뒤에 가던 아이가 머리를 들이밀어 다른 곳으로 못 가게 한다. 호기심 많은 아이와 형제를 챙기는 의젓한 아이를 보니 흐뭇해진다.

철없는 형을 챙기는 동생 오리를 너무 괴롭히진 말라고 생각하며 주변 경관을 감상했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표면에 어울린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미술관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풍경과 일상 자체가 이미 훌륭한 안식처다.

“이건?”

방태호가 포스터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가까이 가보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배경으로는 사람 얼굴이 상당히 조잡하게 그려져 있다.

추상미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윌렘 드 쿠닝의 작품과는 다르게 의도가 읽히진 않는다.

필치를 보면 또 범상치 않은 인물이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다.

“이게 뭐예요?”

“모르겠어.”

“이게 지금 한다는 특별 기획적이죠?”

“응. 백동준 선생님 작품이랑 여러 소장품을 전시한다고 써 있어.”

방태호와 내가 한참을 포스터 앞에서 고민하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할아버지, 이거 어때요?”

할아버지는 어떻게 보실까 싶어서 여쭸더니 차분히 감상하신다.

역시나 할아버지는 뭔가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모르겠는데.”

가끔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지.

“누가 그린 거지?”

“안드레아라고 적혀 있습니다.”

방태호가 포스터 가장 아래에 작게 적힌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드레아? 시로요는 아닐 테고.”1)

“네. 화풍이 전혀 다릅니다.”

“서명도 다르고.”

내가 아는 안드레아도 아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가 그렸다고 하기엔 과도기가 짐작되지 않는다.

“들어가자.”

입장권을 사려고 하자 직원이 할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안녕하세요.”

반가워하는 눈치라 먼저 인사를 건넸다.

미술관 직원은 옆 사람을 툭툭 치며 인사했다. 돌아본 사람이 할아버지를 보더니 입을 틀어막았다.

“고수열 경, 영광이에요. 아, 손자분과 함께 오셨나 보네요.”

역시 할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은 어딜 가든 있다. 할아버지는 항상 그러했듯 점잖게 웃으며 인사했다.

“손님 정말 좋았어요.”

처음 날 알아본 사람이 마르소 갤러리에 전시되었던 <손님>을 언급했다.

“감사합니다.”

“표는 어떻게 드릴까요? K20 주립 미술관이랑 함께 관람하시면 할인받을 수 있으신데.”

“시간이 없어서요. 기획전 보고 싶어요.”

“아쉽네요. 할인 챙겨드릴게요.”

“26.5유로죠?”2)

방태호가 나섰다.

“24유로입니다.”

직원의 안내에 방태호가 의아해했다. 옆에 소개된 입장료를 확인하곤 물었다.

“원래 어린이 표를 받지 않았나요?”

“아이들이 부담 없이 놀러 올 수 있도록 재작년부터 받지 않았습니다.”

휘트니 미술관만 예술과 대중의 관계를 생각하는 건 아닌 듯하다.

이곳 K21 현대미술관도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예술과 친근하게 지낼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확실히 어렸을 때의 경험이 커서도 영향을 미치니까 좋은 방향이다.

방태호가 표를 구입하는 도중에 입구에서 본 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포스터 그린 안드레아가 누구예요?”

직원에게 물으니 싱긋 웃는다. 그러더니 옆 사람과 시선을 마주하곤 소리 내어 웃었다.

뭐가 저리도 재밌을까 싶어서 기다리니 고개를 젓곤 대답한다.

“인공지능 이름이에요. 어때요?”

너무 황당해서 뭐라 대꾸를 못 하고 있는데 방태호가 나섰다.

“이걸 인공지능이 그렸다고요?”

“네. 안드레아에게 이번 기획전 콘셉트를 알려주니까 이런 그림을 그려서 포스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나만 놀란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와 방태호도 적잖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의도를 알지 못했을 뿐.

붓과 물감을 사용하는 방식이 절대 기계가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적이었다.

“……흐음.”

할아버지가 신음하며 다시 한번 포스터를 찬찬히 살피신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문구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저것은 인공지능을 대변하는 말일까, 아니면 인공지능이 저만한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남은 우리의 말일까.

“올라가시죠.”

방태호의 말에 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발을 힘겹게 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특별 기획전이 이루어진다는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미술관에 올 때는 항상 주변 경관과 건물 자체에 감탄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돔 형태의 꼭대기 층은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 마치 외부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개방감 덕분에 미술관 안이 아니라 뒤셀도르프라는 지역에 함께하는 것 같다.

가장 먼저 우릴 반기는 작품은 모니터. 사각형 틀을 이어 붙임으로써 나무 형태로 만들고 모니터를 틀마다 넣어둔 설치물이다.

제목을 보니 백동준 작가가 1995년에 만든 <사과나무>라고 한다.

모니터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상당히 두껍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비추고 있다.

“훈아, 어제 자동화가 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냐고 물었지?”

“네.”

“이분의 작품은 그 질문에서 시작해야 해.”

할아버지가 <사과나무>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계를 잃는 사람도 있지만, 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도 있단다.”

확실히.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많은 화가가 사물을 복제하기를 그만두었다.

“이 TV라는 것은 세상을 그전까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했단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지.”

확실히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TV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은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

“이 TV라는 것 때문에 예술가들은 고민했단다. 더 이상 사람들이 예전처럼 미술관을 찾지 않게 되었으니까.”

미술품을 직접 보는 것과 TV를 통해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만, TV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러 이유로 미술관을 찾지 못할 때 손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또 미술품을 보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주니까.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불평만 해댈 때 백동준 작가는 이 TV라는 물건마저 예술의 도구로 사용했단다. 세상이 변화했으니 예술가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사과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

오래된 모니터 속에서 일렁이는 이미지들이 마치 공연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TV뿐만 아니라 이런 전자기기를 직접 발명하고 개량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죠.”

방태호도 거들었다.

“…….”

생각이 복잡해진다.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소외된 노동자들을 결코 소홀하게 여기면 안 된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한 백동준 작가처럼 훌륭하고 멋진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 특별 기획전의 주제는 누구나 한 번쯤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윌렘 드 쿠닝과 같은 대가들의 작품이 사랑받는 시대에 나는 아직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형성한 담론은 내게 와닿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아마 ‘옛날 사람’이고 저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어쩌면 처음부터 좁힐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

포기하지 않고 내가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길뿐이다.

소통하지 않은 채 거울을 앞에 둘 뿐이라면 언젠가는 고립되어 변화된 세상에서 고립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과나무>를 바라보니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왜 힘든지 알 것 같아요.”

할아버지와 방태호가 내려다본다.

“1995년에 만들어졌으면 고작 33년 전 작품이잖아요?”

“그렇지?”

“전 이게 TV라는 걸 할아버지가 알려주셔서 알았어요. 고작 33년 만에.”

<기암성>을 콘셉트 아트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거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는다.

복식을 제외하고는 19세기 격동의 세기말조차 마차, 거리 모두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고작 130~140년 만에 세상은 천지가 개벽을 거듭한 것처럼 달라져 있다.

<사과나무>에 사용된 TV가 33년 전만 하더라도 첨단 기술이었을 텐데 지금 내 눈에는 아주 생경하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19세기보다 20세기가.

20세기보다 21세기가.

“너무 빨리 바뀌는 것 같아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그래.”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인간이 점점 소외되는 것도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이란다.”

이제야 조금.

이 시대를 알아가기 시작한 듯하다.

이 전시회 포스터를 그린 안드레아라는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사과나무>를 만든 백동준 작가의 삶을 이해한 순간.

쉬민케 물감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과 피자를 만들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 * *

1)안드레아 아로요:

1962년생, 멕시코 출신의 예술가.

2)2020년 기준 K21 현대 미술관입장료는 성인 12유로(할인 시 10유로), 어린이(6세~17세) 2.5유로임을 밝힙니다.

작중 세계관에서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여 성인 14유로, 할인받을 경우 12유로, 어린이는 무료로 설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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