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97화
24. 이야기를 담는 일(5)
“이 그림 때문에 스탕달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어.”
“스탕달?”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가슴이 뛰거나 환각을 경험하는 현상인데 스탕달이라는 작가가 피렌체에서 이 그림을 보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고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부른단다.”1)
“아.”
소설 <적과 흑>을 쓴 스탕달이다.
어째 들어본 이름 같다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스탕달의 일화 이전부터 종종 언급되던 작품이다.
이탈리아에 가본 적이 없어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은 당시에도 그리고 꽤 오랜 세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다시 한번 <베이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단지 머리부터 어깨까지의 두상만으로도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가 이렇게나 명확히 전달된다.
스탕달이 느꼈던 감정이 대충 예상된다.
“그리고 이 그림과 같이 볼 그림이 두 장 더 있단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고개를 돌렸다.
“원본부터 보자꾸나.”
깜짝 놀랐다.
“모작이에요?”
내 가슴을 흔들어놓은 이 걸작이 원본이 아니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글쎄. 그렇긴 하지만 합의된 모작이지. 이 그림은 엘리자베타 시라니가 스승 귀도 레니의 작품을 모사한 거야.”
“아.”
설마 그 유명한 귀도 레니의 제자일 줄이야.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본 적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억눌려 있는 시기에 이런 걸작을 어떻게 그렸을까 싶었는데.
아마 귀도 레니도 엘리자베타의 재능에 감복하여, 기꺼이 제자로 들였으리라.2)
할아버지가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스승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찾았다.3)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다.
베아트리체의 내면을 중시한 제자 엘리자베타.
그녀의 미모를 강조하여 베아트리체가 겪은 비극에 집중한 스승 귀도 레니.
엘리자베타는 스승의 작품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멋진 사제 관계다.
다만 엘리자베타의 작품은 스승 작품보다 보관 상태가 좋지 않다.
“레니는 베아트리체의 비극을 표현하고 싶었나 봐요.”
“그렇지. 잘 봤구나.”
애초에 모든 요소가 거의 일치하는 그림이다. 말 그대로 스승의 작품을 모사했으니 말이다.
다만 서로 다른 점은 분명 있다.
엘리자베타의 그림에서는 베아트리체의 체념이 강조되었고, 귀도의 그림은 부드럽고 애수로운 질감과 눈빛으로 비극성이 강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그림은 원본보다 제자의 모조품이 더 유명하단다. 심지어는 엘리자베타의 그림을 귀도 레니가 그렸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
할아버지 말씀대로 두 작품이 너무 흡사해서 혼동하기 쉬울 것 같다.
보관 상태가 좋았다면 구분하기 더욱 어려웠을 테고.
제자의 작품이 더 유명한 이유는 먼저 발견되었다거나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듯싶다.
어쩌면 모델이 된 베아트리체 첸치의 감정이 좀 더 잘 드러나서 사람들 마음에 와닿을 수도 있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스승과 제자 모두 대단한 작품을 남겼다.
“그럼 다음 그림을 보자꾸나.”
할아버지가 다른 그림을 찾으며 많은 화가가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여기 있구나.”4)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TV를 가로로 늘였다.
덕분에 화면 가득 볼 수 있다.
“아킬레 레오나르디라고 19세기에 살았던 화가가 그린 베아트리체란다.”
아킬레 레오나르디라는 이름을 보니 이탈리아 화가 같다.
제목은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를 스케치하는 레니>라고 적혀 있다.
초상화를 스케치하는 ‘레니’라니.
의아하다.
“이걸 그렸을 때는 엘리자베타의 그림이 알려지지 않았나 봐요?”
할아버지가 방금 스승보다 제자의 작품이 더 유명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그림을 그린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디란 사람은 스승 레니를 그렸다.
“아니. 다들 스승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
설명을 구하는 의미로 고개를 갸웃하자 할아버지가 입맛을 다시며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런 오해가 있었단다.”
제자 엘리자베타가 그린 베아트리체를 스승이 그렸다고 착각했다?
그럴 수가 있나.
혹시나 여자가 저런 그림을 어떻게 그리냐고 생각했나?
당시에는 여성을 동등하게 보지 않는 풍조가 있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19세기만 해도 여자는 여러 분야에서 배제되었으니까.
하물며 그보다도 한두 세기 전 일이니 오죽했을까.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
나라도 그 이름을 기억하겠다.
“빛을 잘 썼네요. 고증도 잘 되어 있고.”
한눈에 봐도 누가 귀도 레니인지 알아보겠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들이 즐겨 입던 옷이다.
다른 사람들의 복식도 섬세하게 잘 표현했는데.
베아트리체 첸치는 아름답다.
앞서 두 작가가 그린 베아트리체와는 달리,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이 마치 성녀를 묘사한 것 같다.
몸은 후덕하게 표현했는데, 이 역시 풍요와 자애를 의미하는 것일 터.
“상징이 되었어요.”
이건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그녀를 묘사하는 레니를 위한 작품도 아니다.
“그래. 그녀는 죽은 뒤에 많은 화가에 의해서 권력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단다. 이 그림은 정확하게 그린 듯하지만 베아트리체란 개인보단 권력을 향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어.”
가슴을 움직이는 그림은 아니지만 분명 이 작품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할아버지가 갑자기 왜 베아트리체 첸치와 관련된 그림을 보자고 했는지 깨달았다.
<기암성>의 인물 설정화를 그릴 때 무엇을 중시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으셨던 모양.
아킬레 레오나르디의 작품은 문제의식을 깔아둔 작품이고 고증도 잘 되어 있지만.
두상인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작품보다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사람을 깊이 표현하진 못했다.
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는 그림은 귀도 레니나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작품이다.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멋진 강의였어요.”
“다행이구나.”
할아버지가 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었다.
엘리자베타 시라니란 화가를 좀 더 알고 싶어서 리모컨을 들었다.
“더 보고 싶어?”
“네. 이렇게 멋진 화가가 무명이었다니 저라도 기억하려고요.”
“무명이라니?”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시라니의 작품을 다들 스승이 그린 줄 알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엘리자베타 시라니는 당시에도 호평을 받았어. 단지 아버지 지오반니 안드레아 시라니에게 심하게 학대를 받았지. 엘리자베타를 돈 벌어오는 기계처럼 여겼단다.”
오늘 개새끼들 이름을 너무 많이 알게 된다.
“엘리자베타가 그림을 팔아서 번 돈으로 술이나 퍼마시고, 딸이 조금도 쉴 수 없게 했어. 그러다가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보게 된 거란다.”
“아.”
엘리자베타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 왜 그렇게 안타까운지 알 것 같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 비극에 치달았던 베아트리체 첸치와 자신을 겹쳐 보았던 것이다.
그 깊은 공명이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라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오늘은 차분히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
* * *
고증도 중요하지만.
할아버지 덕분에 정말로 지향해야 하는 요소를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변장은 물론, 목소리 변조에 연기력 또한 발군이라 프랑스 전체가 달려들어도 좀처럼 잡아내지 못했던 대도(大盜) 아르센 뤼팽.
그를 잡겠다고 나선 당찬 소년 이지도르 보트를레의 패기를 보여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인물은 두상 또는 반신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모델료를 줄 수 없던 탓에 지인이나 자화상을 그려왔다.
나로서는 동적인 전신상을 그리는 것이 큰 도전인데, 할아버지께서 좋은 강의를 해주셨으니 그릴 수밖에.
처음은 뒤돌아서는 자세로 잡았다.
몸을 거의 다 틀어서 ‘단서’를 되짚는 상황을 연출하고자 한다.
총기로 빛나는 눈과 확신에 찬 입이 중요하다.
빛은 어디에 둘까.
오른쪽 위. 인물의 뒤에서 뻗어오게 표현하면 분위기는 살지만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니.
그것도 괜찮지.
그늘진 얼굴에 눈빛만을 강조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대충 선을 따고 나선 좀 더 자세히 덧그린다.
복장은 제작진과 합의한 대로 표현해야 한다.
우등생답게 흰 셔츠 위에 체크무늬 조끼를 단정하게 입히고 단추는 모두 잠근다.
꼼꼼한 성격을 상징하는 회중시계를 어떻게 표현할까 싶다가 주머니 속에 넣었다고 상정하고 시계 줄만 허리춤에 채웠다.
노먼이 탐정의 필수 요소라는 돋보기를 꼭 넣으라 했으니 손에 쥐여 준다.
“후.”
여러 장을 그려야 하지만.
이 한 점만으로도 이지도르 보트를레를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고 그리고 고치길 반복하다 보니.
생각보다 즐겁다.
막연했던 <기암성>의 인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노먼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가 왜 단정하고 짧은 머리를 요구했는지, 소매는 왜 깔끔해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그린 가상의 인물이 <기암성>의 세계 속에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니 좀처럼 가만있을 수 없다.
이런 걸 바랐던 게 맞냐고.
당장에라도 노먼에게 보여주며 묻고 싶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1시 48분.
가장 마음에 드는 이지도르 보트를레를 사진으로 찍어 노먼에게 보내니 그녀에게서 곧장 답신이 왔다.
{내 이지도르가 거기 있었네} 11:49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완벽히 공유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대화란 말인가.
내일 당장 나머지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
* * *
1)스탕달 증후군의 유래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한 시인은 발다사레의 프레스코화 때문이라고 알렸다(원문 일부 발췌: It was on one of his visits to Italy in 1817 that Stendhal described an experience that brought the literary swoon into tourism. Visiting the Basilica of Santa Croce, he found a monk to let him into the chapel where he could sit on a genuflecting stool, tilt his head back and take in the prospect of Volterrano’s fresco of the Sibyls without interruption. The pleasure was keen. ‘I was already in a kind of ecstasy,’ he writes, ‘by the idea of being in Florence, and the proximity of the great men whose tombs I had just seen. 저자: Iain Bamforth).
반면 한국에서는 스탕달이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보고 스탕달 신드롬을 느꼈다고 알려져 있다.
혹은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보고 느꼈다고도.
그러나 이들 모두 추측일 뿐이다.
스탕달이 직접 남긴 기록에 따르면 “산타 크로체 대성당을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었다”고 한다.
산타 크로체 대성당에 있는 여러 작품을 본 뒤에 느꼈던 병리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널리 알려진 정보이기에 <다시 태어난 반 고흐>에서는 본문과 같이 소개했고 주석을 달아서 진위를 밝힌다.
2)정확히는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부친이 귀도 레니의 제자였다.
3)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귀도 레니, 캔버스에 유채, 1633.
*많은 전문가가 여러 모작 중 귀도 레니의 작품으로 추측하는 그림일 뿐, 아직 명백한 사실로 밝혀진 바가 없음을 알립니다.
4)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를 스케치하는 레니, 아킬레 레오나르디, 캔버스에 오일, 19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