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87화 (42/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87화

22. 후회(1)

앙리 마르소는 고훈이 칼을 꺼낸 순간부터, 그가 반 고흐를 모방한 자화상을 찢어내어 그 사이로 해바라기를 드러낼 때까지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아연실색하여 그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목도할 뿐이었다.

도화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마치 날카로운 바이올린처럼 울렸다.

현을 긋는 칼날이 그의 이성을 베어냈다.

마치 흙을 뚫고 자라나듯 도화지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해바라기는 태양을 삼킨 듯 눈부셨다.

처음 봤던 그날처럼.

<가면>

앙리 마르소가 제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고훈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더는 어린 반 고흐로 여기지 말라고.

나만의 해바라기가 이렇게나 찬란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 선명한 목소리가 앙리 마르소의 가슴에 분명히 닿았다.

‘멋있다.’

한편 착한 아들,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차시현에게 친구 고훈의 일탈 행동은 큰 충격이었다.

소년에게 <가면>의 겉표지는 너무나 잘 그린 그림이었다.

그것을 칼로 긋고 찢다니.

그 뜻을 완벽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소년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희열이 피어올랐다.

‘예쁘다.’

황금빛 해바라기는 지금껏 차시현이 보지 못했던 색으로 빛났다.

가슴이 요동쳤다.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벅차올랐다.

쏟아지는 박수갈채의 중심에 선 친구가, 그의 미소가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

“아저씨, 훈이 대단하죠. 그쵸!”

“그러게요.”

발을 동동 구르며 정진호 비서에게 친구를 자랑한 차시현은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고.

그것은 오늘의 경악스러운 광경을 본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였다.

└찢었다.

└ㅋㅋㅋㅋㅋㅋㅋ와 미쳤다ㅋㅋㅋ 다들 놀란 거 봨ㅋㅋㅋ

└퍼포먼스 확실하네. 생각도 못 했다.

└지금 고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전해지네. 고수열 손자고, 고 주니어고, 작은 반 고흐고 필요 없다는 뜻임. 화가 고훈으로 보라는 말이잖아.

└은근히 스트레스였나 보다.

└난 그런 부정적 이미지보단 좀 더 긍정적으로 느껴지는데. 극복해내겠다는 의지?

└미술가한테 아이덴티티가 얼마나 중요한데.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계속 꼬리표 물걸?

└가면을 스스로 찢어버린 고훈이랑, 가면을 인정하고 융화를 시도한 앙리 마르소의 구도도 괜찮아 보임.

└그러게. 어떻게 둘이 같은 주제로 출품했지. 미리 이야기했었나?

생중계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소년의 행위를 여러 방향으로 해석했지만, 의도만큼은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미술에 특별히 관심이 없고 단지 어린 천재가 무슨 작품을 발표할지 궁금하여 찾은 사람들마저 고훈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강렬한 이미지에 휘트니 비엔날레를 기획한 큐레이터 중 한 명인 마이클 핑은 혀를 내둘렀다.

‘이런 걸 준비했을 줄이야.’

그는 조금 전만 하더라도 고수열과 방태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발표식을 강행한 것은 오직 고수열과 고훈이 지금까지 보여준 작품 때문.

이건 아니라고 확신하면서도 아주 작은 희망을 건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아주 특별한 행위는 아니었다.

캔버스에 상처를 내는 작가도 있었고1) 낙찰된 작품을 분쇄기에 갈아버린 작가도 있었다.2)

그러나 <가면>은 분명 그것들과 구분되었다.

발표식에서 선입견을 형상화한 작품을 보이고, 그것을 직접 찢음으로써 충격을 준 것이었다.

부여된 이미지를 깨고.

자신이 어떤 미술을 하는지 당당히 보이는 수단이었다.

더욱이 찢어진 겉표지마저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마이클 핑은 순간 자신의 의문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남들과 다른 것을 찾기 위했다면 가능할 리 없었다.

고훈은 자화상을 찢어낸 행위 이후에 자신의 첫 전시작 <해바라기>를 연상시키는 연작을 보였다.

겉모습이 아니라 작품을 봐주길 호소했다.

그 진솔한 행위가 가장 고훈다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으리라.

마이클 핑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조금 전부터 저를 뚫어지게 보고 계신 기자님의 질문부터 받겠습니다.”

마이클 핑에게 지목된 김지우의 얼굴이 <가면>의 해바라기처럼 활짝 피었다.

“대한민국 예화의 김지우입니다.”

그녀는 뿌듯한 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화가 고훈의 시작을 알렸던 지난 전시회를 인상 깊게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화가 고훈이 어떤 미술을 할지 알리신 듯하네요. 화가 고훈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고훈이 마이크를 잡고 앙리 마르소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시 김지우를 보며 답했다.

“제겐 아직 배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소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자세히 둘러보진 못했지만 휘트니 비엔날레는 정말 대단한 작품으로 가득합니다. 감상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저런 표현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앙리 마르소의 그림자는 정말 인상적이었죠. 경이롭다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아요.”

객석이 작게 술렁였다.

미셸 플라티니는 고훈을 노려보던 앙리가 고개를 돌린 탓에 웃음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어떤 미술을 할지 알렸다고 하셨지만 저도 제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 모르겠어요. 정말 많은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고훈의 말에 기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가 어떤 미술가를 언급하며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 받아적고자 준비했다.

“할아버지와 장미래 작가, 앙리 마르소 작가 그리고 팬케이크로 그림을 그리는 분까지 정말 많은 예술가가 이 시간을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팬케이크?”

고훈이 누군가의 의문을 무시하고 숨을 한 번 골랐다.

“아마 휘트니 비엔날레에 전시된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굳이 어떤 미술을 할지 답한다면.”

소년은 시선을 옮겨 객석에 앉은 사람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한 뒤 답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고훈은 ‘현대(Modern)’가 아니라 ‘동시대(Contemporary)’란 단어를 사용했다.

더 이상 형식과 위계, 주류 사상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 미술계를 포괄하는 단어였다.

모든 화가가 자신을 동시대 예술가로 여겼다.

고훈은 거기에 그림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말 한 마디를 덧붙일 뿐이었다.

‘남이 하지 않은 작품’, ‘특별한 작품’, ‘주목받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매몰되어 이해와 소통은 사라지고.

평론가, 해설가조차 설명할 수 없어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해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지금의 미술계를 한탄하던 김지우는.

또 뜻 있는 작가들은 고훈의 대답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다.

고훈이 고개 숙여 호의에 답했다.

<가면>을 완성하기까지 반복했던 실패와 고민이 헛된 일이 아니었음에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 * *

[경악으로 물든 휘트니 미술관]

[충격의 커팅식]

[찢어서 완성된 가면]

[고훈 발표식에 순간 동시시청자 70만 명 기록]

[페르디난도 곤잘레스, “너무나도 멋진 작품이다. 퍼포먼스로 끝나지 않는 완결성도 갖추었다.”]

[고훈의 호의적 발언을 외면하는 앙리 마르소, “찍지 마!”]

[동시대 미술에 경종을 울린 어린 천재]

4월 23일. 휘트니 비엔날레가 진행 중인 뉴욕 휘트니 미술관 3층에서 고훈이 새 작품을 공개했다.

<가면>이란 제목의 이 독특한 회화는 캔버스 위에 도화지를 겹쳐서 출품되었다.

9살 소년이 천을 걷어낸 순간 발표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탈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라고 해도 무방한 자화상이 드러났기 때문.

섬세하고 강렬한 임파스토 기법과 보색 활용, 선명한 이미지는 빈센트 반 고흐를 향한 고훈의 존경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그가 미술품 복원가였다면 수많은 수집가와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복원하길 의뢰했을 터였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작가가 휘트니 비엔날레에 출품할 만한 그림은 아니었다.

과거 거장의 화풍을 완벽히 재현한 기술은 뛰어나나 그곳에서는 어떠한 개성도 찾을 수 없었다.

기대를 품고 발표식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소년은, 아니, 화가 고훈은 보란 듯이 칼을 쥐었다.

자화상을 칼로 그어낸 고훈은 양손으로 도화지를 찢어내 마침내 자신을 드러냈다.

오일 파스텔을 녹여 붓으로 그린 고훈의 두 번째 해바라기는 첫 작품 이상으로 밝게 빛났다.

형상만 해바라기일 뿐, 마치 태양을 연상시키는 찬란한 노란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는 ‘겉표지’ 뒤를 칠하여 마치 해바라기의 잎처럼 연출한 점은 정말 ‘Awesome’ 했다.

고훈은 미술가로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그림으로 대화하고 싶다고 답했다.

팬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그에게는 이 시대 자체가 소통해야 할 예술적 대상인 듯하다.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은 고훈이 남과 다른 작품, 특이한 작품만을 좇던 일부 미술가들의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평했다.

캐롤라인 스트릭은 “사회가 부여한 페르소나를 벗어내되 완전히 거세하지 않은 가면은 그가 시대와 어울리되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리란 의지”라고 설명하는 한편.

“이는 앙리 마르소가 그림자를 통해서 사회와 개인의 간극을 인정하고 그것 또한 개성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것과는 또 다른 자아실현”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은 두 작가 모두 타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보였으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동시대 미술이라는 캐롤라인 스트릭 교수의 주장이 학계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미술평론가 피에르 쿠르티옹은 철학자 질 들뢰즈의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앙리 마르소와 고훈이야말로 단절되었던 회화의 역사를 잇고, 동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화가다운 화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냐 스트레제만(타임즈)

장미래가 타임즈에 실린 기사를 읽으며 커피를 마셨다.

고훈이 자신을 분명히 하는 과정이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그 험난한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건만 지금은 앙리 마르소와 나란히 평가받고 있었다.

‘좋지.’

장미래는 평단의 시선 이상으로 고훈을 높이 평가했다.

작품 한 점을 1,400만 달러에 팔았으면 우쭐해질 법도 한데, 대중과 동시대 미술가들과의 관계를 결코 잊지 않았다.

‘이제 극복할 때도 되었어.’

그녀는 이제 미술계가 자학과 자괴의 상처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예술가들은 그들이 사랑하던 예술의 무력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전쟁의 광기와 폭력 앞에 음악과 미술, 문학은 그저 선전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었다.

예술가들은 절망했다.

산업화가 시작되며, 권력에 예속되었던 그들은 귀족에게서 차츰 독립하기 시작했다.

대중을 상대하면 그들이 바라는 형태의 예술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 왕립 미술원의 일률적이고 권위적인 화풍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조르주 쇠라, 폴 세잔,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이후에도 기라성 같은 미술가들이 일생을 바친 투쟁으로 얻어낸 새로운 시대를 찬양했다.

그러나 거대한 폭력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류가 처음 벽화를 남겼을 때부터 이어져 온 회화의 역사가 무의미하다고 여긴 당시 예술가들은 그전까지의 모든 형식을 파괴했다.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감 앞에 파괴를 위한 행위만이 남았다.

그 자학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

반(反) 이성주의였다.

역사는 끊기고.

알 수 없는 비명만이 20세기를 잠식해나갔다.

형태를 파괴했기에 매개체도 없다.

예술가들 스스로 이해받길 바라지도 않았으며 그렇게 미술은 대중과 멀어졌다.

역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철저히 자신들을 고립시켰던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금도 예술계 곳곳에서 영향을 남기고 있었다.

장미래는 이제는 그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술가였다.

모더니즘의 엘리트 중심적 예술에서 벗어났지만, 정작 대중과 역사 속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설사 물리적인 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예술은 사람을 위로하고 즐겁게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개로 기능한다고 믿었다.

나를 표현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소통의 수단이라는 본질에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그런 그녀에게 고훈은 든든한 전우였다.

“같이 갈 걸 그랬나.”

그녀는 스마트폰을 접고 기지개를 켰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내려두고 작업 중이던 캔버스 앞에 섰다.

* * *

1)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년 출생 1968년 사망.

아르헨티나 출신 미술가로 캔버스를 찢거나 구멍을 내어 회화와 조소의 요소를 함께 다룸으로써 공간주의를 이루었다.

2)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 현대미술 판매전.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가 104만 2,000파운드에 낙찰된 순간, 액자에 들어 있던 작품이 세절기에 절반 정도 잘려 나갔다.

차후 작가 뱅크시가 의도한 일임이 밝혀지면서 소더비 수석 디렉터 앨릭스 브란크칙은 사건 직후 “우리가 뱅크시 당했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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