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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90화 (45/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90화

23. 이유(1)

팬과의 즐거운 만남을 만끽한 앙리 마르소가 병원 침대에 드러누웠다.

포도당 주사를 맞는 도중에도 이를 바득바득 갈며 오후의 추억을 회상했다.

“빌어먹을.”

미셸 플라티니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말했다.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이야?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앙리 마르소가 고개를 돌렸다.

“그 자식이 날 무시하잖아.”

“글쎄. 당신 생각 아니야?”

“뻔히 힘든 거 알면서 응원하는 거 못 봤어? 일부러 그런 거잖아.”

“내가 보기엔 당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은데.”

“모르는 소리. 암스테르담에서도, 갤러리에서도 똑같았어. 일부러 엿 먹이는 거야.”

미셸이 고개를 저었다.

저 고집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그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슈는 꽤 됐네. 당신 기사뿐이야.”

미셸이 병실 TV와 스마트폰 화면을 미러링했다.

포털 사이트 뉴스 항목이 온통 앙리 마르소와 고훈 이야기로 가득했다.

잔뜩 성이 난 앙리 마르소가 자신을 찬양하는 기사와 댓글에 안정을 되찾아갔다.

“진짜 궁금한데.”

미셸이 가방을 챙기며 물었다.

“왜 그렇게 집착해?”

“뭘?”

“고훈. 정말 캐롤라인 스트릭 말처럼 그래?”

미셸은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이 말했던 대로 앙리 마르소가 고훈을 본인과 겹쳐 보는지 궁금했다.

“개소리야.”

학계 권위자가 어떻게 판단하든.

적어도 앙리 마르소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철이 들기도 전에 없었던 부모와 사진이나 영상을 보지 않으면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조부가 그리웠던 적은 유년 시절뿐이었다.

“그럼?”

미셸 플라티니의 재촉에 앙리 마르소가 고민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속마음을 꺼냈다.

“불합리하니까.”

“응?”

미셸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나 다 시작하는 단계가 있어. 나도 고등학교 들어간 뒤에야 시작되었고 고수열도 학부생 시절부터 인정받았어. 심지어 파블로 피카소도.”

앙리 마르소도 처음부터 사랑받진 않았다.

대부호의 자식이 그림을 그린다고 이슈가 되긴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비로소 천재 화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해 주지 않아 홧김에 파리역의 광고판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도배했고, 그 이후 인정받기 시작했다.

유명해지는 계기는 각기 다르지만 어떤 화가에게나 무명 시절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 유명한 피카소조차 키우던 고양이가 물어온 상한 소시지를 나눠 먹어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고훈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서울의 평범한 미술관에 걸린 고훈의 첫 발표작 <해바라기>는 그 자체로 대가의 품격을 풍겼다.

그뿐인가.

유명하지 않은 화가들이 ‘유명하지 못한’ 이유는 꼭 작품이 못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런데 고훈은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지 명확히 알고, 앙리를 도발했다.

고훈과 몇 마디를 나눈 앙리는 소년이 단기간 안에 세계 무대에 올라오리라 확신했다.

고수열의 손자라는 후광은 조금도 상관없었다.

그의 그림이 마음을 움직였고 그가 미술계의 생리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앙리의 예상대로 고훈은 여러 일화를 만들며 급부상했다.

“좀 알아봤어.”

“누굴? 훈이?”

“어.”

앙리 마르소가 비서 아르센을 시켜 고훈에 대해 알아본 내용을 떠올렸다.

“……4살 때까진 한국에서 살다가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갔어. 거기서 1년을 머물고 파리에서 3년. 다시 독일에서 2년.”

“너 좀 소름 끼친다. 뒷조사했어?”

미셸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가 그러든 말든 앙리 마르소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저린 손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녀석이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미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펀지빵이란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애였고 도리어 잦은 이사 때문에 학교에서 겉돌았지. 성적은 최하위권. 우리 말이나 영어는 이상하게 썼고 모국어인 한국말은 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제대로 못 했어.”

“잠깐. 말이 안 되잖아.”

미셸은 앙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고훈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했다.

다소 옛말을 사용하긴 했지만 지금은 상류층만이 사용한 고급 회화를 구사했다.

“그래. 말이 안 되지.”

앙리 마르소가 이를 악다물었다.

미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앙리 역시 비서 아르센의 보고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고해성, 이수진 부부가 살았던 집 근처의 이웃들에게 수소문한 정보였으니 어느 정도 착오는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반복해 확인해도 이야기는 한결같았고 어쩔 수 없이 보고서를 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더 말이 안 되는 건 제대로 된 미술교육기관도 다니지 않았던 녀석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깨어난 3~4개월 만에 그런 그림을 그린 거야.”

첫 발표작 <해바라기>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와 같이 대우받고 있고.”

앙리 마르소는 고훈이 어떻게 단시간 안에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세계 여러 도시를 다녔으니 언어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거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러 나라 말을 능숙하게 입에 담으니, 고훈에 관련한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고훈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앙리 마르소는 불필요한 정보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남은 것은 당연히 미술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화가가 9살 꼬마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앙리 마르소는 고훈의 작품을 열렬히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부정해야만 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오직 그림만을 보고 달려온 그였기에, 노력 없이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녀석이 정말 깨어난 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면 천재라는 말밖에 안 돼.”

“잠깐. 비약이 심하잖아. 미술 학원 같은 곳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집에서 배울 수 있었어. 부모도 뛰어난 화가였고.”

미셸 플라티니가 맹점을 짚었다.

미술 전문 교육 기관을 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고훈이 미술 공부를 안 했다고 판단할 순 없었다.

고해성, 이수진 부부는 세계적인 아트 디렉터로 명성이 자자했고 그 둘의 아이라면 가정에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었다.

“9살짜리 애가 하면 얼마나 했다고.”

앙리 마르소가 반박했다.

“교육을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시간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

“중요한 건 고작 타고난 재능에 내가 밀릴 리 없다는 거지. 그래선 안 된다는 거지.”

미셸은 앙리가 그에게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콤플렉스 덩어리인 그는 모든 감정을 오직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승화해 왔다.

일찍이 천재로 불리기 이전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 손꼽히는 지금도 그는 미술품을 만드는 일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러하기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고훈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고훈의 작품에 마음이 동하면서도 동시에 자존심 때문에 인정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이 그의 이상행동을 부추겼다.

‘그래서.’

미셸은 줄곧 이어온 의문에 답을 들은 듯했다.

앙리가 비슷한 나이면서도 비슷한 평가를 받는 장미래나 그보다 좀 더 나이가 많은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에게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고훈에게만은 유독 적대적인지 알 것 같았다.

* * *

몇 시간 전.

고훈과 앙리 마르소가 사인회를 함께하며 또 한 번 친분을 과시하고 있을 무렵 고수열은 오랜 친구를 찾았다.

“페르디난도.”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호텔 방으로 찾아와 준 고수열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요.”

고수열을 조금이나마 안심시키고자 힘겹게 지은 미소가 그를 더욱 안타깝게 할 뿐이었다.

“어찌 된 게야?”

“그냥 컨디션이 좋지 않을 뿐이에요. 앉아요.”

페르디난도가 의자를 권했다.

“개인전 준비 때문에 며칠 고생했더니 몸살이 왔나 봐요.”

고수열은 팬을 극진히 여기는 페르디난도가 사인회를 거절할 정도라면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병원을 가야지.”

“괜찮습니다. 정말로. 요즘 그냥 조금 피곤할 뿐이에요. 당분간은 좀 쉬려고 해요.”

페르디난도가 고수열을 안심시키며 병 음료를 권했다.

“정말 괜찮나?”

“그럼요. 그나저나 멋지던데요. 가면. 정말 완벽한 퍼포먼스였어요.”

페르디난도는 눈앞에서 가면을 벗어버린 해바라기를 떠올렸다.

고훈은 해바라기 꽃잎을 단색으로 그렸고 음영은 단지 오일 파스텔을 문지르는 것만으로 표현했다.

대체 어떤 색을 섞었는지.

녹색 잎과 황금빛 꽃잎에 둘러싸인 해바라기는 햇살을 머금은 듯 눈부셨다.

반 고흐 풍의 자화상을 찢어내고 그런 그림을 내비쳤으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일부는 고훈이 자신과 반 고흐와의 차별성을 과감히 주장했다고 평했고 또 다른 쪽은 과거 거장보다 자신이 낫다는 오만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고생깨나 했지. 처음에는 찢는 게 아니라 그림을 덧그려서 벗겨내려 했다네.”

페르디난도가 눈을 크게 뜨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스크라피토 기법에서 도화지를 찢어내는 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했다.

“몇 번 해보더니 안 된다는 걸 깨닫더군. 벗겨낸 물감이 그대로 굳어 있길 바랐거든.”

“그건 힘들죠.”

“그렇게 2주 정도 다른 방법을 찾더니 글쎄 캔버스를 겹치더라고. 찢기 힘드니까 앞쪽은 도화지로 대체했고.”

설명을 들을수록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신기할 뿐이었다.

만일 고훈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신이 내려준 심상으로 <가면>을 뚝딱 그려냈다면 차라리 받아들이기 쉬울 터였다.

그러나 고훈의 작업 과정은 철저히 교과서적이었다.

굳어지는 이미지를 벗기고 싶다는 명확한 심상을 가지고.

그림 아래 그림을 보인다는 목표를 설정하여 그것을 해내기 위한 시도를 거듭했다.

실패를 거침으로써 방법과 목표를 일부 수정하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고훈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미술가였다.

흔히 말하는 천재의 번뜩이는 발상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대단하네요.”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실로 감탄했다.

많은 사람이 예술가의 작업을 대단히 특별하다고 여기나 실상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창의성이 없어서’, ‘뮤즈를 못 만나서’, ‘재능이 없어서’와 같은 이유로 치부하지 않았다.

작품을 완성하는 원동력은 그런 천부적인 재능보다 갖추기 어려웠다.

오직 끊임없이 사랑해야 했다.

깨어 있을 때도 잠들기 직전에도 오직 작품만을 생각하고.

그 과정이 길고 험난하나 마침내 원하는 답을 찾았을 때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적어도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이러한 노력이 재능을 앞선다고 생각했다.

재능 따위는 범접할 수 없이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기에 그러한 과정을 기꺼이 즐기는 고훈이 단순히 천재라는 것보다 훨씬 대단히 느껴졌다.

“정말 잘 가르치셨네요.”

페르디난도 곤잘레스의 말에 고수열이 헛웃음 지었다.

“그건 그렇고. 개인전도 준비한다고?”

“네. 이번에 출품도 했고. 좀 더 기간을 두려고 했는데 휘트니 비엔날레를 둘러보니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죠.”

“충분히 공감하네. 멋진 작품뿐이더군.”

“수열도 슬슬 전시회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오래 기다립니다.”

“핳핳하하! 이거 병문안 왔다가 혼만 나고 가게 생겼구만.”

스물다섯 살이나 차이 나는 두 친구가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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