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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96화 (5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96화

24. 이야기를 담는 일(4)

영화 <기암성> 제작진과 함께한 지도 벌써 2주가 되었다.

설정화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집에서 살았고, 무엇을 먹었는지에 관해서 빠짐없이 공부했다.

사실 추억을 되짚는 일이나 마찬가지라 수월하리라 생각했거늘.

예상외로 쉽지 않았다.

<기암성>의 시점은 내가 죽은 지 10년 뒤인데, 주거와 식문화는 비슷해도 옷 양식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주요 인물의 복식만을 정하는 일만으로도 꽤 고생했으니, 모든 등장인물을 감당하려면 머리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슬슬 보여줘야 할 텐데.’

어찌 되었든 인물 설정과 복식은 대강 정했으니 인물 설정화를 그릴 차례다.

아직 고민이 많다.

단 하나의 그림으로 서사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니 캔버스가 더욱 부담스럽다.

아무것도 없어서 자유롭게 그릴 수 있지만, 동시에 막막하기도 한 캔버스 앞에서 고민을 이어갔다.

얼마나 흘렀을까.

창문 밖이 어둑어둑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TV를 틀었는데 마침 ‘대화를 나눠요’가 나오고 있다.

오늘은 앙리 마르소가 출연했다.

-고훈 작가와의 관계도 많이들 궁금해하십니다. 최근에 또 멋진 팬서비스를 함께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흥.

-팬들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부럽다, 좋겠다 등. 참, 마르소 씨가 그려주신 가면을 직접 만들어 SNS에 인증한 팬도 있다고 합니다.

-계속 쓰고 다녀.

-다른 글도 한 번 살펴보죠. 자기 얼굴과 비교하신 분도 있고 가보로 여기겠다는 분도 계시고.

TV 속 앙리 마르소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반응도 있습니다. 이분은 고훈 작가의 팬 같네요. 보스턴에 사는 직장인 A씨는 ‘나도 앙리처럼 옷에 그려달라고 부탁할 것을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 옷을 사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요. 이건 무슨 일인가요?

-그 빌어먹을 꼬맹이가 내 옷에 오일 파스텔을 닦아냈지.

-하하. 고훈 작가의 팬들은 부러워하던데요? 혹시 경매에 내놓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걸 내가 왜 팔아?

-역시 고훈 작가가 덧칠한 옷이라 팔 생각이 없으신 것 같네요. 고훈 작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분답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옷이야! 덧칠해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자식이 내가 좋아하는 옷을 더럽혔다고!

-다른 팬들에게는 아쉽게 되었습니다만 고훈의 팬이기도 한 마르소 씨에게는 소중한 소장품이니 포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너 미쳤어? 내 말 안 들려?

기분 전환도 할 겸 보려고 했는데 너무 시끄럽다.

TV를 껐다.

차시현이 보낸 파란 나무 그림에 답장을 보내주고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았다.

천천히 다시 시작하자.

머릿속에 지난 2주간 쌓은 지식을 정리했다.

이지도르 보트를레.

영화 <기암성>에서는 아르센 뤼팽과 함께 주역으로 등장하는 고등학생이다.

대도 아르센 뤼팽을 체포하겠다고 나선 당찬 소년 이지도르 보트를레는 놀라운 추리력으로 뤼팽을 압박한다.

번뜩이는 직관력과 불굴의 도전 의식은 <기암성>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는 한편 여성에게는 면역이 전혀 없는 탓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입체적 인물이다.

뛰어난 두뇌 때문에 완성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품이 이어지는 도중에 점점 더 성장하여 응원하게 된다.

“…….”

고민하면서 그려 본 몇몇 스케치 모두 마음에 안 든다.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마냥 가만있을 수는 없어서 이것저것 시도했을 뿐.

이지도르 보트를레를 보여줄 가장 적합한 방법은 아니다.

그렇게 또 얼마간 고민하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다녀오셨어요.”

캔버스와 주변에 널린 스케치를 보시곤 단추를 풀었다.

“열심히 싸우고 있구나.”

“네. 이야기를 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어요.”

대도 아르센 뤼팽을 체포하려는 소년의 순수하고 당찬 포부를 표현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답게 여린 면도 있음을 보이는 건 쉽지 않다.

“흠.”

할아버지가 샤워실로 들어가셨다.

또 캔버스 앞에서 손을 놀리며 고민을 이어가다 보니 할아버지가 곁으로 다가오셨다.

평소에도 종종 그러셔서 이지도르 보트를레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중.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훈아, 할아버지랑 그림 하나 볼까?”

별일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작업할 때는 뭐 하자고 안 하시는데, 갑자기 그림을 보자고 하신다.

진전도 없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TV를 길게 올렸다.

한계가 있지만, 가로 세로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어서 언제 봐도 신기하다.

이탈리아 국립 고대 미술관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시더니 더듬더듬 ‘Portrait of Beatrice Cenci’라고 검색하셨다.1)

“아.”

나도 모르게 소리 내고 말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눈물 한 방울.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이 이토록 애달플 수 있을까.

소녀의 눈에는 슬픔도 행복도 희망도 절망도 없다.

체념뿐이다.

그 공허함과 그녀가 입은 흰옷, 뒤돌아보는 자세를 통해 이별을 고하는 듯하다.

대체 누구일까.

심연의 저편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한 이 슬픈 여성은 누구란 말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TV 앞으로 향했다.

나는 이 표정을 알고 있다.

남은 사람을 위한 얼굴이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슬퍼할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짓는 미소다.

죽음을 받아들인 이 소녀는 남아 있는 이들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신마저 속이며 미소 짓지만.

차마 입꼬리를 올릴 수 없다.

대체 이 앳된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죽어야만 했는가.

“베아트리체 첸치. 엘리자베타 시라니란 화가가 그렸단다.”

엘리자베타라는 이름으로 보아 여성일 텐데 그림 아래 1662년에 그렸다고 표기되어 있다.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하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17세기 당시에 이런 화가가 있다니 놀랍다.

“……이 사람이 뭘 잘못했어요?”

할아버지께 베아트리체 첸치에 대해 물었다.

“잘못이라. 어떻게 봤는지부터 들어보고 싶구나.”

할아버지의 말씀에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이별하고 있어요. 본인이 곧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지 않아도 영영 보지 못할 곳으로 가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울지도 화내지도 않고 돌아보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남은 사람을 무척 사랑한 것 같아요. 그들이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눌렀을 거예요.”

살고 싶다고 외치지 못한 그때의 나처럼 말이다.

“머리에 두른 천과 옷의 표현이 정말 뛰어나요. 빛과 그림자를 완벽하게 대조했어요. 어두운 배경과 흰 피부처럼요.”

짚고 넘어갈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자세도 중요해요. 어깨의 각도를 보면 뒤돌아보고 있지만 완전히 몸을 틀어 돌아올 것 같진 않아요. 자세만으로도 이별하는 상황을 알 수 있어요.”

내 설명을 듣던 할아버지가 소파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내 어깨를 감싸곤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 사람은 아버지에게 아주 못된 짓을 당했단다.”

내 나이를 생각해서 뭉뚱그려서 말씀해 주신 듯한데.

그림 아래 영어로 그녀가 친아버지에게 겁탈당했다고 적혀 있다.

“저항도 해봤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 성에 가두고 괴롭혔어. 베아트리체가 겨우 15살이었을 때의 일이란다.”

짐승만도 못한 개새끼다.

어찌 사람을 감금해 두고 입에 담기도 역겨운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친딸을.

“그나마 양어머니와 친오빠는 베아트리체의 편이었어.”

의붓어머니조차 가엽게 여길 정도라면 굳이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양어머니와 오빠가 아버지의 만행을 고발했지. 하지만 베아트리체의 아버지는 돈도 많고 힘도 셌단다.”

권력자였다는 뜻이다.

작품 아래 해설에도 교황청에 고발되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계속 읽어 보니 양어머니와 친오빠, 이복동생도 심각한 수준으로 학대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살고 싶었어. 하지만 저 사람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하나뿐이었단다.”

할아버지가 직접적인 표현을 계속 피하셨다.

“괜찮아요.”

“뭐가?”

“밑에 있는 글 다 읽었어요. 아버지를 죽였다고.”

“…….”

“저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아요. 살인이 잘못이라는 건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크흠.”

할아버지가 목을 풀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독약을 먹였지만 죽지 않았지. 그래서 가족은 직접 아버지를 해치고 사고로 위장했단다.”

할아버지께도 말씀드렸지만 어떤 이유로도 살인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그러나 베아트리체 첸치와 그 가족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한다.

어렸을 적부터 이어진 폭력과 성적 학대 속에서 자아는 철저히 무너지고, 겨우 용기를 내 고발했음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마 고발 이후 보복성 폭력이 더 심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교황청까지 움직일 정도로 유력한 권력자였으니, 도망간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일 터.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럼 저 그림은.’

이야기가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그 뒷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렇게 일이 끝났으면 적어도 저 소녀와 가족들은 편안히 살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어.”

“왜요?”

“교황청에서 조사가 나왔어. 범행에 가담한 베아트리체의 연인을 고문해서 죽이기도 했단다.”

죽을 때까지 고문했다는 건 범행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글쎄. 하인이 실토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할아버지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 다만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를 죽인 사람들은 모두 사형 판결을 받았단다.”

“너무해요.”

“너무하지. 로마 시민들도 베아트리체와 가족들의 정당방위를 주장했어.”

“그러면.”

할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교황은 판결을 번복하지 않았어. 오빠가 먼저 죽고, 양어머니가 죽었지.”2)

한 세기를 뛰어넘어 살아가고 있지만, 정말 많은 것이 변한 듯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저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 아파하고 정당방위를 주장한 사람이 있는 한편.

버러지 같은 인간도 있다.

“그리고 사형되기 직전, 유일하게 사형을 면제받은 어린 이복동생을 돌아보는 모습이 이 그림에 담겨 있단다.”3)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단한 것을 탐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평생에 걸쳐 쌓인 상처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어서,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서 발버둥 쳤을 뿐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행위가 사형으로 이어지다니.

정말이지 이럴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보니 저 연유를 알 수 없는 안타까운 표정이 더욱 애달프게 다가왔다.

* * *

1)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엘리자베타 시라니, 캔버스에 오일, 1662

2)교황청은 상속권을 가진 사람을 모두 죽일 예정이었으나 시민들의 항의가 격렬해졌다.

교황청은 여론을 달래고자 어린 막내 베르나르도 첸치만은 살려주되, 어머니와 형, 누나가 사형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으며 전 재산을 몰수하고 감옥에 수감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교황청이 첸치 일가 모두를 처형한 이유가 첸치 일가의 막대한 재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3)실제로는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을 그렸음을 밝힙니다.

작중 내용은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본 필자의 개인적 감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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